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여년-1092화 (1,092/1,108)

1092화 황성 앞 광장에 쏟아지는 폭우 (1)

오죽은 상처를 입었음에도 아이들이 던지는 석탄 조각과 돌멩이를 피하려 하지 않았다. 그가 검은 천 너머로 날카로운 웃음소리를 내며 작은 손을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아이들이 자신을 공격하는 이유가 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오죽이 그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건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웃음이 흉악하게 보이는 이유였다. 그리고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건 날카롭거나 둥그런 석탄 조각이 자신의 몸이나 머리를 때릴 때마다 자신의 마음속에서 이상한 것이 느껴지는 이유였다.

마음속에서 느껴지는 건 도대체 무엇일까? 이것이 바로 감정이란 것일까? 상실감? 실망감? 분노? 불쾌감? 혹은 그냥 감정이라는 두 글자인 걸까?

자신을 때리는 아이들을 가만히 바라보는 오죽은 머릿속에서 샘솟는 여러 생각들로 혼란스러워졌다.

바로 그때 추적추적 내리던 빗줄기는 점점 굵어지더니 거센 소나기로 변했다. 늦가을 경도 하늘에 누가 큰 구멍이라도 뚫어 놓은 것 같았다. 온 세상의 강과 호수와 바다에 있는 물들이 모두 모여 큰 구멍을 통해 경도 위로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았다. 강한 빗줄기가 경도 거리와 민가를 때렸다.

소나기와 함께 오죽의 머릿속에도 갑자기 큰 구멍이 뚫려 맑고 그윽한 빛이 비치는 것 같았다. 순간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기괴한 감정이 그의 온몸을 지배했다.

‘감정이 있다는 건 뭘 말하는 거지? 범한이라는 청년이 말한 데로 궁금해하는 게 감정이 있다는 건가?’

오죽은 다시 생각에 잠겼다. 세차게 내리는 빗물을 고스란히 맞으며 아무 말 없이 생각에 잠겼다.

그 범한이라는 청년은 오죽에게 아주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지만, 오죽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도 없었고 이해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마음속에 차곡차곡 담아 두었다.

‘그 범한이란 청년은 뭘 하러 간 걸까? 황궁에 긴다고 했던 것 같은데. 복수를 위해서라고 했던 것도 같은데, 복수란 뭘까? 누굴 위해 복수를 하는 걸까? 누군가가 죽은 것 때문에 범한이란 청년이 슬프고 괴로워하는 것 같았다. 섭경미라는 여자와 진평평이라는 이름의 절름발이 노인 때문인 건가?’

낯선 두 이름이 하늘에 퍼붓는 빗물처럼, 오죽의 머릿속을 비추는 맑고 그윽한 빛을 받아 또렷해졌다. 하지만 머리가 아플 정도로 깊이 생각을 해봐도 도무지 두 사람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내가 평생 신묘에서만 있었던 게 아닌 건가? 다른 곳에 있었던 건가?’

오죽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원래는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되는 감정이라는 게 느껴진다는 건 알게 되었다. 사실 어제 오후부터 그는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감정은 그의 마음속을 가득 채우더니 그가 검은 천 너머로 황궁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오죽이 느끼는 감정은 증오였다. 오죽은 왜 그런지 이유는 몰랐지만, 경도에서 가장 웅장하고 화려한 저 건물이 싫었다. 그리고 아마도 자신이 싫어하는 건 건물이 아니라 그 건물 안에 있는 사람인 것 같았다.

신묘를 떠날 때 범한이라 불리는 청년은 연신 피를 토하며 오죽에게 자기 마음이 가는 데로 따르라고 말했다.

‘하지만…… 마음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설마 지금 느껴지는 신선하면서 낯선…… 감정을 말하는 건가?’

생각에 잠겨 있던 오죽은 황궁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결심했다. 그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의 진짜 원인을 찾고 안에 자신이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안에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고, 어둠 속에서 만날 수밖에 없는 운명인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오죽이 손을 뻗어 허리춤에 차고 있던 쇠막대기를 안정적으로 쥐고는 등에 메고 있던 삿갓을 들어 다시 썼다. 삿갓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빗물을 막아주고 그의 두 눈을 가린 검은 천도 가려주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즐거운 웃음소리를 내며 돌이나 석탄 조각을 집어 오죽에게 던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오죽이 손에 든 쇠 막대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쪼그리고 앉아 구정물이 흐르는 바닥을 살피더니 축축하게 젖은 석탄 조각을 집었다.

