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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여년-1025화 (1,025/1,108)

1025화 누가 온 경도에서 살인을 했을까? (2)

신풍관이 순간 폭풍우 치기 전과 같은 고요함 속으로 빠져들었다. 너무 고요해서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곽쟁이 오기만을 기다린 것이었다니. 이게 무슨 뜻일까? 이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범한이 곽쟁을 처단하기 위해 조정을 욕보이는 짓은 설마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범한의 표정이 갈수록 심드렁해지자 모두 두려움에 몸이 오싹해져 왔다.

이들 관료를 따라 신풍관으로 들어온 호위 무사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이곳은 필경 대리사 맞은편이므로 대단한 일이 일어날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이상 기류를 감지한 호위 무사 몇몇은 위층으로 뛰어 올라와 긴장한 상태에서 지금 이 광경을 주시하고 있었다.

범한이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러자 대리사 부경이 난처하게 웃었다.

곽쟁도 너무나도 이상한 표정으로 웃음을 짓고 말았다.

그런데 갑자기 음식이 담긴 그릇 하나가 곽쟁의 얼굴을 덮쳤다. 이에 그의 얼굴에서 그릇 파편이 이리저리 날리고 음식 국물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 순간 어사 대부의 얼굴에 금이 가듯 무수히 많은 상처가 생겼다.

상처 부위에서는 순식간에 피가 뿜어져 나왔다.

범한이 접시를 던진 손을 거둬들이더니 곽쟁 뒷덜미를 잡고 강향단목 식탁에 그의 머리를 찧어버렸다. 그러자 피와 살점으로 이루어진 곽쟁의 머리가 단단한 나무속으로 파고들었다.

쩌걱, 하는 소리가 났다. 단단한 강향단목 식탁에 가느다란 실금이 퍼져나갔고, 곽쟁의 경추가 부러져 버렸다. 그러자 곽쟁의 안면부와 닿아 갈라진 식탁 틈으로 그의 피가 마치 검은 물처럼 배어 나왔다.

그 누구도 찍 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강남에서 큰 공을 세우고 이제 막 경도로 돌아온 도찰원 좌도 어사 곽쟁 대인이 범한의 일격에 일개 시체가 되어버려서였다.

* * *

죽음과도 같은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식탁에 깊숙이 쑤셔 박혀버린 머리 그리고 핏물과 섞인 채 식탁을 잔뜩 어지럽힌 음식 국물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그들은 눈앞에서 펼쳐진 모든 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아 단순히 환각을 본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길가 근처에서 살인이라니! 그것도 조정 대신을! 여러 관원이 보고 있는 앞에서 좌도 어사를 살해하다니!

이는 경국에서 단 한 번도 일어난 적 없는 일이자,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이에 모두 황당무계한 연극을 보기라도 한 듯 아무런 반응 없이 멍하니 지켜보기만 했다.

그러다 드디어 관원 하나가 반응을 보였다. 공포에 질린 날카로운 비명을 지른 후 두 눈을 희번덕거린 후 그 상태로 기절을 해버렸다.

그러자 호위 무사들이 달려와 범한을 공격했다. 하지만 ‘파바박’ 하는 소리와 ‘끄응’ 하는 소리가 몇 차례 울린 후 신풍관 2층에는 혼절한 사람만 늘어났을 뿐이었다. 그리고 범한은 단 한 차례도 공격을 펼친 적 없는 사람처럼 식탁 가장자리에 차분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대리사 부경이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범한을 가리켰다. 그는 벌건 대낮에 활개 치고 다니는 저승에서 온 악귀라도 본 듯, 목구멍에서 ‘윽윽’ 하는 소리만 낼뿐 불쌍하게도 아무런 말도 내뱉지 못했다.

범한의 두 눈에는 아무런 표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런 그가 냉담하게 대리사 부경을 바라보며 물었다.

