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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여년-963화 (963/1,108)

963화 어서방 안에 피어난 불꽃 (2)

진평평 앞으로 걸어오는 황제 폐하의 가슴이 살짝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보였다. 황제와 진평평은 아주 비슷한 상황에 부닥쳐 있었다. 모두 깊은 상처를 입어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며 끊임없이 피를 흘리고 있었다.

황제 폐하가 고개를 숙여 자신의 가슴에 난 끔찍한 상처를 바라보고는 눈썹 끝을 부르르 떨었다. 아마도 그는 지금과 같은 상황을 상상해 본 적이 없을 거였다. 자신감이 높은 그는 누군가가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원한이 황제 폐하의 몸에서 뿜어져 나와 사방으로 분출되었다.

황제 폐하가 손으로 진평평의 숨통을 조이고는 그의 눈동자를 빤히 노려보았다. 사람의 뼛속까지 서늘하게 만드는 독기 서린 눈빛으로 진평평을 쏘아보던 황제 폐하가 한 글자씩 천천히 말했다.

“짐은 너를 죽게 하지 않을 것이다. 너는 절대 죽을 수 없다.”

어서방 유리창 밖에서 회색 그림자가 잇따라 스쳐 지나갔다. 사람들이 어서방 나무문을 열고 들이닥쳤다. 어서방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섭중과 요 태감 등 사람들은 엄청나게 큰 굉음이 두 번 울리는 걸 똑똑하게 들었다. 순간 심상치 않음을 느낀 이들은 황제 폐하를 보호하기 위해 최대한 빠른 속도로 달려왔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섭중이 가장 일찍 도착했고, 요 태감이 그다음이었다. 앞다투어 어사방 안으로 뛰어 들어온 이들은 피비린내로 가득한 참혹한 광경을 보고는 순간 그 자리에서 그대로 굳어 버렸다. 왜냐하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눈앞에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황제 폐하가 마찬가지로 온몸에 피 칠갑을 한 진 원장의 목을 조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이 놀란 사람들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숨을 ‘헉’하고 들이쉴 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 * *

황제가 손을 풀었다. 황제의 구속에서 벗어난 진평평의 몸이 힘없이 떨어져 바닥과 부딪쳤다. 황제가 기괴한 눈빛으로 발아래 있는 옛 전우이자 동료이자 노비였던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슬픔과 원한이 가득 담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내일 능지처참해 죽일 것이니 감찰원 큰 감옥에 하옥시켜라. 만약 이 늙은 개가 몸이 3만 6천 조각으로 잘리기 전에 죽는다면 네놈들과 태의원 놈들도 같이 순장시킬 것이다.”

섭중과 요 태감은 얼음 창고에 들어간 사람처럼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렸고, 겁에 질린 얼굴로 급히 어사방으로 달려오던 하종위는 황제의 명령을 듣고는 놀라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들이 이처럼 놀란 건 눈앞에 펼쳐진 참혹한 광경 때문만은 아니었다. 진평평의 죄명 때문이거나 황제 폐하의 뼛속까지 두렵게 만드는 분노에 찬 명령 때문이 아니었다.

국조 30년 동안 최고 중신을 능지처참하는 경우는 없었다. 이건 너무나도 수치스럽게 잔인한 방법이었으니 말이다. 더구나 황제가 능지처참하려 하는 대상은 바로…… 진평평이었다.

하지만 세 사람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재빨리 황제 폐하 발아래 무릎을 꿇을 뿐 조금의 간언도 올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

황제 폐하가 마지막으로 비웃는 눈빛으로 진평평을 바라볼 때 갑자기 가슴에서 불에 덴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짐의 몸이 다친 적이 언제였지? 상처를 입지 않고 살아온 지가 얼마나 되었더라?’

황제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몸이 휘청거렸다.

“폐하께서 공격을 당하셨다. 얼른 태의를 불러라!”

어서방 안에 하 대학사가 초조하고 근심 가득한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이때 두려움 가득한 얼굴로 쓰러지려는 폐하를 부축하던 섭중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가 곁눈질로 적의로 번쩍이는 하 대학사의 눈을 바라보았다.

