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영체
“숙소 동은 저 쪽 편이다. 훈련 동은 이쪽, 체력단련 동도 이쪽 건물에 있다. 자주 이용하는 것이 좋을 거다. 넌 이제야 각성을 해서 다른 녀석들보다 많이 뒤떨어져 있으니까.”
백유현이 자기소개를 마치고 내려오자 교관 김수성이 건물 안내를 해주었다.
“숙소에 가면 필요한 모든 것이 갖춰져 있을 거다. 일단 가서 단련복으로 갈아입고 훈련 동으로 와라. 팀장님 특별 지시로 너에게는 일주일 동안 기초 훈련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니까.”
“네, 교관님.”
원래는 이런 경우가 잘 없지만, 백유현의 경우는 워낙 특별한 케이스라서 일주일 동안 기초 훈련을 할 수 있게 배려를 한 것이다.
워낙 다른 후보생들과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이었다.
백유현은 숙소 동에 들어가 자신의 이름이 적힌 방을 찾았다.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그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와...!’
매우 세련된 내부.
상당히 넓은 공간에 필요한 모든 것이 다 갖춰져 있었다.
고급스런 가구에, 피로를 풀 수 있는 사우나 시설, 편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 등, 완벽하게 갖춰진 공간이었던 것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것이 백유현 한 명을 위한 공간이었다는 것.
역시 각성자가 되면 인생 역전한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
한쪽에 마련된 드레스 룸에는 검은색의 단련복들이 십 수 벌 걸려 있었다.
‘엄청 굴리나 보네.’
십 수 벌의 단련복을 보며 백유현은 자신의 미래를 직감했다.
하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오히려 기대가 되어 가슴이 뛰었다.
자신이 정말 각성자라는 사실이 피부로 와 닿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재빨리 단련복을 입고 다시 강당으로 나갔다.
다른 후보생들은 이미 각자 스케줄에 따라 흩어지고 없었다.
백유현은 바로 훈련 동으로 향했다.
훈련 동에 들어서자, 두 명의 교관이 서 있었다.
한 명은 김수성이었고 또 한 명은 여자 교관이었다.
나이는 대략 백유현과 비슷한 또래였는데 백유현을 쏘아보는 눈빛이 매우 날카로웠다.
둘 역시 벌써 단련복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자, 이리로.”
김수성의 말에 따라 백유현은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갑자기 김수성이 백유현의 온 몸을 주물렀다.
상당한 악력에 백유현은 고통을 느꼈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김수성이 픽 웃었다.
“독하네? 보통 놈들은 근육을 이렇게 자극하면 죽으려고 하는데.”
그는 백유현의 근육 상태를 점검한 것이었다.
이미 검사를 통해 백유현의 신체 수치가 다 나와 있었지만, 수치는 수치일 뿐이다.
놈을 어떻게 제대로 된 각성자를 만들지는 정확한 판단이 필요했다.
“음, 마른 근육이지만 나쁘진 않군. 하지만 멀었어. 가지고 있는 근력 수치에 비해 근육이 낼 수 있는 힘이 크지 않다. 근육이 강화되지 않으면 네가 가지고 있는 근력을 모두 끌어내지 못할 거다. 오늘부터 스스로 근력 단련을 하도록.”
말을 마친 김수성은 백유현을 잠시 바라보다가 말했다.
“좋아하는 무기 타입은?”
“네?”
“평소 좋아하는 무기 타입이 있냐고 물어보는 거다. 각성자들은 적어도 하나 이상의 무기를 마스터해야 하니까. 아니면 써보고 싶은 무기나. 뭐, 이것도 설명이 좀 필요하려나?”
김수성은 옆에 있던 무기 진열대에서 하나의 검을 꺼내들었다.
“검은 빠르고 정확하며, 제대로 찌르면 치명타를 줄 수 있지. 하지만 갑각이 단단한 몬스터에게는 잘 통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게다가 타격형 공격을 받으면 쉽게 부러질 수 있다는 단점 또한. 순발력이 높으면 검도 괜찮다. 그리고...”
그는 다시 도 하나를 꺼냈다.
“도는 무게를 이용하여 치기 때문에 검보다는 파괴력이 뛰어나다. 몬스터들의 갑각도 어느 정도 박살낼 수 있지. 하지만 역시나 무거워. 네 팔 근육으로는 도를 들기도 벅찰 거다. 다음은 이거.”
그 다음 꺼내든 것은 망치였다.
그것도 그냥 장도리 같은 망치가 아니라, 전투형 워해머.
자루가 길고 커다란 쇠뭉치가 달린 형태였다.
