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노블레스 멤버스
어리둥절하기는 백유현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눈앞에 떠올라 있는 반투명한 창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썩어가는 존재의 피’의 영향으로 신체가 재구성되기 시작합니다]
[생체 에너지 파장이 분출됩니다]
[업적 ‘존재하지 않는 각성’을 달성했습니다]
[이면(裏面)의 각성자 호칭을 얻었습니다]
[세포 재구성 속도 증가]
[골격 재생 속도 증가]
[주요 장기 재생 속도 증가]
...
[외력(外力)이 감지되어 신체 방어가 시작됩니다]
...
[구명(求命) 완료]
[신체 재구성 완료]
[호흡이 정상화 되었습니다]
[맥박이 정상화 되었습니다]
[모든 신체 능력이 정상화 되었습니다]
‘이게 뭐야...?’
귀신 개에게 공격을 당해 정신을 잃은 것까진 기억난다.
정신을 잃기 전 놈의 피가 목구멍으로 넘어왔던 것도.
그런데 눈을 떠보니 자신은 지금 병원 침상에 누워 있었고, 눈앞에는 온통 이해할 수 없는 반투명한 창들이 가득 떠 있었다.
뭐가 신체 재구성이고, 뭐가 구명이 완료되었다는 거란 말인가?
그 때 창이 스크롤 되듯 올라가며 또 다른 창들이 떴다.
[이면의 각성자 호칭 습득으로 모든 신체의 능력치가 2 만큼 상승합니다]
[근력 11] [지구력 11] [순발력 10] [행운 7]
[정신력 12] [지력 18] [근성 15]
이후 추가될 수 있는 능력 슬롯 수 [??]
각성자 레벨 1
다음 레벨까지 500 경험치가 필요합니다.
현재 경험치 500.
[부패한 피의 파동으로, 썩어 문드러진 자들의 왕이 당신을 주시하기 시작합니다]
‘이게 도대체 뭐지?’
갑작스레 떠오른 창들 때문에 그는 어리둥절해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그 때 누군가 그에게 다가와서 담요를 내밀었다.
“정신이 좀 드나? 우선 이걸로 좀 가리지.”
안경 한쪽이 깨져 나간 이재국이었다.
백유현은 그제야 자신의 옷이 죄다 찢겨 나간 것을 깨닫고는 황급히 담요로 몸을 가렸다.
그리고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예, 뭐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왜 여기에 있는 건가요?”
이재국이 눈살을 찌푸렸다.
“곧 죽을 뻔한 녀석 치고는 너무 태연한 거 아닌가? 정말 기억이 하나도 안 나는 거냐?”
“네...”
이재국은 잠자코 백유현을 바라보다 말을 이었다.
“넌 죽다 살아났다. 그리고 주변을 이 모양으로 만들었지.”
그제야 백유현은 주변을 둘러보고는 아- 하는 탄성을 내질렀다.
산산조각이 난 주변 의료기기들과 각종 도구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안경 한쪽이 깨진 이재국과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는 구조대원, 의사들이 보였다.
“죄송합니다.”
백유현은 고개를 숙여 보였다.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꼭 배상하겠습니다. 그리고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살린 게 아냐.”
“네?”
백유현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재국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아는 의료 지식으로는 넌 이미 죽었어야 했다. 심장박동수도, 호흡도 모든 것이 엉망이었으니까. 널 살린 것은 너 자신이다.”
“예...?”
백유현은 여전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럼 아까 눈앞 가득 떠 있던 그 창들이...
이재국이 잠시 백유현을 빤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이런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각성(覺醒). 그래, 각성뿐이다.”
“각성이요? 그럴 리가요...각성을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
백유현은 말을 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뭔가 떠올랐던 것이다.
‘각...성!’
존재하지 않는 각성이라는 업적 달성, 그리고 이면의 각성자라는 호칭 획득.
방금 전까지 두 눈으로 똑똑하게 보았던 문구들이 아닌가?
각성자.
하지만 금세 그는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각성자가 되는 것은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다.
그건 노력만으로 되는 게 아니니까.
하지만 한 번 각성을 하게 되면 사람들은 그를 엄청나게 부러워한다.
그들은 부와 명예를 얻은, 세상의 정점에 있는 자들.
한 마디로 사는 세계가 달라진다는 뜻이다.
그런데 자신이 각성을 했다고?
그 때 이재국이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나직하게 말을 이었다.
“그런데 어느 학계에서도 이런 식의 각성은 보고가 되지 않았다. 그랬다면 우리가 진즉 알았겠지. 우리 에이브람스 병원의 환자 중에서도 각성을 일으킨 사례가 있었지만 이것과는 전혀 달랐었다. 강력하긴 했지만 이토록 거칠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이건 어느 곳을 가 봐도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야. 거기에다가 완전히 숨이 넘어갔던 상황에서 회생(回生)하는 경우라니...”
백유현도 눈살을 찌푸렸다.
이재국의 말을 듣고 보니 뭔가 이상했다.
자신은 분명 각성을 한 것이 맞는 듯했다.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치고 각성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은 없다.
살아가면서 가장 고대하고 기대하는 것이 바로 ‘각성’ 이니까.
그런데 자신에게 일어난 일은 일반 각성과는 뭔가 좀 달랐다.
