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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여년-1009화 (1,009/1,108)

1009화 북쪽에서 일어난 변수 (1)

모든 연경 장군들이 각자 자기만의 생각과 근심을 가지고 막사를 떠났다. 그들은 앞으로의 군사적 행동으로 인해서 정말 흑기와 충돌이 발생할지 알지 못했고, 더욱이 동이성에 있는 1 황자가 정말 1만 명의 정예병을 이끌고 동쪽으로 이동해 경국 변방군에 정면으로 맞서려 할지도 아닐지 확신할 수도 없었다. 경국의 충성스러운 장군인 이들은 경국의 첫 번째 내전이 자신들이 담당하는 지역에서 일어날까 봐 걱정했다.

그리고 왕 대도독 역시 걱정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부하들 앞에서는 이미 결심을 세운 듯 단호하게 행동한 왕 대도독은 그날 저녁 매씨 집안 저택으로 찾아갔다. 연경성 문관들의 우두머리인 매집례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유씨 국공의 제자인 매집례는 범씨 집안과는 교류가 깊지 않았지만, 범한과는 서로 잘 아는 사이였다. 이에 간절히 가르침을 청하는 왕 대원수의 말을 듣던 그가 갑자기 물었다.

“동아는 경도에 있습니까?”

경력 4년 경도 부윤 자리에서 물러난 뒤 연경성에서 온 매집례는 왕 대도독과 함께 협력하며 많은 일들을 했다. 그래서 왕 대도독도 매 대인의 식견과 지략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었다. 더구나 매 대인이 경도 부윤 자리에서 깔끔하게 물러난 것만 봐도 그의 정치적 수완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 관계도 좋아서 매 대인은 왕 대도독의 딸을 더없이 친근하게 동아라고 불렀다.

동아라는 두 글자를 듣고도 왕 대도독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지만, 전쟁터를 누비며 강인하게 다져진 마음이 살짝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는 매집례가 지적하려 하는 게 뭔지 이미 알고 있었다.

왕동아는 올해 6월쯤에 화친왕부에 이미 들어가서 1 황자가 측비가 되었다. 게다가 왕동아는 혼인을 올리기 전에 범한에게 수개월 동안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경도와 연경뿐만 아니라 천하 사람들 모두가 범한에게는 범문사자 외에 세 명의 존귀한 신분을 가진 제자가 더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은 미래 황제가 될 사람으로 유력한 3 황자였고, 다른 한 명은 섭씨 집안 아가씨인 섭령아였으며, 마지막 한 명은 연경 대도독의 딸이었다.

경국은 효를 가장 중요시 생각하고 다음으로 스승과 제자 사이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연경 왕씨 집안과 범한의 관계는 우두산 일대에 진을 치고 있는 흑기 천명으로 인해서 약간 복잡하게 변하고 말았다. 왕지곤이 매집례를 바라보며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황궁의 뜻에 따라 추밀원에서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니 나중에 비난을 받더라도 이 일을 해야만 합니다.”

“대도독께서 오해를 하셨군요.”

매집례가 시선을 내리깔며 나지막이 말했다. 이미 수년 전에 경도의 정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온 매집례는 이런 큰일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다만 국공의 제자라서 황궁에 있는 의 귀빈과 3 황자와 관계가 깊었기에 연경에 숨어 있다고 해도 앞으로 계속 정치 소용돌이에 휩싸이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없었다. 그래서 오늘 밤에 그는 왕지곤 앞에서 솔직하게 말을 털어놓을 생각이었다.

“작은 범 대인과 동아가 스승과 제자 사이인 것도 고려해야 할 부분이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매집례가 한숨을 쉬며 왕지곤을 바라보았다.

