11. 출격! 장도리!
“둔기류는 갑각이 단단한 몬스터에게 특히 효과적이지만, 뭐 그렇다고 해서 보통 몬스터에게 약한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지. 당장 저 망치로 한 대 맞는다고 생각해봐. 소름 돋지 않냐?”
훈련 동으로 이동한 김수성은 바로 강의를 시작했다.
어쨌든 그 역시 교관.
일단 강의를 시작하자 피가 끓어 오른 것이다.
백유현은 그가 가리킨 거대한 워해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저걸로 얻어맞는다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하다.
하지만 그래서 둔기를 선택한 것이다.
일단 둔기는 명중만 시킬 수만 있으면 치명적인 데미지를 줄 수 있으니까.
귀신 개와의 싸움에서 제대로 된 데미지를 주지 못하면 더욱 더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기에 더욱 더 그랬다.
“자, 그럼 둔기류를 실전에서는 어떻게 쓰는지 보여주마. 숙달된 교관 앞으로!”
“앞으로!”
교관 김승미가 앞으로 나섰다.
그녀의 손에는 장도리보다 큰 망치 하나가 들려 있었다.
그것 역시 제대로 한 방 먹으면 바로 치명타를 입을 듯한 모양새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 앞에는 단단한 대리석이 십수 장 겹쳐 놓여 있었다.
“둔기류는 기본적으로 휘두른다- 를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자, 교관 시범!”
“핫!”
김승미는 부드럽게 망치를 뒤로 젖혔다가 바로 반원을 그리며 휘둘렀다.
슈아앗-
콰앙-
퍼서석!
백유현은 눈앞의 광경을 보고 두 눈을 크게 떴다.
장도리보다 조금 큰 망치였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남자보다 근력이 떨어진다는 여자의 손에 휘둘러진 망치다.
그런데 결과는 의외였다.
십수 장에 달하는 대리석이 완전히 박살이 나 있었던 것이었다.
특히 망치에 직격당한 중심부는 완벽하게 가루가 되어 있었다.
저걸 머리에 맞는다고 생각하면...!
“봤냐? 둔기류의 데미지는 이 회전력, 즉 원심력에 의해 결정이 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그 원이 클수록 둔기류에 집중되는 에너지는 더욱 더 무시무시해진다. 인간의 두개골 따위는 순식간에 박살이 나는 거다. 몬스터들 역시 마찬가지. 방어력이 약하다면 바로 뼈가 부서져 나갈 수 있다. 단, 그만큼 위력이 강한 대신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지.”
김수성은 둔기를 휘두르는 시늉을 하며 말을 이었다.
“바로 이 회전. 이 최소한의 회전이 보장되지 못하면 둔기류는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해. 칼은 찌르고, 도는 내리찍고, 총은 방아쇠를 당기고, 창도 찌르면 되지만...둔기류가 힘을 발휘하려면 바로 이 최소 회전 반경이 보장되어야 한다. 물론, 차후 레벨이 올라가면서 터득하게 되는 포스 발출을 할 수 있게 되면 얘기가 달라지지만.”
포스 발출.
말 그대로 몸 안의 에너지를 응축시켜 발출시키는 것을 말한다.
중국 무공 체계로 따지면 발경(發勁)이 이에 해당한다.
응축된 기를 한 점에 집중하여 폭발시키는 고도의 기술.
하지만 아직 백유현에게는 너무 멀다.
“그래서 둔기류를 배우는 훈련생에게는 반드시 단검술을 같이 가르치는 거다. 둔기를 휘두르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적에게 타격은 줄 수 있어야 하니까. 자, 교관. 단검술 시범 준비!”
미리 세팅된 마네킹 앞에 선 김승미가 자세를 잡자, 김수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
그 말과 동시에 김승미가 순간적으로 움직였다.
콰직! 콰직! 파앗!
단 세 번의 동작.
그것을 보여주는데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사실 백유현은 그녀가 뭘 했는지도 보질 못했다.
그리고 김승미가 스쳐 지나간 뒤, 마네킹에서는 핏물처럼 빨간 물감이 흘러내렸다.
목의 경동맥, 오른쪽 갈비뼈 사이, 그리고 가슴.
하나같이 치명적인 급소에 단검이 박혔다가 빠져나온 흔적이었다.
무시무시하다.
백유현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한 가지를 확실히 깨달았다.
바로 이것이 각성자라는 것을.
“김승미 교관의 근력은 24. 그리고 순발력은 29다. 단검술과 검술에 특화되어 있는 각성자지. 하지만 김승미 교관의 근력 정도가 아니면 방금 전, 둔기류 격파 시범과 같은 결과는 절대 나올 수가 없다.”
맞는 얘기다.
