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5화 손가락 하나와 감찰원의 굴복 (2)
최근 몇 년 동안 침울하고 흐리멍덩한 모습을 보이던 목철이 오늘따라 갑자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인의 말이 맞습니다. 6처 대인께서 검수와 자객들을 모두 동원한들 기껏해야 감찰원 안에서 진 원장 대인을 구출할 수 있을 뿐이지 진 원장 대인을 데리고 경도 밖으로 도망칠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순간 목철의 두 눈동자가 번뜩이자 그의 거무스레한 얼굴과 대비되면서 구슬처럼 영롱하게 빛났다.
“저희 1처도 경도에 있습니다! 여덟 처가 모두 힘을 합친다면 경도 안에서 누구든지 구할 수 있습니다!”
“1처는 중요 관아 안에 사람들을 심어 두었고, 4처는 후속 조치를 할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인께서는 안 된다고 하시지만, 언약해 대인께서는 분명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가지고 계실 겁니다.”
2처 정보 수장이 냉정하게 말했다.
“8처가 태학이 들고 일어나도록 여론을 움직이기만 한다면 어떤 이유를 사용하든 경도 안은 순식간에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이후 3처가 움직여 경도 내부 수원에 독을 타서 오염시키고 내일 경도 성문이 열릴 때 4처에서 모든 힘을 동원한다면 원장 대인 한 사람 구하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과연 감찰원에서 가장 오랜 경력을 가진 사람다웠다. 그는 진평평을 구하는 데 필요한 과정을 간단하고 깔끔하게 정리했을 뿐만 아니라 악랄하고 무시무시한 계획을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이야기했다.
“경도 수원에 독을 탄다고요?”
그 말을 들은 언빙운의 눈동자가 수축했다.
“대인께서는 감찰원 관리 가족들과 경도 백성들을 모두…… 진 원장과 함께 매장하고 싶으신 겁니까?”
“결심만 선다면 감찰원은 경도를 일순간에 쑥대밭으로 만들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2처 수장이 평범한 일을 말하는 것처럼 무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원장 대인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면 수십만 명이 죽든 말든 무슨 상관입니까?”
순간 심장이 철렁하고 내려앉은 언빙운은 비로소 깨달았다. 그가 평생을 바친 감찰원은 이미 황제 폐하의 존재를 완벽하게 잊은 상황이었고, 모든 관리들이 미쳐 있었다. 그들은 진평평을 위해서라면 어떤 대가든 치를 수 있었고, 어떤 미친 짓이든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그런 일을 할 기회를 주지 않을 겁니다.”
언빙운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긴 탁자에 놓인 작은 종을 울렸다.
밀실 밖에서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여덟 처 수장들의 얼굴이 급격하게 변했다.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목철이 손가락을 부들부들 떨면서 언빙운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크게 물었다.
“설마 대인께서는 이대로 가만 보고만 있을 생각이십니까? 두 눈 부릅뜬 채 내일 원장 대인께서 굴욕적인 형벌을 받으며 돌아가신 모습을 지켜보실 생각이신 겁니까?”
언빙운이 냉정한 얼굴을 한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밀실 문이 열리고 언빙운의 심복 관리들이 줄지어 들어와서는 아주 짧은 시간 만에 방 안에 모든 부분을 통제했다.
6처 임시 수장이 쇠막대기 손잡이를 꽉 움켜쥐었다. 그는 이 사람들이 왜 밀실 안으로 들어온 건지 알지 못한 채 살기 어린 눈으로 언빙운을 노려보았다.
경도 감찰원은 막강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걸 움직일 수 있는 수장들은 정방형의 음산한 건물에 모두 모여 있었다. 감찰원이 가진 진짜 힘은 각각 분리된 관아와 어두컴컴한 어둠 속에 숨겨져 있었지만, 그 힘을 움직일 수장들은 모두 감찰원 밀실 안에 있었다. 그러니 이들을 모두 없앤다면 수장을 잃고 오합지졸이 된 감찰원 관리들은 진평평이 당할 일에 분노한들 맞설 힘을 모으지는 못할 거였다.
언빙운은 오늘 상황을 통제하기 위해 오랜 시간 모든 걸 치밀하게 준비해온 게 틀림없었다. 밀실 안의 상황을 통제하자 줄곧 밖을 포위하고 있던 경국 정예병 중 천 명 정도가 감찰원 안으로 접근해왔다.
