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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여년-944화 (944/1,108)

944화 그 늙은 개는 반드시 살아서 돌아와야 한다 (2)

만약 경국의 위대한 황제 폐하가 가장 높은 곳에서 태양처럼 눈 부시는 광채를 내뿜으며 천하를 다스린다면, 감찰원을 수십 년 동안 관리해온 진평평은 어둠 속에서 천하를 다스려 왔다고 할 수 있었다. 줄곧 소리 없이 폐하의 빛 뒤편에 숨어서 폐하가 직접 하기 불편한 일들을 대신 처리해온 그는 한마디로 말해서 경국을 위해 온갖 어두운 일들은 다 해온 사람이었다.

수십 년 동안 경국 조정에서 문관들은 감찰원과 싸움을 벌여왔지만, 전임 재상인 임약보든 문하중서와 도찰원이든 누구도 조정에서 진평평이 가진 입지를 흔들지 못했다. 그리고 어느 사람도 진평평에 대한 폐하의 굳건한 믿음과 총애를 약하게 만들지 못했다.

그래서 관리들은 이미 폐하와 진평평의 사이를 갈라놓을 수 없다고 체념한 상태였다. 폐하와 진평평 사이의 관계는 평범한 군신 관계가 아니었다. 그래서 모두들 폐하와 진평평은 빛과 어둠처럼 백발이 되어 죽을 때까지 서로에게 의지하며 함께할 거라고 생각했다.

모두들 빛과 어둠이 충돌하는 상황을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었다. 이게 바로 오늘 궁전이 놀라 두려움에 떨고 섭중에 초조해하고 불안해하는 이유였다. 만일 정말 폐하와 진평평이 정면으로 충돌한다면 그 피해가 어느 정도 일지 가늠할 수도 없었고, 대군을 동원하다고 하더라도 진압에 성공할지 확신할 수 없었다.

내막을 알고 있는 중에서도 가장 마음이 무거운 사람은 군대를 이끌고 동남쪽으로 행진하고 있는 사비였다. 그는 궁전과 마찬가지로 폐하가 진 원장을 공격하려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폐하가 어째서 모든 직무에서 물러난 뒤 고향에 내려가고 있는 진 원장을 공격하려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이 일을 왜 자신에게 맡겼냐는 것이었다.

사비는 진평평을 만난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진저리를 쳤다. 초가을이라 아직 바람이 따뜻했음에도 떨리는 몸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는 차라리 서호에 가서 오랑캐들을 죽이거나 용병술의 신이라는 북제 상삼호와 싸울지언정 겨우 수백 명의 사람들과 수십 명의 여자들을 데리고 고향으로 내려가고 있는 절름발이 노인을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사비는 지금 4천 명의 정예병을 데리고 가고 있었다. 달주(達州)에서 멀지 않은 산에 도착한 사비가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지으며 그 순간이 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나마 다행인 건 폐하가 아직 뜻을 분명하게 밝히지 않아서 병력을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였다. 그는 영원히 병력을 사용하는 일이 없기를 바랐다. 폐하가 마음을 돌려서 자신의 목숨을 지킬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진 원장을 잡아서 경도로 데리고 오라는 명령을 받은 사비는 경도성을 나가는 순간이 이미 명령이 바뀔 수도 있다고 자각하고 있었다.

말 위에 앉아서 경도 쪽 방향을 바라보던 그가 눈을 가늘게 뜨며 속으로 폐하의 마지막 명령이 영원히 오지 않기를 빌었다.

* * *

숨이 막힐 듯이 조용한 어서방 안에서 요 태감은 겁에 질려 떨면서도 자신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경국 장군, 관리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의 바람처럼 그 역시 폐하가 진평평에 대한 마음을 바꾸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홍사상이 세상을 떠난 뒤 경국 궁정을 책임지게 된 요 태감은 내막을 많이 알고 있어 황제 폐하가 진 원장에게 갑자기 살기를 드러내는 이유가 뭔지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겁에 질려 오들오들 떨 뿐 감히 간언도 올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

황제 폐하는 여전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의 눈동자에서 자신도 모르게 망연자실한 모습이 비쳤다. 하늘과 같은 마음을 가진 황제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는 건 그동안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다. 아마도 황제를 이렇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린 진평평뿐일 거였다. 평생 동안 충성을 다하며 여러 차례 황제 폐하의 목숨을 구했을 뿐만 아니라 경국을 발전을 위해 헌신하며 무수히 많은 공을 세운 진평평만이 황제를 망연자실하게 만들 수 있었다.

