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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여년-971화 (971/1,108)

971화 쉴 틈이 없는 영웅을 비웃다 (2)

경국 백성들과 관료 사회에서 감찰원은 명성이 높았지만, 동시에 음험하고 무시무시한 존재였다.

바퀴 달린 의자에 앉아 생활하는 노(老)원장을 제대로 본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이에 모두들 광장으로 몰려들어 주변을 빙 둘러쌌다. 그리고 정말로 소문처럼 전임 원장이 시커먼 피부에 머리 세 개에 팔이 여섯 개가 달린 마귀인지 확인하려 했다.

그런데 감찰원의 이 마귀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은 황제 폐하의 처분이 성에 차지 않았다. 만백성을 어질게 돌봐주시는 우리 대경국의 영명하신 황제 폐하를 암살하기 위해 미쳐 날뛴 자 아닌가. 그러니 백성 입장에서는 진심으로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사람들은 저 악당이 찬란한 황권의 빛 아래에서 어떻게 검은 연기로 변하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봐 줄 생각이었다.

감찰원은 몇십 년 동안 신비하고 음험한 존재였다. 그리고 경국의 관료 사회에 잔인하고 무시무시한 수단을 동원한 탓에 문신들에게 미움을 샀다. 이는 곧 천하 사대부에게 밉보인 것이었고, 그로 인해 결국 세상에서 안 좋은 말을 듣게 된 거였다. 이에 감찰원은 민간에서도 악명을 떨칠 수밖에 없었다.

민간에서는 감찰원을 두고 사람을 잡아먹고 뼈도 토해내지 않는 음산한 관아라고 소문이 나 있었다. 무고한 사람을 고문해 자백을 받아내는 것은 물론, 살인도 밥 먹듯이 한다는 얘기도 있었다. 어쩌면 이건 감찰원이 떳떳하게 드러낼 수 없는 수단을 정말로 많이 동원해 그런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온 경도, 온 경국, 온 천하의 백성들이 알면 또 얼마나 알 수 있을까? 그러니 이런 것들은 단순히 와전된 소문에 불과했다.

물론 작은 범 대인이란 인물이 멋지게 등장해 요 몇 년 동안 감찰원이 갖고 있는 암흑의 분위기를 일부 씻어 낸 건 있었다. 하지만 그가 감찰원 업무를 주재한지 얼마 되지 않아 그런지, 민간에 깊이 뿌리 내린 감찰원에 대한 인상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담박공 범한이 바꿀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던 것이다. 경국 민간 백성과 선비들은 범한을 숭배하고 높이 우러러 보았다. 하지만 그건 구름 위에 서 있는 듯한 범한의 존재감에 관심을 보인 것이기 때문에 감찰원을 향한 눈에 띄는 인식의 변화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경도 백성은 감찰원 1처에 대해서는 사람 냄새가 난다고 느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방형의 음산한 건축물에 대해서는 여전히 아무런 호감도 없었다. 오히려 무의식적으로 두려워하고 있었으며, 두려움에서 파생된 이유 없는 분노 같은 것도 있었다.

그래서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는 어둠의 우두머리 진평평이 곧 자기네들 눈앞에서 죽게 될 예정이자 경도 백성들은 은근히 흥분했다. 그런데 이는 어쩌면 백성으로서 자연스레 드러낼 수 있는 감정이었다. 이번 생에 말로만 듣던 대단한 인물의 죽음을 지켜볼 수 있게 되었으니, 무료한 삶에서 술자리에서 씹을 거리가 늘어나서였다. 그리고 또 어쩌면 이들에게는 사형 집행을 지켜보는 것 자체가 꽤 괜찮은 여가 활동일 수도 있었다.

몇 년 전 봄, 춘시 사건으로 소금 시장 입구에서 예부 관원들의 목이 잘려나갔다. 잘려나간 목은 사형장에서 데굴데굴 굴렀고, 하마터면 들개 밥이나 될 뻔했었다. 그때 그 일을 가지고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삶에 지쳤을 때 싸구려 탁주를 들이키며 무료한 삶을 달랬는지 모른다.

그리고 3년 전, 경도에서 반역 사건이 일어난 후에도 마찬가지로 소금 시장 입구에서 반역에 가담한 장수들의 수급이 셀 수도 없이 많이 잘려나갔다. 그때 거리 절반이 피로 물들었고, 수일이 지난 후에도 공기 중으로 피비린내가 베어 나왔었다. 그리고 13성문사 통령 장덕청은 능지처참을 당할 때 정말 비참하게 비명을 질러댔었다.

이후 3년 동안 장덕청의 죽음은 공중으로 흩날리는 수많은 침방울과 함께 수없이 많은 경도 백성들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동안 경도에서 일어난 큰일들은 오늘 일과 비교 하면 별것 아니었다. 오늘 사형을 당할 이가 감찰원 전임 원장이기 때문이었다.

