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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여년-1083화 (1,083/1,108)

1083화 해 질 녘 (1)

황태후의 측근이자 황제 폐하의 심복인 위화는 방금 전 황제 폐하가 언급한 경국의 내란이 뭔지 알고 있었다. 경국의 북벌을 1년 넘게 늦추게 만든 내란은 바로 경국 감찰원 전후 원장들이 두 사람이 연달아 경국 황제에게 반기를 든 일이었다. 더욱이 위화는 북제 전체를 통틀어서 경국 내란에 원인을 하는 사람이 북제 황제 폐하 한 사람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북제 황제만이 처참하게 사형당한 진평평과 자취를 감춰 생사마저도 알 수 없는 범한이 경국 황제에게 반기를 든 이유를 알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아는 위화는 황제 폐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 엄두를 낼 수 없었다.

모두들 감히 입을 뗄 엄두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병부를 맡고 있는 늙은 상서가 용감히 앞으로 나서 황제 폐하에게 간언하기 시작했다. 병부의 늙은 상서가 위험을 무릅쓰고 앞으로 나와 간곡히 간언한 이유는 나이가 아직 젊은 황제 폐하가 상삼호 장군의 충성심을 의심할까 봐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경국에서 대군이 기세등등하게 쳐들어오고 있는 상황에서 황제 폐하와 전선을 책임진 장군 사이에 의심이 싹튼다면, 이번 전쟁은 이미 패배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간언을 하는 늙은 대신은 북제 군대의 명의상 통령이었지만, 북제를 지탱하는 기둥인 상삼호 장군을 지금껏 단 한 번도 똑바로 마주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상삼호 장군이 맡은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이에 늙은 대신은 몸을 잔뜩 엎드린 채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성숙함과 침착함으로 조정을 장악한 황제 폐하와 막중한 역할을 맡은 상삼호 장군 사이에 갈등이 생겨서는 안 된다고 간곡한 목소리로 충언했다.

그러자 북제 황제 폐하의 안색이 점점 차분해지더니 소매를 흔들며 대신들에게 물러가라고 했다. 남쪽 전선에서 보내오는 급한 군보를 처리하러 대신들이 떠나자 북제 황제가 위화만 데라고 정전으로 들어갔다.

이미 몇 년 전에 수렴청정을 그만둔 황태후는 정전 용상 옆에 있는 주발 뒤에서 그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경국에서 새로운 소식이 들려온 게 있는가?”

북제 황제의 질문에 위화가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북제 첩보를 책임지는 수상인 그는 조당에서부터 군사 방면까지 모든 정보 수집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수집한 정보는 이미 오늘 밤에 황제 폐하에게 보고를 했기 때문에 더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그가 황제 폐하의 안색을 살피며 속으로 생각했다.

‘폐하께서는…… 도대체 뭘 알고 싶으신 거지?’

머릿속으로 고민하던 위화가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경국 경도 수비사는 여전히 사비가 맡고 있고, 남소에 있던 소금화는 정북 진영에 소환되었습니다. 그리고 연경은 여전히 왕지곤이 지키고 있는 상황이라 경국 고위 장군들의 이동에는 이상한 점은 없습니다.”

북제 황제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소금화는 이전에 1 황자의 부장이었던 사람이 아닌가? 4년 전 경도 반란 때 중립적인 태도를 보인데다가 1 황자와의 관계 때문에 경제가 남소로 쫓아낸 걸로 아는데. 그런 사람이 이번에 정북 진영에 소환되었다는 게 좀 이상하군. 왕지곤에 대해서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왕지곤은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 신중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경국의 상황이 어떻게 변하든 연경성을 굳건히 지킬 거로 예상됩니다. 조정에서 몇 년 동안 관찰해본 결과에 따르면 경제가 이 사람을 지금까지 연경성에 둔 이유는 아무래도 북벌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었던 걸로 보입니다.”

달리 보고할 내용이 없는 위화는 어쩔 수 없이 금의위와 병부의 분석을 다시 한번 반복해서 설명했다.

북제 황제가 잠시 침묵하다가 물었다.

“섭중은 아직도 경도에 있나?”

위화가 대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북제 황제가 고개를 돌려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달처럼 밝은 눈동자에서 차가운 기운이 번쩍였다.

“확신할 수 있는가?”

겁을 먹은 위화가 진지하게 대답했다.

“소신, 확신합니다.”

“그렇다면, 참 이상하지 않은가?”

