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4화 사당 안에 있는 사람 (1)
신묘 자체는 하나의 세계일 테니, 그렇다면 문 뒤에는 당연히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인들의 상상처럼 신묘 대문 뒤는 아름다운 신선의 땅도, 해당타타가 상상하던 곳도 아니었다. 그리고 파랑새가 짹 소리와 함께 날아간 후로는 예까지 힘들게 찾아온 여행객들을 위해 더 귀여운 생명체가 마중을 나와 준 것도 아니었다.
신묘로 들어가니 다시 광장이 나왔다. 그것도 어마어마하게 큰 광장이었다. 광장 주변에는 드문드문 거대한 건축물들이 서 있었다. 이 건축물들은 꽤 컸지만 바깥에 둘러쳐진 검은색 담벼락에 막혀 산 아래에서는 아무도 볼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건축 자재와 건축 양식, 그리고 높이와 넓이는 모두 지금 사람들로서는 따라올 수 없는 수준이었다. 도로 양측 담벼락에는 낡을 대로 낡은 벽화 흔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구성하고 있던 선과 암담한 색채만큼은 어렴풋이나마 보이기는 했다.
범한 일행은 신묘 안에 있는 통로를 걸었다. 그런데 어딜 봐도 눈이 내려 앉아 있었고, 세상은 여전히 고요하기만 했다. 그리고 신화 속에서 등장하는 풍경과 모습은 실재하지 않는 것만 같았다.
세 사람은 세 개의 검은 점처럼 조용히 통로를 걸었다. 그런데 문 앞에서 났던 것 같은 소리가 더는 나지 않아 신묘 사람은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관심도 없고, 어디로 가라고 안내해줄 생각도 없어 보였다.
그래서 범한 일행은 마음 가는 대로 조용히 통로 위를 걸었다. 그리고 차분하게 주변 건축물, 처마, 거대한 돌로 이루어진 대(臺)를 차분하게 훑어보았다. 그런데 이들은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것처럼 보여도 마음속에서는 거센 파도가 출렁이고 있었다. 어쨌거나 이 세상 그 누구도 와보지 못한 신묘 내부에 들어와 있는 거였다. 전설과 신화의 땅이 드디어 자신들 앞에 나타난 거였다. 그러니 해당타타와 왕 십삼랑이 아무리 겉으로는 태연해 보여도 어떻게 이 복잡한 감정까지 억누를 수 있었겠는가?
과거 고하와 소은은 신묘 밖에만 있었고, 그곳에서 검은 그림자와 꼬마 선녀를 만났다. 그런데 범한 일행은 정말로 신묘 안으로 들어와 걷고 있었다.
범한은 냉정함을 유지하려 애썼다. 사당에서 나온 대답을 통해 신묘의 내력을 얼추 추측하고 있어서였다. 범한의 눈빛이 통로 양측에 남아 있는 벽화로 가 멈추었다. 심하게 벗겨지고 떨어져 나가 원래 어떤 그림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역사의 비밀이 이 남은 벽화 안에 숨어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범한은 일부 남은 선 안에서 익숙한 흔적을 쉽게 찾아냈다.
신묘의 건축 양식은 상경성의 검푸른 황궁에 영향을 준 것 같았다. 신묘 벽화 양식과 경국 사당, 심지어는 일석거 주루에 그려져 있던 그림 양식은 일맥상통했다. 신묘가 세상에 몇천만 년 전에 세워졌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신묘는 인간 세상에 직접 들어오지는 않았어도 은근히 그리고 꾸준히 영향을 미치고 있던 거였다.
신묘 안에는 담벼락 밖보다 눈도 적게 내리고 바람도 덜 불었다. 눈보라는 일찌감치 멎었지만 그래도 통로 위에는 눈이 얇게 깔려 있었다. 이에 통로 위에 찍힌 세 사람의 발자국은 외로운 선이 되어 신묘 깊은 곳까지 이어졌다.
가는 내내 보이는 거라곤 파괴되고, 기울어지고, 황폐해진 건물뿐이었고, 썰렁하니 사람 사는 흔적은 없어 보였다. 여기는 선경도 선역(神域)도 아닌 황제 아버지와 오죽 아저씨의 말처럼 그저 쇠락한 곳일 뿐이었다.
범한이 눈 위에 찍힌 발자국에서 시선을 거둬들였다. 그리고 잠시 깊이 생각을 해보고는 해당타타와 왕 십삼랑을 데리고 앞으로 나아갔다. 설원에 들어선 후 범한은 대장이 되었다. 비록 중상에서 회복되지도 못했고 병까지 나버렸지만 그래도 해당타타와 왕 십삼랑은 범한이 어떤 면에서는 이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많이 안다고 느껴 그런 그를 따르고 있었다.
전방에 아까 본 귀여운 파랑새가 구구 지저귀고 있었다. 파랑새는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하며 신묘로 들어온 젊은 세 강자를 이끌었다. 세 강자는 눈을 밟고 앞으로 나아갔고 그들 곁에서는 고독과 적막함이 함께 하고 있었다.