신묘는 인류의 모든 이익이 손실을 입는 상황이 아니면, 인류를 절대 해쳐서는 안 된다는 규칙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오죽과 신묘 안에 있는 노인의 가장 큰 차이점은 여기 있었다. 오죽은 인류의 모든 이익이란 게 뭔지 몰랐다. 그리고 그런 개똥 같은 규칙을 자신이 지켜야 하는 이유도 납득하지 못했다.

오죽이 보기에 지금 아이들은 즐겁게 웃으며 자신에게 돌을 던지고 있느니 노는 거로 보였다. 그래서 그렇게 판단한 채 내버려 두었다. 그는 자신을 끈질기게 괴롭히는 아이들에게 혐오감을 느끼거나 분노하지 않았다.

자리를 떠나려 하는데도 아이들이 계속 자신에게 돌을 던지자 오죽은 단순하게 함께 놀아준다면 자신을 더는 귀찮게 하지 않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죽은 구정물 아래 있는 석탄 조각을 집어 길가 처마 아래 모여 있는 아이들 중 한 명을 향해 던졌다.

겁에 질린 비명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이 급히 달려오는 발걸음 소리도 들렸다. 그리고 이어서 여러 명의 아이의 울음소리와 어른들이 뭐라고 소리치는 소리도 들렸다. 한 아이가 정신을 잃고 빗속에서 쓰러져 있었고, 그 주변에서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와 달려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모두 오죽의 행동에 의한 결과들이었다.

장난꾸러기 아이 중에서 가장 웃음소리가 크고 적극적이었던 아이의 머리에 석탄 조각이 날아왔다. 머리에 석탄 조각을 맞은 아이는 피를 흘리며 ‘억!’ 소리 한 번 내지 못한 채 빗속에서 쓰러졌다.

일순간 거리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아이들 살피던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오죽을 노려봤다.

“저 천치 놈이 아이를 때려죽였어!”

아이들이 오죽에게 돌이나 석탄 조각을 던질 때만 해도 구경만 하고 있던 사람들은 아이가 죽자 갑자기 의협심이 넘치는 사람들로 변했다. 누군가는 관아에 신고하러 달려갔고, 누군가는 아이의 집에 사실을 알려주러 달려갔다. 그리고 남은 사람 중 몇몇 중년 남자들은 나무 몽둥이와 밀대를 쥐고 아이들 죽인 백치를 때려서 눕힐 준비를 했다.

사람들은 이웃인 아이가 이런 일을 당한 걸 그냥 가만히 두 눈 뜨고 지켜볼 수는 없었다. 바닥에 죽어 있는 아이의 엄마가 달려오더니 그대로 아이 몸에 엎어져서는 대성통곡을 하다가 오죽을 향해 욕을 퍼부었다.

오죽은 미동도 없이 원래 자리에 그대로 사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해를 한 건 아니었다. 오죽이 멍하니 서서 속으로 생각했다.

‘놀고 있는 게 아니었나? 달려온 저 여자는 왜 저렇게 슬피 우는 거지? 놀이가 아니었다면, 저들은 왜 나에게 돌이나 석탄 조각을 던지는 아이들을 막지 않았던 거지? 나는 내가 진짜 다치지 않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설마 저 사람들도 내가 자신들과 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던 건가? 아니면, 아이들이 나에게 돌이나 석탄 조각을 던지는 걸 보면서도 내가 다치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던 건가?’

빗속에서 우두커니 서서 아무 말 없이 생각하던 오죽은 어렴풋하게나마 사람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이번 일을 통해서 인류의 감정이 변화하는 기준이나 행동을 하는 기준이 도덕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류는 자신이 친근하게 느끼는 것에 더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낯설게 느끼는 것에는 소극적으로 행동했다. 그러니 인류의 감정과 행동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따라 결정되었다.

지금 이 세계에서 오죽이 자신과 가장 관계가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당연하게도 범한이라 불리는 청년이었다. 그리고 그가 가장 싫어하는 건 경도에 위풍당당하게 세워져 있는 황궁이었다. 그러니 그는 지금 자신을 향해 삿대질을 하고 고함을 지르며 이리저리 날뛰는 사람들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오죽이 눈을 가린 검은 천의 주름을 펴고 내려놓았던 쇠막대기를 다시 손에 쥐고는 멀리 보이는 황궁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때 나무 몽둥이를 들고 있던 남자들 중 한 명이 맹인 백치를 때리려 달려들었다. 그러나 오죽의 반격을 맞은 남자가 그대로 정신을 잃고 땅에 쓰러졌고, 쥐고 있던 나무 몽둥이는 두 동강이 나버렸다.