북제 황제가 주발 뒤에 있는 황태후를 힐끗 바라보고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경제가 정말 단숨에 전쟁을 끝낼 생각이라면, 섭중을 계속 경도에 남겨 두는 이유는 뭐란 말인가? 경국은 최근 몇 년 동안 경제에게 반기를 든 진평평과 범한을 처리하기 위해 힘을 쏟아야 했네. 게다가 그 이전에 벌어진 반란으로 여러 명장들이 죽지 않았는가? 진씨 집안은 멸문지화를 당했고, 1 황자는 동이성에 처박혀 움직이질 않고 있네……. 그런 상황에서 고작 왕지곤 한 사람에게 북벌을 맡긴다면 경제가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은가? 경제가 직접 병력을 이끌고 북벌에 나서지 않는다면, 최소한 섭중 같은 인물을 전선에 세워야 안심을 하지 않겠냐는 말일세.”

북제 황제의 말에 위화는 마음이 살짝 떨렸다. 하지만 경국의 고위 장군들의 인사이동에 무슨 계획이 숨겨져 있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천하에서 가장 강한 두 나라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자질구레한 사소한 방법에 따라 승패가 결정될 수 없었다. 북제 황제의 말처럼 왕지곤은 비록 20여 년 동안 연경성을 지키며 북벌을 준비해 온 사람이기는 했지만, 진정으로 강산을 뒤흔들 수 있을 만큼 대단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러니 경제의 천하통일에 대한 의지를 실현하고 북제에게 맹공을 펼치기에는 왕지곤 한 사람으로는 부족했다.

더욱이 북제는 동이성과는 엄연히 상황이 달랐다. 과거 북위를 계승한 북제는 광활한 영토에 많은 인구를 가지고 있는 데다가 동북 평원 일대는 대륙에서 손꼽히는 곡창지대 중 한 곳이었다. 비록 나라의 국운이 기운 상태이긴 했지만, 최근 몇 년 동안 북제 황태후와 북제 황제가 온 힘을 모아 성심성의껏 협력해 강력한 조치들을 단행한 덕분에 점점 과거 부흥했던 시기의 모습을 회복하고 있었다. 그러니 경국이 아무리 막강한 국력과 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짧은 시간 안에 북제를 정벌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니 아무리 강한 자신감을 가진 경제라고 하더라도 북제를 손쉽게 정벌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 거였다.

청아하고 그윽한 정전 안이 잠시 침묵에 휩싸였다. 미간을 잔뜩 찌푸린 북제 황제는 용상 아래서 천천히 걸으며 경국 황제의 생각을 읽어내려 했다. 피도 눈물도 없는 강력한 경국 황제는 도대체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있는 걸까?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고, 십여만 명의 목숨이 희생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적을 유인하거나 탐색하는 건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럼에도 경국 황제는 여전히 신중한 모습이었다. 어째서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호랑이처럼 포악하게 달려들지 않는 것일까? 어째서 기존의 모습과 달리 융통성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옹졸한 소인처럼 고지식한 규칙에만 얽매여 있으려 하는 걸까?

* * *

위화도 깊은 침묵에 잠겼다. 그의 시선은 잠시도 멈추지 않고 계속 움직이는 북제 황제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북제 황제의 발걸음을 따라 계속 시선을 이동하며 속으로는 주판을 굴리고 있었다. 그가 보기에는 경국 군대의 위력를 생각하면, 경국 조정이 어떤 장수를 동원하든 별로 차이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북제 황제 폐하가 경국이 어떤 장수를 동원하는지를 두고 고민을 거듭하는 모을 보며 어렴풋하게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때 갑작스럽게 그의 머릿속에 멀리 있는 북제 남경 방어선과 송나라 주성에 고립된 상삼호 대장군이 떠올랐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위화는 입을 열려 했지만, 황제 폐하가 다시 화를 낼까 두려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주저하던 그는 주발 뒤에 있는 어렴풋한 사람 형체가 보고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어쩌면…… 경국 황제는 상삼호 장군의 용병술이 두려워서 전군을 출병시키지 않는 것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대군이 서서히 북제 방어선을 압박해 온다면 분명 틈이 노출될 것이고, 경국은 그 틈을 이용해 파고들려 할 겁니다. 그러니…….”

위화의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북제 황제가 웃음을 터뜨렸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북제 황제는 얼굴에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온화하면서도 위협적인 눈빛으로 위화의 얼굴을 쏘아 보고 있었다.

위화가 방금 말한 틈은 북제 군사 배치에 있을 틈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틈이었다. 조금 전 늙은 병부 상서가 젖은 땅에 엎드려 간곡하게 간언을 올렸던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북제 대신들은 남쪽 전세가 불리한 것 때문에 황제 폐하가 나라의 기둥인 상삼호 장군을 질책할까 걱정하고 있었다.