신묘 내부에 들어선 건축물의 범위를 대략적으로 확인해 보니, 사각형 모양에 한쪽으로 빠지는 형태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세 사람은 어느새 신묘 정중앙까지 와 있었다.
신묘 정중앙에는 대(臺)가 있었다. 대 뒤쪽에는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건물이 있었다. 비록 외벽에 있는 오래전에 생긴 상흔이며 풍화로 떨어져 나간 모서리를 통해 세월의 무정함을 볼 수는 있었지만 그래도 무너져 내린 건 아니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파랑새 말고는 사람이나 전설 속 신묘 사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날아다니고 있던 파랑새는 이제는 눈이 얇게 깔린 대 위에 내려와 앉아 있었다.
범한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새가 눈 위에 앉았지만 발자국이 없어서였다. 이에 신묘 사자도, 아까 들렸던 소리도 다시 나타나지 않는 상황에서 범한은 다른 사실을 알아냈다.
그런데 어쩌면 보이지 않는 감응 같은 게 있었는지 세 사람이 대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조용히 파랑새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런 이들의 모습은 마치 파랑새가 꽃송이로 변하거나 나뭇가지 하나를 물고 오는 광경이라도 보려고 기다리는 것 같았다.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르겠으나, 신묘는 여전히 갑갑할 정도로 조용하기만 했다. 범한은 처음 모습 그대로 몸을 살짝 굽힌 채로 있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는 동안 본 건축물과 그 안에 담긴 흔적 때문에 좀 긴장해 가슴은 떨리고 있었다. 이 건축물들이 아주 오래전 문명의 유적이며, 어쩌면 자신의 전생 세계와 무슨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신묘 안에는 위험한 게 없군요. 신묘 사자들이 모두 죽여 버렸나 봐요.”
느닷없이 터져 나온 범한의 갈라진 음성이 여러 해 동안 유지되어 온 신묘의 고요함을 깨뜨렸다. 그러자 대 위의 파랑새가 고개를 돌려 범한을 잠시 바라보았다.
범한의 갑작스러운 말에 해당타타와 왕 십삼랑이 깜짝 놀랐다. 신묘로 들어온 후 두 사람은 지금껏 보도듣도 못한 거대한 건축물과 신비한 파랑새 때문에 겁에 질려 있었다. 그래서 넋이 나가 평소처럼 냉정한 판단은 내리지도 못하고 있었다.
“전부 죽었다고요?”
해당타타와 왕 십삼랑이 무의식적으로 범한의 말을 따라 했다. 하지만 범한의 판단에는 동의할 수 없어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신묘 안에 위험이 될 만한 게 없다고? 신화와 전설 속에서만 존재하는 허공을 떠돈다는 곳이 갑작스레 앞에 나타났을 때 저런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범한뿐일 걸.’
해당타타가 대 위에 있는 파랑새를 바라보고 있다가 낯빛이 조금 창백해지면서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황폐한 선경일지라도 여전히 선경이에요. 하여 하늘은 사람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으니 경외심을 가져야 해요.”
천일도의 천진난만한 아이들은 신묘를 마음 깊이 숭배하고 있었다. 그리고 청산 일파 제자와 손제자 중 고하 대사의 맹렬하고 강인한 정신을 계승한 이는 단 하나도 없었다. 이에 해당타타도 신묘와 마주하고 또 이곳까지 들어오게 되자 세인들과 마찬가지로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낮춘 거였다.
“경외할 필요가 뭐가 있답니까?”
범한은 이 말을 절대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대신 집에 남아 있는 사람이 얼마 없다는 오죽 아저씨의 말과 집 근처 골목에서 한 명이 죽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신묘에서 한 명이 죽었다는 사실도 떠올렸다. 이에 오늘 이곳으로 안전하게 들어온 일과 신묘에서 사자를 단 한 명도 보내지 않는 걸 통해 범한은 이 낡은 사당 내부는 단지 황폐한 곳일 뿐이라고 확신했다.
신묘는 선경이 아닌 유적지였고, 이 사실을 확인한 범한은 더는 경외심이 일지 않았다. 이에 범한이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대 위의 파랑새를 바라보며 갑자기 말을 걸었다.
“사자들은 다 죽고, 신묘 선인들은 일찌감치 떠나고, 신선 새만 남은 것 같군. 대충 구경하다가 우리도 돌아가리다.”
해당타타와 왕 십삼랑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돌려 범한을 바라보았다. 이들은 지금 마음이 좀 불안한 상태여서 범한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물론 이는 모두 범한이 창백한 얼굴에 지우려야 지울 수 없는 실망감과 슬픔을 담담하게 드리우고 말해서였다. 전부 다 실감 나는 연기였던 거다.
“맹인…….”
