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5화 가장 강력한 위력을 지닌 사람의 이름 (1)
범한이 다시 설산의 돌계단을 오르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 세 사람은 무도하 강에서 모인 이후 가장 격렬한 언쟁을 벌어야 했다. 세 사람이 언쟁을 벌인 이유는 서로 간에 의견이 충돌했기 때문이었다. 세 사람 모두 범한이 다시 신묘에 가려고 하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해당타타와 왕 십삼랑은 범한의 선택이 너무나도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가까스로 도망쳐 나온 신묘에 다시 가려 갔다가 무슨 위험천만한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게다가 해당타타와 왕 십삼랑은 맹인 대사가 범한을 공격한 이유는 몰랐지만, 다시 공격할 수도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이전의 공격에 치명상을 입은 범한이 다시 돌아간다면 이번에는 정말로 죽을 수도 있었다.
해당타타와 왕 십삼랑은 범한이 다시 신묘를 찾아갔다가 목숨을 잃을까 걱정했다. 사실 두 사람은 신묘가 자신들의 생사에는 전혀 관심도 없으면서 범한 만큼은 영원히 안에 가둬두거나 죽이려 했다는 사실에 불안해하고 있었다.
지금이 여름인지 가을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북쪽 지역의 눈보라가 갈수록 거세지고 공기가 오금이 저릴 만큼 차가워지는 건 확실했다. 두꺼운 털을 두른 해당타타가 밝지만 피곤함이 가득한 두 눈으로 범한을 바라보며 간절히 설득했다.
“지난 몇 달 동안 사실 저와 왕 십삼랑은 아무것도 한 게 없어요. 조금도 대인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죠. 하지만 우리는 대인이 죽으로 가는 걸 그냥 지켜볼 수 없어요.”
범한이 오른손으로 나무 막대기를 꽉 쥐고는 천천히 걸어갔다. 그는 해당타타의 말에 흔들림 없이 결연한 표정을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제가 봤을 때 지금은 최대한 빨리 남쪽으로 가는 게 가장 좋은 선택인 것 같습니다. 북제 상경성으로 돌아가 푸른 산에 있는 제자들을 데리고 오거나 아니면 동이성으로 돌아가 검려에 있는 제자들을 데라고 다시 신묘로 오면 되지 않습니까. 그럼 맹인 대사를 구할 가능성도 더 커질 겁니다.”
왕 십삼랑은 오죽과 범한이 어떤 관계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범한이 맹인 대사를 각별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다만 그는 아무리 고민해도 강력한 힘을 가진 맹인 대사가 어째서 신묘의 위압에 벗어날 용기를 내지 못한 이유나 범한에게 일격을 날린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왕 십삼랑이 제사한 의견이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범한은 이미 신묘로 가는 길을 알고 있었고, 이번에 한 번 다녀와 봤으니 남쪽으로 내려가서 재정비한 뒤에 다시 뛰어난 부하들을 데리고 오기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왕 십삼랑의 말을 듣자 범한은 눈을 가늘게 뜨고는 주변의 온기를 모두 사라지게 할 정도로 차가운 살기를 드러냈다. 그가 옆에 서 있는 왕 십삼랑의 얼굴을 빤히 노려보며 한 글자 한 글자 강조해서 단호히 말했다.
“설원에 들어오기 전에 했던 맹세를 잊지 말게. 우리 세 사람 외에 세상 어느 사람도 신묘의 위치를 알아서는 안 되네!”
왕 십삼랑은 안색이 살짝 변했지만, 반박은 하지 않았다. 범한의 말처럼 그와 해당타타가 맹세한 건 사실이었기에 반박할 수 없었다. 다만 그는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다시 신묘에 찾아가려는 범한이 신묘의 위치가 세상에 알려지는 데는 엄청난 공포심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이유가 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왕 십삼랑은 나를 부축해 산에 함께 오르고, 낭자는 설산 아래 남아서 우리가 내려오면 곧바로 떠날 준비를 하고 계십시오.”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아 있는 설산에서 시선을 거둔 범한이 살짝 젖은 눈동자로 가죽 외투를 입은 해당타타를 바라보며 말했다.
“낭자는 야영지에서 우리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왜 저는 같은 산에 올라가지 않는 겁니까?”
