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4화 손가락 하나와 감찰원의 굴복 (1)
죄인 진평평을 인계할 준비를 하라는 명령이 언빙운의 얇은 입술 안에서 나왔을 때 감찰원 밀실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들의 얼굴은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침착했지만, 눈동자는 괴벽스러운 한기로 번쩍였다. 이들 모두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언빙운을 노려보는 게 마치 눈빛으로 언빙운을 갈기갈기 찢어 버리고 싶은 모양이었다.
감찰원 여덟 처 중에서 6처 임시 수장과 지금 경국 동쪽으로 천천히 행군하고 있는 5처 수장 형과를 제외하면 모든 수장들이 이곳에 모여 있었다. 그들은 감찰원의 진정한 실권을 가진 인물들이었다. 1처 수장은 목철이었고 2처 수장은 오랜 시간 감찰원을 지켜온 원로 관리였으며, 3처 수장은 범한의 사형이었다. 그리고 7처와 8처 수장은 모두 계년조 요원이었다. 여기에 4처 수장을 겸하고 있는 언빙운까지 포함하며 밀실 안에 있는 사람들 중 거의 대부분이 범한의 심복들이었다.
물론 이들은 범한의 심복이자 진평평이 심복들이었다. 비록 이들 중 2처 수장을 제외하면 대부분 진 원장과 교류를 많이 하지는 못했지만, 모든 감찰원 관리와 밀정들처럼 이들 역시 진 원장을 주인으로 생각했고, 마음속 깊이 숭상하고 있었다.
긴 탁자에 앉아 있던 여섯 명이 동시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는 언빙운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얼굴이 까무잡잡한 목철이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는 쉰 목소리로 소리쳤다.
“언 대인, 무슨 생각이십니까?”
언빙운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여섯 수장을 바라보았다. 그는 북제에서 돌아온 뒤 복잡한 업무를 처리하길 싫어하는 진평평과 범한을 대신해서 감찰원의 모든 일을 맡아왔다. 그러니 지난 몇 년 동안 감찰원 안의 크고 작은 일들은 모두 얼음장처럼 차가운 언빙운이 모두 도맡아 처리해 온 것이 사실이었다. 게다가 언약해 집안의 공자인 그는 감찰원에서 상당한 경력을 쌓아왔다. 과거 소년 시절에 위험천만한 북제에 밀정으로 파견된 그는 이후 장 공주로 인해 신분이 들통 나 모진 고문을 당해야 했다. 바로 이런 경험들 때문에 감찰원 안에서 그의 명성은 아주 높았다.
더욱이 범한이 감찰원의 권력을 점점 장악하면서 그는 범한의 동료이자 가장 가까운 부하로 활약했다. 강남 명씨 집안의 일이나 장 공주와의 싸움이나 황궁에서의 싸움에서, 그리고 경도 반란에서 그는 정확한 정보 분석 능력과 탁월한 판단 능력을 보여주었다.
자격, 경력, 배경을 모두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임무에 대한 강인한 의지와 희생정신까지 갖춘 작은 언 공자는 단숨에 두각을 드러내며 진 원장, 범한 다음으로 높은 지위에 올랐다. 그래서 감찰원의 모든 관리들, 명의상 그와 같은 지위에 있는 각 처 수장들까지 속으로 그의 능력에 감탄하며 며칠 전 내려진 파견 명령도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언빙운이 눈꼬리를 살짝 실룩이며 안에 있는 여섯 수장을 바라보다가 당당하게 물었다.
“진평평 대인이 폐하를 시해하려 했습니다. 이에 폐하께서는 내일 능지처참할 때까지 감찰원 감옥에 가둬두고 감시하라 명령하셨습니다. 설마 대인들께서는 폐하의 명령을…… 거역할 생각이십니까?”
황궁 안에서 황제 폐하가 공격을 당했다는 소식이 퍼져나갔을 때 감찰원의 고위 관리들은 가장 먼저 이 소식을 파악할 수 있었다. 믿을 수 없는 소식이 놀란 마음을 추스르며 이들은 속으로 생각했다.
‘원장 대인이 고향을 내려가던 서른 대의 검은색 마차 행렬을 따라가지 않고 불현듯 다시 황궁에 나타난 이유가…… 황제 폐하를 시해하기 위해서였던 건가?’
밀실에 있는 여섯 명의 수장들을 비롯한 감찰원 관리들은 모두가 지금 상황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여섯 명의 수장들이 언빙운을 차가운 눈빛으로 노려보는 가운데 목철이 불같이 화를 내며 물었다.