거대한 해머가 아닌, 저 자그만 망치로 대리석 열 몇 장을 단 한 방에 깨는 것은 확실히 불가능했으니까.
김수성의 말이 이어졌다.
“둔기류를 익히는데 강한 근력이 필요하다는 이유는 단순히 둔기가 무거워서가 아니다. 둔기를 휘두르는데 쓰이는 힘, 그리고 그 회전력을 버텨내는 근육의 힘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하기 때문이지. 그래서 본 교관은 네가 둔기를 배우는 것에 깊은 우려를 표하는 바이다.”
김수성은 멋들어지게 훈련생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심을 담은 눈빛을 보내며 말했지만, 그는 이내 눈살을 찌푸렸다.
백유현은 오히려 더욱 더 둔기류에 관심이 생긴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것이었다.
“대리석을 깨는 데는 그렇겠지만...그러니까, 목표가 개 정도라면 저도 충분하겠지요?”
김수성은 알 수 없는 그의 말에 인상을 썼다.
‘개? 이건 또 뭔 소리야?’
그는 한 발짝 앞으로 나서며 나직하게 말했다.
보통 이럴 때, 그는 훈련생의 정신 건강에 대해서 심각하게 걱정을 하곤 했다.
“개를 잡겠다는 거냐? 왜? 도대체 무슨 이유로? 지금 각성자가 되어서 하겠다는 일이 개장수를 하겠다는 거냐?”
백유현이 씩 웃었다.
“아니요. 잡아야 할 놈들이 있어서요. 내버려두면 사람들을 해치고 다닐 수도 있으니까.”
“그런 거면 관할 구청에 신고하면 되잖아!”
“제가 아니면 안 되거든요. 교관님, 그러면 만약 대상이 개처럼 생긴 몬스터라면 어떻게 상대해야 되는 거죠? 경험이 풍부하신 교관님이시라면 분명히 방법을 알고 계실 것 같은데...”
그 말에 김수성이 몸을 움찔거렸다.
‘허, 자식!’
백유현이 띄워주니 괜히 우쭐해진다.
그래, 진짜 개를 잡는 게 아니고 개처럼 생긴 몬스터를 잡는 거라면 이해해줄 수 있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입을 열었다.
“커흠! 뭐, 그런 거라면 어렵지 않지. 교관! 이제부터 자네는 도르가(Dorga) 역할을 한다.”
“네?”
김승미가 저도 모르게 김수성을 째려보았다.
도르가(Dorga).
말 그대로 도르가는 레벨 1에 랭크된 개처럼 생긴 몬스터였는데, 늑대보다는 조금 작지만 훨씬 사나운데다가 체력도 상당하다.
다만 놈의 약점은 역시나 머리.
그 약점이 너무 확실해서 둔기로 머리를 내리치면 바로 잡을 수 있다.
다만, 가끔 변수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실습 시간이잖나! 그럼 내가 도르가 역할을 할까?”
“아, 예...”
김승미는 마뜩찮은 표정으로 바닥에 엎드렸다.
하지만 그녀는 보통의 여성이 아니었다.
각성자인데다가 모든 신체 수치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그녀는 바로 유연하게 도르가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김수성은 여유롭게 장도리 하나를 들고 그 앞에 섰다.
“자, 이제부터 네가 쓸 무기다. 어떻게 하는 지 잘 봐둬라."
손에 착 감기는 작은 장도리.
그런데 김수성이 들고 있으니 그렇게 무시무시할 수가 없다.
“와라!”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김승미가 네 발로 뛰며 김수성에게 덤벼들었다.
그 속도는 가히 전광석화!
그런데 김수성은 한쪽 팔을 내밀어 김승미의 목덜미를 낚아채더니, 동시에 장도리를 그녀의 뒤통수에 그대로 날렸다.
덜컥-
장도리는 김승미의 뒤통수 바로 뒤에서 멈춰있었다.
“넌 아직 애송이니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한쪽 팔로 가드하는 것을 잊지 마라. 목을 내주는 것보단 낫다. 다만, 내줄 때는 내주더라도 확실하게 놈의 머리통을 부수는 것 또한 잊지 말고. 자, 다음 상황!”
김수성과 김승미는 포지션을 바꿔가며 여러가지 상황에서 대처하는 방법을 보여주었다.
백유현은 그 모습을 보고 하나하나 머릿속에 확실하게 새겨 넣었다.
물론 실전은 다르겠지만, 그는 최대한 귀신 개와의 싸움을 떠올리며 가상 전투를 벌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김수성과 그 당시의 자신이 뭐가 다른 지 확실하게 깨달았다.
자신을 보며 죽일 듯 달려들던 귀신 개.
