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9화 진평평의 복수 (1)
갈수록 목소리가 커지고 말투도 날카로워진 진평평의 말에는 경멸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럼 명씨 집안이 왜 권력가들에게 그렇게 많은 무상주를 준 것입니까? 만약 폐하께서 정말 상인들의 일에 간섭하지 않았다면 범한이 강남에 내려가서 한 일들은 뭐란 말입니까? 지금의 상인들은…… 조정이 기른 살찐 양에 불과합니다.”
“제방을 수리해서 해서 농민들을 보호하셨다고요?”
진평평의 기가 막힌다는 듯 크게 웃었다.
“……하하, 하운 총독 관아는 천하에서 가장 악독한 관아입니다. 이 노비가 몇 년 전에 조사해 폐하께 하운 총독 관아에서 자행된 부정부패를 알렸지만, 조정이 동요하는 게 싫다고 하시면서 부패하는 걸 그냥 두고 보셨지요. 그 결과가 어땠습니까? 큰 강의 제방이 무너져서 수많은 사람이 물에 빠져 목숨을 잃지 않았습니까? 경력 5년과 6년 겨울마다 얼어 죽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았습니까? 두 해 동안 범한 부부가 가지고 있던 은전을 아낌없이 동원해 어려움에 빠진 백성들을 도와주었지만, 상황은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신문에 꽃무늬 테두리를 그려 넣은 게 엄청난 일이라 생각하십니까?”
진평평이 눈을 가늘게 뜨며 비웃음 가득한 눈빛으로 경제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만들고 싶어 한 건 일반 백성들의 생각을 깨우쳐 줄 수 있는 정보를 전달하는 신분이었습니다. 궁정에서 나온 쓸데없는 추문이나 싣는 신문이 아니었단 말입니다. 신문에 이 변변치 않은 노비의 추문이 아니라 다른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고 폐하께서는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갈수록 창백하게 질려가던 황제의 안색은 이제 투명하게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진평평의 마지막 말이 전혀 들리지 않은 듯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폐하께서는 아마도 과거 담주 해안가와 성왕부에서 있었던 일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엄청난 노력을 쏟아 보완하고 실천해 왔다고 생각하시겠지요. 아마도 그 말로 범한을 설득하고 자신 스스로를 설득하실 수는 있을 겁니다.”
진평평이 냉혹한 눈동자로 황제를 노려보며 계속 말했다.
“하지만 초상화에 있는 그녀를 설득하지는 못하실 겁니다. 다만 그녀가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없을 뿐이지요. 그리고 폐하는 저도 설득하실 수 없으십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저는 지금도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오랜 시간 말없이 듣기만 하던 황제가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는 손가락은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참기 힘든 강력한 분노가 용솟음치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고 진평평을 노려보며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짐이 평생 동안 한 일 중에 가장 후회되는 일은 바로 황태자 시절에 조정 문무백관들을 감독할 독립적인 관아가 필요하다는 그녀의 말을 들은 것이다. 짐은 그녀 말대로 모두의 반대를 물리치고 부황에게 상소를 올려 감찰원을 건립을 강행했다. 짐은 길들어지지 않은 검은 개인 네놈을 감찰원 원장에 앉히라는 그녀의 말을 듣지 말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온몸에 지린내를 풍기는 고자 놈이 감찰원 첫 번째 원장이 되지는 않았을 테니까.”
경제의 목소리는 아주 담담했지만, 그 담담한 목소리 안에는 무궁무진한 한기가 섞여 있었다.
잠자코 경제의 말을 듣고 있던 진평평이 한참 뒤에 고개를 들더니 조금의 흔들림도 없는 평온한 말투로 말했다.
“감찰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노비가 수십 년 동안 감찰원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해왔지만, 아마 지금의 감찰원은 그녀가 보고 싶어 했던 감찰원이 아닐 겁니다.”
황제가 절름발이 노인이 하는 말을 가만히 들었다.
“감찰원은 문무백관을 감독하는 기구이지 지금처럼 기형적으로 강력한 특수 기구가 되어서는 안 됐습니다. 더구나 감찰원은 원래 폐하의 기구도 아니었어요.”
진평평이 갑자기 보기 흉한 웃음을 지으며 두 눈으로 황제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감찰원 문 앞에 세워진 비석이 뭐라 쓰여 있는지 기억하십니까?”