정방형의 음산한 건물 주변에서 들리는 일사불란한 발걸음 소리와 갑옷이 부딪치면서 나는 금속 소리가 사람들의 마음을 압박했다. 건물 아래 감찰원 대청에서 연달아 크게 뭐라 외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어렴풋하게 교지를 가지고 왔다고 알리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밀실 안에 사람들 중에서 이 소리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여섯 수장들은 머리끝까지 화가 치솟아 붉으락푸르락해진 얼굴을 한 채 독기와 원망이 가득한 눈동자로 언빙운의 얼굴을 노려보고 있었다.
언빙운이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 목철을 향해 침착하게 말했다.
“지금 경도에는 대인이 담당하고 있는 1처 관리들이 가장 많이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본관은 대인을 이대로 나가게 둘 수 없습니다. 억울하시더라도 큰 감옥 안에 잠시 계시기를 바랍니다.”
목철의 두 눈동자가 불이라도 내뿜을 것처럼 이글이글 타올랐다. 범한의 심복인 목철은 평상시 언빙운과 서로의 고충을 이해할 만큼 사이가 가까웠다. 그래서 지금의 상황이 더더욱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언빙운이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해서 진 원장 대인의 등에 칼을 꽂을 결정을 했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
2처 정보 수장은 두 눈을 감고 주변에서 어렴풋하게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머리를 재빨리 굴렸다. 감찰원과 군대 쪽 힘의 차이가 어느 정도인지 분석하던 그가 두 눈을 뜨고는 상심 가득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는 더 이상 분석이 필요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언빙운은 조정의 강력한 군대에 도움을 받아 이미 성공적으로 감찰원의 머리라고 할 수 있는 수장들과 손발이라 할 수 있는 하급 관리들을 분리해 버렸다. 더 정확하게 지금의 상황을 설명하자면 언빙운은 정방형의 음산한 건물을 통제하기 위해서 감찰원을 반쪽짜리 쓸모없는 불구자로 만들어 버렸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게.”
2처 수장이 6처 임시 수장의 어깨를 토닥이며 움켜쥐고 있는 쇠막대기 손잡이를 놓으라는 표시를 했다. 밀실 안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2처 수장의 말에 6처 수장이 받아들일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 역시 이미 상황이 정해졌다는 걸 알았기에 하늘을 올려다보고 ‘끙끙’ 소리를 내다가 결국 손잡이를 놓았다.
2처 수장이 차가운 눈빛으로 언빙운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아마 우리 모두를 죽일 생각이겠군.”
언빙운이 눈꺼풀을 천천히 내리며 탄식하듯이 말했다.
“대인들은 진평평 대인이 폐하를 시해하려 했다는 걸 모르고 계셨으니 이 일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저는 그저 대인들이 잘못된 길을 가지 않도록 막아 목숨을 지켜드리고 싶은 것뿐입니다.”
2처 수장이 한숨을 쉬며 하얗게 센 자신의 머리를 쓸었다. 한참 잠긴 표정을 짓고 있던 그가 자조 섞인 미소를 지으며 갑자기 입을 열었다.
“언약해 형님께서 오늘 일을 알게 되시면 무슨 생각을 하실 것 같은가? 내가 자네에게 충고하나 하자면, 지금 여기 있는 모두를 죽이는 게 좋을 거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편히 잠을 잘 수 없을 테니까.”
이건 위협이 아니라 적나라한 선언이었다. 오늘 감찰원 안에서 있었던 일들은 언젠가는 밖에 알려질 것이었다. 그러니 만약 여덟 처의 수장들을 모두 죽여 후환을 막지 않는다면 진평평의 죽음으로 인해 촉발된 감찰원 관리들의 분노가 모두 언빙운에게 쏟아지게 될 거였다.
얼마나 많은 관리들이 언빙운에게 살기를 품게 될까?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분노한 이들이 언빙운을 죽이는 데 며칠이나 필요할까? 이 역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2처 수장은 이 말을 끝으로 몇몇 관리들에 의해서 문밖으로 압송되었다. 밖으로 이끌려 나가는 그의 뒷모습은 처량하고 슬퍼 보였다. 하지만 그가 슬퍼하는 이유는 자신이 감옥에 갇히기 때문이 아니라 내일 진 원장이 죽게 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6처 임시 수장은 쇠막대기, 쇠뇌의 화살, 비수, 독약 가루 등 몸에 지니고 있던 모든 살상 무기와 옷 안에 입고 있던 갑옷까지 모두 압수당했다. 이 모든 걸 굳을 얼굴로 아무런 반항 없이 담담히 따르던 그가 언빙운 앞을 지날 때 ‘퉤!’하고 침을 얼굴에 뱉었다.
언빙운이 눈처럼 하얀 소매로 얼굴에 묻은 침을 닦고는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본관이 대인을 죽이도록 자극할 생각이신 겁니까? 그럼 아까는 왜 반항하지 않으신 겁니까?”
