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2화 산속에 있는 신묘 (1)
“신묘는 어디 있습니까?”
사고검의 유골 항아리를 등에 업고, 동상에 걸려 벌겋게 된 양 뺨을 천으로 감싼 왕 십삼랑이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물었다.
그러자 해당타타에게 부축 받고 있는 범한이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산을 바라보았다.
“옛날에 소은과 고하 대사께서는 이쪽에서 올라갔다 하셨네. 그걸 기준으로 따져본다면, 신묘는 우리 눈앞에 있어야 할 거야.”
하지만 그들 눈앞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오로지 옥처럼 매끈한 빙설에 뒤덮여 있어 본래 색상이 무엇인지 알 수조차 없는 산맥만 있을 뿐이었다. 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세지 않았고, 하늘께서도 폭설을 내려주지 않아 시야는 맑게 탁 트여 있었다. 그런데 모든 게 이보다 더 명확할 수 없을 정도로 잘 보이는데도 인공적인 흔적만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한동안 조용히 범한을 부축하고 있던 해당타타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전설에 따르면, 신묘는 1년에 딱 하루 이틀 정도만 사람들 앞에 나타난다고 했어요. 그리고 신묘가 사람들에게 모습을 드러내고 싶지 않으면 범인(凡人)은 아무리 찾아도 찾지 못한다고 했어요.”
“전설은 전설일 뿐이에요.”
범한이 입을 막고 두어 번 기침했다. 그는 엄청 두껍게 외투를 입고도 외부 냉기를 가까스로 방어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조금 이상하기는 하지만, 지금 신묘는 근처에 있었다. 비록 어느 쪽에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천지간의 짙은 원기가 범한의 체내로 더 빠르게 들어오고 있어 그의 상처며 병세는 많이 좋아진 상태였다.
힘겹게 기침이 멎은 범한이 눈을 깜빡거렸다. 그리고 피로한 시선으로 설산 위에 어수선하게 삐져나와 있는 설석(雪石)을 바라보며 말했다.
“전설이 꼭 사실이란 법은 없지요. 옛날에 당신 사부님과 소은 대인께서는 신묘가 나타날 그 하루 이틀을 기다리기 위해 이 설산 아래에서 꼬박 몇 달을 기다리셨어요. 그것도 셀 수도 없이 많은 인육까지 드셔가며……. 하나 나는 기다리지 않을 거예요.”
범한은 다른 사람이 경험해 보지 못한 2회 차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래서 눈에는 보이지 않는 하늘의 뜻이란 게 있을 거라 절대적으로 믿었다. 하지만 전생에 받은 교육 때문에 무신론적 입장에서 벗어나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 이런 심리적 모순 때문에 범한은 신묘를 은근히 경외하면서도 소위 전설이라는 것을 그다지 믿지는 않았다.
“만약 전설이 진짜가 아니라면, 신묘는 이 설산에 분명 눈속임을 해놨을 거예요.”
얼굴 전체를 털가죽으로 가린 해당타타가 웅웅 소리를 내며 말을 이어 갔다.
“만약 이 산을 다 뒤진다면, 현 상황에서는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을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하면 이왕 시간이 오래 걸릴 거 아예 서둘러 시작합시다.”
범한이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한 후 왕 십삼랑의 눈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 다 이미 알아차렸겠지만, 이곳은 밤이 유난히 짧아요. 하여 며칠 지나면 밤이 아예 사라질 테고 그때가 되면 이곳을 뒤져보는 게 훨씬 수월해질 겁니다.”
수개월 동안 힘들게 설원을 이동하면서 범한은 두 사람에게 전생의 지식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그래서 범한이 내린 판단은 언제나 현실이 되었지만, 그래도 해당타타와 왕 십삼랑은 범한의 판단 근거가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이에 시간이 지날수록 두 사람에게 범한은 더 신비하고 심오한 사람이 되어 갔다.
