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공동묘지
“다녀왔습니다.”
“시펄, 오늘도 안 죽고 기어들어왔냐? 엉?”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술 냄새가 진동을 한다.
아버지라는 사내가 오후 네 시 밖에 안 된 시간에 술을 퍼마시고 있다.
“죄송합니다.”
어차피 왜 안 죽고 돌아왔냐는 말에 뭐라 대답할 거리도 없다.
그는 그냥 고개만 꾸벅 숙이고 말았다.
오늘은 술주정꾼 아버지와 말을 섞을 기분도, 상태도 아니었다.
“어? 너 이 놈의 새끼, 일로 와 봐!”
백유현은 인상을 찡그렸다.
‘후우···’
저런 식으로 말을 할 때는 뭔가 안 좋은 일이 꼭 일어나곤 한다.
아버지는 엄마가 죽은 일을 백유현 때문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네 놈이 귀신을 보니까, 그 놈들이 엄마를 데려간 것이라고.
그래서 백유현도 나가서 뒤졌으면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하는 것이다.
“네.”
백유현은 등을 돌렸다.
“꺼윽! 시펄, 너 이 새끼, 또 싸움박질했냐?”
피멍이 들고 엉망이 된 백유현 얼굴을 보며 아버지가 혀를 끌끌 찼다.
“어이구, 이 새끼 이거. 니 에미 잡아먹은 것도 모자라서 이 애비까지 죽이려고 하는 거여? 시펄, 니 놈이 사고치고 다니는 바람에 내가 물어준 합의금만 얼만지 알어? 꺼윽!”
백유현의 두 눈이 살짝 서늘한 빛을 냈다.
그가 가장 싫어하는 말을 오늘도 여전히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아버지란 사람이다.
“네 놈만 안 태어났어도, 니 엄마랑 나는 지금도 아주 잘 살고 있을 거여! 아우 시펄, 왜 저런 것이 태어나서! 시펄 새끼···”
꾸욱!
백유현은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야, 꼴도 보기 싫으니깐 썩 꺼져. 술맛 떨어지게. 재수 없는 새끼.”
파르르!
주먹을 꽉 말아 쥐었지만, 그 주먹이 거칠게 떨리는 것은 막을 수가 없었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그 때였다.
“씨펄! 꺼지라고, 이 망할 새끼야!”
쨍그랑!
아버지가 돌연 역정을 내며 술병을 그대로 던졌고, 백유현은 이마에 술병을 맞고 고개를 꺾었다.
주룩!
순식간에 눈앞이 벌겋게 물들어왔다.
머리가 찢어져 피가 쏟아지고 있었다.
“으으···!”
백유현은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참으려 입술을 꽉 깨물었다.
술병에 맞아 찢어진 머리가 아픈 게 아니었다.
열여덟.
이제 겨우 열여덟인데 자신은 왜 이렇게 살아가야 한단 말인가?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일진들에게 그렇게 맞아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던 그가 지금은 두 눈에서 눈물이 미친 듯 흘러내리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씨···아씨···!”
백유현은 이를 부서져라 물었다.
하지만 그가 참을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였다.
그는 급기야 저도 모르게 폭발하고 말았다.
“왜 나만 가지고 그래요?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냐고요! 귀신 보는 게 내 잘못이냐고! 왜, 나한테만 그러냐고! 왜!”
“이런 미친 새끼가!”
술기운에, 그리고 홧기운에 눈이 확 돌아버린 아버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들의 머리가 찢어져 피가 쏟아지는 것은 보이지도 않은 듯했다.
“나도···나도 이런 집 들어오기 싫다고! 나도 엄마가 해주는 따뜻한 밥 먹고 싶고, 아버지하고 손 잡고 목욕탕도 가고 싶다고! 다른 애들처럼, 그렇게 하고 싶다고! 난 왜 그렇게 하면 안 되는데? 왜 안 되는데!”
“야이, 시펄 놈아! 죽고 싶냐? 엉?”
아버지의 얼굴에 살기가 감돌았다.
백유현은 보였다.
아버지의 옆에 붙어 있는 역겨운 주귀(酒鬼)들.
그들은 아버지를 부추기고 있었다. 더 욕하라고. 더 저주하고 밟고 침을 뱉고 상처를 주라고.
아니, 그냥 부엌에 가서 식칼을 들고 와서 그냥 찔러 죽이라고.
‘개새끼들···!’
백유현은 치를 떨었다.
다 저놈들 때문이었다. 저놈들 때문에···
백유현의 눈에서 서서히 살기가 서렸다. 그는 저도 모르게 부엌으로 가서 식칼을 들고 오고 싶다는 유혹을 강하게 느꼈다.
그리고 몸을 반쯤 돌린 찰나, 그는 멈칫 그 자리에 섰다.
‘하아, 하아!’
빙의.
이 못돼 처먹은 주귀 놈들이 백유현에게 빙의하여 아버지를 죽이게 하려 했던 것이다.
