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2화 눈꽃에 가려진 진심 (2)
가치가 있는 일이든 없는 일이든 북제가 군사 행동을 한 이상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따를 수밖에 없었다. 상삼호가 분석했던 것처럼 6일째 되는 날 경국 군대는 적극적으로 대응을 하기 시작했다. 정북 진영 두 병영에 있는 정예병들이 게의 집게발처럼 창주성을 감싸기 시작했고, 다른 두 군영의 병력은 하늘에 날리는 눈발을 맞으며 국경에 진입한 북제의 다른 두 대군을 공격했다.
단 하루 만에 세 곳에서 동시에 전투가 일어났다. 대륙 중북부의 황량한 들판이 순식간에 전쟁터로 변했다. 기병들이 적진을 향해 돌진했고, 활시위가 튕기는 소리와 함께 화살이 비처럼 사방으로 날아갔으며, 양쪽에서 던진 창들이 땅에 꽂혔다. 피가 땅을 적시고 불꽃이 곳곳에서 일었다. 시체들은 피 웅덩이 속에서 뒹굴었고, 먹구름이 덮인 하늘에는 비명이 울렸다.
수년 동안 조용했던 들판이 북제 군대 쪽의 갑작스러운 침략 때문에 시끄러운 전쟁터로 변했다. 총 10여만 명의 사람들이 전쟁터로 변한 이곳에서 서로 뒤엉켜 죽이고 죽이는 살육전을 벌였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상삼호에 의해서 다시 한번 변화하기 시작했다.
* * *
몸에 핏자국이 하나도 없는 창주 수비 장군이 호위병 대열의 호위를 받으며 성을 나왔다. 그가 차가운 눈빛으로 전쟁터를 뒹굴고 있는 부하들의 모습을 바라봤다. 눈에는 고목에 화살들이 깊이 박혀 있는 모습이 보였고, 귀에는 상처 입은 사람들이 지르는 비명소리가 울렸지만, 그의 얼굴에는 조금도 동요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군인이 황제 폐하를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우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 한기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고, 치열한 전투에서 가까스로 이겼음에도 조금도 기뻐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경국 정북 진영의 두 군영 병사들은 밤을 꼴딱 새운 강행군 끝에 마침내 창주성 안에 수비 군대와 함께 포위망을 형성했다. 하지만 포위망을 이뤘다고 쉴 수 있게 된 건 아니었다. 왜냐하면, 북제 군대가 갑자기 진영을 떠나려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경국 영토 안에까지 침입한 적군이 순순히 떠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이에 경국 군대는 쉬기는커녕 전투 준비도 끝내지 못한 상태에서 돌격을 단행했다. 다행스러운 점은 정북 진영 변방군은 해마다 출정해 싸운 경험이 있었고, 경국 군사력이 강력한 덕분에 성급하게 공격을 단행했음에도 강력한 공격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상삼호가 훈련시킨 북제 정예병 또한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대규모 전투가 일어나 북제 군대는 천여 명의 병사를 잃었음에도 여전히 아주 완벽한 진형을 유지하면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속도로 빠르게 전장을 떠났다. 북제 군대는 주둔지를 과감히 버려 경국 변방군이 추격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이렇게 임무, 아니 영문을 알 수 없는 전투가 끝이 났다. 경국은 지리적 이점과 우세로 승기를 거머쥐었지만, 예측했던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북제 사람들은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도망을 가버렸다.
토벌로 얻은 군량미와 군수품을 바라보는 창주 수비 장군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가 눈을 가늘게 뜨고 북제 사람들이 도망친 방향을 바라봤다. 그는 비로소 북제 사람들에게 공성용 장비가 보이지 않았던 이유를 알아챘다. 북제 사람들은 창주성을 포위하면서도 그 흔한 성벽을 오를 때 쓰는 구름사다리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건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도망갈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북제 사람들은 무거워서 이동하기 어려운 장비는 가져오지 않고, 최대한 가벼운 몸으로 와서 토끼처럼 잽싸게 도망을 친 거였다.
