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여년-1094화 (1,094/1,108)

1094화 서서히 궁전으로 다가오는 발걸음 (1)

“쏴라!”

궁전의 수염에서 빗물이 떨어졌다. 금군 통령인 궁정의 안색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고, 목소리도 살짝 떨렸다.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화살이 팽팽한 활시위를 떠났다. 순식간에 높이 날아오른 화살들은 빗줄기를 가르며 광장 정중앙에 홀로 서 있는 오죽을 향해 날아갔다.

해를 가려버릴 정도로 많은 수의 화살이었다. 하지만 이미 해는 빗물을 머금은 먹구름에 가려져 있는 상태였다. 해를 가릴 수 없는 게 불만인지 화살들이 공중에 마주치는 빗방울들을 깨부쉈고, 순식간에 광장 하늘에서 신의 세상에서나 등장할 법한 물로 만든 장막이 생겼다.

화살들이 공포스러운 기세로 공기를 찢으며 날아가자 으스스한 소리가 났다. 화살들이 일제히 날아가면서 나는 으스스한 소리는 경국의 강력한 군사력을 대표하는 소리이자 저항할 수 없는 죽음을 의미했다.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화살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설사 범한이 이 자리에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살 수는 없을 거였다. 심지어 과거 대동산 정상에서 역사적인 결전을 치른 섭류운도 고작 수백 발의 화살을 막았을 뿐이었다. 게다가 당시 대동산의 지형은 대종사가 구름처럼 가벼운 동작을 펼치기가 최적화된 장소였다.

어떻게 하면 대종사를 죽일 수 있을까? 범한은 이전에 이 문제를 아주 깊이 고민한 끝에 들판에서 수 만발의 화살을 쏘면서 중무장을 한 기병이 연달아 돌진해 대종사가 도망치지 못하게 발을 묶는 방법을 사용한다면 가능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탁 트인 광장에서 홀로 비를 맞으며 서 있는 오죽은 대륙에서 손꼽히는 강자였다. 최소한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들은 그가 대종사보다 결코 실력이 약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금군의 방식은 과거 범한이 계획했던 방식과 아주 비슷했다.

일단 광장에 있는 병사들은 모두 불러들인 뒤 최대한 많은 화살을 동시에 쏘는 거였다. 비가 내리고 있기는 했지만, 광장이 탁 트여 있어 시선을 가리는 게 하나도 없어 화살을 쏘기에 쉬웠다. 광장에서 비처럼 내리는 화살을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

만 명의 병사들의 힘을 한데 뭉치게 만드는 건 힘들었지만, 만 발의 화살의 힘을 하나로 뭉치게 만들 수는 있었다. 이와 같은 위력을 가진 화살을 오죽은 과연 막을 수 있을까?

아무런 장애물도 없는 광장 정중앙에 서 있는 오죽은 과연 폭우보다 더 거센 기세로 쏟아져 내리는 화살비를 피할 수 있을까?

오죽의 몸짓은 섭류운처럼 빠르고 가볍지 못했고, 오죽의 손짓은 사고검처럼 강력하고 신속하지 못했다. 게다가 오죽에게는 고하처럼 비의 기운을 빌려 도망칠 수 있는 능력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차분히 고개를 들고 하늘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화살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오죽이 검은 천 사이로 맹렬하게 날아오는 화살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자신의 주변을 빼곡하게 덮어버릴 정도로 많은 양의 화살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날카로운 화살촉이 앞을 가로막는 빗방울들을 부수며 오죽의 앞까지 날아왔다.

지금 천하에서 몸놀림이 가장 빠르고 가벼운 사람은 범한이었다. 고하가 남긴 법술 책자의 내용을 익힌 그는 설원에서도 단번에 십여 장을 이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범한이라도 지금 광장에 있다면 하늘을 가릴 정도로 쏟아지는 화살비를 피할 수 없었다.

그래서 오죽은 움직이지 않았다. 피할 수 없다는 걸 알았기에 하늘을 덮은 화살비를 피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두 다리로 굳건히 서서 쇠막대기를 자신의 가슴 앞에 가로로 놓았다. 그가 쇠막대기를 휘두르자 부서진 빗방울들이 사방으로 튀면서 뽀얀 안개가 만들어졌다.

‘챙! 챙! 챙! 챙!’

화살촉이 어딘가에서 부딪치면서 날카로운 소리가 동시에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맹렬한 기세로 날아와 오죽의 발 맡에 있는 청색 돌판에 떨어진 화살이 충격에 튕겨 올랐다. 엄청난 충격에 화살이 ‘퍽’ 소리를 내며 부러졌고, 일부 화살들은 청색 돌판 사이 작은 틈에 꽂힌 채 ‘윙윙’ 소리를 냈다.

