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귀신 개와의 싸움
그는 발을 바쁘게 놀려 엄마의 무덤이 있는 근처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 순간 그는 그 자리에 못이 박힌 듯 우뚝 서고 말았다.
- 크르르!
놀랍게도 그의 눈앞에는 들개처럼 보이는 반투명한 개들의 영이 무덤을 마구 파헤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썩어버린 백골을 거칠게 씹어대는 놈이 있는가 하면, 썩어가는 살점을 게걸스럽게 뜯는 놈들도 있었다.
그리고···
“엄마!”
백유현은 눈이 뒤집혔다.
엄마의 무덤에도 덩치가 황소만한 개의 영 한 마리가 달라붙어 파헤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썩어가는 관의 일부가 들려져 있을 정도로 심하게 훼손된 무덤을 보자 백유현은 머릿속의 무언가가 핑- 하고 끊어지는 것을 느끼며 앞으로 내달렸다.
“야이, 개새끼야!”
그는 손에 집히는 대로 두꺼운 몽둥이 하나를 집어 들고 개에게 달려들었다.
이 몽둥이가 놈에게 통할지 안 통할지 그런 건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 크릉!
그가 달려들자, 무덤을 훼손하던 개가 사나운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며 위협을 가했다.
시뻘건 광채가 뿜어지는 놈의 두 눈은 백유현을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빠악! 와지직!
그 순간 눈이 뒤집혀 개에게 달려든 백유현은 그대로 몽둥이를 놈의 대가리에 내리쳤다.
하지만 개의 머리통은 무척이나 단단해서 꽤 두꺼운 몽둥이가 반으로 부러져 나갔다.
그 충격으로 손아귀가 찢어질 듯한 충격을 받은 백유현은 몽둥이를 놓치고 바닥에 처박혀 나뒹굴었다.
영체인데 물리적 데미지가 들어가는 것은 신기했지만, 그에게 더 이상 생각할 여유는 주어지지 않았다.
“크윽!”
개는 무척이나 화가 났는지 침을 사방으로 뚝뚝 흘리며 백유현에게 달려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속도는 가히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식사시간을 방해를 받아 가뜩이나 화가 난데다가, 백유현에게 맞고 나서는 완전히 이성을 상실한 듯했다.
“으윽!”
백유현은 더 이상 생각할 겨를도 없이 본능적으로 바닥을 뒹굴었다.
쾅!
개는 영체로 이루어진 몸인데도 강력한 물리력까지 가지고 있는지 놈이 날카로운 발톱을 내세워 내리친 땅이 마치 포크레인으로 내리찍은 듯 움푹 패여 나갔다.
‘헉!’
백유현은 모골이 송연해졌다.
잡귀들이 자신들의 무덤을 버리고 필사적으로 도망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개들도 고개를 들고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놈들에게는 다른 귀신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같은 귀신들이지만 이 놈들은 뭔가 좀 다른?
‘잘못하다간 죽는다!’
백유현은 몸이 덜덜 떨려왔다.
이때까지 일진들에게, 그리고 사람들에게 수도 없이 맞으면서 맞는 데는 이골이 난 자신이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급소를 보호하는지도 알고, 어떻게 해야 맞는 충격을 완화하는지도 안다.
그런데 눈앞의 개에게서는 도대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머릿속이 하얀 백짓장처럼 변해 생각을 떠올릴 수가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까 보니, 놈에게 물리력이 통한다는 것이다.
백유현은 재빨리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행히 근처에 누군가 버려두고 간 것인지 녹슨 살이 사방으로 퍼져 있는 우산 하나가 보였다.
뾰족한 우산 끝은 급한 김에 무기로 쓰기에는 딱 알맞아 보였다.
백유현은 급히 몸을 굴려 그것을 집어들었다.
그 순간 개가 백유현이 있던 곳으로 날듯이 몸을 날려왔다.
- 크와앙!
슈악!
찌지직!
백유현이 피하지도 못하고 잠시 얼어 있는 사이, 놈의 날카로운 발톱이 백유현의 교복 앞섶을 아슬아슬하게 찢고 지나갔다. 순간 백유현은 두 눈을 번쩍 빛냈다.
그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우산을 두 손으로 꽉 쥐고는 있는 힘을 다해 찔렀다.
“하압!”
타켓은 놈의 눈!
“죽어 버려어!”
그는 있는 힘을 다해 놈의 눈에 우산을 찔러 넣었다.
뾰족한 쇠끝이 놈의 시뻘건 눈을 파고들자, 백유현은 몸을 둥글게 말고 몸무게까지 실어 더더욱 깊게 박아 넣었다.
- 크와아아앙!
놈은 엄청나게 고통스러운지 미친 듯 날뛰었다.
백유현은 우산을 놓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퍼억-
그런데 그 때, 백유현은 불행하게도 몸부림치던 개가 휘두른 앞발에 정통으로 얻어맞았다.
와당탕-
“커억!”
커다란 망치로 두들겨 맞은 듯 어마어마한 충격에, 백유현은 뒤로 멀리 날아가 처박혔다. 엄청난 극통이 얻어맞은 옆구리 쪽에서 올라왔다.
아마 갈비뼈가 맞는 순간 부러진 듯했다.
“어윽!”
아까 묘지에 오기 전에 약국에 들러 약을 발라 놓은 상처들에서도 다시 피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흘러내리는 피로 인해 시야가 좁아지고, 점차 힘이 빠져 나갔다.
‘제길!’