“듣자 하니, 당신이 대리사로 온 후 최근 한 달 동안 내 부하들에게 형을 많이 가했다던데. 하여 내 부하들이 옥중 고문으로 셋이나 죽었다지?”

그러자 대리사 부경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몸을 홱 돌리더니 토끼처럼 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아하니 난간에서 몸이라도 날릴 기세였다. 바닥에 떨어져 크게 다치든 말든 어떻게든 이 신풍관에서 도망치고 보려는 심산 같았다.

하지만 이미 공격을 시작한 범한이 어찌 그를 도망가도록 내버려 두겠는가. 신풍관 안에서 바람이 몰아치는 소리, 이어 ‘팍!’ 하는 날카로운 소리, 마지막으로 ‘퍽!’ 하는 둔탁한 소리가 차례대로 연달아 났다. 그리고 대리사 부경은 경추가 끊어진 채 강향단목 식탁에 처참한 몰골로 머리가 쑤셔 박혀 있었다.

핏물이 식탁을 타고 흘러내리는 가운데 조정 대신의 시체 두 구가 빼내기 힘든 상태로 식탁에 머리를 콕 박고 양 무릎을 땅에 대고 있었다. 그런데 두툼한 장화 끝을 아직도 씰룩거리고 있어 그야말로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광경이었다.

모두가 보는 곳에서 둘이나 살해한 거였다. 이에 신풍관 내부에서 처절하게 울부짖는 소리와 비명소리가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왔다. 하지만 범한은 낯빛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뒤로 돌아 제 갈 길이나 갔다. 그러자 어느새 뒤쪽에 와 있던 신풍관 일꾼 하나가 범한에게 뜨거운 김이 나는 수건을 건넸다.

범한이 수건을 받아들고 손을 꼼꼼하게 닦은 후 살짝 혐오스럽다는 표정으로 수건을 바닥에 던져 버렸다. 그런 후 임대보의 손을 잡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서는 조금 전 수건을 건넨 일꾼에게 말했다.

“이제 시작해도 되네.”

범한이 대리사 관원들이 앉은 식탁으로 걸어가 조정 관원 둘을 가장 잔혹한 방법으로 죽이고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오는 동안, 그는 후계상에게 단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창백하게 질려버린 후계상은 입술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그리고 계단 쪽을 바라보고 있던 시선을 식탁 위 두 구의 시체로 옮겨 식탁 위에 널브러진 뇌인지 순두부인지 모를 것들이 핏물과 함께 흘러내리는 걸 바라보았다. 끝도 없이 밀려드는 공포감에 온몸을 점령당한 후계상은 결국 참지 못하고 상체를 굽히고 구토를 해대기 시작했다.

* * *

“형님을 저택으로 모셔다드려요.”

신풍관 건물 아래에서 범한은 임대보를 부축해 마차에 태우며 등자경에게 당부의 말을 건넸다. 그리고 성 남쪽으로 향하는 검은색 마차를 눈으로 배웅한 후 홀로 황성 방향을 향해 나아갔다.

범한은 집으로 돌아가는 마차의 안전은 걱정하지 않았다. 6처 검수들이 안전을 책임지고 있어서였다. 신풍관에서 말했듯이 그가 살인을 한 건 감찰원 부하들을 위한 복수였다. 지금 그는 감찰원 원장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자신이 바라는 한 그는 영원히 감찰원 원장이었던 것이다.

그림자는 경도로 돌아온 후 어둠 속에 숨어 있던 6처 자객들을 재규합했다. 그리고 해당타타와 왕 십삼랑까지 경도로 와주었으니, 황궁에서는 범한에게 충성하고 있는 감찰원 8대처 사람들이 다시 모이는 걸 막을 방법이 없었다. 이에 감찰원은 이미 비바람을 맞아 흩어지고 없었지만, 그래도 오늘만큼은 이 음산한 감찰원이 마지막으로 빛을 내는 거라 할 수 있었다.