세인들에게 황제 폐하의 충성스러운 늙은 검둥개로 알려진 인물 말이다. 그런데 그 검둥개가 드디어 미쳐 오늘 도살된다니. 하하하하!

더군다나 오늘 형 집행 장소는 소금 시장 입구도, 형부 앞 사형장도 아닌 황궁 앞 광장 아닌가!

경국 개국 이래 법률에 따라 황궁 앞에서 극형에 처해지는 관원은 오늘 죽게 되는 이 한 사람뿐이었다. 그러니 백성들은 생각만으로도 흥분되었고, 또한 저도 모르게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저 진평평이란 지체 높은 관원이 대체 얼마나 대역무도한 짓을 저질렀기에 이곳에서 사형을 맞게 된 건지 원.

감찰원과 관련된 일이니 작은 범 대인을 떠올리는 이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처형을 보기 위해 몰려든 구경꾼들은 무의식적으로 그 점을 망각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작은 범 대인과 저 늙은 검둥개 사이의 관련성을 전혀 생각도 않은 거였다.

이 국토를 통치하는 인물들 사이에 어떤 얽히고설킨 관계가 있는지는 저잣거리의 필부필부 입장에서는 알 리 없는 거였다. 그래서 머리가 좀 돌아간다는 사람도 다른 방향으로만 생각 할 뿐이었다. 바로 황제 폐하께서 작은 범 대인에게 이제 막 감찰원을 넘겨준 터라 전임 원장을 죽이려 한다고 말이다.

‘작은 범 대인을 대신해 황제 폐하께서 과거 감찰원 내부의 저항 세력과 죄악을 씻어 내려 하시는 걸까?’ 정도로만 생각한 거였다.

무수히 많은 백성들이 황궁 앞 광장으로 몰려들었다. 긴장, 무관심, 흥분, 이유 없이 밀려드는 비애 등 수많은 복잡한 감정이 한데 뭉쳐진 가운데 사람들이 자그마한 사형장을 에워쌌다. 그러자 사방에서 금군 병사 및 질서 유지를 위해 나온 경도부 아속들이 상황을 진정시키기 위해 경계선 안으로 들어오려는 구경꾼들을 막았다.

하지만 무작정 경국 백성들을 탓할 수만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게 그들에게는 몸에 밴 습관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알 수 있는 건 알고, 알 수 없는 건 포기하고, 누릴 수 있는 건 누리고, 분노하도록 윤허된 것에는 분노하는 게 습관으로 굳어 있었다. 그러니 황제 폐하께서 대신 하나를 죽이려 한다면, 백성들은 그가 그 벌을 받을 만한 죄를 지었는지부터 따지기 이전에 다음과 같이 교육받은 대로 생각을 하게 되어 있었다. 즉, 군왕이 신하를 죽이려 한다면 응당 죽을죄를 지어서이니, 그런 놈은 만 번 죽어 마땅하고, 죽어도 할 말이 없으며…….

빽빽하게 몰려든 사람들은 마치 바닷물을 이루기라도 한 듯 웅장한 황성 앞 넓은 광장 위에서 인파가 되어 출렁여댔다. 한편 황궁 문 근처에 텅 빈 공간이 만들어 지더니, 이곳에 나무로 된 지극히 단출한 형식 대가 설치되었다. 바로 사형장이었다. 사형장은 인파와 웅장한 황성에 둘러싸여 있어 그런지 마치 고독하게 떠 있는 배처럼 보였다. 그래서 언제든 인파 속에서 침몰해버리거나 천년이 지나도 끄떡 않을 것 같은 거대 암석 같은 황성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날 것만 같았다.

황성 아래쪽 공터를 따라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일렬로 입을 꾹 다물고 엄숙하게 걸어와 어도(御道) 양측에 선 후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그러자 백여 명의 경국 관원들이 조용히 나무로 만든 대 아래쪽까지 걸어왔고,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백성들은 그 광경을 호기심어린 눈으로 지켜보았다.

죄수 호송 수레에서 들것이 나왔다. 들것 위에는 노인이 누워 있었고, 그는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를 정도로 혼미한 상태였다. 하종위가 고개를 들어 황성 꼭대기 쪽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런 후 눈가를 살짝 씰룩이더니 가볍게 손을 휘 내저었다. 나무로 만든 대 위로 들것이 올라갔다.

