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1화 경국 12년에 핀 무지개 (6)
제왕의 기세를 담은 경제의 주먹은 언제나 영원히 강력한 위력으로 앞을 가로막는 모든 장애물을 쳐부술 것처럼 보였다.
이 대륙에서 수십 년 동안 벌어진 사건들을 통틀어 봤을 때 경제의 공격을 맞고 살아남은 사람은 많지 않았다. 괴물로 불린 사고검도 경제의 주먹에 내장이 모두 망가져서 비개의 독술에 의해 겨우 목숨을 부지해야 했고, 범한에게 법술을 남겨준 고하도 절묘한 몸놀림으로 수십 장을 날아가 치명적인 위력을 지닌 경제의 주먹을 가까스로 피하기는 했지만, 결국에는 죽고 말았다.
그런 경제의 주먹이 날아오는 데도 오죽은 피하지 않았다. 경제 체내의 무궁무진한 정기가 잔뜩 실린 주먹을 정면으로 받아낸 오죽은 가슴 부분이 움푹 꺼졌는데도 쓰러지지 않았다. 오죽이 쓰러지지 않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일반 대종사들과는 다르기 때문이었다. 인간 세상에서 최고의 경지에 올랐다고 불리는 대종사들이 가진 가장 치명적이고 유일한 약점은 바로 그들이 평범한 인간의 육체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오죽의 몸은 인간의 육체보다 훨씬 단단하고 강했으므로, 대종사들의 약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오죽이 힘겹게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는 이전보다는 훨씬 느려진 속도로 축축한 땅 위를 걸어 경제에게 다가갔다.
오죽이 경제 앞으로 다가왔다. 그의 두 눈을 가리고 있는 검은 천에는 주름 하나 잡혀 있지 않았다. 오죽이 손에 들고 있는 쇠막대기를 휘둘렀지만, 소리가 나지 않았다. 속도가 너무 빨라서 일반 사람들은 눈을 뜨고 보고 있음에도 돌계단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볼 수 없었고, 두 귀로 듣고 있음에도 아무런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황제 폐하는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옅은 회색빛이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면서도 돌계단 위에 꼿꼿하게 서 있었다. 현공 사당에서 패기와 자신감이 넘치는 목소리로 소리쳤던 것처럼 황제 폐하는 지금껏 살면서 눈앞에 어떤 적이 나타나든 물러난 적이 없었다.
황제 폐하가 다시 주먹을 쥐었다. 옥처럼 은은한 광택을 뿜어내는 주먹이 눈 깜짝할 사이에 공기 중에 있는 습기를 모두 증발시키며 오죽의 가슴을 힘껏 때렸다.
그리고 같은 시간 오죽의 쇠막대기는 하늘 위에 쏟아져 내려오는 밝은 햇빛처럼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은 채 무서운 속도로 경제의 왼쪽 어깨를 때리려 했다.
가장 높은 경지에 올라 있는 두 사람이 일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치열한 대결을 펼치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목숨을 걸고 모든 힘을 쏟아붓고 있는 만큼 위장이나 기교는 전부 버린 채 실력과 기세로만 맞붙고 있었다. 이 중에서 실력은 두 사람의 몸에 익혀져 있는 것임만큼 순수하게 부딪치는 건 기세라고 할 수 있었다. 바로 고하 대사의 태사조인 근진이《숙어록(宿語錄)》에서 ‘옷을 벗으라’고 말했던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었다.
두 절세 강자의 대결은 외부의 모든 것들 벗어 던진 가장 단순하고 냉담한 행위 예술이었다. 설원에서나 화산에서나 초원에서 발가벗은 채 짐승들을 잡으려 하는 원시인들처럼 가장 완벽하고 단순한 살인 기술을 실천하고 있는 거였다.
* * *
황제 폐하의 왼쪽 어깨가 ‘우지끈’ 소리를 내며 부서졌고, 입술 사이에서는 붉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황제 폐하의 눈빛은 흔들림 없이 차가웠다. 그가 자신의 주먹을 맞고 멀리 날아가는 오죽의 모습에 주시했다.