몇 달 동안 해당타타와 왕 십삼랑은 범한이 내린 판단과 지령에 의구심을 갖지도 주저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설산 앞에서 곧 신묘 찾기에 돌입하려는 찰나, 왕 십삼랑이 설산 위로 올라가지 않고 해당타타부터 잠시 쳐다보았다.
때마침 해당타타도 왕 십삼랑에게 잠시 시선을 옮겼던 터라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게 되었고 둘은 서로의 눈에 담긴 우려와 놀라움을 읽어 버렸다.
두 친구의 행동이 이상하자 범한이 이맛살을 살짝 찌푸리고 기침을 했다.
“왜 그러죠?”
왕 십삼랑이 한동안 대답하지 않다가 범한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냥 의아했을 뿐입니다. 신묘가 눈앞에 있으니, 대인이 판단한 대로라면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우리는 결국 어둠이 오기 전에 신묘를 찾겠지요.”
범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왕 십삼랑이 무슨 말을 한 건지 알아듣지 못해 그의 미간 주름은 더 깊어져 있었다. 해당타타가 옆에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은 이런 거예요. 곧장 신묘를 찾으러 나설 거면 신묘의 비밀을 파헤치든 맹인 대사님을 구출해 내든…… 안지에게는 이미 계획이 있을 테고, 준비한 게 있을 거 아니에요. 아니면 당신은 뭔가를 알고 있든가 말이죠. 하면 일을 시작하기 전에 우리에게 뭔가 말은 해줘야죠. 지금 안지의 몸 상태를 고려하면, 결국 그 많은 일을 하는 건 우리니까요.”
신묘는 선경(仙境: 신선이 사는 땅)과 같은 곳이었다. 적어도 이 대륙에 사는 백성들은 속으로 그리 생각했다. 그렇다면 오늘 범한 일행이 신묘를 찾으러 가는 건 그야말로 대단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범한은 정말로 단순 여행자처럼 마음 편히 있는, 심지어는 대충하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 대설산에 어떤 위험이 숨어 있으며, 또한 평범한 이는 저항할 수 없는 신의 위력이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해당타타와 왕 십삼랑은 인간 세상에서 심지와 의지가 가장 굳은 사람들이었다. 그런데도 막상 대설산을 마주하자 이들도 어쩔 수 없이 망연자실함과 공포감에 휩싸인 거였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범한이 느긋하게 있자 두 사람은 도무지 이해가 안 갔던 거였다.
“과거 고하 대사와 소은 대인은 신묘에서 살아 돌아갔습니다. 하면 그곳은 사람들이 생각한 것처럼 무시무시한 데가 아니란 뜻이지요.”
범한이 잠시 멍하니 있다가 씁쓸하게 웃고는 말을 이어 갔다.
“두 분은 그때 이미 9등급 상의 최상위 강자셨습니다. 하나 반년을 힘들게 버틴 후라 곧 죽기 직전이었고, 실력도 지금의 우리보다 떨어지는 상태셨지요. 하여 그분들도 멀쩡히 살아서 돌아가신 마당에 우리라고 겁먹을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오죽 아저씨와 우리 황제 폐하께서 말씀하시기를 신묘는 이미 황폐해져서 아무 힘이 없다 하시더라고요.”
범한이 눈꺼풀을 살짝 내리깔며 말을 이어 갔다.
“나는 황제 폐하의 판단을 믿어요. 왜냐하면 그분은 이번 생에 착오란 걸 내려 본 적이 거의 없으시거든요.”
하지만 신묘가 이미 황폐해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신묘일 텐데. 설마 평범한 사람들이 더는 받들어 모시지 않아도 될 정도란 건가?
“더 중요한 문제는 내가 신묘로 가는 길과 신묘의 외양만 알고 있다는 거예요. 신묘 안에 무엇이 있는지까지는 나도 몰라요.”
범한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말을 이어 갔다.
