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9화 경도의 혼란, 이리저리 흔들리는 붉은 촛불 (3)
땀방울이 이마에서 떨어지려 하자 옆에 있던 궁녀가 손수건으로 닦아주었다. 겁에 질린 궁녀가 뒤로 물러나는 것과 달리 범약약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방안을 가득 채운 등불 아래서 천천히 손에 쥐고 있는 예리한 수술용 칼을 움직였다.
상자에 든 외과 의료 기구들은 모두 황실 금고에서 가장 발전된 공예 기술을 동원해 제작한 것으로 섭경미, 비개, 범한 등 모두의 지식이 응축된 물건이었다. 그리고 범약약은 가까운 사람들을 통해서 이것들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배웠다.
푸른 산 위에서 여러 해 동안 열심히 공부하고 외상 치료에 관한 연구를 한 끝에 범약약은 이제 더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오라버니의 몸을 가르던 어수룩한 소녀가 아니라 진정한 명의가 되어 있었다.
상의를 벗은 황제 폐하는 딱딱한 침대에 반듯하게 누워 두 눈을 감고 있었다. 그의 오른쪽에서 범약약이 신중하고 침착하게 움직이는 작은 칼은 그의 몸 위에서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날카로운 칼날로 그을린 상처 부위를 벌리자 피가 새어 나왔고, 이후 범약약이 침착하게 족집게로 딱딱한 물건을 집어 꺼냈다.
‘쨍그랑’ 소리와 함께 작은 쇠 구슬이 옆에 놓인 쟁반이 떨어졌다. 쟁반 위에는 이미 쇠 구슬이 일곱 개가 놓여 있었고, 수술은 이미 절반 정도가 진행된 상태였다.
범약약이 숨을 깊이 들이쉬고는 체내 천일도 정기 법문을 운용해 마음을 가라앉힌 뒤 침대에 누워 있는 황제 폐하를 바라보며 말했다.
“몇몇 쇠 구슬들이 아주 깊은 곳에 박혀 있어 엄청 고통스러울 겁니다. 폐하, 가리방을 사용할까요?”
범한과 3처가 심혈을 기울여 배합해 만든 가리방은 천하에서 가장 성공적인 마취약이라 외과 수술에 사용하기에 적합했다. 하지만 범약약의 이 말로 놀랄 만한 사실이 드러났다. 지금까지 수술하는 동안 황제 폐하는 마취약을 전혀 복용하지 않은 채 날카로운 칼날이 자신의 몸을 가르고 벌리는 걸 참고 있었다.
더욱이 방금 범약약이 있는 힘껏 족집게를 사용해 쇠 구슬을 꺼냈을 때도 침대에 누워 있는 황제 폐하는 인상을 조금도 찌푸리지 않았다. 마치 조금의 고통도 느끼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경제가 천천히 두 눈을 뜨고는 범약약을 바라보며 말했다.
“계속하거라.”
그의 말투는 마치 칼로 가르는 몸이 자신의 몸이 아니거나 생명을 갉아 먹는 쇠 구슬이 자신의 몸에 박혀 있는 게 아니라는 듯이 담담하기만 했다.
범약약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예리한 작은 칼을 잡고 고개를 숙인 뒤 자신의 일을 계속해나갔다. 그녀의 동작은 아주 자연스러운 게 전혀 두려워하는 것 같지 않았다. 폐하가 괜찮다고 말한 이상 그녀는 황제가 고통을 견디지 못할 거라고 걱정하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칼날 아래 있는 사람이 손바닥 뒤집듯이 쉽게 수만 명의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제왕이 아니라 목석같은 사람인 것처럼 그녀는 태연히 수술을 이어갔다.
범약약의 침착한 얼굴을 바라보던 황제 폐하가 무언가 의문이 생긴 듯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안지가 네게 알려준 것이냐?”
수술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범약약의 황제의 질문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 모습에 경제가 의미심장한 눈빛을 지으며 물었다.
“너는 짐이 두렵지 않은 것이냐?”
이때 범약약이 쇠 구슬을 빼내고는 상처 부위에 남아 있는 쇳가루를 닦으며 나지막이 대답했다.
“지금 저에게 폐하는 치료를 해야 하는 환자일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폐하께서 고통을 견디지 못해 치료를 방해할까만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건 걱정하지 말거라. 이전에 전쟁터에서 뼈를 깎아 독을 제거한 맹장도 있었다.”
눈빛이 약간 흐리멍덩해진 황제가 천천히 말했다.
“짐은 지금까지 살면서 이보다 더한 고통도 겪어 보았다.”
이 말은 처음 북벌을 나갔을 때를 말하는 거였다. 당시 체내 경맥이 전부 망가진 경제는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견뎌야 했었다. 이 일을 모르는 범약약은 속으로 조금은 짐작하면서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황제가 천천히 두 눈을 감으며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
“내일 오늘 짐의 몸을 가르는 숫자보다 열배 백배는 더 많이 고자 종놈의 몸을 가를 것이다.”