주먹을 맞은 오죽이 다시 멀리 날아갔다. 이미 다리가 처참하게 망가지고 이곳저곳 성한 곳이 없는 탓에 오죽은 인간 세상의 상상력을 초월하는 정확한 계산 능력을 갖추고 있었음에도 행동으로 실행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시간과 공간의 범주를 넘어선 경제의 주먹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비가 멈춘 가운데 오죽의 둥글게 굽은 몸이 뒤로 날아갔다. 차가운 바람이 스쳐 지나가자 그의 옷이 바람에 펄럭였다. 이윽고 ‘쿵’ 소리와 함께 그의 두 다리가 지면에 닿고 땅 위에서 수십 장 미끄러진 뒤에야 겨우 멈춰 섰다. 왼쪽 다리로 몸을 제대로 지탱할 수 없는 탓에 하마터면 땅에 고꾸라질 뻔했다.
이번에 오죽은 경제의 주먹을 맞고도 땅에 쓰러지지 않았다. 아까보다는 상황이 나아 보였지만, 이상하게도 황제 폐하의 얼굴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자신감이 보였다. 그리고 반대로 고개를 살짝 숙인 채 가만히 서 있는 오죽의 모습은 아주 불길한 결말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태극전에서 수십 장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오죽의 주변에는 이곳저곳 피가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그 불길한 곳에서 오죽은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의 복부를 아주 아주 오랫동안 가만히 바라보았다.
황제 폐하의 주먹이 오죽의 복부를 때리기 직전에 오죽은 자신의 왼손으로 복부를 막았었다. 그래서 황제의 주먹은 그의 손바닥을 때린 뒤 다시 그의 복부를 때렸다.
오죽의 손은 차가운 쇳덩이 같았고, 그의 몸은 차가운 강판과 같았다. 하지만 경제의 주먹은 엄청난 위력을 신의 망치처럼 쇳덩이를 찍어 강판에 박아버리고 말았다.
오죽의 손이 그의 복부에 깊이 박혀 있었다. 마치 두 개의 강철이 하나로 뭉쳐버린 버린 것 같았다.
검은 천에 가려지지 않은 오죽의 눈썹꼬리 부분을 살짝 실룩였다. 오죽이 복부에 박혀 있는 자신의 왼손을 들어 올리려 했다. 한참 동안 힘을 들인 끝에 마침내 그의 손이 복부에서 빠져나왔다. 피가 흐르지 않는 창백한 피부가 같이 딸려 나오면서 분리될 때 ‘쩌억’하는 소름이 끼치는 소리가 들렸다.
경제의 첫 번째 주먹이 가슴을 노리며 날아왔을 때 오죽은 손을 들어서 막으려 하지 않았다. 반면 경제의 두 번째 주먹이 복부를 노리며 날아왔을 때는 오죽은 손을 들어서 막았다. 오죽이 이전과는 다른 선택을 한 이유는 가슴보다 복부에 부상이 더 치명적이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천하를 호령하는 군왕은 신묘의 사자들의 급소가 어디인지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 사실은 오죽을 살짝 당황하게 했고, 줄곧 숨을 죽이고 냉정하게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을 두렵게 만들었다.
* * *
쇠막대기를 피와 빗물이 고여 있는 땅에 대고는 몸을 지탱한 오죽이 왼손으로 절단되기 작전인 왼쪽 다리를 잡아 움직였다. 그렇게 다시 태극전으로 가기 위해 아주 힘겨운 걸음을 내디뎠다. 헝겊신을 신은 발이 땅에 널브러져 있는 시체의 손을 밟자 오죽의 몸이 휘청이면서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그러자 오죽의 복부에서 ‘끼익’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마치 그곳을 중심으로 거미줄이 끓어지듯이 몸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끓어지고 무너지고 있는 것 같았다.
오죽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하더니 앞으로 기울어졌다. 언제든지 몸이 무수히 많은 파편으로 조각나 무너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는 손에 들린 쇠막대기를 놓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휘청휘청하는 몸을 꽉 움켜쥔 쇠막대기에 억지로 지탱하며 다시 한 발자국 내디뎠다.
오죽은 무척이나 힘들게 한 발자국씩 움직였고, 그래서 걷는 속도도 무척이나 느렸다. 심지어 몸이 움직일 때마다 소름이 끼치는 마르고 뻑뻑한 소리까지 들렸다……. 하지만 오죽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황제 폐하의 앞으로 걸어갔다.
* * *
주먹을 거둬들인 황제 폐하가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는 차가운 눈빛으로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마치 쇠막대기에 자신의 몇 번째 갈비뼈가 부러진 건지 확인하려는 모양이었다. 그는 자신이 몇 번 주먹을 휘둘렀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자신이 얼마만큼의 피를 토했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가 아는 것은 자신이 뒤로 물러나지도 앞으로 나서지도 않은 채 나무 인형처럼 태극전 앞 돌계단 위에 꼿꼿이 서서 기계처럼 반복적으로 주먹을 휘두르고 있다는 거였다. 가슴을 살펴보던 황제 폐하가 속으로 생각했다.