양국의 전쟁 상황이 터지자 북제 남쪽을 책임진 대원수 상삼호는 경국 군대가 영토를 침입해 들어오는 걸 막지 못했다. 게다가 경국 군대를 막으려 하지는 않고 남경 방어선에서 멀리 떨어진 송나라 주성에서 홀로 숨어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 상삼호는 조정에서 긴급하게 지시를 보냈는데도 경국 군대가 북제 방어선을 뚫고 백여리의 영토를 점령하는 걸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이에 북제 황제는 대신들 앞에서 거침없이 분노를 쏟아냈다. 오늘 중서대에서 그 모습을 본 대신들은 황제 폐하와 상삼호 장군 사이에 갈등이 생길까 걱정에 휩싸였고, 이에 병부 상서와 위화가 연달아 황제 폐하에게 간언을 올린 거였다.

하지만 위화의 예상과는 달리 황제 폐하는 화를 내며 그를 질책하지 않았다. 북제 황제가 냉담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며 천천히 말했다.

“자네는 짐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군. 그리고 경국 사람들도…… 짐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잔뜩 긴장해 머리 회전이 느려진 위화는 순간 황제 폐하의 말뜻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그가 입만 벙긋거릴 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자 북제 황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짐은 지금껏 단 한 번도 상삼호 장군의 충성심을 의심해 본 적 없다.”

눈썹을 치켜세운 북제 황제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짐은 상삼호 장군이 짐에게 충성하든 말든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가 조정에 충성하고 이 나라에 충성하려 한다면 그걸로 족할 뿐이다.”

안색이 살짝 변한 위화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럼 황제 폐하의 분노가 모두 거짓이었던 건가? 분명 황제 폐하가 황궁에서 황제 상삼호 장군을 질책하지 않았던가? 그게 모두 거짓이었다면, 보름 동안 조정 관리들이 마음 졸이며 걱정할 필요도 없었던 건가?’

상황을 파악하려 애쓰는 위화의 귓가에 북제 황제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렸다.

“만일 지금 경국 황제가 짐이 경국의 압박에 못 이겨 실수할 거라 생각하고 있다면, 그는 짐이 생각했던 것만큼 대단한 인물은 아닌 셈인 게지.”

북제 황제가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계속 말했다.

“지금까지 짐이 보인 태도는 남쪽 경국 사람들을 속이기 위한 것이자 자네들의 의중을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다.”

“경국 군대가 곧장 북진하려 한다면, 그들은 허리 부분을 틀어쥐고 있는 상삼호 장군과 동이성의 힘을 걱정해야 할 게 아닌가?”

북제 황제가 살짝 비웃는 말투로 말했다.

“남쪽 경국 사람들의 보잘것없는 수에 짐이 넘어갈 것 같은가? 짐은 그리 쉬운 사람이 아니다. 물론 짐의 태도에 조정 대신들이 놀라 안절부절못할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비로소 북제 황제의 진심을 알게 된 위화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폐하께서 진노하시는 모습에 조정 대신들이 겁에 질린 건 사실입니다. 이 일로 조정의 몇몇 대신들은 폐하의 뜻을 잘못 판단했을 것이고, 어쩌면 전선 관병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전쟁은 항상 후방지원이 중요했다. 그래서 전방에서 장군들이 피를 뒤집어쓰고 싸우는 도중에 뒤에서 후방지원을 하는 조정 관리들이 황제의 마음을 어지럽힌다면 전쟁에서 절대 이길 수 없었다. 북제 황제가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위화에게 말했다.

“그래서 짐이 자네를 오늘 이곳에 데리고 온 것이다. 며칠 동안 짐에게 아부하기 위해 상삼호 장군을 비난하는 상소를 올린 대신들은 전부 내쫓아 버려라.”

갑작스러운 명령에 대경실색한 위화가 속으로 생각했다.

‘설마 황제 폐하께서는 큰 적을 쳐들어오는 상황에서 다시 조정에 피바람을 일으키려 하시는 건가?’

“짐도 자네가 걱정하는 게 뭔지 알고 있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어. 풍전등화와 같은 위급한 상황이지만, 지금의 조정은 이전의 조정과 다르네. 짐의 마음을 흔들려 하는 쓸모없는 폐물들을 전부 잡아들이겠다는데 누가 감히 불만을 품을 수 있겠는가?”

용상 위에 앉은 북제 황제가 고개를 돌려 주발 쪽을 바라보았다. 주발 뒤에 있는 황태후가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자 북제 황제가 몸을 꼿꼿이 펴고는 위엄 가득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오늘부터 상삼호 대장군을 비난하려 하는 자는 참하라! 전선의 일을 방해하려 하는 자는 참하라!”

명령을 마친 북제 황제가 위화를 내려다보았다.

“자네와 병부 상서는 정말 이 나리에 필요한 좋은 관리일세.”

북제 황제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계속 말했다.

“만약 앞으로 자네들이 상삼호 장군을 대신해 짐에게 간언하려 하지 않는다면, 짐은 자네들의 목도 베어버릴 것이네. 짐은 나라의 운명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개인의 이익만 생각하는 폐물들이나 맡은 바 책무를 제대로 하지 않는 쓸모없는 것들은 조정에 남겨 두고 싶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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