“뭐, 이놈 저놈 다 잘 통하는 무기가 바로 이 녀석이지. 갑각 부수는데도 제대로고. 특히 몬스터들의 두개골을 박살내는 데는 이것만한 게 없지. 하지만 역시나 네 가느다란 팔 근육으로 휘둘렀다간 어깨뼈가 먼저 빠질 걸? 다른 무기들도 있으니 찬찬히 살펴봐라. 총도, 활도 다 있다. 아, 네 신체 능력 수치는 알고 있지? 각성할 때 봤을 테니까.”
“네.”
“골라봐. 이건 중요하니까 십분 준다.”
백유현은 성큼 무기 진열대 앞으로 나가 주의 깊게 살폈다.
‘몬스터...’
아마 저번 귀신 개들과 같은 놈들을 가리키는 것이겠지.
그 때는 정말로 죽다 살았다.
놈들과 한 번 맞붙어 보니, 평소에 생각했던 것과는 엄청난 괴리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놈들은 뾰족한 우산 끝으로 눈알에 정확히 찔러도 바로 죽지 않는다.
귀신 개와 몬스터와 비슷한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검도 자신에게 있어 크게 효율적인 무기는 아닌 듯했다. 저번과 같은 경우가 발생하면 정말 곤란하다.
‘한 방에 보낼 수 있는 무기가 필요해.’
귀신 개와의 싸움을 떠올려 보니, 그 때 자신에게 필요했던 것은 둔기였다.
김수성 말대로 머리통을 가격하여 두개골을 박살낼 수 있었다면 그 정도로 고전하진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둔기류는 어딜 때려도 치명타를 입힐 수 있다.
문제는 근력.
각성을 하면서 2의 근력 수치가 올랐지만, 그게 어느 정도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저, 교관님.”
“말해.”
“제 수치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어느 정도인지 가르쳐 주세요.”
“흠...좋아.”
김수성은 백유현에 대한 보고서를 뒤적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네 근력은 현재 11. 그냥 평범한 고등학생 중에서도 조금 나은 정도다. 이래서야 싸움은 제대로 하겠나 싶을 정도야. 즉, 근력은 낙제점. 다음은 지구력. 지구력 11도 네 근력 수치에 비해서는 높게 나온 거다. 지구력도 근력이 뒷받침 되어야 하는 건 알고 있을 거고. 역시나 간신히 평균을 조금 넘은 정도고.”
“네...”
“순발력도 영 별로군. 이래서야 검도 제대로 쥐겠나 싶네. 어디 보자, 행운이 7이면 적의 공격을 ‘우연히’ 혹은 ‘운 좋게’ 막아낼 확률은 10 퍼센트 미만, 공격 시에도 마찬가지. 쯧, 이런 녀석을 베타 프로젝트 팀에 밀어 넣다니, 정재호 부장도 글렀네, 글렀어!”
백유현은 쓴 입맛을 다셨다.
높은 수치가 아니라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면전에서 신랄하게 독설을 들으니 너무 아팠다.
“자, 다음은...오호, 정신력 수치는 좀 되는군. 12 정도면 뭐 준수하다고 볼 수 있다. 정신력은 집중력과 관련되어 있으니 적어도 수업에 졸지는 않겠네. 응? 지력이 18이나 돼? 이 자식, 체력은 허약한데 왜 이런 쪽만 강한 거야?”
“지력은 높은 편입니까?”
“당연하지! 각성자 보정이 들어갔다 해도 18이면 상당한 수치다. 지력은 나중에 올리기도 힘든 수치거든. 각종 이해력과 불멸자들의 능력 흡수율이 여기서 결정되기도 하고. 불멸자가 권능을 빌려준다 해도 지력이 낮으면 그걸 제대로 흡수를 못해. 효율이 안 난다는 뜻이다. 베타 파장과 비슷한데, 일단 지력에서 한 번 걸러지고, 또 베타 파장에서 걸러진다고 생각하면 된다. 지력이 높으면 높을수록 좋지.”
김수성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말을 이었다.
“게다가 지력이 높으면 뇌의 모든 능력이 더욱 활발하게 활성화가 된다. 자연스럽게 시력, 청력, 전투 센스, 육감...모든 것이 골고루 발달하게 되지. 이 녀석 진짜 특이하네? 아, 그리고 근성이 15라...독한 이유가 있었구먼.”
김수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재미있는 놈이네. 이거 오히려 간단해졌잖아? 신체 능력만 죽어라 키우면 자연스럽게 밸런스 형으로 자리 잡겠는데?”
