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3화 쓸쓸히 성안으로 들어오는 마차 한 대 (2)
아무 말 없이 검은색 마차가 정양문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사비는 이윽고 천천히 닫히는 성문을 바라보면서 속으로 이로써 자신의 임무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병력을 이끌고 출발하기 전에 그는 셀 수도 없이 많은 경도 수비사 기병들이 죽어야지만, 겨우 임무를 완성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 임무가 이렇게 손쉽게 끝난 것이다. 그는 이후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걱정하지 않았다. 황제 폐하가 그에게 임무를 제대로 완수하지못했다고 질책할까 걱정하지도 않았다. 그저 마음속에서 일렁이는 복잡한 감정을 느끼며 굳게 닫힌 두꺼운 성문을 바라볼 뿐이었다.
경국 조정 문신들은 감찰원에 대해서, 감찰원을 이끄는 절름발이 노인에 대해서 두려워하고 무척이나 싫어했다. 문신들은 절름발이 노인을 사람만 만나면 시비를 걸고 무는 사나운 검은 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황제 폐하의 검은 개를 만나는 걸 두려워하고 싫어했다. 하지만 군대 쪽 중신들이 보기에 감찰원은 가장 충실하고 신뢰할 힘을 가진 동료였다. 물론 이들 역시 진평평을 두려워하고 꺼렸다. 하지만 지금 사비는 감찰원과 군대가 피를 튀기는 치열한 싸움을 하지 않도록 기꺼이 홀로 경도로 돌아온 절름발이 노인에게 진심으로 탄복하고 있었다.
한참 동안 말없이 성문을 바라보던 사비가 손을 천천히 내저었다. 그러자 각자 복잡한 감정에 휩싸여 있는 3천여 명의 경도 수비사 기병들이 천천히 두꺼운 성벽과 성문을 등지고 떠났다.
* * *
검은색 마차가 천천히 정양문 안으로 들어오자 두꺼운 성문이 서서히 닫혔고, 몇몇 사람들이 마차에 접근했다. 날이 밝기 전 가장 어두운 시간이라 마차에 접근하는 사람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정양문 앞을 지키고 있던 사람들은 사실 경국 조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인물들이었다. 한 사람은 궁정에서 나온 요 내관이었고, 다른 한 명은 천하 병력을 통제하고 있는 추밀원 정사 섭중이었으며, 나머지 한 명은 문하중서에서 나온 대학사 하종위였다. 세 사람이 입을 굳게 다문 채 조용히 마차에 접근했다.
침묵 속에서 맨 처음 입을 연 사람은 섭중이었다. 그가 마차를 바라보며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원장 대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그러자 요 태감이 나지막이 말했다.
“원장 대인, 이 노비를 따라 입궁해 폐하를 뵈시지요.”
반면 하종위는 이 상황에서 자신은 침묵을 지켜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평온한 얼굴로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 동안 마차 안에서도 아무 말도 들리지 않다가 나지막한 한숨 소리와 함께 온화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 노인이 경도로 돌아오는 바람에 세 분을 성가시게 만들었군요.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잠시 뒤 궁정 태감과 군대 쪽 고수들의 호송을 받으며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 마차는 정양문 대로를 따라 경도 정중앙에 있는 황궁으로 향했다. 감찰원은 아무래도 자신들의 늙은 주인이 가던 길을 멈추고 경도로 돌아와 머리끝까지 화가나 살기를 내뿜고 있는 황제 폐하를 만나러 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조정의 대신들이나 상황 변화에 극도로 예민한 감각을 가진 경도 백성들도 이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동이 트기 직전 가장 어두운 시간 정양문 대로 양옆에 심어진 나무들은 마치 물 위를 떠다니는 돛단배처럼 서늘한 가을바람에 이리저리 몸을 출렁였다.
황궁까지 곧게 뻗은 대로 양쪽에는 단 한 명의 행인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가장 높은 등급의 보안 조처가 내려진 모양이었다.
광활하고 적막한 대로 위에서 검은색 마차 한 대만 외로이 앞을 향해 나아갔다.
이윽고 웅장한 황궁 앞에 도착하자 땅에 묶여 있던 태양이 마침내 떠오르기 시작했다. 햇빛을 받은 황성이 불처럼 강렬한 금빛을 내뿜는 가운데, 검은색 마차가 그 안으로 서서히 들어갔다.