그 앞에서 그는 너무 긴장되어 온 몸의 근육이 굳어 있었고, 터질 듯 뛰는 심장 박동과 가빠지는 호흡을 제어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귀신 개의 움직임은 번번이 놓쳤고 결국 치명적인 일격을 허용했었다.
하지만 김수성은 다르다.
근육질의 그는 그 체구가 무색하게 매우 부드럽게 움직이고 있었고, 정확하게 공격을 때려 넣고 있었다.
여유.
자신의 공격이 분명 성공한다는 저 여유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좋아!’
백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귀신 개와 지옥견이 같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해볼만 했다.
그리고 도르가나 지옥견이나 같은 1 레벨의 몬스터다.
크게 도르가의 특성에서 벗어나진 않을 것이다.
“잘 봤나?”
한참 실전 모습을 보여주던 김수성이 돌아서며 백유현에게 물었다.
김수성과 김승미는 그 격렬한 움직임 직후인데도 숨이 하나도 거칠어지지 않았다.
백유현이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교관님.”
“후, 좋아. 이제 남아서 연습을 하던지 그건 네 자유다. 나는 시원한 맥주 한 잔이 그리워서 말이야. 자, 오늘은 해산!”
백유현은 두 사람에게 고개를 숙이고는 무기 진열대 한쪽 구석에 처박혀 있던 작은 장도리를 꺼내들었다.
손에 착 감겨드는 게 제법 맛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두 눈을 감았다.
아까 보았던 지옥견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놈의 머리를 노린다!’
자신을 보며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대던 놈의 모습.
하지만 이미 백유현은 놈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 상태였다.
두 교관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또 깨달은 상태였으니까.
그는 바로 눈을 뜨지 않았다.
놈이 덤벼들 수많은 상황을 머릿속에 떠올려가며 자신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그의 손에 들린 장도리는 든든한 아군이 되어 주었고, 혹시 몰라 챙긴 단검 또한 든든했다.
김수성의 움직임 하나, 하나가 뇌리에 아로새겨졌고, 어느 순간부터 백유현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직이며 그의 움직임을 따라하고 있었다.
어색하고, 어설프지만 분명한 움직임이 있었다.
“허, 저 자식!”
그런 백유현을 보며 김수성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벌써부터 가상 전투를 그려내다니...제법이네요. 저 정도면 꽤 실전에도 도움이 될 것 같은데요?”
그 옆에서 김승미가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
가상 전투는 흔히 복서들이 가상의 상대를 설정해놓고 하는 셰도우 복싱과 흡사하다.
수많은 상황을 놓고, 자신이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 시뮬레이션 하며 몸과 정신이 같이 움직이는 것이다.
각성자들도 다르지 않다.
의사들이 가상 수술을 하며 손의 근육을 단련하는 것과, 각성자들이 전투에 앞서 가상 전투를 통해 근육에 그 동작을 기억시키는 것은 비슷한 맥락이다.
실전에 가서는 이 훈련이 엄청나게 도움이 되곤 하니까.
하지만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저렇게 혼자 연습을 하는 것은 대단한 재능이다.
남다른 집중력과 상상력이 없으면 저것도 저렇게 깊게 몰입할 수가 없으니까.
“뭐, 나도 저 때는 저랬다고. 그나저나 승미야, 맥주 한 잔 하러 갈래?”
그 말에 김승미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도르가는 이만 집에 가봐야 해서요. 마침 맛있는 개껌도 나왔다고 하네요? 그러니 선배 혼자 가시죠.”
“엇! 그건 훈련...”
“먼저 가보겠습니다.”
김승미는 냉랭하게 몸을 돌려갔고, 홀로 남은 김수성은 뒷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없었다.
“쩝...”
그러다 그는 문득 백유현을 바라보았다.
백유현은 갑자기 멈춰 서서는 한쪽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저 놈은 또 왜 저래? 어휴, 모르겠다! 알아서 하겠지.”
김수성도 몸을 돌려 거대한 훈련 동을 나섰다.
이제 이곳에는 백유현 홀로 남겨져 있었다.
이미 밤이 깊은 시각, 훈련생들은 자신들의 방에서 쉬고 있을 테니까.
그런데 백유현은 아까부터 어딘가를 바라보며 움직이지 않았다.
더 이상한 것은 그의 두 눈동자가 묘하게 반짝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래, 잘 됐네. 이렇게 스스로 나타나주니 말이야.”
그의 눈앞.
아까부터 ‘놈’이 나타나 있었다.
- 크르르르
차사의 추적을 피해 사라졌던 저승견.
놈이 매서운 두 눈을 들어 백유현을 노려보고 있었다.
다행히 한 마리만 있었고, 다른 놈들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백유현이 놈을 보며 싸늘하게 웃었다.
“자, 그럼 시작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