각성을 하게 되면 눈앞에 창이 뜨고, 신체 능력치가 올라가고 뭐 등등 여러 가지는 똑같았지만 그 과정이 완전히 달랐던 것이다.
보통 각성자들은 ‘계약자’에 의해 선택이 되어 각성의 과정을 거친다.
계약자들은 보통 불멸자라고도 불리는 존재들인데, 그들과의 계약을 거쳐 각성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
그런데 자신은 그 누구와도 계약을 한 적이 없는데 각성을 했다.
심지어 눈앞에 떠올랐던 창에도 나왔지 않았던가?
썩어 문드러진 자들의 왕이 이제서야 자신을 주시하기 시작했다고.
불멸자의 주의만 끄는 것으로는 계약이 성립될 리가 없다.
애초에 계약은 없었다는 얘기다.
‘뭐야, 그럼?’
생각을 해보니 자신이 각성을 한 것은 ‘썩어가는 존재의 피’로 인해서인 듯했다.
아마 그건 공동묘지에서 싸웠던 귀신 개의 피를 말하는 것이겠지.
그 피로 인해 그는 죽음에서 되돌아왔고, 각성까지 일으킨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분명 아무리 눈앞의 창을 뒤져봐도 불멸자와 계약을 했다는 얘기는 전혀 없었다.
뭔가 과정이 꼬인 것이다.
각성은 했으되, 계약은 없는.
“모르는 거냐? 네가 각성을 했는지, 안 했는지.”
“그게...좀...”
일반적인 각성의 과정과는 전혀 달랐기에 백유현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런 거라면 확인해보면 되겠지.”
“확인이요?”
이재국이 그를 빤히 보며 말했다.
“당연하지 않나? 노블레스 멤버스. 그곳에서라면 네가 각성자인지 아닌지 확실히 알 수 있을 테니까.”
맞다.
각성자들의 조직인 노블레스 멤버스에서는 각성 여부를 판단하는 기초 검사를 진행하니까. 그리고 몇 가지 까다로운 검사를 거쳐 노블레스 멤버스의 멤버로 인정 되면, 그 순간부터 엄청난 부(富)와 명성이 주어진다.
한도가 없는 블랙 카드, 그리고 100평형 오피스텔, 그리고 전용 세단.
이유는 간단하다.
각성자들에게 그 정도 돈을 버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니까.
마치 의사 고시에 합격한 사람들에게 1억짜리 마이너스 통장이 발급되는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명칭이 노블레스 멤버스라는 것을 미루어 보면 알 수 있듯, 그들은 현대의 귀족과 같은 신분이 된다.
외교적으로도 법적으로도 상당한 편의를 제공받으며 어떤 각성자들은 불체포 특권까지 있다. 그 이유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각성자들은 각 국가에서 특별하게 관리되는 전술 무기.
그들 하나가 움직이면 나라 하나가 초토화될 수 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각 나라들에서는 각성자들에 대해서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뭐 그게 아니더라도 각성자들이 카오스 터미널에 들어가서 벌어오는 돈이 천문학적이기에 자연스럽게 그런 신분이 되는 것이기도 했다.
“네가 각성자였으면 좋겠구나.”
이재국이 난장판이 되어 있는 베드 주변을 보며 말했다.
백유현이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여 보였다.
“죄송합니다.”
이재국이 희미하게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
“일단 바이탈 체크 해보고, 퇴원 여부를 결정하자. 어차피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
“예...”
이재국은 지갑을 열어 오만 원 권 지폐 몇 장을 꺼냈다.
“돈이 좀 필요할 거다. 옷도 사고하려면. 담요를 입고 다닐 수는 없지.”
백유현은 멋쩍게 그 돈을 받았다.
“꼭 갚겠습니다. 선생님.”
이재국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주변을 보며 말했다.
“뭣들 보고만 있어? 다들 여기 정리해. 아, 그리고 원무과 연락해서 청구서 하나 받아놓고. 이 녀석이 진짜 각성자면 손해배상 청구 해야지. 이게 다 얼마짜린데.”
“예, 과장님!”
이재국이 다시 고개를 돌려 백유현을 바라보았다.
“넌 잠시 기다려. 기초 검사는 하고 보내야 하니까.”
“예, 선생님.”
백유현으로 인해 엉망이 된 병실이 빠르게 치워지고, 백유현은 다시 검사를 받았다.
심전도, 각종 초음파, 혈액 검사, 소변 검사, 엑스레이 등 기본적인 검사를 받은 후에야 백유현은 퇴원할 수 있었다.
병원으로서도 멀쩡하게 걸어 다니는 백유현을 오래 잡아둘 수는 없었다.
그리고 모든 검사를 다해 봐도 백유현은 정상이었다.
일반인과는 수치가 다르긴 했지만, 각성을 했다면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혹시 모르니까 일주일 후에 다시 내원해라. 혈액에 대한 정밀 검사 결과가 그 때 나올 테니 말이다.”
“알겠습니다.”
이재국의 말에 백유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시간 되면 바로 노블레스 멤버스 한국지부에 가봐라. 진짜 각성했다면 하루라도 빨리 혜택을 받는 게 좋을 테니까.”
“네.”
백유현은 대충 옷을 빌려 입고 노블레스 멤버스 한국지부로 향했다.
사실 그도 알고 싶었다.
자신이 제대로 각성을 한 것인지.
그게 맞는다면...
그는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