“고향으로 내려가시던 원장 대인께서 어떻게 갑자기 황궁 안에서 등장하셨단 말입니까? 게다가 폐하를 공격하다니요? 혹시 누가 앙심을 품고 근거 없는 유언비어를 퍼뜨린 것 아닙니까? 황궁 안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겁니까?”
줄곧 침묵하고 있던 3처 수장이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말했다.
“제가 생각하기에 조사를 통해서 상황을 정확하게 밝혀내는 게 가장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러자 언빙운이 발끈하며 손바닥을 긴 탁자에 내리쳤다. ‘쾅’하는 소리가 밀실에 울려 퍼지는 동시에 언빙운의 성난 목소리가 들렸다.
“폐하께서 직접 입으로 명령하신 일입니다. 게다가 섭 장군, 요 태감, 하 대학사 등이 당시 상황을 직접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조사를 하자고요. 뭘 어떻게 조사한단 말입니까?”
그러자 가장 연장자이고 경력도 가장 오래된 2처 정보 수장이 눈을 천천히 감으며 쉰 목소리로 침울하게 말했다.
“그들이 모든 걸 직접 눈으로 봤으니 가만히 당하고만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제 눈에는…… 폐하께서 저희 감찰원을 무너뜨리려 움직이시는 걸로밖에 안 보입니다.”
늙은 2처 수장이 고개를 들고는 서슬 퍼런 눈빛을 지으며 계속 말했다.
“죄를 씌우려 한다면 구실은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습니까? 폐하께서 죽일 마음을 먹으신다면 어떤 이유든 찾아내지 못하시겠습니까? 게다가 진 원장을 제압하려 한다면 모반할 마음을 품고 폐하를 시해하려 했다는 대역죄 정도는 되어야지 다른 죄명을 가지고 제압할 수 있겠습니까?”
밀실 안에 침묵이 휩싸였다. 평소 검은 천으로 가려져 있던 유리창이 오늘은 유달리 투명해서 모두들 적응이 되지 않았다. 서쪽으로 점점 기우는 해는 황궁의 붉은색 담벼락을 비추고, 감찰원 밀실 안에까지 들어와 안을 온통 붉은색 빛으로 물들였다.
2처 수장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언빙운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언 대인께서는 제사의 최종 임명이 아직 받지 못하셨으니 저희에게 무슨 일을 해라 지시할 자격도 없는 것 아닙니까? 대인께서는…… 검은 천을 뜯어낼 자격이 없으십니다.”
밀실 안에 드리운 무거운 침묵이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두렵게 만들었다. 언빙운을 바라보고 있는 감찰원 고위 관리들은 하나 같이 그의 진심을 알고 싶어 했다. 천하를 놀라게 할 엄청난 사건 앞에서 그의 태도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 했다. 2처 수장의 말에 언빙운을 바라보고 있는 목철을 비롯한 다른 수장들의 눈에 의심하는 기색이 점점 짙어졌다.
“감찰원 안에 모든 정보는 제 손을 거칩니다. 며칠 전에 경도 수비사의 괴이한 움직임, 금군의 황궁 방비가 갑자기 삼엄해진 점, 추밀원이 비밀리에 군대를 이동하는 모습 등…… 모든 정보를 제가 대인에게 보내드렸습니다.”
2처 수장이 냉기 가득한 눈빛으로 언빙운을 쏘아 보며 계속 말했다.
“이제 보니 이 모든 것들이 폐하께서 원장 대인을 공격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대인께서는…… 왜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은 것입니까?”
방금 전까지 불같이 화를 내던 언빙운은 다시 얼음 공자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이 시려올 정도로 얼음장처럼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마치 사람 전체가 그냥 얼음으로 만들어진 것만 같았다.
“최근 보름 동안 언 대인께서는 저희 부처 사람들 중 절반가량을 서량이나 동이성으로 파견 보내셨지요. 아마 이들 중 대부분은 지금도 길 위에 있을 겁니다.”
2처 수장이 살기 어린 눈빛으로 언빙운을 노려보며 계속 말했다.
“지금 감찰원 안에 세력은 평상시의 3분의 1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도대체 무슨 속셈으로 이런 짓을 하신 겁니까? 진작이 오늘 일을 알고 황궁의 뜻에 맞춰 사전 준비를 해두신 것 아닙니까?”
“6처 검수와 자객들도 최근 며칠 동안 대부분이 경도를 떠났습니다.”