“나는 죽을 생각이 없네.”
6처 임시 수장이 그를 바라보며 기괴한 웃음을 터뜨렸다.
“왜냐하면, 나는…… 배신자인 자네가 죽는 모습을 꼭 보고 싶거든.”
이어서 압송당한 목철이 고개를 돌려 언빙운을 바라보며 6처 임시 수장이 한 말의 의미를 설명했다.
“저희는 작은 범 대인이 돌아오신 뒤 대인을 얼마나 처참한 방법으로 죽일지 보고 싶은 겁니다.”
언빙운은 안색이 살짝 변했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 * *
감찰원 안에 들이닥친 1천 명의 군대는 정주군과 금군 수비사가 혼합되어 있었다. 이들은 몇 명의 태감과 조정의 핵심 인물들을 데리고 감찰원 정방형 건물이 들어와서는 감찰원 관리들은 강제로 건물 뒤 평지에 모았다.
갑작스러운 상황에도 감찰원 관리들은 아무도 반항하지 않았다. 자신의 직분을 충실히 지키는 걸 중요시 생각하는 감찰원 관리들은 무슨 일이 발생한 건지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함부로 움직이는 법이 없었다. 이들은 상사의 명령이 내려지지 않는 이상 황제 폐하의 교지를 들고 들이닥친 군대에 대적할 수 없었다.
오늘은 감찰원이 건립된 이후 처음으로 군대가 진입한 날이자 감찰원이 처음으로 점령의 굴욕을 맛본 날이었다. 오늘 이전에는 추밀원이든 문하중서 대신들이든 감찰원에 어떤 영향력도 행사한 적이 없었고, 군대가 이곳에 들어온 적도 없었다.
이전에 아무도 감찰원을 건들지 못한 이유는 이 안에 검은색 바퀴 달린 의자에 앉아 있는 절름발이 노인이 있기 때문이었다. 진평평이 살아 있는 한 누구도 함부로 이곳에 들어올 수 없었다.
감찰원 앞 계단에서 질서정연한 발걸음 소리가 울렸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계단을 통해 감찰원 대문 안으로 들어오더니 곧장 뒤쪽에 있는 넓고 조용한 대평원(大坪院)으로 갔다. 그때 감찰원 관리들의 눈에 수장들이 붙잡혀 있는 게 보였다. 아무리 정신력이 강한 감찰원 관리들이라도 자신의 수장이 잡혀 있는 모습을 보고도 침착할 수는 없었다. 놀란 이들 중 몇몇이 무의식적으로 앞으로 뛰쳐나가려 했다.
하지만 앞서 말이 나왔듯이 5처는 경도에 없었고, 6처는 언빙운의 명령에 따라 멀리 파견을 가 있어서 감찰원의 무력은 상당히 약해져 있었다. 정방형 건물 안에 남아 있는 관리들 중 대부분이 문서 업무를 맡는 관리들이었다. 항상 책상에 엎드려서 정보를 처리하는 2처 관리들은 허리 쪽에 문제가 있었고, 약물과 독약 제조에 정통한 3처 관리들은 오랜 시간 태양을 못 보는 바람에 석양만 봐도 어지러워했다.
게다가 7처와 8처 관리들도 무력에 정통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언빙운이 마지막으로 걸어 나왔다. 자신의 심복 관리들 앞에 서서 눈을 가늘 게 뜨고 주변 상황을 살펴보던 그가 금군 앞에 있는 태감과 대신들을 향해 걸어갔다.
대군을 이끌고 감찰원에 들어온 하종위가 얼음장처럼 차가운 표정을 한 언빙운을 보고는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의 옆에 있던 늙은 태감도 허리를 굽혀 인사한 뒤 언빙운에게 물었다.
“교지를 읽어도 되겠습니까?”
언빙운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먼저 여기 있는 군사들의 손에 들려 있는 무기를 내려놓도록 하게. 그렇지 않으면 나도 잠시 뒤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독살당하지 않을 거라 장담하지 못하네.”
늙은 태감이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짓다가 눈빛으로 하종위의 뜻을 물어보고는 다시 1천 명의 군대의 선봉에 서 있는 장군에게 눈짓으로 표시를 했다. 그러자 마음에 한기가 든 장군이 병사들에게 손에 들고 있는 검과 창을 내려놓으라고 명령했다.
모두가 무기를 내려놓자 현장의 분위기가 살짝 부드럽게 변했다. 하지만 언빙운은 감찰원 부하들이 한숨을 돌릴 기회를 주지 않았다. 압송된 여섯 부처 수장들은 이미 감찰원을 나와 큰 감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