오늘 새벽, 범한은 감찰원 원장의 명으로 감찰원이 각처에 심어 놓은 자객과 첩자들에게 마지막 지령을 내렸다. 얼마나 많은 감찰원의 밀정과 관원이 자신을 따라줄지 그로서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범한은 자신의 수하로 있던 자들이니 분명 자신을 실망시키지 않을 거라 믿었다.

매서운 한겨울 바람이 경도 대로를 휩쓸고 있었다. 범한은 큰길을 따라 홀로 걸으며 저 멀리 보이는 황궁을 향해 나아갔다. 그런데 입궁할 시간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어 가는 내내 경도의 거리 풍경을 구경하며 이곳의 공기를 탐욕스럽게 들이마셨다. 마치 이제 곧 죽으러 가는 사람처럼 이 모든 걸 절대 잊지 않으려는 듯, 모든 걸 기억 속에 새겨 두려는 듯이 말이다.

범한이 신풍관에서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줄곧 문을 꽁꽁 닫고 움직이지 않던 1처 관원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검은색의 관복을 입은 백여 명의 관원들이 살기등등하게 그들의 오래된 이웃을 향해, 지금 가장 꼴 보기 싫은 새로운 적 대리사를 향해 밀고 들어갔다.

범한이 정월 초이레를 선택한 건 역시나 가장 좋은 선택이라 할 수 있었다. 아직 정오가 되지 않은 시각임에도 대리사에 있던 관원들이 각 부 관원들과 함께 한가로이 풍류나 즐기러 나갔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리사 관아 문은 이리와 호랑이 같은 감찰원 관원들 앞에서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범한이 바란 대로 혼란 속에서도 경국 관원의 피를 최대한 적게 흘릴 수 있었다.

죽게 될 조정 관원에게는 당연히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이번 일이 범한의 꼼꼼한 목표에 따라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1처가 대리사로 밀고 들어간 건 조정에서 압송해 간 동료들을 구출해 내기 위해서였다.

범한은 길게 뻗은 거리를 걷다가 사하가(沙河街)로 돌아 들어가 노점에서 설탕 옷을 입힌 산사나무 열매 꼬치를 샀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씩 맛나게 빼 먹으며 거스름돈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나뭇잎 모양의 금전 하나를 툭 던져주었다. 범한은 이 산사나무 열매 꼬치에게 고마워하고 있었다. 예전에 그 아이의 손에 들린 이 꼬치를 따라오지 않았다면 경묘에서 길을 잃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오늘 오시(午時) 즈음 호부 상서는 일석거에서 손님을 맞았다. 그는 형부 시랑 대인과 몇몇 친하게 지내는 벗들을 초대했다. 예상한 대로 모두 하종위 파의 중견 인물들이었다. 상서 대인이 수염을 살며시 어루만졌다. 그는 겨울에 몸을 녹일 수 있게 만들어진 난각(暖閣)이란 작은 방에서 득의양양해하고 있었다. 3년이란 고된 시간을 보낸 끝에 드디어 전임 상서 범건이 호부에 남겨 둔 그림자를 깨끗이 지운 때문이었다. 그리고 범씨 가문에게 속해 있던 독립된 왕국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에서 자신이 진정한 호부 상서로 거듭나서였다.

물론 범씨 가문에서 오는 압력에 저항하기 위해 자발적이고 비굴하게 하 대학사 곁에 붙은 건 있었지만, 그래도 그에게는 굴욕감 같은 건 전혀 없었다. 하종위가 문하 중서의 대학사이고, 더군다나 하 대학사 옆에 서는 건 곧 황제 폐하 곁에 서는 것으로 일종의 광영이어서였다.