일순간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화살이 오죽의 몸을 덮쳤고,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이윽고 황성 주변이 고요해지자 사람들의 동공이 점점 수축했다. 광장 정중앙을 주시하는 사람들의 눈동자가 공포에 질리더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화살은 마치 봄비가 내린 땅에 자란 잡초처럼 황궁 앞 광장 정중앙을 기점으로 수십 장의 넓이의 범위 안에 빼곡하게 꽂혀 있었고, 너무 많아서 일부는 공중에 튀어 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화살이 가장 밀집되어 있는 정중앙에는 오죽이 조용히 서 있었다. 그의 손에는 머리에 쓰고 있던 삿갓이 들려 있었는데,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화살이 박혀서 마치 검은색 털 구슬 같았다.

그리고 그의 오른손에는 여전히 쇠막대기가 들려 있었고, 오른손 아래에는 부러진 화살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빗물로 축축해진 광장 위에는 화살들이 가득했고, 오죽은 부러진 화살 잔해 가운데 서 있었다. 그가 서 있는 곳을 중심으로 주변에는 바닥에 꽂힌 화살과 부러진 화살들이 가득했다. 마치 죽음밖에 남지 않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한 사람이 깨끗한 지면 위에 서 있는 것 같았다.

그때 빗줄기가 갑자기 약해졌다. 마치 하늘에서 신이 화살비를 막은 맹인의 모습에 놀라 상황을 자세히 보기 위해 잠시 비를 멈춘 것 같았다. 빗줄기가 약해지면서 황궁 하늘을 두껍게 가리고 있던 먹구름 사이로 틈이 열렸다. 먹구름 사이로 비친 햇살이 광장에 서 있는 무명옷을 입은 맹인 오죽을 은은하게 비추었다.

가늘어진 빗줄기 사이로 불어온 가을바람이 오죽의 옷자락을 가볍게 흔들자 ‘바스락’ 소리가 났다. 바로 그때 오죽의 왼손에 들려 있는 무수히 많은 화살을 막아낸 삿갓이 결국 수명을 다하고 산산이 부서졌다.

* * *

모두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고 있으면서도 일어난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황성 성벽 위에 있는 금군 병사들은 신의 세상에서나 등장할 법한 일인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자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사실 아무도 몰랐을 뿐이지 화살들이 날아가 하늘을 가렸던 순간 오죽은 움직였었다. 다만 그의 몸의 움직임과 손에 들고 있는 쇠막대기와 삿갓의 회전 속도가 너무 빨라서 사람들의 눈으로 볼 수 없었을 뿐이었다.

오죽의 발은 땅에 박힌 말뚝처럼 굳건히 서 있었고, 오른손의 쇠막대기는 살아 있는 생물처럼 화살들이 날아오는 궤적은 완벽하게 계산하며 움직였다. 여기에 사람들의 눈으로는 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명확한 오죽의 움직임이 더해지면서 그 많은 화살을 막아내었다. 도무지 결과를 눈으로 확인하면서도 믿어지지 않는 일이 일어난 거였다.

화살들이 날아오는 순간에 쇠막대기는 오죽의 정확한 통제 아래 그의 몸 범위 안에서만 움직였고,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다. 그는 화살들이 쌩하고 자신의 옷을 스쳐 지나가고 자신의 귓가를 스쳐 지나가고 자신의 허벅지를 스쳐 지나가도록 내버려 두었다.

흠뻑 젖은 헝겊신 앞에 수많은 화살이 빼곡하게 꽂혀 있었다. 하지만 이것들도 오죽의 걸음을 막지는 못했다.

이와 같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확한 계산 능력,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자신감과 강력한 의지는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는 거였다.

대종사라고 해도 방금 상황에서는 오죽처럼 침착하게 행동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 세상사람들 중에서 오죽처럼 짧은 시간 안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계산해 내고, 전광석화처럼 빠르고 정확하게 반응해 낼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엄청나게 많은 화살이 쏟아졌지만, 오죽이 도망칠 수 있는 모든 범위에 화살을 쏘아야 했기 때문에 실제로 오죽의 몸을 겨냥한 화살의 수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오죽 외에 누가 이와 같은 위험천만한 순간에 침착함을 유지하며 정확하고 빠른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

물론 천하의 오죽이라고 해도 쇠막대기만으로는 한 번에 날아오는 화살들을 전부 막아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오죽은 머리에 쓰고 있던 삿갓을 벗어 방패로 삼았다. 왼손에 삿갓을 들고 빠른 속도로 돌려 쏟아져 내려오는 화살들을 막아냈다…….