해당타타가 말을 하려 했다. 만약 신묘가 정말로 아무것도 없는 황폐한 곳이 되었다면, 또한 정말로 이곳에 육합 밖에 계신 지고지상한 존재가 없다면, 왜 오죽의 행방은 찾아볼 생각도 안 하고 이대로 헛수고만 하고 돌아가려 하느냐고 말이다.
한편 왕 십삼랑은 지금 잔뜩 긴장해 이 넓고 황량한 사당을 어찌 대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많은 고초를 겪으면서 설원을 뚫고 겨우 이곳까지 왔는데 어떻게 이대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범한이 급히 기침을 두어 번 해 질문을 던지려는 해당타타를 막았다. 그는 눈 덮인 대 위에 있는 파랑새만 뚫어져라 바라보며 생각했다.
‘세상일이란 건 다 이유가 있기 마련이야. 신묘가 문명 유적지이고 박물관이란 건 확인했고, 이 거대한 사당 안에서 나는 소리가 우리들을 이곳으로 초대했으니, 당연히 내가 해주기를 바라는 일이 있다는 거야.’
과연 상황은 범한이 생각했던 대로 흘러갔다. 대 위에 있던 파랑새가 구구, 하고 두 번 울고는 날개를 펄럭여 어둑어둑한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고작 약 10 장 정도 높이에서 갑자기 무수히 많은 빛으로 변해 공중으로 흩어졌다.
해당타타와 왕 십삼랑은 깜짝 놀라 재빨리 범한 옆으로 붙어 그를 보호했다.
신묘에서 변고가 일자 현재 최약체인 범한이 비명횡사라도 하지 않을까 기겁한 거였다.
하지만 범한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눈을 가늘게 뜨고 공중에서 천천히 내려오는 빛이나 냉랭하게 주시했다. 그 빛은 눈 쌓인 대 위까지 내려오더니 허공에서 뭉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여름날 밤하늘에서 볼 수 있는 수많은 반딧불 같은 빛이 어떤 신묘한 힘에 의해 특정 형상을 이루며 배열하기 시작했고…….
불빛이 점점 밝아졌다가 다시 점점 어두워지더니 허공에 갈수록 또렷한 사람 형상이 나타났다. 그 사람은 소맷자락이 구름처럼 나풀거렸고, 허리에 검은색과 황금색의 옥대를 둘렀으며, 발에 코 부분이 들린 화려한 신발을 신고 있었다.
소매가 넓은 고대 복식을 입은 노인이 이렇게 허공에 나타났다. 이목구비는 정확히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런 존재가 나타났다는 것만큼은 명확히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는 눈 위에 발을 딛지 않고 공중에 떠 있었다. 그런데 분명 눈앞에 나타난 것인데도 해당타타와 왕 십삼랑은 그에게서 호흡이나 맥박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심지어는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는지조차 느낄 수 없었다.
허공에 서 있는 노인은 바람을 타고 나타났는지 대 위로 늘어진 넓은 소매가 가볍게 흩날리고 있었다. 그리고 옅은 빛이 노인의 온몸에 둘러져 있었다.
눈앞에서 펼쳐진 광경에 세 사람은 놀라 벌벌 떨기 시작했다. 허공에 떠 있고, 또 온몸에서 황금색 광채를 뿜어낼 수 있다니. 이는 어떤 수련을 해야 가능한 걸까? 아니지. 이건 수련 따위로는 할 수 없는 분명한 신선술이다! 그렇다면 누가 이런 식으로 엎드려 절이라도 올려야 하는 것처럼 사람들 앞에 나타나는 걸까?
해당타타와 왕 십삼랑은 어떻게 해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파랑새가 변해 나타난 존재를 전설 속 신묘의 선인과 자연스레 연계시켜 버렸다. 이에 두 사람은 대책 없이 몸이 떨렸고 결국에는 아주 자연스럽게, 그것도 성심성의껏 눈이 깔린 바닥에 엎드려 절을 올렸다.
범한도 절을 했다. 그는 얇게 쌓인 눈에 양 무릎까지 대고 몸도 벌벌 떨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모습은 격해진 감정을 도무지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눈앞에서 벌어진 장면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범한 전생의 문명에서도 이런 신기한 현상은 만들어낼 수 없었다. 그러니 대 위에서 금빛을 뿜어내며 공중에 서 있는 선인은 그야말로 진짜 신선 같았다.
하지만 범한이 드러낸 격해진 감정과 두려움에 떤 모습 중 절반은 연기였다. 그는 일단 냉정을 찾으려 노력하는 가운데 재빨리 머리를 굴려 눈앞에 있는 선인에 대해 분석했다. 만약 이 신묘가 박물관이고, 신묘 안에 있는 사람이 말한 대로 이곳이 정말로 군사박물관이라면, 어떻게 신선이 있을 수 있지?!
그렇다면 신이 아닌 건데, 대체 뭘까? 두 세상을 경험한 범한도 오늘처럼 뇌세포를 짜내야 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열심히 생각해보았다. 설마…… 전생에 말로만 듣던 홀로그램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