‘왜 갑자기 도망을 간 거지?’
창주성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가진 고위 장군은 다시 깊은 생각에 빠졌다. 그는 자신이 상삼호의 적수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만약 상삼호의 생각을 완벽하게 예측해서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움직일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는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승리를 거두었음에도 여전히 두려웠다.
다음날, 다른 두 곳의 전쟁터에서 놀라운 전보가 전해졌다. 다른 두 곳의 북제 병사들은 경국 영토 안으로 깊이 들어오지 않은 상태였다. 이에 정북 진영은 창주성 밖에 주둔해 있는 북제 군대를 포위 공격하면서 동시에 남은 병력으로 국경 쪽에 있는 북제 주둔지 두 곳을 공격했다……. 하지만 두 곳의 북제 정예병은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도망을 쳐버렸다.
이 소식을 알게 된 정북 진영 고위 장군들은 경계심에 마음이 떨렸다. 그들은 북제 명장이 도대체 무슨 계획을 가지고 경국 영토를 침입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들은 부하들을 국경선을 삼엄하게 단속하면서 승리의 기세를 몰아 북제 다시 영토 안으로 침입하지 못하게 막았다.
하지만, 셋째 날에 불길한 소식이 전해졌다. 창주성 밖에서 포위를 뚫고 도망친 4만 병의 북제 정예병들이 북제 영토 안으로 퇴각한 뒤 동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는 동이성이 관할하는 송나라 영토 안으로 진입해 송나라 변방의 한 주성을 점령해버렸다.
들리는 소식에 따르면 송나라 주성 안에 있던 부대는 조금의 반항도 하지 못했고, 동이성 쪽에서도 어떤 반응도 하지 못한 채 4만 명의 정예병이 주성이 침입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북제 정예병이 점령한 주성은 땅도 황폐하고 이점이라고는 하나도 없어서 어느 세력도 관심을 가지지 않던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 상삼호가 이끄는 군대가 이곳에 주둔한 것이었다. 지도 위에 찍힌 붉은 점을 빤히 바라보던 경국 고위 장군들은 순간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바로 주성이 정북 진영과 연경성의 정중앙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이었다. 마치 목에 걸린 생선 가시처럼 경국의 모든 군인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위치였다.
설마 이것이 상삼호의 진짜 의도였을까?
창주에서 벌어진 한차례 전투에서 북제는 패배했고 경국은 승리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 영문을 알 수 없는 전쟁이 과연 이렇게 간단하게 끝나는 것일까?
이로부터 수십 일이 지난 뒤 감찰원 4처와 군대 쪽 정보 체계에서 동시에 정북 진영 각 고위 장군에게 정보를 전달해왔다. 북제 10만 대군이 도망친 뒤 완전히 물러나지 않고 원래 위치에서 주둔하고 있다는 거였다. 게다가 북제 광활한 영토 곳곳에서 공수한 보급품을 끊임없이 남쪽으로 수송하고 있었다.
폭우가 쏟아지려 하고 있었다. 이건 분명 결정적인 큰 전투가 일어날 징조였다. 게다가 상삼호가 탈취한 그 보잘것없는 주성의 존재로 인해서 경국 군대 쪽은 순식간에 비상 상황이 되었다. 이 정도 상황이라면 경도에서 교지가 도착하기 전에 본격적인 전쟁을 대비해 준비를 시작해야 했다.
‘본격전이 전쟁이 일어난다면, 아마 내년 봄이 되겠지?’