“그럼 근력을 키우면 해머를 써도 된다는 거죠?”
백유현의 말에 김수성이 인상을 찌푸렸다.
“해머? 근력 11 짜리가 해머를 쓰겠다고? 장도리 쓰는 것도 힘들 텐데? 근력 11로는 제대로 위력을 내지도 못해!”
“한 방에 보낼 무기가 필요해요.”
“나 참...그런 거라면 검도...아니, 그러고 보니까 순발력도 낮아서 검이나 해머나 효율이 비슷하겠네. 애초에 너는 근력 단련과 순발력 강화가 먼저겠다.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무기 선택은 네 신체 단련 결과에 따라 결정하는 걸로. 일주일이면 유의미한 수치는 나올 테니까. 어차피 지금은 무슨 무기를 골라도 별로 의미가 없으니.”
“네, 알겠습니다.”
백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저번에 귀신 개와 싸웠을 때를 상기해보면 힘이 약해서 놈을 죽이지 못했던 이유가 가장 컸다. 하지만 여전히 검에는 마음이 가질 않았다.
뇌를 정확하게 뚫어도 제대로 된 공격이 아니면 쉽게 놈들을 죽일 순 없다.
오히려 그에 자극받아 더욱 사납게 날뛰는 꼴을 눈앞에서 봤으니...
하지만 무기를 선택하는 것은 아직 조금 일렀다.
“자, 그럼 체력단련실로 이동해볼까?”
김수성이 무미건조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체력단련.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각성자들이 피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그리고 김수성은 이 시간을 매우 좋아했다.
자신은 편하지만, 후보생들은 죽어나는 그 상황이 너무 재미있었으니까.
‘오늘 아주 죽어라 굴러보자!’
또 한 명의 희생자의 뒷모습을 보며 김수성은 속으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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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단련실은 바로 옆에 있었다.
베타 프로젝트 팀에 배속된 곳답게 체력단련실도 두 군데로 나뉘어 있었다.
한 곳은 개인적으로 와서 체력단련을 할 수 있는 공간이었고, 한 곳은 후보생들을 단체로 굴려(?) 줄 수 있는 곳이었다.
“자, 일단 단련을 시작하기 전에 스트레칭으로 가볍게 몸을 풀어보자!”
백유현을 앞에 두고 김수성이 크게 말했다.
그 말은 곧, ‘지옥으로 떠나기 전에 지옥행 열차의 표를 끊어보자’ 와 비슷한 의미였지만 백유현이 그걸 알 리가 없었다.
“네!”
백유현은 크게 대답했다.
“숙련된 교관 앞으로!”
여성 교관이 앞으로 나섰다.
“스트레칭은 김승미 교관을 따라하도록 한다! 잘 따라해야 할 거야. 내일 곡소리 내고 싶지 않으면.”
“네, 알겠습니다!”
김승미는 제대로 숙련된 동작으로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헉, 헉!”
하지만 그건 말만 스트레칭이었지, 엄청난 운동 강도를 보이는 것이어서 백유현은 스트레칭만 따라하는 것으로도 온 몸에 땀이 비 오듯 흘렀다.
김수성은 그 모습을 보며 씩 웃었다.
‘같은 호랑이라도 새끼 호랑이는 다른 짐승의 먹잇감일 뿐. 네 놈은 내가 제대로 맹수로 키워주마!’
지금 자신은 대한민국 최고의 천재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러니 뭔가 사명감 같은 게 무럭무럭 생겼던 것이다.
백유현에게는 이 잔인한 정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그런 혹독한 훈련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투철한 사명감에 따라 백유현은 그날 정신없이 굴렀다.
이제까지 겪은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김수성은 미친 듯 그를 굴려댔다.
각성자인지라 쉽게 기절하지도 않는다.
맨 정신으로 미친 듯 극한의 고통에 노출되기를 벌써 몇 시간.
“자, 십분 간 휴식!”
숨이 넘어갈 쯤 되어서야 휴식이 주어졌다.
“하아, 하아!”
백유현은 눈앞이 노래지는 것을 느꼈다.
‘으윽!’
물을 마시고 겨우 숨을 돌리려 몸을 일으키려는 찰나, 그는 자신도 모르게 두 눈을 번쩍 떴다.
체력단련실 저 앞, 그러니까 백유현의 눈앞에 뭔가가 있었다.
‘저건...설마!’
- 크르르르-
영체(靈體).
저번에 공동묘지에서 싸웠던 귀신 개와 비슷했지만, 그보다는 작은 짐승의 영체가 구석에서 백유현을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