해당타타가 얼굴을 찡그리며 물었다. 두꺼운 가죽 외투 밖으로 드러난 해당타타의 얼굴은 붉게 얼어 있었다.
“아까 신묘에 갔을 때 아무 도움도 주지 못했다고 말했죠?”
범한이 자조 섞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실 두 사람이 없었다면, 저는 눈보라 속에서 죽었을 겁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그런 말은 하지 마십시오. 하지만 이번에 산에 올라가면 저만 아저씨를 상대할 겁니다. 낭자나 왕 십삼랑은 이 일과 상관이 없는 만큼 어떤 역할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범한이 해당타타를 향해 살짝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예의 없는 말이긴 하지만, 두 사람도 오죽 아저씨가 엄청난 강자라는 걸 알고 있지 않습니까.”
해당타타와 왕 십삼랑은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떨궜다.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며 범한에 담담한 말투로 계속해서 설명했다.
“제 몸 상태가 부축받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괜찮으면, 저는 왕 십삼랑도 이곳에 남겨 두고 싶습니다. 좀 있다가 저희 두 사람이 산에 올라가면, 낭자는 산 아래서 기다리면서 저희가 도착하면 바로 출발할 준비를 하십시오. 일이 생각보다 제대로 풀리지 않고 있으니, 떠날 때는 최대한 짐을 가볍게 해서 산을 떠나야 합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신묘는 자신만의 규칙이 있고, 항상 그 규칙을 지키려 합니다. 그러니 저를 제외한 두 사람이 신묘의 범위 밖에만 있는다면 신묘는 두 사람을 공격하지 않을 겁니다.”
“그럼, 얼마나 오랫 동안 산 아래서 기다려야 하는 겁니까?”
해당타타가 눈동자를 굴려 주변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물었다. 체념하는 듯한 목소리였지만, 사실 마음속에는 다른 감정이 샘솟고 있었다. 눈보라가 부는 황량한 산속에서 인류가 가진 힘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범한의 머릿속에 있는 지식들은 정말이지 많은 도움이 되었다.
“3일입니다······. 그리고 왕 십삼랑이 낭자와 연락을 책임질 겁니다. 만약 제가 두 사람에게 떠나라고 말하면······.”
범한의 눈동자에서 갑자기 옅은 근심이 비쳤다. 그의 모습은 병약한 소년과 같아서 눈보라에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보였다.
“두 사람은 뒤도 돌아보지 말고 당장 이곳을 떠나야 합니다. 그리고······ 나중에라도 꼭 제 아내와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었는지 알려주십시오.”
해당타타가 왕 십삼랑이 동시에 고개를 푹 숙이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 * *
산 위로 갈수록 눈보라가 잦아들었다. 산맥 속에 파묻혀 보이는 것이라고는 드넓은 하늘과 눈과 얼음뿐인 이 산 위에 신묘가 있었다. 두 번째 방문인 만큼 가는 길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 한 손에는 나무 지팡이를 짚고 다른 한 손은 왕 십삼랑의 어깨에 두른 범한이 부축을 받으며 힘겹게 설산을 올랐다. 얼마 뒤에 두 사람은 곧게 뻗은 청석 돌계단 앞에 도착했다.
왕 십삼랑은 등에 한눈에 봐도 아주 무거워 보이는 커다란 항아리를 메고 있었다. 최근 몇 개월 동안 왕 십삼랑은 눈과 얼음뿐인 극한의 환경 속에 있으면서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쳤지만, 강인한 의지력과 정신력으로 자신이 받은 역할을 묵묵히 수행했다. 범한이 눈을 가늘게 뜨고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옆에 있는 왕 십삼랑을 바라보았다. 왕 십삼랑을 바라보는 범한의 눈동자가 순간 살짝 번쩍이더니 이내 빛이 사라졌다. 마른기침을 하며 범한이 나지막이 말했다.
“자네 스승의 유언에 따라 유해를 신묘에 보내드리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신묘에 한 번은 다녀와야 하네.”
줄곧 아무 말 없던 왕 십삼랑이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제게 괜히 핑계를 대실 필요는 없습니다. 만약 스승님의 유언을 실행하기 위해서였다면, 저 한 사람만 가도 되었으니까요. 더구나 대인은 신묘 안에 있는 선인에게 단단히 미움을 산 것 같던데, 그런 대인과 함께 신묘에 가는 게 저에게는 더 위험한 일이 아닙니까?”