* * *

황궁 전체가 어수선한 가운데 태의들이 줄지어 궁전 안으로 들어가서는 줄지어 나왔다. 이따금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궁녀와 태감들이 금색 대야를 들고 나왔는데, 대야 안에 담긴 물은 하나같이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요 태감은 안에서 상처 입은 황제 폐하의 시중을 들고 있었고, 궁전을 금군과 궁정 고수들을 이끌고 황성 전체를 삼엄하게 포위했다. 그리고 섭중은 추밀원에 친필 명령서를 몇 부 보낸 뒤 궁전 밖을 지키고 있었다.

태의원의 의정이 얼굴이 땀으로 범벅이 된 채 밖으로 나오자 섭중이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폐하는 어떠신가?”

태의원 의정이 그를 발견하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폐하께서 비록 다치시기는 했지만, 맥박이 힘이 있고 씩씩해서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섭중이 미간을 찌푸리며 다급해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다만 뭐란 말이야?”

“다만…… 폐하의 근육과 피부에 박힌 쇠 부스러기들은 모두 제거했지만, 소신이 폐하의 몸이 난 상처를 봤을 때 분명 날카로운 물건들이 아직 폐하의 몸 안에 남아서 장기를 다치게 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 날카로운 물건들을 꺼내지 않는다면 아마…….”

“아마 뭐란 말이야? 폐하께서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것이냐?”

“폐하께서는 일반 사람들과는 다르게 하늘에 닿을 만큼 많은 복을 타고나신 분이십니다.”

태의원 의정이 떨리는 목소리로 폐하가 대종사 경지에 있는 사람이라는 걸 다른 방식으로 표면하며 계속 설명했다.

“그러니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겠지만, 앞으로 몸에 어떤 영향이 생길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럼 왜 그걸 꺼낼 방법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야!”

섭중은 키가 작고 오동통한 체형이라서 평상시에는 온화한 분위기를 풍겼지만, 지금처럼 화를 낼 때는 상당히 무서웠다.

“소신…… 정말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의정은 섭중의 얼굴이 갈수록 일그러지는 걸 보고는 마른침을 삼키며 재빨리 이어 말했다.

“하지만 이전에 황궁 안에서 작은 범 대인이 황제 폐하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의술을 보인 적이 있습니다. 대인께서 속히 작은 범 대인을 경도로 돌아오게 해서 폐하의 상처를 치료하게 하신다면 문제가 없을 겁니다.”

“담박공이 할 수 있단 말이냐?”

섭중은 의정의 입에서 작은 범 대인이란 호칭이 나오자 마음이 ‘쿵’하고 내려앉으면서 맥이 풀렸다. 그는 아직도 오늘 새벽부터 지금까지 경도 안팎에서 일어난 일과 황성의 어서방 안에서 일어난 일들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범한의 이름을 듣자 비로소 진평평이 폐하를 죽이려 한 사실이 경국 영토 전체에 얼마나 큰 충격을 줄 수 있는지 깨달았다.

잠시 고민하던 섭중이 살짝 마른 입술을 달싹이며 조용히 말했다.

“작은 범 대인은 당분간 경도로 돌아올 수 없다. 다른 방법은 없느냐?”

“그럼 지금 유간의관에서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는 범씨 집안 아가씨는 어떻습니까? 과거 푸른 산에서 의술을 배우기도 했고 작은 범 대인이 직접…….”

섭중이 눈을 부릅뜨면서 소리쳤다.

“당장 범씨 집안 아가씨에게 입궁하라 전하게!”

* * *

의정이 시위들과 함께 종종걸음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섭중은 그제야 자신의 등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다는 걸 발견했다. 그는 비로소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분석할 여유가 생겼다.

의정의 입에서 범한의 이름이 나오는 순간 섭중은 얼마 뒤 젊은 권신인 범한이 동이성을 접수한 공을 들고 의기양양하게 경도로 돌아올 거라는 사실을 떠올랐다.