‘오 선생은 몇 번이나 쓰러진 거지? 몇 번이나 일어난 건가? 짐은 지금껏 살면서 몇 번이나 쓰러졌고, 또 몇 번이나 다시 일어났던가? 오 선생은 자신이 쓰러질 거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왜 죽을힘을 다해 다시 일어나려고 하는 거지? 설마 오 선생은 자신 같은 괴물도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건가? 만약 오 선생이 죽은 사물이 아닌 생명을 가진 살아 있는 사물이라면, 죽음을 알고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놈은 어째서 아직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인가?’
생각에 잠겨 있던 황제가 고개를 들어 오죽을 바라보았다.
‘오 선생의 동작 속도가 분명 느려졌는데도 어째서 그의 손에 들린 쇠막대기는 매번 정확하게 짐의 몸을 때리는 것인가? 설마…… 짐도 늙은 것인가? 생명이 이제 다하려 하는 것인가?’
순간 머릿속이 번쩍인 황제 폐하가 다시 생각했다.
‘아니다. 그럴 수는 없다. 그래서는 안 된다.’
절대로 죽을 수 없다는 생각과 함께 황제 폐하의 눈동자에 분노의 불길이 번쩍였다. 하지만 결국에는 거역할 수 없는 강렬한 피로와 권태감이 밀려들었다.
오늘의 싸움이 훗날 역사책에 세상을 바꾼 싸움으로 오래도록 기록될지 아니면 역사라는 긴 흐름 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게 될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어느 쪽이 되든 경제는 싫증이 났다. 부황이 즉위한 뒤 몇 년 동안 그가 비통한 심정을 참으며 태평 별궁 살인사건을 계획하고 준비해왔을 때처럼, 그리고 몇 년 뒤 경도 피의 달 사건이 터졌을 때처럼 말이다.
‘짐은 대동산으로 두 명의 대종사를 유인해 죽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때 안지는 경도에서 짐을 배반하려 하는 후안무치한 놈들을 유인해 모두 죽였다. 작년에는 상자로 짐을 죽이려고 하더니 오늘은 오 선생까지 왔군.’
경제는 오죽이 계속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나는 걸 반복하는 것처럼 무궁무진한 술수와 음모가 끓이질 않고 계속해서 반복되는 것 같았다. 그는 이런 반복이 정말 싫증이 나고 짜증이 났다.
하지만 경제는 아무리 싫증이 나고 지쳐도 멈출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아직 완성하지 못한 많은 이들이 있었고, 눈앞에 있는 최대의 적을 쓰러뜨리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절대 포기하고 멈출 수 없었다.
손을 들어 소매로 입가에 계속 흐르는 피를 천천히 닦던 황제 폐하는 순간 몸에 한기가 드는 걸 느꼈다. 1년 전 중상을 입은 뒤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탓에 가끔씩 몸에 한기가 들었다. 그는 이런 한기가 두렵고 햇빛이 두렵고 바람이 두려웠다. 그래서 완아가 강남에서 가져온 솜이불을 덮고 낮은 평상에 누워만 있고 싶었다…….
황제 폐하는 따뜻한 솜이불을 덮고 있는 게 좋았고, 한기가 드는 건 참을 수 없을 만큼 싫었다. 왜냐하면, 한기는 그를 무력하게 만들고 피곤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마치 피가 흘러나올수록 그의 체내의 온기가 사라지면서 자신감도 사라지는 것 같았다.
다시 일어난 오죽이 처참한 몰골로 걸어오자 황제 폐하의 눈동자에서 불꽃이 번쩍였다. 그러자 노쇠한 얼굴이 더없이 창백해지면서 수척하고 파리해졌다.
비는 이미 그쳤다. 하늘을 두껍게 덮고 있던 먹구름은 눈으로 변화를 볼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사라졌다. 구름이 갈수록 하얗게 변했고, 하늘은 갈수록 아름다워졌으며, 햇빛은 갈수록 밝아졌다. 황궁 광장의 공기는 더없이 맑고 깨끗했다. 빗물에 더러운 것들이 모두 씻겨 내려갔는지 맑은 하늘에는 아름다운 기운으로 가득 차 있었다. 황궁에 높이 쌓아 올려진 성벽 넘어 동쪽 하늘에서는 아직 토해내지 못한 아름다움을 머금고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