경제의 살기 가득한 말을 들은 범약약은 손에 들고 있는 칼끝을 조금도 떨지 않았지만 대신 몸이 살짝 경직되었다. 황제가 그 모습을 바라보고는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잠시 뒤에 그 고자 종놈에게 선처를 베풀어 달라 요청할 생각이라면 하지 말거라. 그런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 자체가 대죄에 해당하니까.”
“정왕 그 쓸모없는 놈이나 의 귀비, 영 귀비, 서무가 왔다고 해도 짐은 마음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범한을 스승으로 생각하는 섭중의 딸과 친구인 의신까지 온 것 같더구나. 궁전도 항상 범한 놈을 마음에 들어 했지…….”
평온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던 황제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범약약을 바라보며 계속 말했다.
“그러고 보니 너는 그놈의 누이구나. 언제부터 짐의 옆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그놈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는지 의문이야.”
“그건 폐하께서 오라버니에게 하사해 주신 것들 덕분이지요.”
범한이 언급되자 범약약이 결국 수술용 칼을 들고 있는 손을 멈추고 황제를 담담히 바라보며 대답했다.
“짐은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이 뭔지, 걱정하는 것이 뭔지 알고 있다.”
옷을 벗은 황제의 상반신에서 붉은 피가 새어 나왔지만, 대종사이자 황제인 그는 조금도 자신이 죽을 수 있다는 걱정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짐은 그런 걱정이 아주 쓸모없다고 생각한다. 그놈은 짐의 친아들이다. 설마 친아들이 늙은 종놈 하나 때문에 짐에게 반기를 들 것 같으냐?”
붉은 촛불이 살짝 흔들렸지만, 여전히 안은 대낮처럼 밝았다. 범약약이 고개를 살짝 흔들고는 계속해서 천하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을 가진 황제 폐하의 몸을 가르고 찢었다.
* * *
경국 정부 측 관아에도 죄인을 가둘 수 있는 곳이 있었다. 사실 경도 안에는 이런 곳이 상당히 많았는데, 경도부에서 계산해본 바에 따르면 경국 법률에 구속 권한이 있다고 정해진 관아는 일곱 곳이나 되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범죄를 저지른 관료들이나 극악 모두 한 범죄를 저지른 죄인들은 대부분 형부 감옥이나 대리사 협벽(夾壁) 및 감찰원 대 감옥에 수용되었다. 만일 사람들이 벽 너머 안을 들여다볼 수 있어 감찰원 감옥 안을 볼 수 있다면 이야기 속에서 등장하는 지옥이 어떤 모습인지 볼 수 있을 것이었다.
감찰원은 건립된 이후 줄곧 황제 폐하의 특수 임무를 처리하는 직속 기구로 활동하며, 조정에서 아주 강력하고 비밀스럽고 공포스러운 역할을 맡아 왔다. 체포한 고위 관리들은 종종 이곳에 감금되면 사람을 몸을 가지고 기예를 부리는 무시무시한 인물과 함께 오랜 시간 지하에 갇혀 있어야 했다. 그러니 감찰원 감옥은 지옥이라 불릴 만큼 형부와 대리사 감옥보다 훨씬 견디기 어려웠다.
이러한 감찰원 감옥은 정방향의 음산한 감찰원 건물 근처에 위치해 있었다. 감찰원 건물 정문에서 나가 벽을 하나 돌면 바로 아주 두꺼운 철문을 볼 수 있었는데, 바로 이곳이 감찰원의 감옥이었다. 감찰원 내부에는 당연하게도 이 감옥과 바로 통하는 비밀 통로가 있었다. 감찰원 뒤쪽에 있는 대평원에서 뒤로 걸어가면 작은 문이 나왔는데, 그 문을 통해서 가면 바로 감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느 방향에서 들어가든 일단 감찰원 감옥 안으로 들어가면 제일 먼저 깊고 깊은 통로가 보였다. 중범죄를 저지른 죄인들이 갇히는 감방은 지하에 위치해 있고, 경비도 아주 삼엄해서 죄인이 도망가거나 누군가가 빼내는 등의 사건이 발생할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복도를 따라서 아래로 내려가면 공기는 갈수록 갑갑해졌고, 등불은 어두워졌다. 지하라도 비교적 뛰어난 통풍 설비가 되어 있었지만, 수십 년 동안의 축적된 오물 냄새와 숨 냄새가 뒤섞이면서 사람을 겁에 질리게 만들고 질식시킬 것 같은 특유의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통로를 따라 가장 아래로 내려가서 평범한 감방 몇 개를 지나면 감찰원 감옥 제일 아래 위치해 경비가 가장 삼엄한 감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평상시와는 달리 감옥 죄수들을 감시하는 7처 관리들의 무척이나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감옥 안에는 외부 고수들로 꽉 채워져 있었다.