무명옷을 입고 머리에는 삿갓을 쓴 오죽이 잔뜩 화가 나 있는 사람들의 포위망 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는 뒤에서 자신을 향해 외치는 사람들의 고함이 들리지 않는 듯 유유히 빗속을 걸어갔다.

오죽은 자신에게 달려드는 남자를 죽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사람을 죽일 수 없는 건 아니었다. 수십만 년 동안 길러진 습관 때문에 굳이 죽이지 않을 뿐이지 만약 사람을 죽여야 한다는 판단이 든다면 얼마든지 죽일 수 있었다.

경도부 아속들이 천하대도 길목에 도착했을 때 아이를 공격하고 남자를 때려눕힌 미치광이는 이미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남은 사람들만 빗속에서 고함을 치며 화를 내고 있었다. 잠시 상황을 조사하던 아속 수령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가 놀란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 차가운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며 속으로 생각했다.

‘현장이 깨끗한 걸 보니 무예 고수가 한 짓이 틀림없어. 그런데 무예 고수가 어째서 힘없는 일반 백성들을 공격한 거지?’

현장을 둘러보던 아속 수령은 온몸에 소름이 돋아 자기도 모르게 진저리를 쳤다. 그가 두려워하는 건 백성들이 죽고 다쳤기 때문이 아니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맹인이 정말 백성들이 말하는 것처럼 천치라면, 의심할 여지 없이 그 바보 맹인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무력을 지닌 미치광이일 게 틀림없었기 때문이었다.

강력한 무예 실력을 갖춘 미치광이가 경도 안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아속 소령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가 곧바로 부하에게 경도부 관아에 가서 이 사실을 말하라고 지시한 뒤 옆에 서 있는 사람에게 물었다.

“그 맹인은 어느 쪽으로 도망갔습니까?”

“저기 광장 방향으로 가던데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을 한 그 사람이 이를 부드득 갈며 이어서 말했다.

“그놈은 여기 서서 이틀 동안 황궁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분명 무슨 짓을 저질을 생각일 겁니다.”

아속 수령은 고개만 끄덕일 뿐 더는 자세히 묻지 않았다. 만약 이 사람의 말처럼 맹인 미치광이가 황궁 쪽으로 갔다면, 살아 돌아올 수 없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맹인 미치광이가 황궁 쪽으로 걸어갔다는 말을 듣자 아속 수령은 마음이 놓였다. 황궁에는 고수들이 운집해 있었고, 금군이 삼엄하게 경계를 서고 있었으니 맹인 고수라도 맞아 쓰러지게 될 거였다.

‘설사 전설적인 작은 범 대인이 돌아온다고 해도 금군의 포위망을 뚫고 황궁 안으로 쳐들어갈 수 없을걸?’

* * *

비를 맞으며 묵묵히 걸어가는 오죽은 떠난 골목에서 아직도 사람들이 그를 죽이고 싶어 발을 동동 굴리며 안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또 현장을 조사한 아속 수령이 그에게 사형을 선포했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머리에 삿갓을 쓰고 손에 쇠막대기를 든 그는 한 걸음 한 걸음 침착하면서 거침없이 황궁을 향해 걸어갈 뿐이었다.

북제 량야군에서 범한이 사준 헝겊신은 이미 빗물이 흠뻑 젖어 있었다. 매번 발을 뻗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오죽은 머릿속에서 북소리가 울리는 것 같았다. 북소리는 그의 심장을 때렸고, 그의 영혼을 때렸다. 섭경미, 진평평, 범한, 아득히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지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너무나도 가깝게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름들이 계속 그의 머릿속에서 울렸다.

매번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오죽은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어렴풋하게 떠올랐다. 또렷하지는 않았지만, 무척이나 친근하게 느껴지는 기억들이었다. 지금 차가운 비가 내리는 황성이라든가, 그가 만든 유리가 곳곳에 있는 경도와 같이 무척이나 익숙하면서 친근하게 느껴지는 기억들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황성 광장을 향해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마음속에 황성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도 더욱 짙어졌다. 거센 빗줄기 속에서 우뚝 서 있는 황궁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보면 볼수록…… 오죽의 마음속에 있는 부정적인 감정도 더욱 짙어졌다.

오죽은 경도는 적의 소굴이고, 황궁도 적의 소굴이라고 생각했다.

비를 맞으며 혼자 오래전에 다녔던 옛길을 다시 걷는 오죽은 비로 온몸이 젖어도 상관없는 것 같았다. 상념에 잠긴 채 인적 드문 길을 걸어가는 그는 숨어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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