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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여년-1081화 (1,081/1,108)

1081화 전원이 황폐한 데 어찌 돌아가지 않을 수 있으리 (2)

감찰원 관리 출신인 등자월은 최근 경국과 북제 사이에 일어난 전쟁 상황을 사천립보다 더욱 명확하게 분석해 낼 수 있었다. 그가 근심 가득한 눈빛으로 범한을 바라보며 계속 말했다.

“정북 진영이 창주에서 출발하고 북제 군대가 3백 리 후퇴하는 도중에 서로 칼끝을 부딪치며 황야서 대규모 전투가 일어났습니다. 정북 진영이 지금은 잠시 군사들을 쉬게 하며 전열을 가다듬고 있지만, 연경성 안에 군대 이동이 빈번한 걸 보면 얼마 뒤에 두 번째 공격이 있을 겁니다……. 송나라 주성을 장악하고 있는 상삼호가 지리적으로는 우세하기는 하지만, 연경 대영과 정북 진영이 합동으로 서쪽을 공격한다면, 상삼호도 어쩔 수 없이 야전에 동참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나는 전쟁에서 일어나는 일은 잘 알지 못하네. 하지만 황제 폐하가 정말 결심을 내리셨다면, 뛰어난 자질을 갖춘 명장 상삼호라도 전쟁터에서 고군분투하다가 죽을 수 밖에는 없을 거네.”

고개를 숙인 채 지도를 바라보던 범한이 나지막이 말했다.

“북제 쪽에서도 오랜 시간 전쟁을 대비해 왔겠지만, 군사력에서 차이가 나니 경국을 상대로 정면으로 싸워서는 적수가 되지 못할 테지. 그러니 북제로서는 최대한 시간을 끌어서 경국의 국력을 소비해 지치기를 바라는 거야……. 하지만 상황을 보니 그것도 여의치 않은 것 같군. 상삼호는 최대한 경국의 국력을 소비하려 하지만, 황제 폐하께서 그의 뜻대로 따라주지는 않으실 테니까. 게다가 상삼호가 경국의 국력을 소비하게 한들 결국에 마지막이 웃는 건 황제 폐하일 테지.”

범한의 말을 듣고 있는 등자월과 사천립의 눈에는 짙은 근심과 복잡한 심경이 보였다. 경국을 배반하고 천하 제3의 세력에 속한 두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어쨌거나 경국에서 평생을 산 경국 사람이었다. 그래서 지금 경국과 북제 사이에 대규모 전쟁이 일어나자 이들은 난처한 처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신분도 어정쩡해졌다. 게다가 이들도 사라진 범한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했기에, 천하 전체가 뒤흔들리는 데도 몇 달 동안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한 채 방관만 하고 있었다.

지도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범한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는 손가락으로 이름 없는 주성을 가볍게 두드렸다. 상삼호가 지금 송나라에 속해 있는 이름 없는 주성에서 전투를 준비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그의 마음속에 갑자기 강렬한 불안감이 엄습했다.

“내가 황제 폐하라면, 상삼호의 장단에 맞춰 시간을 끌고 싶지 않을 테니 가장 간단한 방법을 사용할 거네. 연경 대영과 정북 진영의 군대를 하나로 합친 뒤 일부 병력을 송나라 뒤쪽으로 우회하게 한다면 상삼호는 칼집 속에 갇힌 칼이 될 것 아닌가…….”

“하지만 그러려면, 송나라 뒤쪽으로 우회한 뒤 동이성을 경유해 가야 합니다. 비록 지금 동이성이 명의상 경국의 속국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많은 군대가 동이성 경내로 진입하는 걸 허락할지는…….”

등자월이 말꼬리를 늘리다가 범한을 바라보며 다시 설명했다.

“그리고 1 황자 저하의 군대와 흑기는 지금 동이성에 없고, 소량국과 송나라의 국경선을 지키고 있습니다. 만약 경국 군대가 길을 빌리려 한다면 갑작스러운 충돌이 일어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등자월은 이 말을 확실히 단정을 지어 말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지금 밀실 안에 있는 세 사람은 동이성이 실은 범한에게 속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니 천하의 상황을 완전히 바꿔버릴 수 있는 거대한 전쟁에서 동이성이 어떤 역할을 보일지나 경국 황제 폐하가 동이성으로 군대를 보낼지는 모두 경국 황제와 범한 사이의 일에 달려 있었다.