“대인께서는 동이성에 병력을 보내고 싶어 하시지만, 상황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1 황자 저하께서 절대 경도에서 온 교지를 따르지 않으리라는 걸 알 겁니다. 그런데 동아는…… 화친 왕부의 측비이지 않습니까? 대인께서는 이 문제는 생각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만일 1 황자 저하께서 동이성을 점령하고 스스로 왕이 된다고 하시고, 대인께서는 연경 대영에 있는 병력 10만을 동원해 동이성을 공격하게 된다면 왕부에 있는 동아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오랜 시간 경국 국경을 지켜온 왕지곤은 온갖 고생을 한 끝에 불혹의 나이에 가까스로 딸을 얻게 되었다. 이에 금이야 옥이야 애지중지하며 제멋대로 하도록 내버려 뒀고, 이게 왕동아가 오만방자한 성격을 가지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점은 범한이 누구도 고치지 못했던 왕동아의 거칠고 오만한 성격을 고쳐 준 것이었다. 그래서 왕지곤은 매번 이 일을 생각할 때면 작은 범 대인이 진심으로 고마웠다. 다만 그는 오늘 매집례가 이 점을 지적하는 이유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가 어리둥절해 하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설마 작은 범 대인이 이전부터 지금의 상황을 예상하였을 거라는 겁니까? 그래서 모두의 예상을 깨고 태상사 정경 신분을 이용해 1 황자에게 동아를 시집보냈다는 겁니까?”

놀라 눈을 휘둥그렇게 뜬 왕지곤은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소공야는 정말 간담이 서늘할 정도로 주도면밀하고 치밀한 사람이었다.

지금 왕지곤은 정말 난처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 연경 대영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공격해야 하는 동이성은 이미 1 황자와 범한의 세력 범위에 놓여 있었다. 게다가 두 사람은 왕지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었다. 한 사람의 딸의 남편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딸의 스승이었으니 말이다.

매집례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당시 작은 범 대인의 생각을 지금 추측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제가 이 말을 하는 이유는 대도독께 상황을 일깨워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봤을 때 황궁에 계시는 그분도 이 문제에 대해 알고 계실 거라는 거지요. 그러니 황궁에서는 연경에 죄를 묻지는 않을 겁니다.”

그가 고개를 들어 왕지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만약 정말로 작은 범 대인께서 당시에 지금의 상황을 예상하셨다면, 엄청난 식견과 지략을 가진 셈입니다. 지금 대도독께서는 연경을 계속 지키면서 동이성과 대치 상황을 유지하셔야 합니다. 만일 황제 폐하께서 대도독이 명령을 성실히 이행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시고 사람들을 교체하고 싶어도 누가 대인을 대신해 연경 대영의 군심을 하나로 모을 수 있겠습니까? 갑자기 우두머리를 바꾼다면 군심을 모으기 힘든 법이니 폐하께서도 함부로 대인을 건드시지는 못하실 겁니다. 그러니 동이성의 안전도 어느 정도는 보장이 되는 셈이지요.”

“저는 폐하께 충성해야 합니다. 작은 범 대인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든 저는 폐하의 명령을 따를 것입니다.”

왕지곤의 말투에는 화난 기색이 느껴지지 않았다.

매집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분명한 건 작은 범 대인이 이번에 무슨 계획을 세웠든 아직 드러내지 않았다는 겁니다. 경도에서 연경성에 어떤 조처를 내릴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아마도 폐하께서는 현명한 군주시니 대도독을 더욱 신임하실 겁니다…… 심지어 이번 추밀원 군령과 황궁의 밀지는 폐하가 대도독에게 준 시험이라 할 수 있지요.”

왕지곤이 엄숙한 표정으로 양손을 맞잡고는 인사하며 말했다.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매집래가 여전히 굳은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대도독께서는 정말 동아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으신 겁니까? 세상에 여론은 신경 쓰지 않으시는 겁니까? 만약 정말 무력을 동원해 동이성을 굴복시킨다면, 경국에는 공신이 되겠지만, 내란이 벌어져 전쟁이 계속된다면…… 모든 비난이 대도독에게 쏠릴 겁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군대로 동원해 제압하지 않는 건 폐하의 신임을 저버리는 짓입니다.”

왕지곤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경도에서 일어난 충돌이 결국에는 이곳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폐하의 신하로서 해야 하는 일을…… 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 않는 게 아니라…… 할 수가 없어서…… 하지 못하는 겁니다.”

매집례가 아무 말 없이 왕지곤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을 악물고 말했다.

“대도독께서는 신하의 도리를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시지만, 이번 일은 어쨌거나 천자의 집안일이지 않습니까. 저나 대인이나 경국의 신하인 만큼 폐하께 충성해야 합니다. 하지만 경국에 정말 내란이 일어난다면, 저와 대인은 천하를 향해 뭐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경도에서 일어난 충돌이 이곳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건 맞지만, 작은 범 대인과 폐하는 분명 이번 충돌로 인해서 심각한 사건이 터지는 건 원치 않을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폐하께서는 줄곧 작은 범 대인에 대해 별다른 말을 하지 않으실 리도 없고, 또 작은 범 대인도 경도에서 부유한 한량으로 지내지도 않을 겁니다.”