그리고 그때 만약 황제 폐하가 진평평을 능지처참해 죽였다는 걸 알게 된다면 범한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섭중은 차가운 한기가 갑자기 자신의 주위를 감싸는 것 같았다. 지금 폐하는 중상을 입고 누워 있었고, 목숨이 끊어질 지경이던 진 원장은 태의들에게 응급처치를 받은 뒤 감찰원 큰 감옥에 갇혀 있었다.

그는 황제 폐하가 쓰러지기 마지막에 진평평을 감찰원 감옥에 하옥시키라고 명령한 이유를 비로소 깨달았다. 제왕의 권모술수는 그런 상황에서도 조금도 위력을 잃지 않았던 것이다.

오늘 경도 방비 상황은 모두 섭중이 책임지고 있었다. 그는 당연하게도 폐하의 명령에 조금도 저항할 생각이 없었지만, 견디기 힘든 무게를 느끼고 있었다.

만약 감찰원에서 반격을 하려 한다면 그는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까? 다행스러운 점은 폐하가 중상을 입기는 했지만, 의식이 혼미한 상황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폐하와 진 원장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모두 이해할 필요는 없었지만, 어서방 안에서 진 원장이 폐하를 시해하려 한 건 모두가 두 눈으로 확인한 사실이었다. 이에 어느 사람도 진 원장을 대신해서 폐하에게 관용을 베풀어 달라 호소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폐하를 시해하려 했다는 것 자체가 능치 처참해야 할 대역죄였으니 말이다.

섭중의 마음속에서 두려움이 서서히 올라왔다. 그는 지금까지 폐하와 진평평의 관계가 어떠했으며, 두 사람이 얼마나 돈독한 사이였는지를 알고 있었다. 폐하가 진 원장을 참혹하게 사형시키려는 이유는 아마도 그만큼 분노와 실망감이 크기 때문일 거였다.

다만…… 경국이 세워진 뒤 황권은 이 대륙의 수천 년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하지만 경국의 역대 황제 폐하들은 모두 신하들을 온화한 태도로 대했다. 더욱이 수십 년 동안 경국 법률은 여러 차례 수정을 거쳐서 이미 잔혹한 형벌을 폐지했고, 반역을 한 사람에 대한 처벌도 보통은 당사자를 참수하고 그 집안을 멸족시키는 것에 그쳤다.

더욱이 사대부와 조정 대신에게 황제 폐하는 항상 부드러운 태도를 보였다. 3년 전 경도 반란이 일어났을 때도 능지처참으로 처벌한 건 13성문사 통령 장덕청 한 사람뿐이었다.

하지만 감찰원 진 원장은 장덕청처럼 능지처참을 당할 죄를 지은 걸까?

섭중은 천천히 두 눈을 감으며 황제 폐하가 그의 품에서 쓰러질 때 하 대학사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를 치던 모습을 떠올렸다. 순간 그의 입가에 차가운 한기가 어렸다.

진평평이 황제 폐하를 시해하려 했다는 소식은 하종위의 입을 통해서 순식간에 황궁 전체에 퍼졌다. 경천동지할 소식에 황궁 안에 사람들이 모두 허둥지둥하는 가운데 이 소식은 순식간에 경도 전체에 퍼져나갔다.

‘황제 폐하는 이제 경국 조정의 안정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와 이 일로 범한과 감찰원이 어떤 태도를 보일지 고려하시겠지. 그리고 또…… 그동안 진 원장이 경국을 위해 세운 공로도 고려해서 결정을 내리실 거야.’

이런 생각을 하던 섭중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그는 황제 폐하의 성정을 잘 알고 있었다. 설사 황제 폐하께서 진 원장에게 영광스러운 죽음을 하사한다고 해도 황제 폐하는 진 원장 사이의 우정을 생각해서 그런 결정을 내리지 않을 거였다. 어서방에서 기괴한 무기의 소리가 울린 뒤 황제 폐하의 마음속에는 진평평에 대한 분노와 원한 말고 다른 감정은 남지 않게 되었으니 말이다.