6처의 임시 수장이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언빙운을 바라보았다. 그림자 부하로 활동해온 그는 감찰원의 가장 강력한 자객 중 한 명이었다. 그가 불처럼 뜨겁고 강렬한 눈빛으로 언빙운을 노려보는 모습이 마치 얼음장처럼 차가운 언빙운을 눈빛으로 녹이려는 것 같았다.
“언 대인께서 저희에게 설명을 해주셔야겠습니다.”
감찰원 안에서 가장 힘이 강한 부처는 4처, 5처, 6처 이렇게 세 곳이었다. 그중에서 5처 흑기는 원래 경도 주변에 머물 수 없어 경도 안에서 일어나는 상황에 대처하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 경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검은색 마차 대열을 따라가고 있는 흑기는 돌아오지 않고 이대로 연경 부근에서 범한을 향해 갈 계획이었다. 또 언빙운이 수장으로 있는 4처 관리들은 각 주와 군, 다른 나라에서 흩어져 있었기 때문에 경도 안에서 발휘할 힘을 모을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6처 검수와 자객들은 대부분이 언빙운의 명령을 받아 파견을 나가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지금 감찰원 안에서 가장 강력한 무력을 발휘할 수 있는 6처의 힘은 약해질 대로 약해져 있었다.
상황을 살펴보던 목철은 너무 놀라서 심장이 덜컥하고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그가 맡은 1처는 주 임무가 경도 안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며칠 동안 이어진 감찰원의 파견 명령에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지금에야 언빙운이 암암리에 감찰원 안에 있는 세력 대부분은 밖으로 이동시켰다는 걸 깨달았다. 순간 오늘 황궁 안에서 일어난 경천동지할 만한 사건과 진 원장이 떠오른 그가 한기에 든 사람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저는 경국의 신하이자 폐하의 신하이며 감찰원의 관리입니다.”
언빙운은 다른 부처 수장들이 그가 며칠 동안 해온 일들을 폭로하는 데도 조금도 자책하거나 미안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얼음장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당당하게 긴 탁자 양옆에 서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한 글자 한 글자 강조해 말했다.
“대인들께서는 감찰원에 처음 들어왔을 때 배운 첫 문장을 잊지 마십시오!”
“모든 건 경국을 위해서다!”
언빙운이 단호히 손을 휘두르며 말했다.
“저희는 오로지 황제 폐하에게만 충성해야 합니다. 대인들이 방금 전에 한 대역무도한 말들을 저는 두 번 다시 듣고 싶지 않습니다.”
방금 전 감찰원 고위 관리들이 황궁을 뜻을 의심하고 원망하는 말을 했다는 게 밖에 알려진다면 군주를 기만하고 역심을 품었다는 죄명으로 처벌 받을 게 분명했다.
언빙운이 천천히 창가로 걸어가 눈을 찌푸리며 안으로 환히 비추는 피처럼 붉은 석양을 바라보았다. 잠시 뒤 그의 치아 사이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진평평 대인은 폐하를 시해하려 했으니 반역을 저지른 게 명백합니다. 그러니 대인들께서 만일 자기주장만 고집하며 반역자와 결탁해 무슨 일을 하려 하신다면, 본관도 무정하게 행동할 수밖에 없으니 언짢게 생각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밀실 안이 다시 침묵에 휩싸였다.
6처 임시 수장이 천천히 자신의 허리춤에 찬 쇠막대기 손잡이를 잡고는 창가에 서 있는 언빙운을 바라보았다.
“언 대인께서 제 아래 있는 사람들 대부분을 다른 곳으로 보냈지만, 남은 저희 6처 인원으로 대인을 죽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저를 죽여서 뭘 어쩌시려고요? 저 하나 죽어서 바뀌는 게 뭐가 있겠습니까?”
언빙운이 죽어도 상관없다는 듯이 냉담한 말투로 물었다.
“반역이라도 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럼 대인의 집안사람들과 대인을 따르는 검수들의 가족들을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사람들을 전부 어디로 도망이라도 보낼 생각이십니까? 지금 밖에 1만 명이 넘는 대군이 있습니다. 감찰원 감옥 안에서 원장 대인을 구한다고 한들 살아서 경도 밖으로 도망칠 수 있으실 것 같습니까?”
저녁노을을 받은 언빙운의 차가운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6처 임시 수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폐하의 교지는 이미 새벽에 도착했고, 원장이 직접 쓰신 명령서도 있습니다. 지금부터 본관이 감찰원 제3대 제사입니다! 그러니 모두 본관의 명령을 따라 주십시오. 만일 그러지 않으신다면 감찰원 조례에 따라 처리할 것입니다.”
“언 대인, 저는 대인께서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 건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