그래서 오늘 연회와 손님맞이는 저녁에 해야 더 격식에 맞는 거였다. 하지만 호부 상서는 전에 하종위 저택으로 찾아가 정보를 취합해 온 문객들에게 똑똑히 들은 것도 있고, 더군다나 연말에 조회를 마치고 하 대학사가 정월 초이레에 할 일들이 있다는 말을 들은 터였다. 이에 하 대학사가 직접 연회에 참석할 일이 없어 시간을 정오로 당긴 거였다.

비록 살짝 실망한 감은 있었지만, 그래도 호부 상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 대학사가 불참하면 이번 연회 석상에서 자신이 최고위 관리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귓가에 아첨하는 말들이 넘쳐날 테니, 어찌 기분이 좋지 않겠는가!

특히 그는 하 대학사의 의지에 따라 호부가 이제 막 강제적으로 개입한 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 일로 경도부 관아는 극락을 갔다가 지옥을 맛보게 될 터였다. 또한 그로 인해 강골인 손경수가 부득이하게 사직할 것이고, 결국 그는 돈을 내고 죄를 감면받지 못해 하옥될 것이었다. 이에 호부 상서는 극락에 온 듯 기분이 좋아져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대체 뭘 가지고 본관과 싸울 것이냐? 고작 딸 하나 잘 낳아 놓은 것뿐이지 않더냐! 네 딸년이 교방으로 팔려 가면 본관이 몰래 고 아이를 데리고 극락과 지옥을 맛보게 해주마.’

호부 상서 대인은 술기운이 올라 극락과 지옥 사이를 오간다는 표현에 빠져 있었다. 이에 난각 안에서 시중을 들던 그 여인의 눈동자에서 간교하고 악독한 빛이 번뜩였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결과 상서 대인은 자신이 마신 오량액에 독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로 인해 자신이 여러 차례 극락에서 지옥을 맛보게 될 거란 사실을 당연히 알지 못했다.

* * *

경력 11년 정월 초이레. 일석거에서 크게 화재가 났다. 난각은 모두 불타 벽채만 남았고, 호부 상서, 형부 시랑 등 몇몇 하종위파 중견 관원들은 술 때문에 화재 현장에서 순직했다.

큰불이 났을 때 범한은 산사나무 열매 꼬치를 다 먹고 새로 산 검은색 우산을 들고 아름다운 천한 대로를 걷고 있었다. 그러다 설탕 옷을 묻힌 꼬치 대를 거리 옆에서 있는 유난히 맑고 깨끗한 못에 툭 던져 버리고는 어깨를 들썩였다. 그건 자연환경을 오염시켜 자책하는 사람의 행동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런 후 범한은 원래는 감찰원 정문에 있었지만 지금은 철거된 검은색 비석과 갈수록 줄어드는 그 위에 있던 금색의 글자를 바라보았다. 범한은 한동안 그것을 주시하고 있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갑자기 삭풍이 불고 눈송이가 흩날리기 시작했다.

눈송이가 하종위 저택의 싸늘한 문 앞으로 떨어졌다. 하 대학사는 청렴한 사람이라 누군가가 선물을 보내오는 걸 질색해 문 앞에서 사나운 개 두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이는 징해자작부에 사는 언약해 대인이 가장 먼저 쓴 방법이어서 사람들은 하 대학사가 남의 생각을 도용했다고 몰래 비웃었다. 하지만 이 사나운 두 마리 개는 그의 청렴함을 적잖이 드높여 주고 있었다.

이 개 두 마리가 천천히 내려오는 눈송이에 성질이 났는지 하늘을 향해 사력을 다해 짖기 시작했다. 눈이 내리면 개가 짖는다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는 건지. 눈은 계속해서 천천히 그것도 계속해서 내렸다.

순간 비명소리가 두 차례 들려왔다. 그리고 사나운 개 두 마리도 죽어 땅에 널브러졌다. 그리고 평민 복장을 한 십여 명의 자객들이 고요한 하종위의 저택 주변을 조심스레 통제한 후 아무도 모르게 저택 안으로 숨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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