그러자 오늘 극형에 처해질 고관을, 그것도 말로만 듣던 암흑계의 늙은 도적놈을 드디어 보게 된 앞쪽에 있던 경도 백성들은 만족감에 찬 탄성을 내지르고는 곧바로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그리고 늙은이가 전혀 움직이지 않아 ‘저 사람 벌써 죽은 건가?’라고 생각했다

검은 동굴 같은 황성 문에서 내관 셋이 걸어 나왔다. 왼손 쪽에 있는 어린 내관은 오늘 조정에서 정한 죄명을 실은 탁자를 들고 있었고, 오른손 쪽에 있던 어린 내관은 향로를 올리는 탁자를 높이 들고 있었다. 그런데 탁자 위에 놓인 건 진평평을 사형에 처하라는 성지였다.

중간에는 무관심한 표정의 요 태감이 있었다. 그는 양손에 작은 병을 들고 있었다.

나무 대 위에서 모든 준비가 끝나자 이미 숨이 끊어진 것 같은 마르고 약한 몸뚱이가 빗물에 젖은 나무판 위에 놓였다. 그러자 요 공공이 진평평 곁으로 다가가 쪼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태의의 도움을 받아 노인에게 환약 하나를 먹인 후 작은 병에 있는 탕약을 그의 마른 입술 사이로 조심스레 흘려보냈다.

얼마나 지났을지 모를 무렵, 혼미했던 진평평이 천천히 깨어났다. 이미 출혈과다로 목숨이 꺼지기 직전인지라 그의 낯빛은 너무나도 창백했고, 눈빛은 혼탁하니 초점이 없었다. 그가 옆에 있는 요 태감을 바라보며 마른 입술을 살짝 움직여 잠긴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천년산삼만…… 낭비했군.”

그러자 요 태감은 잠시 몸을 부르르 떨기만 할 뿐 감히 어떤 소리를 낸다거나 행동을 취하지는 못했다. 그저 우는 듯 또 웃는 듯한 표정으로 노대인을 쓱 바라보고는 구부정한 자세로 나무로 만든 대의 한쪽 가장자리로 물러날 뿐이었다.

진평평이 혼탁한 두 눈을 뜬 순간 사형장에 서 있던 언빙운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하 대학사로부터 좌측 뒤쪽에 서 있었다. 하지만 언빙운은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약간 무력하게 고개를 숙였다. 조금 전 잠시 훑어보았을 뿐이지만, 그는 현재 사형장 경비가 얼마나 삼엄한지 잘 알고 있었다. 주변에 빽빽이 들어선 금군이며, 사방에 흩어져 있는 궁정 고수들은 잠시 논외로 하더라도 베옷을 입고 삿갓을 쓴 고수들이 있는 것만 봐도 현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걸 언빙운은 알 수 있었다.

어젯밤 감찰원 감옥에는 삿갓을 쓴 고수가 넷이 있었다. 이는 언빙운과 하종위가 보기에도 괴이했다. 하지만 누가 갑자기 이 고수들을 보냈는지는 언빙운과 하종위도 알고 있었다. 그러다 오늘, 가을비가 흩날리는 가운데 미세하게 빛이 번쩍하고 흘러 언빙운은 예리한 안목으로 무언가를 발견해 냈다. 바로 이 고수들이 민머리 위에 삿갓을 썼다는 점이었다.

경묘에서 나와 세상에 흩어져 있던 고행자들이었던 거다. 그런데…… 남쪽 변방에서 전도하던 경묘 대제사는 경도로 돌아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기이한 죽음을 맞이했다. 이에 2 제사인 삼석 대사가 군산회에 투신했고, 그도 결국에는 경도 밖에서 빗발치는 화살에 맞아 처참하게 죽었다. 장 공주 마마에게 입막음 당한 거였다.

황제 폐하는 줄곧 천일도며 경묘의 고행자들을 무시해왔다. 더군다나 황실은 경묘와 크게 교류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왜 경묘의 고행자들이 오늘 경도에 집단적으로 나타난 걸까? 그것도 여러 사람들 앞에, 그것도 진평평을 처형하는 사형장 근처에 말이다.

언빙운은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겼다. 경묘까지 그분 수중의 이기(利器)가 되어 있었다니. 언빙운은 이제야 황제 폐하께서 황권뿐만 아니라 실력 면에서 인간계 최정점에 올라와 계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형장 위에 나무로 된 틀이 설치되었다. 그리고 비쩍 마른 진평평을 옴짝달싹 못하게 그 틀 위에 묶였다. 그는 발가벗겨져 창백한 몸을 드러내고 있었다. 흉부와 복부 아래쪽은 다년 간 불구로 산 탓에 유난히 말라 있었다. 그래서인지 차가운 가을비를 맞고 있는 그는 유난히 더 생기 없고 가련해 보였다.

빗물이 비쩍 말라 생명의 기운조차 없는 몸을 때리고는 천천히 흘러내려 흙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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