오른손 다섯 손가락을 힘겹게 핀 오죽이 자신의 팔을 관통한 화살을 바라보았다. 아무런 표정도 없던 얼굴에서 순간 아주 진실한 감정이 드러났다.

오죽은 속으로 약간 아프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박히다 못해 팔뚝을 관통해버린 화살을 뽑아냈다. 화살이 그의 팔뚝 뼈와 근육이 마찰하면서 내는 소름이 끼치는 소리가 부슬부슬 내리는 빗소리를 덮어버렸다.

아래 광장과 황성 성벽 위가 모두 쥐 죽은 듯 고요했다. 경도 하늘에 자욱하게 깔린 먹구름 사이로 들어온 맑고 그윽한 햇살이 오죽의 몸을 비추었다. 그는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않는 듯 천천히 팔뚝에 박힌 화살을 뽑아내고는 상처 구멍에서 나오는 액체를 쓱 닦았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걷기 시작했다.

한 발자국씩 내디딜 때마다 화살들이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오죽이 앞에 쌓인 화살들을 밟으며 황궁을 향해 걸어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금군은 사기가 완전히 떨어져 버렸다. 도무지 싸울 용기가 나지 않았다. 1년 전에 천지를 요동시킨 울림이 들렸을 때보다도 사기가 떨어져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공포도 두려웠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괴물보다 무섭지는 않았었다.

금군 병사들은 비처럼 쏟아진 화살 속에서도 살아남은 저 맹인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다만 본능적으로 광장을 천천히 걷고 있는 맹인이 일반 사람이 아니라는 건, 오히려 무슨 괴물에 가까운 존재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설마…… 신선인 건가?’

* * *

규율이 엄격한 경국 군대는 눈앞에 만민이 칭송하는 대종사가 있다고 하더라도 명령만 내려진다면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화살을 비처럼 쏴서 적을 죽일 거였다. 하지만, 지금은 이들도 정말로 두려워하고 있었다. 광장을 터벅터벅 걸어가는 맹인의 꺾을 수 없는 강인한 실력이 두려웠고, 무엇보다도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냉정함을 넘은 무관심한 모습이 너무나도 놀라웠다.

그래서인지 오죽이 봄비를 맞고 무럭무럭 자라난 잡초처럼 광장에 빼곡하게 박혀 있는 화살들과 부러진 파편들을 밟으며 황성 바로 앞까지 왔음에도 두 번째 화살비는 내리지 않았다.

검은 천으로 눈을 가린 맹인이 점점 가까이 다가올수록 궁전의 얼굴은 핏기없이 하얗게 질렸고, 입에서는 쓴물이 올라왔다. 그가 걸어오는 오죽을 바라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오 선생이 이미 황성에 너무 가깝게 걸어왔어. 이 거리라면 화살을 쏴도 이전처럼 효과를 보기는 힘들 텐데. 폐하께서 내게 내려주신 사명을 완수할 방법을 정말 없는 것인가?’

경제가 살면서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게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검은 상자였고, 다른 하나는 지금 광장을 천천히 걷고 있는 오죽이었다. 황제는 태평 별궁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난 뒤 20여 년 동안 줄곧 오죽을 제거할 방법을 골몰해 왔다. 하지만…… 사용한 모든 방법이 실패하자 황제는 결국 오죽이 복수하러 올 걸 대비해서 그를 죽일 마지막 계획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

범한이 신묘에서 살아 돌아왔다는 건 오죽도 함께 돌아왔다는 의미였다. 경제는 하늘이 자신이 간절히 바라는 일을 저절로 이뤄줄 거라는 헛된 기대는 품지 않았다. 그리고 사실 그가 오죽이 복수하러 올 걸 대비해서 세워둔 계획도 그리 거창한 건 아니었다.

사실 인간이 오죽을 제거할 방법은 많지 않았고, 지금 경국에는 대종사가 부상을 아직 회복하지 못해 쇠약해져 있는 황제 폐하 말고는 없었다. 섭류운은 이미 멀리 떠나가 버린 뒤였으니 말이다…….

경제가 봤을 때 오죽을 제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황궁 성벽 위에서 무수히 많은 금군이 그의 앞을 가로막은 뒤 온 세상을 덮을 정도로 큰불을 내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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