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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여년-1076화 (1,076/1,108)

1076화 가장 강력한 위력을 지닌 사람의 이름 (2)

세상 사람 중에서 신묘의 위치를 아는 사람은 아주 극소수뿐이었다. 게다가 그보다 훨씬 적은 사람들만이 신묘를 직접 방문해 보았다. 최소한 최근 수백 년 동안 신묘를 실제로 찾아온 사람은 서방의 보어 대법사와 동방의 고하와 소은 뿐일 거였다. 심지어 하늘의 자손이라 알려진 보어 대법사의 아내 볼포도 신묘에 올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

이처럼 신묘는 아무나 찾아갈 수 없는 신비롭고 숭고한 장소였기에 세상 사람은 모두 신묘를 신성시했다. 그런 세상 사람들에게는 신묘의 문을 부순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불경스러운 일이었다.

문을 부수고 안으로 쳐들어갈 생각을 하더니. 안하무인인 짓을 일삼는 불량배들이나 할 짓이었다. 더구나 신묘의 문은 워낙에 두꺼워서 아무런 장비도 없이 맨손으로 부수는 건 불가능했다. 다만 범한이 이 외침을 통해서 그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신묘의 분노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범한이 신묘의 분노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신묘의 정체를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신묘는 인간처럼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 분노도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범한의 명령에 왕 십삼랑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그가 ‘끙’ 소리를 내며 한 손으로 사고검의 유골함을 들고는 체내의 정기를 거칠게 운행하자 ‘휙!’ 소리를 내며 유골함이 날아갔다. 커다란 갈색 유골함이 날아가 문에 부딪혀 부서졌다.

유골함이 신묘의 두꺼운 문에 부딪히면서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이 났다. 바람에 하얀 먼지와 뼛가루가 나풀나풀 날아갔고, 가끔은 부서지지 않은 작은 뼛조각이 날아가는 것도 보였다.

유골이 먼지처럼 나풀대다가 바람에 실려 흩어지자 신묘의 문이 보였다. 신묘의 두꺼운 정문은 조금도 부서지지 않았지만, 부딪혔을 때 생긴 깊은 상처는 남아 남겼다. 게다가 문에는 뼛조각이 깊이 박혀 있었다. 홀로 문에 박혀 있는 뼛조각은 약간은 쓸쓸하고 처량해 보여서 유독 눈에 띄었다.

뼛조각은 마치 검처럼 문에 깊이 박혀 있었다.

왕 십삼랑이 마른 입술을 살짝 오므리고 문에 박힌 뼛조각을 바라봤다. 한참 동안 뼛조각에서 시선을 떼지 않던 왕 십삼랑은 속으로 스승님은 세상을 떠났어도 유골에는 여전히 검의가 충분히 남아 있다고 생각했다.

세상을 떠난 스승을 생각하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던 왕 십삼랑의 눈빛이 순간 번쩍였다. 왕 십삼랑은 신묘의 정문 앞과 돌계단 위에 흩어진 사고검의 유골을 바라보자 왠지 모르게 감정이 격해지면서 마음속 깊은 곳에서 두려움과 긴장감이 치솟았다. 순간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지만, 어디로 도망을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때 범한이 웃으면서 잔뜩 쉰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 스승이 만일 자신의 유골이 신묘의 대문을 때렸다는 걸 알고 있다면, 저승에서 분명 춤을 추며 기뻐하고 있을 거네…….”

두 젊은 청년은 사고검의 성격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유골함이 신묘의 정문을 때린 게 검 하나로 천하를 뒤흔들던 거만한 대종사의 성격과 잘 맞아떨어진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왕 십삼랑이 마침내 소리를 내 웃었다.

이때 유일하게 걱정해야 할 건 신묘의 반응이었다. 신묘의 문이 살짝이라도 부서졌으니 신묘가 무슨 반응이든 하는 게 맞았다. 범한이 들고 있던 나무 막대기를 건네받은 왕 십삼랑이 허리를 살짝 굽히고는 신묘의 문을 노려봤다. 그는 언제든지 일격을 날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범한이 오른손을 들어 그의 행동을 막고는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가만히 신묘의 반응을 기다리는 범한은 전혀 두렵지 않았고, 득실 관계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해당과 왕 십삼랑은 그가 다시 신묘를 가는 게 죽을 위험을 무릅쓴 모험이라고 생각했지만, 범한의 생각은 달랐다. 이전에 방문했을 때 그는 신묘에 대해 잘못 판단하는 바람에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이 실수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쨌든 지금 신묘를 지킬 수 있는 사자는 오죽 아저씨 한 명뿐이니 말이다. 그러니 만약 오죽 아저씨를 다시 깨울 수만 있다면 사자가 없는 신묘가…… 뭘 할 수 있겠는가?