금군과 정주군 쪽의 고수들, 그리고 궁정의 고수들까지 있을 뿐만 아니라 가장 밑에 단독으로 있는 감방 통로 양쪽에는 삿갓을 쓰고 삼베옷을 입은 낯선 사람 네 명이 지키고 서 있었다.
이 네 명의 사람들의 신분을 아는 사람은 없었지만, 이들에게서 풍겨 나오는 강력한 기운을 통해서 황궁에 있는 황제 폐하가 보낸 사람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황제를 시해하려 한 대역죄인 진평평은 지금 감찰원 감옥 가장 밑에 있는 감방에 갇혀 있었다. 아마도 감찰원을 세워 천하를 두렵게 만들었던 진평평은 자신이 만든 감옥에 자신이 이곳에 갇히는 날이 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거였다.
황제 폐하가 진평평을 황궁 안에 가두거나 대리사의 협벽에 가두지 않고 감찰원 감옥에 가두게 한 이유는 아주 분명했다. 바로 진평평을 이곳에 가두어야 감찰원 관리들의 마음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만일 감찰원 관리들이 자신들이 충성하는 원장을 동정해 모든 대가를 바쳐서라도 구할 마음이 있다면, 감찰원 감옥에 갇힌 진평평을 구하려 할 것이었다.
황제 폐하는 항상 적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줘서 그들이 본심을 드러내게 했다. 경제는 용상에 앉은 그 날부터 이런 방법을 사용해 왔다. 3년 전 대동산 포위 역시 그랬고, 경도에서 일어난 반란도 마찬가지였다. 적이 본심을 드러내도록 유인하는 방법은 더 없는 자신감과 끝없는 의심에서 비롯된 방법이자 천하에서 가장 높은 권력을 쥐고 있으면서 대종사이기까지 한 경국 황제만이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황제 폐하는 감찰원 관리들의 마음속에서 이글대는 불꽃을 곧 죽을 진평평이 손가락 하나만 움직여 꺼뜨려 버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감찰원 밖에 주둔해 있는 만여 명의 경국 정예병들을 움직일 필요가 없어지자 7처가 관리하는 감옥 안에 억지로 고수들을 들여보내 주변을 감시하도록 했지만, 감찰원 내부에서 반란을 일으킬 징조는 조금도 발견할 수 없었다.
습기 가득한 지하인데도 돌계단 벽에는 이끼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감찰원 7처 관리들은 이곳을 청소하는데 부단히 신경을 쓴 모양이었다. 옅은 황색의 특수 제작된 명유로 만든 횃불이 가장 깊은 감방을 비추는 모습이 마치 어두운 황천길을 비춰주는 것만 같았다.
가장 아래에 있는 지하 화강암을 파서 만든 감방은 두께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벽이 두꺼웠고, 앞에는 감옥 정문에 있는 철문과 비슷한 두께의 철문이 달려 있었다.
경국에서 가장 어둡고 음침한 이곳은 특별한 죄인만을 수용하는 곳이었다. 감찰원이 세워지고 수십 년 동안 황천으로 가는 길목인 깊고 깊은 감방에 갇힌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소은으로 무려 수십 년 동안이나 이곳에 갇혀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진평평이 이곳에 수용되었다.
* * *
감방 철문은 잠그지 않았고 밝은 불빛으로 안에 있는 모든 걸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안에는 놓인 침대와 물 대야 등 물건들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잡초나 오물이나 쥐들의 배설물로 인해 더럽혀져 있지 않았다. 오히려 감옥 안은 무척이나 깨끗했는데, 너무나도 깨끗해서 바퀴벌레 한 마리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침대에 눕혀진 진평평이 천천히 숨을 쉬었다. 두 눈은 감고 있었고, 산발이 된 백발은 그의 얼굴 옆에 제멋대로 엉켜 있었다. 가슴의 상처를 태의들이 치료를 하기는 했지만,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늙은 얼굴은 핏기 없이 창백했다. 숨을 쉬는 것도 아주 힘들어 보였는데, 매번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마른 가슴이 녹슨 기계처럼 힘들게 오르락내리락했고, 목구멍에서는 망가진 풀무에서 나는 소리와 비슷한 소리가 났다.
감방 밖에 긴 의자에는 언빙운, 하종위, 태감, 태의 이렇게 네 명의 사람이 앉아 있었다.
이 네 명은 진평평을 감시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들은 진평평이 죽지 않도록 지켜야 했고, 그가 도망치지 않도록 지켜야 했다. 내일 조회가 열려 죄명이 정해진 뒤 황성 앞에서 만백성이 지켜보는 가운데 황제 폐하의 분노를 받을 때까지 그가 죽기 직전의 혼수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