황제 폐하가 만일 진평평을 능지처참하겠다고 한 명령을 거둔다면 그건 오로지 경국의 미래를 생각하고, 범한과 동이성이 주둔해 있는 1 황자의 심정을 고려하고, 천하의 상황을 고민해서 내린 결정일 거였다.

사형에는 아주 다양한 방법이 있었다. 게다가 능지처참은 흰 비단으로 목을 졸라 죽이거나 독주를 마시게 하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굴욕스럽고 잔인한 방법이었다. 만일 정말 진평평을 능지처참한다면 감찰원, 범한, 1 황자는 상당한 분노와 원망은 품게 될 거였다.

하지만 문제는 하 대학사가 ‘절묘한 시기’에 내지른 외침이었다. 하 대학사의 외침 때문에 오늘 일은 변할 수 없는 사실이 되어 버렸고, 황제 폐하는 천자의 존엄을 지키고 자신의 위엄을 드러내 보이기 위해서라도 이대로 일을 진행해야만 했다.

한숨을 쉬며 가을비가 내리는 황성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섭중의 마음속에 수만 가지 감정이 복잡하게 뒤섞였다. 그는 오늘 밤에 감찰원 정방형 건물 안에서 얼마나 많은 일이 일어날지 가히 짐작조차 할 수 없었고, 자신과 사비가 명령을 받아 감찰원 밖에 주둔시킨 만여 명이 달하는 정예병들이 정말 피를 흘리며 치열한 싸움을 벌이게 될지 알 수도 없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모습을 지켜보던 섭중이 마른기침을 했다. 그는 폐하의 분노가 극에 달해 명령을 바꾸지 않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가 가늠할 수 없는 사실은 이대로 상황에 변하지 않은 채 나중에 범한이 돌아온다면 경국에 어떤 혼란이 닥칠지였다.

* * *

밖에 가을비가 내려서인지 감찰원의 정방형 건물 안은 갈수록 한기가 서렸고, 분위기도 무거워졌다. 언빙운은 우두커니 창가에 서 있었다. 평소 창에 붙어 있던 검은 천들은 이미 모두 떼어져서 발아래 나뒹굴고 있었다.

황궁이 위치한 방향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가 차분하면서도 힘 있는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진평평과 범한의 신임을 받은 그는 이미 감찰원에서 상당한 힘을 장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도 감찰원 안에서 은은하게 타오르고 있는 도깨비불을 진압할 방법이 없었다.

검은색 관복을 입은 관리들의 마음속에는 검은색 도깨비불이 일렁이고 있었다.

다만 다행스럽게도 언빙운은 사전에 감찰원 관리들을 막을 충분한 조치를 해두었다. 진 원장에게 충성하는 감찰원 관리들을 그는 미리 서량로, 강남, 동이성 등 각지에 뿔뿔이 파견했다. 이미 경도를 떠나 있으니 상황을 안다고 해도 막을 수는 없을 거였다.

황궁 안에서의 소식이 감찰원에 전해졌을 때 진 원장이 폐하를 시해하려 한 소식은 이미 기정사실로 변해 있었다.

‘폐하가 중상을 입으셨다고?’

언빙운은 이게 폐하의 핑계인지 아니면 자신이 줄곧 숭상해 왔던 진 원장이 많은 사람들이 이루지 못한 일을 정말 해낸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차가운 눈동자를 돌려 감찰원 밖에 거리와 골목에 주둔해 있는 경국 정예병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반드시 감찰원을 온전히 지켜야 했고, 진평평은 반드시 범한이 경도로 돌아오기 전에 죽어야 했다.

황제 폐하와 경국에 대항할 수 있는 조직이나 사람은 없었다. 설령 감찰원이 경국의 국가 기구 중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언빙운이 고개를 돌려 방 안에 있는 일곱 명의 수령 대인들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죄인 진평평을…….”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멈춘 그가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말을 마쳤다.

“인계할 준비를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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