백유현의 두 눈에서 진득한 살기가 뿜어졌다.
‘개새끼들, 니들한테는 지지 않아!’
그는 이를 갈고는 몸을 홱 돌렸다.
“너, 너 이 새끼! 어디 가려고? 거기 못 서!”
아버지는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백유현은 그런 아버지 쪽을 노려보다가 현관문을 열고 집을 나와 버렸다.
그가 집에 있다가는 어떻게 될지 몰랐다.
와장창!
“그래! 너 같은 건 그냥 나가서 뒈져버려! 아무짝에도 쓸 모 없는 새끼!”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닫힌 현관문에 뭔가 날아와 박살이 나는 소리가 들렸다.
백유현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사람들은 돌아갈 집이라도 있다지만, 백유현은 그것마저도 없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로 세상에는 그가 있을 곳이 그 어디에도 없었다.
‘엄마···’
그래도 엄마는 자신을 유일하게 이해해주는 사람이었다.
오늘 따라 사무치게 엄마가 그리웠다.
한참을 그렇게 문에 기대어 서있던 백유현은 어디론가 걸음을 옮겼다.
그가 이 세상에 있을 수 있는 단 한 곳.
엄마가 묻혀 있는 공동묘지였다.
터벅, 터벅.
백유현은 서울에도 이런 곳이 있는가 싶게 어둑하고 음산한 길 위를 걷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서울이라기 보다는 경기도 인근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했지만.
대낮에도 무서워서 얼씬하지 못할 정도로 음기가 가득한 이 곳에는 백유현도 오기를 꺼려했다.
묘지관리인이 있긴 하지만, 관리를 얼마나 안 했는지 무성하게 자란 떼하며 아무렇게나 뻗은 나무들의 가지. 그리고 거기다 더해 옆쪽에서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는 밤이 되자 그 음산함을 더해주고 있었다.
북망산이 있다면 이런 곳일까, 갈 곳이 없어 엄마가 묻혀 있는 무덤으로 향하는 백유현도 어느 순간부터 몸이 떨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씨발, 뭘 봐!”
지형 자체가 음기가 잔뜩 모이는 곳인데다가, 거기다 공동묘지까지 써 놨으니 잡귀들이 오죽 득실거릴까.
지금도 셀 수 없는 잡귀들이 백유현 쪽을 바라보며 이리저리 서 있거나, 나무 등걸을 타고 휘휘 그네를 타듯 빙글빙글 돌고 있거나, 아니면 느물거리며 백유현에게 접근해오려는 놈들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게 백유현에게는 그들이 보인다.
그렇기에 보통 평범함 사람들보다야 그 두려움이 덜하지만 그래도 무서운 건 무서운 거다.
까딱 정신 놨다가는 이놈들은 빙의하려 득달같이 달려들 것이다.
하늘 아래 갈 곳이라고는 겨우 이 곳밖에 없다는 사실에 백유현은 비참한 심정이었지만, 그래도 조금만 더 가면 엄마를 만날 수 있다.
어쩌면 오늘도 영의 모습으로나마 잠시 동안이라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귀신을 볼 수 있어 좋은 점이 있다면, 바로 그 점이었다.
돌아가신 그 모습 그대로 따뜻하게 맞이해주는 엄마가 여기에 있기 때문에 무섭긴 해도 이곳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길게 자란 수풀을 헤치고 나가니, 수많은 무덤의 실루엣이 보인다.
무연고 무덤 역시 수도 없이 섞여 있어 무덤의 크기도 제각각, 위치도 맞춰지지 않고 삐뚤삐뚤한 그 곳을 백유현은 제법 익숙한 발걸음으로 그 사이를 지나갔다.
여전히 다른 영가들이 백유현을 바라보며 음산한 웃음을 흘렸지만 백유현은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놈들은 죽었다.
게다가 잡귀.
빙의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걸 백유현은 잘 안다.
하지만 놈들에게 두려워 쫄면 그 순간이 가장 위험하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었다. 백유현은 마음을 다잡으며 걸음을 옮겼다.
얼마나 그렇게 갔을까, 백유현의 눈이 이상한 광경이 잡혔다.
음산한 웃음을 지으며 백유현을 바라보던 잡귀들이 갑자기 한데 모이더니 어디론가 급히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놈들의 태도는 백유현으로서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뭐지?’
퇴마사나 법력 높은 스님이라도 근처에 있단 말인가?
그런데 잡귀 놈들이 도망치는 모양새가 어딘가 이상했다. 마치 초식동물이 맹수의 기척을 느끼고 도망가는 형국이었던 것이다.
‘아···!’
그 때 문득 백유현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엄마!”
그는 크게 외치며 급히 발을 놀렸다.
다른 잡귀들도 이렇듯 뭔가에 쫓겨 도망가는 것을 보면, 엄마의 영도 나타나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보통 잡귀와는 다른 영이긴 했지만, 잡귀가 무서워하는 것은 엄마 역시 무서워할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