연경성에 있는 왕지곤 대원수는 우두산에 쏠려 있던 시선을 거두고 자신의 머리 위에 떨어진 4만 명의 군대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마음속에서 일렁이는 강렬한 분노에 그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는 범한이 북제 사람과 결탁해서 변수를 만들어 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 * *
얼마 뒤 경도에서 온 교지가 연경성과 정북 진영 고위 장군들의 손에 전해졌다. 경국 황제 폐하가 교지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 교지를 받은 뒤 바쁘게 움직이던 경국 북쪽 군사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리고 이어서 동이성 성주 운지란이 공개적으로 북제 사람들이 제멋대로 영토를 침범한 것에 대해 강렬한 저항과 분노를 표시했다. 동시에 그는 동이성은 언제나 경국의 위대한 황제 폐하 옆에 설 것이며 침착하는 사람에게는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공격으로 대응할 거라 발표했다.
동이성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인 검려 12개의 검이 소리도 없이 종적을 감추었다.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지만, 주성 안을 점령하고 있던 상삼호 진영의 방어가 갑작스럽게 삼엄해졌다는 소문이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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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 중북부가 갑작스러운 난리에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북제 황궁 안은 평화로웠다. 황제 폐하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리 귀비가 평상 위에서 축 늘어져 있는 황제 폐하를 바라보다가 입술을 살짝 깨물며 말했다.
“폐하께서 이번에 범한을 대신해 동이성을 지켜주기 위해 이렇게 많은 대가를 지불하셨으니, 나중에 그가 감사 표시로 어떤 선물을 들고 올지 모르겠습니다.”
“짐에게 감사해 할 것이라고?”
북제 황제가 냉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배를 쓰다듬었다.
“머릿속에 온통 나쁜 생각만 하고 있으면서 성인이라 자처하는 후안무치한 놈이야. 아마 지금쯤 집안에서 짐이 진짜 전쟁을 일으키려 했다고 투덜대고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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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두가 낮은 평상에서 일어나자 사리리가 그의 어깨에 검회색 외투를 걸쳐주었다. 궁전 문을 나온 북제 황제가 밖에 내리는 눈송이를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북위를 계승한 북제는 검은색과 청색 등 엄숙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가진 색을 좋아했다. 산에 기대 세워진 천년 궁전도 마찬가지였고, 북제 황제가 오늘 입고 있는 옷도 기본적으로 두 가지 색으로 되어 있었다. 북제 황제의 발은 따뜻한 털신에 감싸 있었지만, 따뜻함은 느껴지지는 않았다.
눈꽃이 북제 황제의 눈앞을 스쳐 날아가서는 조용히 지면에 떨어졌다. 황궁 깊은 곳에 위치한 이곳은 황태후의 침궁과도 멀지 않았고, 산 뒤에 작은 정자와도 멀지 않아 아주 조용했다. 북제 황제가 허락하지 않는다면 관계없는 일반인은 절대 접근할 수 없는 곳이었다. 또 이 궁전의 좌우에서 기다리고 있는 태감과 궁녀들의 숫자가 아주 적었는데, 모두 과거 황태후가 일일이 뽑은 늙은 유모와 태감들이라서 북제의 가장 큰 비밀이 외부로 새어 나갈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외부인은 전혀 없는 편안한 환경에서도 북제 황제는 여전히 뒷짐을 지고 위엄을 풍기며 눈을 감상했다. 조금도 연약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사실 이제 그녀는 굳이 남자인 척하기 위해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다.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 일부러 거동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미 자신을 남자로, 황제로 생각하고 있었고, 이런 생각은 그녀의 뼛속 깊이 박혀 있어 분리해서 자신을 생각할 수 없었다.
“진평평이 죽었으니 이제 천하에서 씨를 뿌릴 자격이 있는 사람이 겨우 세 명밖에 남지 않았군.”
복잡한 감정이 드러난 그녀의 얼굴은 추운 날씨 때문에 볼이 살짝 상기되어 있었다. 다만 그럼에도 요염하거나 가녀린 기색은 보이지 않고, 오히려 위엄과 냉기가 느껴졌다.
“진평평의 마지막은 짐도 예상하지 못했다. 진평평이 마지막에 이런 수를 둘 거라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