“두 분께서는 최소한의 선을 지키고 계시는 겁니다. 그러니 대도독께서도 나중에 출병하실 때 이 선을 꼭 기억하십시오. 위협을 해도 좋고, 침범해도 좋지만, 피를 뿌리며 싸우는 건…… 제가 봤을 때 현명하지 못한 행동 같습니다. 그리고 아마 폐하께서도 그런 결과는 원치 않으실 겁니다.”

“하지만 상대방은 흑기입니다. 감찰원의 이리 새끼들은 물러나라는 말을 알아듣지 못할 겁니다.”

왕지곤이 두 눈을 감으며 계속 말했다.

“이번 일은 정말 어렵습니다. 출병해야 하지만 진짜 싸워서는 안 되고, 폐하의 큰 계획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일이 너무 커지게 해서도 안 됩니다.”

왕 대도독이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 평생을 칼날이 번뜩이는 전쟁터에서 살아온 그는 이번처럼 복잡한 상황을 만난 적이 없었다. 설사 상대가 범한이든 1 황자이든 싸워야 하면 그냥 싸우고, 죽여야 하면 그냥 죽이는 게 가장 간단하고 편했다. 하지만 만약 정말 경국 동쪽에서 내란이 일어날 만한 혼란이 생긴다면 폐하는 분명 불쾌해하실 거였다.

“폐하께서 밀지를 보내 싸우라 명령하셨다면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최소한 대치를 해서 흑기의 기세를 누를 필요가 있겠지요.”

매집례가 눈꺼풀을 살짝 내려뜨리며 계속 말했다.

“황궁의 뜻은 반드시 집행되어야 합니다. 폭풍처럼 강하게 억누르면 흑기가 며칠이나 저항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이 사람을 풀 베듯이 죽이는 냉혈한 기병이라 하지만 어쨌거나 1 황자 저하나 작은 범 대인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런 상황에서는 며칠 유지하기 힘들 테니 결국 마지막에는 서로 감정이 틀어질 겁니다.”

왕지곤이 매집례를 바라보며 지적했다.

“황제 폐하의 뜻이 여기 있습니다. 저는 폐하께서 제가 일을 못 한다고 오해하시는 건 원치 않습니다.”

“아니, 기다리시면 연경성과 동이성 사이의 대치 상황을 안정시킬 기회가 올 겁니다.”

매집례가 왕지곤을 바라보다가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

“작은 범 대인은 동아와 1 황자와 대인의 관계를 위해서 많은 노력을 쏟았습니다. 그러니 지금 양측의 평화를 유지할 방법을 생각해 낼 것입니다. 저는 작은 범 대인이 분명…… 대도독이 폐하의 밀지의 뜻을 거스르지 않게 하면서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을 생각해 낼 거라고 믿습니다.”

“그렇게 되면 좋겠군요. 밀지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지만, 저도 경국 백성들이 전쟁터에서 서로를 마주 보는 상황이 일어나는 건 원치 않습니다.”

왕지곤의 미간의 주름이 더욱 깊어졌다. 잠시 말을 멈춘 그가 다시 천천히 말했다.

“다만 지금 상황이 모호하여 폐하의 뜻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우두산에 포진해 있는 병력을 철수시킬 방법이 뭔지 모르겠습니다.”

“작은 범 대인이 무슨 수단을 부리실지 지켜봐야 합니다.”

매집례가 침착하게 손가락을 들며 말했다.

“지금의 상황이 충돌로 가지 않으려면 상황을 바꿀 변수가 필요합니다. 무슨 변수인지는 저희는 알지 못하지만, 작은 범 대인은 분명 알고 계실 겁니다.”

왕지곤이 탄식하며 말했다.

“저는 작은 범 대인이 이 일을 해결할 거라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만약 그가 5일 안에 변수를 찾아낸다면, 동아처럼 그의 능력에 감탄하고 따를 수밖에요.”

이틀이 지난 뒤 연경성 안과 밖에는 스산한 분위기가 가득했고, 각 군영 안에서 모인 변방군은 성 앞에 집결했다. 동쪽에서 출발한 군대는 반나절이 채 안 돼서 이전에 파견되었던 3천 명의 정예병을 만나 합친 뒤 우두산 부근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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