“황제 폐하가 아직도 동이성을 공격하지 않았다는 건 제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 걸 아시기 때문이네. 그러니 황제 폐하께서는 그 길을 선택하지 않으시겠지.”

범한아 한숨을 쉬며 근심과 우울함이 드린 미간을 만지작거렸다.

“이 일은 더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것 같군. 어차피 내가 처리할 수 있는 일도 아니지 않은가. 내가 지금 관심이 있는 건 경도와 강남 쪽 상황이네.”

실은 범한이 알고 싶어 하는 내용들은 전부 등자월이 제출한 보고서에 들어 있었지만, 내용이 너무 많고 방대해서 그것들을 자세히 읽어볼 시간이 없었다.

“강남 상황은 비교적 안정적입니다. 조정이 황실 금고 입찰에 새로운 규칙을 적용하는 걸 취소했습니다. 하지만 황실 금고 공개 입찰에 염상이 참여를 하게 되었고, 명씨 집안이 일부를 입찰받는 데 성공하기는 했지만, 이전과 비교하면 상당히 힘든 상황입니다.”

“하서비는 아무 일 없는 건가?”

“작년에 암살 위기를 모면한 뒤에는 조정에서 명원을 상대로 별다른 행동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설청 총독도 하서비를 은근히 압박하기만 할 뿐 표면적으로 직접적인 행동을 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들은 범한이 깊은 생각이 빠졌다. 아무래도 황제 폐하는 황궁 안에서 자신과 한 협약을 지금까지 지키고 있는 모양이었다. 황제 폐하는 대대손손 이어질 업적을 이루기 위해서 범한의 위협에 잠시 뒤로 물러선 것이었다. 그러니 황실 금고의 핵심이 범한의 손에 쥐어져 있는 이상 황제 폐하는 그와 한 협약을 지키려 할 거였다.

“손경수는 해직당한 뒤 유배를 갈 예정이었으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황궁에서 갑작스럽게 교지를 내려 그의 죄를 사면해 주었습니다. 손씨 집안 아가씨도 교방에 들어가기 전날 밤에 풀려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지금 손씨 집안은 아주 힘든 날을 보내고 있기는 하지만, 하종위 일파가 모두 죽어서 해를 가하려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 말을 하는 등자월이 입꼬리를 살짝 올려 미소를 지었다. 그는 경도에서 일어난 일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감찰원이 경도 곳곳을 수색해 하종위 쪽 관리들을 찾아내 모두 죽였다는 걸 떠올리면 과거 감찰원에 몸담고 있었단 사람으로서 더없이 속이 시원하고 후련했다.

“다만 감찰원 안에서 여전히 대인의 지령을 따르는 사람들은 모두 경도 범위에서 벗어나 있어 도울 수가 없습니다.”

등자월의 말에 범한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속으로는 뭔가 이상한 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폐하가…… 언제부터 이렇게 관용과 인정이 넘치는 군주로 변하신 거지?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이러는 건가?’

“집안은 아무 문제가 없는가?”

범한이 고개를 저으며 확실히 추측할 수 없는 일은 잠시 내려두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는 왕계년을 향해 물었다.

왕계년이 마른기침을 두어 번 한 뒤에 히죽 웃으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천하 사람들 모두가 놀랄 정도로 더없이 잘 지내고 계십니다. 신 군주와 아가씨는 매일 입궁해 황제 폐하와 담소를 나누고 계시고, 대인의 두 아이도 아주 건강하게 잘 있습니다.”

경도 안에서 상황은 정말이지 천하 사람들 모두를 당황하게 했다. 범한이 경국의 반역자가 되었음에도 황제 폐하는 범씨 가문에 죄를 물으려 하지 않았다. 이에 범한의 반역에 연루되어 처벌받아야 할 임완아나 범약약은 오히려 경도 안에서 편안하게 지내고 있었고, 지위도 황제 폐하 암살 사건이 일어나기 전보다 더 높아져 있었다.

범한이 이 소식을 듣고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때 등자월의 목소리가 들렸다.

“영주 사건을 조사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소문무를 습격한 사람들은 산적으로 위장한 남로에서 철수한 변방군이었습니다.”