* * *

신묘의 반응은 아주 빨랐다. 육중한 대문이 살짝 열리더니 신비롭고 공포스러운 검은빛이 안에서 뿜어져 나왔다. 검은빛은 공간과 시간의 간격을 넘어 번개처럼 순식간에 범한의 앞까지 다가왔다 왔다.

무명옷 차림에 검은색 천으로 눈을 가린 오죽의 손에는 쇠막대기가 들려 있었다. 그의 기세등등한 기합 소리가 허공의 공기를 찢었다. 천하에서 이렇게 강한 위력과 빠른 속도를 지닌 공격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범한도 피할 수 없었고, 왕 십삼랑도 피할 수 없었다. 설사 사고검이 지금 살아 있다고 해도 피할 수 없을 거였다. 하물며 지금 세 사람 사이에 있는 사고검은 바람에 흩날리는 뼛가루가 되어 있었다.

* * *

하지만 조금의 감정도 느껴지지 않은 차갑고 매정한 쇠막대기는 범한의 몸을 찌르려 하는 순간 갑자기 멈췄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진행하던 공격을 순식간에 멈춰 세우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놀라운 상황 속에서도 범한의 표정은 덤덤하기만 했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쇠막대기를 바라보던 범한이 눈길을 오죽의 얼굴로 돌렸다. 이전에는 세상에서 가장 친근한 절세강자였지만, 이제는 낯선 신묘의 사자가 되어버린 오죽을 가만히 바라보던 범한이 나지막이 말했다.

“지금 속으로는 무척 궁금해하고 계시죠?”

* * *

오죽이 앞에 있는 범한을 신묘가 설정한 제거 목표로 인식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범한의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을 알아들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분명한 것은 오죽의 쇠막대기가 공격을 멈췄다는 거였다. 쇠막대기는 범한의 목 바로 앞에 멈춰서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쇠막대기의 날카로운 끝에는 몸서리쳐질 만큼 강한 정기는 실려 있지 않았지만,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그런 쇠막대기가 범한의 목 연골에서 닿을 듯 말 듯 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만약 쇠막대기를 쥐고 있는 오죽의 손가락이 조금이라도 떨린다면 범한은 목이 찔려 죽을 수도 있었다.

바로 옆에서 이 상황을 지켜본 왕 십삼랑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숨 막힐 듯한 상황에 잔뜩 긴장한 그가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지금의 상황을 겪고 나자 왕 십삼랑은 비로소 범한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도 무명옷만 입고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맹인 대사 앞에서는 누구도 범한을 도울 수 없었다. 범한을 도울 수 있는 건 오로지 그 자신뿐이었다.

범한은 자신의 턱밑에 있는 쇠막대기가 보이지 않은 듯 지척에 있는 오죽 아저씨만 바라보며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저는 아저씨가 속으로는 궁금해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날 아저씨는 자신의 공격에 제 숨이 끓어지지 않았다는 걸 알면서도 죽이지 않고 떠나도록 내버려 두셨잖아요. 아저씨는 자신이 신묘에 복종해야 한다는 본능까지 어겨가면서 제가 신묘에서 떠나도록 내버려 둔 이유가 궁금하시죠?”

“아저씨는 제가 누구인지도 궁금하실 거예요. 아저씨의 기억 안에 저의 존재가 없는 데도 제가 익숙하고 친근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궁금하시겠죠.”

대답 없는 오죽 아저씨 앞에서 말을 늘어놓는 범한의 두 눈동자가 반짝였다.

“아저씨는 그날 제가 아저씨의 일격을 어떻게 피한 건지 궁금하시겠죠. 아저씨는 신묘의 사자이고, 저는 평범한 사람이잖아요. 신묘가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고 정한 목표인 제가 어떻게 아저씨 일격을 맞고도 죽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어째서 아저씨를 이렇게 잘 알고 있는 걸까요…….”