“상황이 이러니, 뭐든 준비를 하는 건 사실 다 쓸데없는 짓이라고요. 하여 일단 찾으러 가기나 합시다. 뭐든 찾아 놓고 다시 말하자고요.”
정말 무책임한 언사였다. 범한은 평생 감찰원의 어둠에 물들어 있던 터라 단 한 번도 준비 없는 싸움을 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실력이 심오하고 심계가 깊은 황제 폐하와 맞설 때도 묘수들을 차례대로 내놓고, 승리를 가져다 줄 잔재주까지 용감히 생각해 낸 터였다. 그런데 오늘 그가 마주한 설산은 그야말로 미지의 영역이었다. 그러니 어찌 준비란 걸 할 수 있었을까.
* * *
대설산은 차갑고 엄숙했고 경건할 정도로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에 평범한 세 사람이 긴장을 늦추지 않고 차분하게 자신의 비밀을 파헤쳐 나가고 있는데도 아예 모르는 듯 했다. 그리고 듣기로는 못 하는 거 없고 모르는 거 없는 신묘는 시집갈 날을 기다리는 여인처렴 눈보라 속에 숨은 채 도통 진짜 얼굴을 보여주려 하지 않았다.
힘겹게 설산을 오른 지 한참 후. 산 위로 올라갈수록 바람도 거세지고 바위 위에 쌓인 눈마저 공중으로 흩날려 갈수록 시야가 흐릿해졌다. 하지만 범한은 여전히 맑고 또렷한 눈망울로 작은 것 하나 빼놓지 않고 차분하게 살폈다. 신묘는 1년에 하루 이틀만 사람들에게 모습을 드러낸다고 하고, 소은과 고하가 신묘를 본 건 극야의 첫째 날이었으니, 범한은 분명 어떤 규칙이 있을 거라 생각하며 이 모든 걸 계산에 넣고 행동했다.
극야 이후 햇살이 설산에 비추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신묘 사람들이 일광욕을 하기 위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던 건가? 해당타타의 따뜻한 등에 업힌 범한이 흐뭇하게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낭자의 목에서 나는 냄새에 어느 때보다 기분 좋아했다. 그는 대설산에서 하늘로 향하는 방향에 분명 빙설을 파헤치고 들어선 인공의 흔적이 있을 거라 생각했고, 자기 추론이 맞다고 확신했다.
한편 해당타타는 미간을 찌푸렸다. 범한의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이며, 그가 왜 이렇게 기분 좋아하는지 알 수 없어서였다.
범한의 판단처럼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왼쪽 전방 약 200장 떨어진 거리에 있던 왕 십삼랑이 갑자기 고개를 돌려 두 사람에게 수신호를 했다. 눈보라가 치고 있어 왕 십삼랑이 무엇을 발견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검려 제자가 흥분했다는 건 범한과 해당타타는 쉬이 알아차릴 수 있었다.
* * *
범한이 눈이 평평하게 쌓인 곳에 웅크리고 앉아 왕 십삼랑이 발견한 흔적을 살폈다. 그리고 눈이 덮여 있는 곳에서 구멍을 하나 찾아 그들이 찾던 물건을 찾아냈다. 바로 인공의 흔적이었다. 그건 궤도 중 일부로 보였다. 어떤 재질로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혹한의 환경에서도 반짝반짝 빛나고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해당타타의 부축을 받고 자리에서 일어난 범한이 궤도를 따라가며 빙설에 쌓인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것을 따라 계속 시선을 위로 옮기다 보니, 눈보라가 엄청나게 일고 또 거대한 빙설 산맥이 뚝 끊어진 곳이 있었다. 저기 움푹 들어간 곳에 이 궤도의 끝이 있겠지?
왕 십삼랑이 조금 전 찾아낸 궤도 옆에서 다른 궤도를 찾아냈다. 역시 대단히 희한한 재질로 주조된 것으로 용도는 알 수 없었다. 세 사람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평범한 사람은 올 수도 없는 혹한의 땅에서 갑자기 이런 신기한 궤도를 발견하자 이들도 이해가 안 되었다.