* * *
어서방 탁자 위에는 얇고 두꺼운 각종 보고서들이 올려져 있었다. 지난 며칠 동안 황제 폐하는 이 보고서들을 셀 수도 없을 만큼 읽어본 뒤에 마치 잊어버린 것처럼 이곳에 가만히 올려두고 있었다. 보고서 위에는 먼지가 쌓여 있지는 않았지만, 초가을 선선하고 건조한 공기에 종이들이 불에 그슬린 것처럼 뒤틀어져 있었다.
깊고 뜨거운 눈빛이 천천히 보고서에서 떠나 어둑어둑한 밖으로 향했다. 마치 곧 궁전 안에 다다를 눈을 멀게 만들 정도로 강렬한 새벽빛을 직접 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동쪽에서 비추는 빛은 아직 경도성 성벽 가장 높은 청색 벽돌을 비추고 있을 뿐 성벽 너머 황궁 담벽과 어둠에 휩싸여 있는 황궁 안을 비추지는 못했다.
무표정한 얼굴을 한 경제가 옆에 놓인 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차는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지만, 옆에서 시중을 드는 어린 태감들은 평소처럼 뜨거운 물로 바꿀 엄두를 내질 못했다.
물고기가 자신이 있는 물이 찬지 뜨거운지 본능적으로 알 수 있는 것처럼 경제 역시 자신이 밤새도록 마신 차가 차갑게 식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밤새도록 차갑게 식은 차를 마셨지만, 불에 덴 듯이 뜨거운 가슴을 식힐 수는 없었다.
거센 화염처럼 가슴 속에 일렁이는 분노를 참기도 힘들었지만,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한 고통이 더 견디기 힘들었다. 지금껏 살면서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배신감과 굴욕감에 경제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 늙은 개가 지난 수십 년 동안 짐을 속여 왔다니!’
경제는 마음속 분노가 커질수록 오히려 침착해져 갔다. 이제는 며칠 전에처럼 불같이 화를 내지 않았다. 그의 얼굴과 눈빛은 마치 얼어붙은 연못처럼 무척이나 차갑고, 침착했다. 말라버린 우물이 아니라 얼어붙은 물처럼 차가운 냉기를 내뿜었다.
뼈가 시릴 정도로 차가운 냉기가 어서방 주변에까지 뿜어져 나오자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내면 깊은 곳에서 샘솟는 두려움에 진저리를 쳤다.
그때 멀리서 익숙한 소리가 나지막이 들려왔다. 바로 바퀴 달린 의자가 황궁의 청색 돌판과 부딪치면서 나는 소리였다. 청색 돌판의 넓이도 고정적이었고, 특별히 제작된 바퀴 달린 의자의 규격도 고정적이었기에 바퀴가 청색 돌판과 마찰하면서 나는 소리의 리듬과 시간도 규칙적이었다.
수십 년 동안 조용한 황궁 안에서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이 들렸던 규칙적인 소리였다. 매번 경제가 큰일을 하려 할 때나 아니면…… 말동무가 필요할 때 바퀴 달린 의자 소리는 황궁 밖에서부터 들려와 안으로 퍼졌고, 이후 어서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 보니 최근 몇 년 동안 바퀴 달린 의자 소리를 황궁 안에서 좀처럼 들을 수가 없었군. 저 늙은 검은 개는 진원에서 한가로운 생활을 만끽하면서 짐이 차가운 황궁 안에서 홀로 고통받도록 내버려 두었지. 3년 전에 운예와 늙은 괴물 세 명을 처리할 때 바퀴 달린 의자가 두 차례 입궁한 걸 빼면…….’
무관심한 표정으로 수년 동안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던 경제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가 침착하면서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어서방의 굳게 닫힌 나무문을 바라보았을 때 바퀴 달린 의자와 청색 돌판의 마찰 소리도 어서방 앞에서 멈췄다.
황제의 눈빛이 순간 복잡 미묘하게 변했다.
요 태감이 떨리는 목소리로 어서방 안에다가 보고를 올렸다. 바퀴 달린 의자에 앉아 있는 인물에 대한 존중을 표현하려고 일부러 겁에 질린 목소리를 내는 게 아니었다. 사실 대종사인 경제가 뿜어내는 한기로 인해서 어서방 안과 밖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마음이 통제를 당한 상황이었다.
어서방 문이 열리자 몇몇 어린 태감들이 겁에 잔뜩 질려서는 조심히 검은색 바퀴 달린 의자를 밀고 들어왔다. 이후 요 태감의 인솔 하에 가장 빠른 속도로 어서방을 빠져나갔다. 이후 궁정 태감들은 어서방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한기를 피해 되도록 멀리 도망을 쳤다. 이들은 어서방에서 되도록 멀리 떨어지기 위해서 아치형 돌문을 통과해 태극전이 있는 곳까지 달려갔다.