범한이 차가운 눈빛을 번뜩하며 재빨리 물었다.

“사람은 어찌 되었는가?”

“눈에 덮여 있는 소문무의 시신을 찾았습니다.”

등자월이 천천히 두 눈을 감으며 침울한 목소리로 계속 설명했다.

“당시에 그의 몸에 팔 하나가 없었는데, 감찰원 옛 부하들이 오랜 시간 찾았지만, 결국에는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경도로 돌아가야겠네.”

한참 동안 침묵하던 범한이 고개를 들며 말했다. 그가 가장 믿을 수 있는 세 명의 심복들을 바라보며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자네들은 당장 이곳을 떠나 동이성으로 가도록 하게. 그리고 앞으로 다시는 한 곳에 모두 모여 있지 말게나. 자네들이 모여 있다가 한꺼번에 모두 잡히면 나는 어찌 견딜 수 있겠는가?”

경국 경도로 돌아가겠다는 범한의 말에 왕계년을 포함한 세 사람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왕계년은 범한과 오랜 시간을 함께했기 때문에 범한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었고, 말도 가장 편하게 했다. 이에 왕계년이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목소리로 간곡하게 말했다.

“황제 폐하께서 비록 숙청을 진행하시지는 않았지만, 대인도 아시지 않습니까. 만약 대인이 경도에 나타난다면, 황제 폐하께서는 분명 무슨 수를 써서라도 대인을 죽이려 하실 겁니다.”

“나도 알고 있네.”

“대인의 목숨은 그 협약과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더욱 중요한 점은 대인이 살아계셔야 황제 폐하가 두려워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실 거라는 겁니다…… 대인의 목숨에 많은 사람들의 생사가 걸려 있습니다.”

“나도 알고 있네.”

범한이 눈꺼풀을 살짝 내려뜨리며 말했다.

“경도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는 일을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네. 내가 동이성에 평생 동안 숨어 있는다면 일을 해결할 수 없네.”

다시 쥐 죽은 듯한 침묵이 이어졌다. 범한의 머릿속이 갑자기 번쩍이더니 왕계년을 바라보며 물었다.

“전쟁 상황을 보면 정북 진영과 연경 대영이 상삼호와 소모전을 할 수 있음에도 폐하께서 소모전을 원치 않으시는 것 같네. 그 이유가 뭔지 알고 있는가?”

왕계년이 잠시 침묵한 뒤에 대답했다.

“황궁에서 들려온 소식에 따르면 황제 폐하의 몸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말에 등자월과 사천립의 안색이 급변했다. 황제 폐하의 건강은 지금 천하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사항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정말 놀란 이유는 자신들이 모르는 사실을 왕계년이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등자월은 감찰원에서 정보 업무를 오랫동안 처리해온 사람이었고, 사천립은 천하 곳곳에 퍼져 있는 포월루 정보망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황제 폐하의 건강에 대한 어떠한 소문도 듣지 못했기에, 지금 왕계년의 말을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범한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왕계년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왕계년의 정보가 어디서 나온 건지 알고 있었기에 믿을 수 있었다. 왕계년에게 정보를 준 사람은 황궁 안에 있는 홍죽이었다. 진평평이 살아 있다고 해도 알아내지 못했을 정보를 범한이 왕계년을 통해서 알 수 있었던 건 홍죽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후로 밀실에서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세 사람 모두 지금 범한의 행동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걸 알고 있기에 더는 경도에 가지 말라 설득하지 못했다. 눈을 데구루루 굴리며 주변 분위기를 살피던 사천립이 싱긋 웃으며 넌지시 말했다.

“대인, 이번 여정이 어땠는지는 말해주지 않으실 겁니까? 대인은 고하 대사 이후에 신묘에서 살아서 돌아온 분이시지 않습니까.”

“무너진 사원일 뿐인데 할 말이 뭐가 있겠는가.”

범한이 웃으면서 말했다. 모두가 전설로만 알려진 신묘가 어떤 곳인지 궁금해한다는 걸 알았지만, 마음이 무거운 범한은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저 밀실 문 앞에 있는 오죽 아저씨를 힐끗 바라보며 속으로 맹인 아저씨가 언제 다시 깨어날지 궁금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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