“이걸 따라 위로 올라가 보죠.”
범한이 살짝 떨리는 갈라진 음성으로 말했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에서는 어떻게든 평정심을 유지하려는 강한 의지가 보였다.
설산에는 길이란 게 없었고 사방은 빙설에 광풍까지 불고 있어 자칫 잘못하다가는 실족해 몸이 산산조각 날 수 있었다. 그런데도 병든 몸의 범한이 자연의 위협도 잘 견뎌낼 수 있었던 건 모두 해당타타와 왕 십삼랑이라는 두 강자를 데려온 덕분이었다.
세 사람은 긴장되고 은근히 두려웠지만 이 모든 걸 억누르며 매끄러운 궤도를 따라 눈보라를 헤치고 산 위로 올라갔다. 그런데 얼마나 올라갔는지 모를 무렵, 그것도 왕 십삼랑과 해당타타의 체내 정기가 빙설 속 궤도 때문에 완전히 소모되기 직전, 그들 눈앞에 갑자기 어둠이 밀려들었다.
* * *
산은 가도 가도 끝이 없고 돌아보면 눈뿐인 세상에서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묘한 경지가 열렸다.
범한 일행은 궤도 끝에 있는 돌계단을 멍하니 바라보며 한동안 입도 뻥끗 못 했다. 그야말로 오묘한 하늘의 기술이었다. 이리 긴 돌계단이 산속 깊은 곳에 숨겨져 있었다니. 이건 대설산까지 찾아왔다고는 해도 산 아래에서는 절대 찾을 수 없는 거였다!
그렇다면 신묘가 매년 하루 이틀 모습을 드러낸 건, 설마 이 돌계단이 궤도를 따라 미끄러져 나와 햇살에 목욕할 때 속세에서 힘겹게 찾아온 숭배자를 맞아주었기 때문인가?
* * *
돌계단은 푸른색 돌을 쌓아 만든 것이었다. 몇천, 몇만 년 동안 얼음의 세례를 받아 온 건지는 알 수 없으나 파손된 곳이 많았고, 낡고 오래된 것에서 나오는 세월의 무게감과 가슴 떨리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그리고 궤도와 달리 끝이 보이지 않게 이어져 있었지만, 그래도 세 사람은 드디어 신묘에 들어온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돌계단을 밟으며 느긋하게 위로 올라가는데 말로는 형용할 수 있는 기운이 세 사람과 이 돌계단 위를 둘러쌌다. 세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신묘를 덮고 있는 얇은 사를 한 꺼풀 벗겨내려는 이 순간 너나 할 것 없이 가슴 떨리는 두려움을 감추지 못한 거였다. 이는 미지를 향한 흥분과 두려움이자 인간이라는 생물이 지닌 본능이었다.
돌계단 위에 있는 옅은 회색의 긴 처마가 세 사람의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해당타타와 왕 십삼랑은 몸이 살짝 굳고 망설여졌다. 하지만 범한은 자신을 부축해주고 있던 해당타타에게서 벗어나 차분히 회색 처마를 주시한 채 마치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돌계단 위를 향해 나아갔다.
옅은 회색의 처마 아래에는 검은색의 돌담이 둘려 있었다. 돌담은 세 사람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 주었다. 그러다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땅에서 사당이 제 모습을 드러내자 순간 장엄한 분위기에 온 천지를 감쌌다.
신묘가 드디어 세 사람 앞에 나타난 거였다. 그런데 너무 고요하고 자연스럽게 나타나 세 사람은 문득 지금 상황이 이해가 안 되었다. 신묘를 찾아 천리 길을 와 꿈꾸듯 들어와 꿈인가 했더니, 세상 만인이 그토록 찾기를 바라던 신묘는 나타났는데, 정작 당사자들은 기분이 이상했던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