요 태감이 숨을 헐떡이며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섭중과 하 대학사를 바라본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표정으로 어떤 암시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섭중이 잔뜩 어두워진 얼굴로 남몰래 한숨을 쉬었다.
경국에서 중요한 일을 담당하고 있는 이들은 검은색 마차에 탄 노인을 어서방 안에까지 호송하면 되도록 멀리 숨어서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들은 황제 폐하가 숨이 막히도록 살벌한 한기를 내뿜는 이유가 바퀴 달린 의자에 앉은 노인과 자신이 나누는 대화를 다른 사람이 듣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들과는 다르게 진 원장은 무척이나 침착했고, 표정도 온화했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은 진 원장이 결코 쉽게 봐서는 안 될 인물이며,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섬뜩한 일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무서운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들 어서방 안에 있는 황제 폐하의 안위를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황제 폐하는 대종사였다. 대동산 사건 이후 천하에서 그를 해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 * *
어서방 문이 굳게 닫히자 밖에 빛, 공기, 소리, 냄새뿐만 아니라 가을의 기운까지도 모두 차단되었다. 안에는 평상에 곧은 자세로 앉아 있는 황제 폐하와 바퀴 달린 의자에 편안하게 앉아 있는 진평평만 남게 되었다.
오랜 시간 군신 관계를 유지해온 두 사람은 어서방 안으로 들어가 경국에 비바람이 일어나는 걸 막았다. 왜냐하면, 지난 수십 년 동안 경국에 불어 닥친 비바람은 모두 두 사람이 일으킨 것이었기 때문이다.
경제가 바퀴 달린 의자에 앉아 있는 노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렇게 황제는 현공 사당의 국화꽃처럼 얼굴에 자글자글 주름이 핀 진평평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종위가 범한을 공격한 마음을 품고 암암리에 고달을 조사하고 있었다는 걸 짐도 진작 알고 궁정에서 세 명의 사람을 파견해 보냈다. 며칠 전에 자네가 달주를 지날 때 하칠간도 그곳에 있었을 텐데 만나지 못했는가?”
만약 다른 사람들이 옆에서 이 장면을 보았다면, 놀라움을 그치 못했을 것이다. 황제 폐하는 많은 인원을 동원해 황궁 방어 체계를 최고 단계까지 올리고 중요 관아에 전투태세를 갖추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감찰원 얼음 공자에게 내부를 통제하라고 명령한 뒤에야 비로소 검은색 바퀴 달린 의자에 앉은 절름발이 노인을 경도로 돌아오게 만들 수 있었다. 이제 두 사람의 사이가 예전과 같을 수 없다는 걸 모두가 아는 상황에서 황제 폐하가 진평평에게 한 첫 말은 뜻밖에도 이 일에서 보잘것없는 역할을 맡은 사람의 이름을 언급하는 거였다.
하지만 진평평은 의외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황제 폐하가 어떤 인물인지 잘 알고 있었기에 옅은 미소를 지으며 송곳처럼 날카로우면서 거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제가 성왕부로 파견되었을 때 하칠간은 어린아이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니 달주성 밖에서 마주쳤어도 저를 기억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기억하지 못해도 이상할 게 없겠군. 진오상이란 이름이 황궁 안에서 사라진 지도 이미 오래되었으니.”
황제 폐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용포 소매를 휘둘러 탁자에 놓인 찻잔을 진평평 앞으로 날려 보냈다.
찻잔을 받은 진평평이 공손히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아주 뜨거운 차를 들이켰다. 그가 편안한 숨을 내쉬며 나지막이 말했다.
“차가 따뜻해서 참 좋습니다.”
황제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차가운 찻잔을 들어 조금 마시고는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사람이 떠나면 차가 식는다는 말이 있듯이 만나지 않으면 잊기 마련이지. 하지만 하칠간이 어찌 자네를 알지 못할 수가 있겠는가?”
진평평이 고개를 저으며 부드러운 말투로 대답했다.
“홍사상 말고 제가 이전에 황궁에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황제가 눈꺼풀을 살짝 늘어뜨리고는 비웃는 목소리로 넌지시 말했다.
“하긴 나중에 자네는 가짜 수염을 턱 아래 붙이고 다녔지. 자네는…… 자신의 원래 태감이었다는 걸 사람들이 알게 하고 싶지 않아 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