범한은 오죽 아저씨의 무관심한 얼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천천히 말했다.

“물론 아저씨는 저를 믿으셔야 해요. 이 세상 누구도 저만큼 아저씨가 가장 궁금해하는 게 뭔지 잘 아는 사람도 없으니까요.”

“아저씨는 자신이 익숙함이나 친근함 같은 감정을 느끼는 이유 궁금하시죠?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궁금한 건 자신이 어째서…… 호기심이라는 걸 갖게 되었는지잖아요!”

범한은 오죽이 궁금해하는 일곱 가지를 쉴 새 없이 말했다. 범한의 얇고 창백한 입술 사이에서 조금의 막힘이나 주저함도 없이 나온 물음들은 검은 천에 가려진 차가운 심장을 찔렀다.

말을 멈춘 범한은 순간 극심한 피로감을 느끼면서 격렬하게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기침이 멈췄을 때 그의 눈동자는 더욱 빛나고 있었고, 마음속 희망도 더욱 짙어져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사실 하나를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오죽 아저씨가 들고 있는 쇠막대기는 범한의 목 연골 바로 앞에 있었다. 그러니 그가 기침하거나 조금만 움직여도 쇠막대기에 찔려 다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몸을 흔들며 격렬하게 기침을 했음에도 다치지 않았다. 그건 오죽 아저씨의 손에 들려 있는 쇠막대기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정교하게 범한과 거리를 맞추고 있기 때문이었다. 쇠막대기는 범한의 미세한 움직임에 따라 앞뒤로 움직이며 거리를 조정하고 있었다. 상대방의 움직임을 예측해서 찰나의 순간에 정교하게 움직이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 * *

한편 오죽의 손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왕 십삼랑은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맹인 대사를 상대로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깨닫자 범한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범한이 몸을 흔들며 격렬하게 기침을 했고, 왕 십삼랑은 놀라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 달리 범한은 쇠막대기에 찔러 다치거나 죽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왕 십삼랑은 범한의 판단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비로소 설산 아래서 해당과 자신의 반대를 하는데도 범한이 자신이 있어 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조금도 긴장을 하지 않는 범한의 모습은 여전히 이해되지 않았다. 바로 앞에 자신을 죽일 쇠막대기가 있는데도 두렵지 않은 걸까? 범한은 정말 검은 천으로 눈을 가린 맹인 대사가 자신을 죽일 수 있다는 걱정을 조금도 하지 않는 걸까?

의문 가득한 시선으로 범한을 바라보던 왕 십삼랑은 이내 범한 역시 긴장해 있다는 걸 눈치챘다. 왜냐하면 뒷짐을 지고 있는 범한의 양손이 보일 듯 말 듯 미세하게 떨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상황이 진정되자 왕 십삼랑이 조심스럽게 뒷걸음질을 쳐서 두 사람과 거리를 벌렸다. 소리 없이 청석 돌계단 쪽으로 물러난 그는 가만히 서서 두 사람을 바라봤다. 왕 십삼랑이 뒤로 물러난 건 범한의 수신호를 보았기 때문도 있었지만, 자신이 곁에 있다가 범한의 계획을 방해하는 바람에 맹인 대사가 갑자기 돌변할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범한도 마음을 완전히 놓은 건 아니었다. 그가 오죽 아저씨의 눈을 가리고 있는 검은 천을 빤히 바라보며 상대방의 표정을 읽으려 했다. 그는 오죽 아저씨의 마음속에 여러 의문들이 샘솟고 있다고 판단하고 상대를 자극했지만, 잠시 뒤 자신의 모든 시도가 헛수고라는 걸 깨달았다. 오죽 아저씨의 얼굴에는 여전히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았고, 미간 사이의 냉담한 기운도 여전히 낯설었다.

범한은 오죽 아저씨의 얼음장처럼 차갑고 무뚝뚝한 표정이 익숙했다. 오죽 아저씨가 그의 앞에서 웃는 표정을 지어 보인 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신묘 앞에 있는 오죽 아저씨의 무뚝뚝한 표정을 정말 낯설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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