영원히 황금빛으로 반짝일 비석의 글귀는 감찰원의 음침한 정방형 건물 앞에서 항상 빛을 내뿜으며 많은 사람의 눈길을 끌었지만, 글자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사람은 없었다. 감찰원 관리들은 하나 같이 비석에 적힌 글을 전부 외우고 있었지만, 글 안에 숨겨진 진짜 의미를 알지는 못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비석을 세웠을 당시에 참여 했던 사람들은 아마도 비석에 적힌 전문을 모두 알고 있겠지만 황제나 다른 사람이나 무의식적으로 이 점을 잊어버렸다는 사실이었다. 비석에 적힌 글귀를 전부 다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천하 전체를 통틀어서 진평평과 감찰원에 처음 들어온 사람들뿐이었다.
“나는 경국의 모든 백성이 속박당하지 않기를 바란다. 타인이 학대당할 때 굴복하지 않고, 재난과 악의 침략을 받았을 때 좌절하지 않기를 바란다. 잘못된 일이 있다면 두려워 말고 그것을 바로 잡고자 하는 마음을 지니기 바란다. 흉포한 도적들에게 아첨하지 않고…….”
사실 섭경미가 감찰원에 남긴 글귀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뒤에 이어지는 글귀들이 더 있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역사의 먼지 속에 파묻혀 버리고 말았다.
황제 폐하를 노려보는 진평평이 마른 입술을 살짝 떨면서 한 글자 한 글자 강조하며 천천히 뒤에 이어지는 글귀를 읊기 시작했다.
“나는 경국의 국민들 모두가 왕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자신’이라는 영토의 통치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왕이 되기를 바란다.”
“폐하, 저도 왕입니다.”
진평평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황제를 쏘아보며 모든 집념을 쏟아부어 말했다.
“감찰원이…… 처음 세워졌을 때 역할은 폐하를 감찰하는 것이었습니다.”
어서방 안에 또 다시 침묵이 찾아 들었다. 오늘 날씨는 동이 트기 전 가장 어두운 시각부터 시시각각 변했다. 지평선에서 모습을 드러낸 태양은 따뜻한 새벽빛을 비추기도 전에 먹구름에 먹혀 버렸고, 어느덧 하늘에서는 가을비가 솜털처럼 보슬보슬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어서방 안의 상황도 오늘 날씨와 같았다. 목소리가 때로는 우렁차게 커졌다가 때로는 작아졌고, 분위기도 때로는 얼음처럼 차분해졌다가 때로는 불처럼 격렬해졌다. 숨이 막힐 정도로 긴장되는 분위기가 이어지기도 했고, 피가 얼어붙을 것처럼 살벌한 한기가 가득해지기도 했다. 때로는 지난 일을 떠올리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가 마음을 찌르는 지난 일에 살기등등해지기도 했다.
경국의 황제 폐하와 진평평은 평범한 군신 관계가 아니었기에 두 사람 사이의 싸움도 일반 싸움과는 다른 점이 많았다. 지금까지 진평평은 단지 말만 했을 뿐이지만, 그는 이 말로 상대방의 연약한 심장을 드러내 베고 찔러 만신창이로 만들려 했다.
그래서 그런지 경제의 양쪽 뺨은 병든 사람처럼 창백해졌고, 눈동자는 흐릿하다 못해서 텅 비어 보였다. 뺨이 약간 야윈데다가 안색까지 창백해지고 눈동자까지 흐리멍덩해지자 인상이 더욱 차갑게 보였다.
아무도 지금 경제의 마음속에 사나운 파도가 거칠게 일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가 가만히 진평평을 바라보다가 한참 뒤에 나지막이 말했다.
“네놈이 무슨 방법으로 짐을…… 감찰한다는 것이냐?”
그가 쌀쌀맞은 목소리로 계속 물었다.
“짐이 모든 걸 버리면서까지 추구해 온 것이 무엇인지 네놈들은 생각이나 해본 적이 있느냐?”
제왕인 경제가 늙은 검은 개에 불과한 진평평을 바라보며 경시하는 눈빛을 지었다. 하지만 진평평은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두 손을 검은색 바퀴 달린 의자 손잡이가 가볍게 올려놓고는 똑같이 차갑고 경시하는 눈빛으로 경제를 바라보았다. 군신 사이인 두 사람이 똑같이 서로를 차가운 눈빛으로 노려보며, 서로를 경시하고 있었고, 어서방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폐하가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던 경국이 앞으로 얼마나 위대해지든 폐하께서 절대 바꾸지 못할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아마도 폐하께서 가장 인정하기 싫어하실 사실이지요.”
진평평이 눈꺼풀을 살짝 늘어뜨리며 말을 이어갔다.