백유현은 바짝바짝 말라가는 입술을 혀끝으로 핥았다.
더군다나 설상가상, 그가 싸우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던 근처의 개들이 시체를 뜯어 먹던 것을 멈추고 이쪽으로 슬금슬금 다가오고 있었다.
- 크르르!
먹잇감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것일까?
눈에 우산을 박아 넣은 개는 다른 개를 보며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빌어먹을!’
백유현은 이를 바득 갈았다.
아무래도 오늘은 운이 억세게도 없는 날인 듯했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자, 백유현은 오히려 오기가 솟았다.
“내가···이렇게 죽으려고 지금까지 버텨 왔는줄 알아? 이 개새끼들아!”
한쪽 눈은 이미 반쯤 감겨 있었지만, 그 속에서 매서운 빛이 뿜어졌다.
강준혁마저 움찔하게 만들었던 그 눈빛.
그의 눈빛을 대한 개들이 순간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백유현에게는 그 잠깐이 매우 소중한 시간이었다.
재빨리 주위를 둘러본 그는 잡초정리용 쇠스랑이 한쪽 구석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쪽으로 내달렸다.
- 크워엉!
백유현에게 일격을 당했던 개가 그것을 발견하고 무서운 속도로 달려들었지만, 백유현은 간발의 차이로 쇠스랑을 집어드는데 성공했다.
“하앗!”
그리고 백유현은 쇠스랑을 꽉 움켜쥐고는 생각할 여유도 없이 힘을 다해 휘둘렀다.
- 캐앵!
쇠스랑의 날은 개의 귀 뒤쪽에 정확하게 꽂혔고 개는 엄청난 비명소리를 울렸다.
“크윽!”
백유현이 쇠스랑을 빼내려 했지만 쇠스랑은 얼마나 깊게 박혔는지 빠지지 않았고, 옆구리가 찢겨져 나가는 듯한 고통을 느낀 백유현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늑골이 완전히 부러졌는지 힘을 줄 수가 없었다.
- 크왕!
순간 개가 맹렬한 기세로 입을 벌리며 백유현에게 달려들었다.
백유현조차 이젠 끝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놈은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엄마···’
이 순간 왜 엄마가 떠올랐을까?
‘유현아, 너는 잘못된 것이 아니란다. 알고 있지? 내 아들.’
생전에 자신에게 했던 엄마의 다정한 말들이 백유현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래도 불행하다 생각했던 자신의 인생에서 그나마 따스함을 느꼈던 그 시간들···
죽음을 앞두자 왜 그 때의 기억들이 떠오른 것일까?
백유현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감돌았다.
‘너는 참 소중한 아이란다. 힘을 내렴.’
부드럽게 말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던 그 온기를 또 한 번 느끼고 싶었다.
‘엄마...’
그 때였다.
누군가 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는 것이 느껴졌다.
“힘을 내렴. 내 아들.”
“···!”
백유현은 눈을 크게 떴다.
“엄마!”
그의 옆에 생전의 모습과 전혀 달라지지 않은 엄마가 서 있었던 것이었다.
비록 반투명한 모습의 영이었지만, 그녀의 손으로 전해지는 온기는 절대 거짓이 아니었다.
- 크워엉!
개의 날카로운 엄니가 바로 코앞까지 닥쳐왔을 때, 백유현의 몸이 거짓말처럼 튕겨 올랐다.
파팟-
그는 몸을 비틀어 개의 공격이 닿기 전에 놈의 눈에 깊게 박힌 우산의 손잡이를 두 손으로 꽉 말아 쥐었다.
“죽어어어!”
그는 이가 부서져라 악물며 그 손잡이를 더욱 더 깊은 곳으로 밀어 넣었다.
우드득!
- 캐애애앵!
갈비뼈가 크게 뒤틀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백유현은 그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으아아아!”
- 캐애앵!
놈의 비명소리가 다시 한 번 울리며 큰 덩치가 크게 휘청거렸다.
하지만 백유현에게 달려든 개의 힘이 어찌나 강했던지, 그가 공격을 성공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개의 거대한 몸집이 백유현을 그대로 깔아뭉갰다.
“커억!”
와당탕-
둘은 그대로 한 무덤의 비석을 박살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끄르륵...!”
백유현은 더 이상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놈의 육중한 몸체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미 폐가 많이 상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흐릿해지는 시야 속에서 그는 필사적으로 버둥거렸지만, 더 이상 일어설 수가 없었다.
눈앞이 점차 흐려지고, 주위의 소리가 웅웅거리며 알아들을 수 없게 변하고 있었다.
그 때였다.
“유현아, 사랑한다.”
엄마였다.
흐릿해진 시야 속에서도 엄마의 모습은 유난히 또렷했다.
하지만 엄마는 마치 환상처럼 그의 시야에서 사라져 가고 있었다.
백유현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외쳤다.
“아, 안 돼! 안 돼! 엄마! 가지마아!”
그의 시야가 점차 캄캄해져 가고 있었다.
“엄마아!”
그리고 어느 순간 고통도, 아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목소리조차 이제는 나오지 않았다.
오직 남은 것이라고는 지독한 슬픔 뿐.
털썩.
허공을 휘젓던 손이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개와 백유현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았다.
쏴아아아-
마치 그런 그를 위로라도 하듯 하늘에서 때 마침 굵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 우우우우!
개들은 하늘을 보며 울더니 어디론가 사라져갔다.
그리고 다시 묘지에는 정적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