범한이 멋쩍은 얼굴로 웃으면서 살짝 타박하는 말투로 말했다.
“자네 참 인정머리 없는 사람이군.”
“스승님의 유언은 유골을 여기 청석 돌계단 위에 뿌려달라는 거였습니다······.”
왕 십삼랑이 갑자기 한숨을 쉬고는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뻗어 있는 돌계단을 바라봤다.
범한도 고개를 들어 돌계단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검성 대인은 이곳이 신의 세상이라 생각해 청석 돌계단에 뿌려지기를 원한 것이겠지만, 자네나 나나 신묘에 들어가 봤으니 알지 않는가. 그곳은 신의 세상이 아니네. 자네는 아직도 내 말을 따를 생각인가?”
“네, 우리는 이제 어찌해야 합니까?”
“항아리는 그냥 등에 멘 채 내 말을 잠깐 들어보게.”
몇 년 전, 눈 내리는 밤에 막 검려에서 나온 왕 십삼랑은 스승 사고검의 명령에 따라 경국으로 와서 내려와 범한을 찾아갔다. 이후로 그는 스승의 말에 따라 범한의 명령에 따랐고, 이제는 그의 말대로 행동하는 게 익숙해졌다. 비록 범한은 왕 십삼랑을 친구로 생각했지만, 왕 십삼랑은 자신이 범한을 동료나 친구가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아마도 왕 십삼랑 성격상 골치 아픈 일에 신경을 쓰고 싶어 하지 않는 데다가 온몸과 마음을 검에만 쏟고 싶어서 마음에서 그런 것일 거였다. 그는 머리 아픈 복잡한 일은 모두 범한에게 넘겼다. 그래서 범한이 지금 자신의 말을 따를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왕 십삼랑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왕 십삼랑은 그 어떠한 의문도 가지지 않고 범한의 말을 따랐다. 무거운 유골함을 등에 메고 중상을 입은 범한을 부축하며 한 걸음 한 걸음씩 천천히 설산을 올랐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을까? 길고 높은 돌계단을 모두 다 오르자 회색 처마 아래 검은색 돌담이 둘린 장엄한 자태의 신묘가 다시 한번 두 사람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었음에도 신묘의 모습을 직접 두 눈으로 보자 왕 십삼랑은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가슴이 뛰고 감격스러웠다.
반면 범한은 아무런 감흥도 들지 않은 듯 덤덤한 표정이었다. 다만 계단으로 오르다 보니 숨이 거칠어지고 기침이 심해졌다. 범한의 기침 소리가 신묘 앞 넓은 평지에 불길하게 울려퍼지더니 산맥 눈 골짜기 깊은 곳에까지 울렸다.
왕 십삼랑이 긴장한 눈빛으로 범한을 바라봤다. 마치 큰일을 하다가 들킨 아이처럼 잔뜩 긴장해서는 범한에게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가 신묘에게 온 것을 들키면 어쩌냐는 눈짓을 해 보였다.
하지만 범한의 기침은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등을 새우 등처럼 굽히고 격렬하게 기침을 한 탓에 하마터면 가슴에 난 상처 부위가 벌어질 뻔했다. 한참 동안 기침을 하던 범한이 가까스로 호흡을 가다듬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가 허리를 곧게 펴고는 의미심장한 눈빛을 지으며 신묘를 바라보았다. 그가 차갑고 냉정한 눈빛으로 신묘 위에 걸린 현판과 현판 위에 적힌 물(勿) 자와 세 개의 M자를 아무 말 없이 바라보았다.
범한은 신묘가 이미 밖에 사람이 왔다는 걸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분명 지금 이 순간에도 제거해야 할 첫 번째 목표로 삼았던 섭경미의 아들이자 신의 세상의 동행자인 범한이 신묘 밖에 왔다는 걸 알고 있을 거였다.
그럼에도 신묘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쥐 죽은 듯이 조용한 게 오히려 범한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신묘 주변을 둘러보던 범한의 머릿속에 애써 자신을 죽이지 않으려 했던 오죽 아저씨의 일격이 떠올랐다······.
숨이 막힐 듯한 침묵이 이어지는 가운데 범한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는 신묘의 두껍고 육중한 대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숨을 아주 깊게 들이마시더니 한마디를 외쳤다.
“부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