“경국이 이처럼 강대해진 것은 전부 그녀가 남긴 것들에 혜택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녀가 남긴 황실 금고에서 끊임없이 나라를 지탱하는데 필요한 은전이 나오지 않았다면, 만일 그녀가 남긴 감찰원에서 폐하가 조정의 균형을 통제하는 걸 돕지 않았다면, 어찌 폐하께서 매년 출정을 나가시면서 이 모든 걸 지금까지 지탱하실 수 있으셨겠습니까?”
“폐하께서는 그녀가 없어도 모든 일을 잘 할 수 있으며, 심지어 그녀가 살아 있었을 때보다 더 완벽하게 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 하시지요.”
진평평이 천천히 고개를 들고는 살짝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폐하께서는 자신의 머리 위에 드리운 그녀라는 하늘을 벗겨내고 싶어 하시지만, 그건 그저 폐하께서 여전히 그녀에게 의지하고 있다는 걸 증명하는 것일 뿐입니다.”
“폐하는 그녀보다 한참 부족하십니다.”
진평평이 무척이나 침착하고 자연스러운 말투로 황제의 심장 가장 깊은 곳을 찔렀다.
황제는 순간 3년 전 천둥이 치고 폭우가 내리던 밤이 떠올랐다. 그날 어서방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광신궁 안에서 그는 직접 이운예의 목을 조르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누이를 향해서 절대 섭경미를 능가할 수 없을 거라고 말했었다.
마음이 움찔한 경제의 안색이 점점 더 하얗게 변하더니 얇고 무정한 입술을 잔뜩 오므린 채 온기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역사는 항상 살아 있는 사람에 의해서 쓰이는 법. 짐은 지금까지 살아 있고 그녀는 죽었으니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폐하께서는 아무것도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폐하께서도 인제 그만 자신이 무정한 냉혈한인데다가 열등감과 허위와 가식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라는 걸 인정해야…….”
진평평의 얼굴이 미소가 드리웠다.
“충분한 거지요.”
“네놈은 그녀가 정말 선녀였다고 생각하는 보구나? 속세를 초월한 한없이 자비로운 존재였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황제가 갑자기 비꼬는 말투로 물었다.
“네놈은 스스로 떠올리고 싶은 모습으로만 그녀를 상상하고 있지는 않은가? 아니, 네놈뿐만이 아니지. 범건과 정왕, 심지어는 범한까지도 짐은 냉정하고 무정한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그녀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상상하고 있지 않은가. 그녀는 선녀도 아니었고, 세상을 구원할 사람은 더더욱 아니었네.”
황제가 나지막이 한숨을 쉬며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는 말을 이어갔다.
“그녀는 그저 네놈들이, 아니 이전에 짐을 포함해서 우리들이 상상해 만들어낸 사람일 뿐이네. 짐은 종종 그녀가 정말 이 세상에 존재하긴 했던 건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네. 그저 우리의 상상이 모여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었을까 의심이 드는 거지.”
진평평이 냉정하게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폐하 역시 본인의 의심이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아시지 않습니까.”
“네놈은 여전히 상상 속에 빠져 있구나!”
얼굴이 급격히 굳은 황제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는 진평평을 향해 말했다.
“네놈들은 무능하고 나약해서 이 세상에 대한 온갖 아름다운 상상들을 그녀에게 투영시킨 거다. 그래서 자네들의 마음속에서 그녀는 조금의 어두운 부분도 없이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것이야. 대단히 총명하고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한 지략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백성의 고통에 공감할 줄 알았지만, 세상일은 전혀 모르는 유치한 여자였어. 그리고 한편으로는 현실적인 방법을 가지고 이상을 실현시킬 줄 아는 사람이기도 했지.”
황제가 차가운 눈빛을 쏘아대며 계속 말했다.
“이게 어떻게 사람일 수 있는가? 조금의 허점이나 약점도 없는 사람은 있을 수 없네. 이런 사람을…… 사람이라 할 수 있는가?”
그가 갑자기 크게 웃었다. 슬픔과 포악함이 가득 담긴 소리로 웃던 그가 순간 웃음을 멈추고는 다시 말했다.
“안타깝게도 세상에 그런 사람이 있을 수는 없네. 그건 불가능해. 그녀는 그냥 평범한 사람이었을 뿐이야.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슬퍼할 줄 아는 희로애락을 가진 사람 말일세. 때로는 당당하고 때로는 음흉스러우면서 비범한 음모를 세울 줄 아는 평범한 사람이었네. 그런 그녀가 짐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