그의 앞에는 궁정이 조사해 작성한 얇은 보고서 몇 개가 놓여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경도 반란 중에 황궁에서 일어난 3 황자 암살 미수 사건을 조사한 거였고, 다른 하나는 현공 사당 사건을 암암리에 조사한 것이었다. 더욱이 보고서에는 올해 봄에 동이성 성주부 안에서 감찰원 6처의 진정한 수장인 그림자와 사고검이 싸웠던 사실도 언급되어 있었다.

그리고 세 번째 보고서에는 범한이 남몰래 중상을 입은 그림자를 강남으로 보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고, 네 번째 보고서에는 과거 산골짜기에서 범한이 공격을 받은 날 감찰원의 수상한 동향과 수성용 쇠뇌 두 대가 황실 금고 병 작업장에서 운송된 과정이 적혀 있었다.

네 번째 조사 보고서는 두께가 가장 두꺼웠지만, 기재된 내용은 아주 모호했다. 궁정과 조정이 암암리에 꼬박 3년을 조사했지만, 진평평이 감찰원을 동원해 철저하게 감춘 진실을 찾아낼 수 없었다. 경제도 약간의 수상한 낌새만 감지했을 뿐 실체적인 진실에 다가서지는 못했다. 이 보고서에 언급된 경도 회춘당 화재 사건과 감찰원 3처에 소속된 어느 사람이 모반하고 도망간 사건은 직접 황궁과 황태자, 장 공주, 그리고 뇌우가 쏟아지던 그날 밤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책상에는 다섯 번째 보고서와 여섯 번째 보고서도 있었다…….

“셋째와 둘째, 그리고 승건이와 운예는…….”

안색이 살짝 하얗게 질린 황제가 얇은 보고서를 들어 옆에 놓고는 네 사람에 대해 언급했다.

마지막으로 그가 보고서 몇 개를 집어 들더니 손가락에 힘을 살짝 쥐어 옆으로 던지고는 한숨을 쉬었다.

“이건 안지와 관련된 내용이군.”

천천히 고개를 든 황제의 눈에는 아까 보이던 망연자실한 모습은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그가 옅은 슬픔이 담긴 눈빛으로 자조 섞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짐의 가장 충성스러운 신하가 짐의 모든 아들을 죽이려 했고, 짐이 아들들을 죽이게끔 몰아세우기까지 했군.”

그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가장 의외인 건 그 늙은 개새끼가 안지까지도 죽이려 했던 거네. 안지의 운이 좋지 않았다면 진작 그놈 손에 죽었을 거야.”

경제가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숨을 깊이 들이켜고는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

“그 늙은 개를 잡아서 데리고 오게. 도대체 왜 이런 일을 벌인 건지 직접 물어봐야겠네.”

요 태감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깊이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는 곧장 어서방을 나가려 했지만, 두 다리가 후들후들 제대로 걷기가 힘들었다. 그는 어느 사람보다도 황제 폐하의 기분을 이해했다. 폐하가 마지막이 한 말에는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강인한 살기로 가득했다.

요 태감이 어서방을 나가기 직전 뒤에서 황제의 살기등등한 목소리가 들렸다.

“언빙운에게 짐을 보러오라고 전하고, 사비에게는 살려서 데리고 오라고 전하게.”

황제의 안색은 여전히 차갑게 굳어 있었다.

“만약 그 늙은 개를 죽여서 데리고 온다면 사비 그놈도 살아서 짐을 보러 올 수 없을 거야! 그 늙은 개를 잡아서 데리고 오면 짐이 도대체 왜 이런 짓을 벌인 건지 직접 물어볼 것이다!”

황제가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손바닥으로 탁자를 쳤다. 분노에 찬 공격에 산산조각 부서진 탁자가 가루가 되어 공기 중에 흩어졌다.

* * *

정오 무렵 눈을 찌르는 햇살을 막기 위해 손을 들어 이마를 가린 하 대학사 얼굴에서 땀이 주르륵 흘렀다. 곧장 종종걸음으로 재빨리 조용한 황궁을 떠나 가마에 오른 그는 문하중서로 가지 않고 도찰원 관아로 향했다.

대문을 넘어 관아 안으로 들어간 자신의 관복이 어느새 땀을 흠뻑 젖어 있는 걸 발견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정신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홀로 앉아 있던 그는 비로소 약간 정신이 들었다.

방금 전 황제 폐하는 부름을 받고 어서방을 찾아간 그는 짧은 지시를 듣고는 비로소 자신이 몰래 세운 계획을 황제 폐하가 이미 모두 알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황제 폐하는 그가 뭘 조사하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묻거나 관여하려 하지 않았다. 그저 차가운 눈빛으로 노려볼 뿐이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하 대학사는 두려움에 온몸이 오싹해졌다. 영민한 황제 폐하라면 자신이 이 일을 조사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이상 부정한 생각을 품고 있다는 것도 눈치챘을 거였다.

하지만 하종위의 예상과는 다르게 황제 폐하는 이 일로 그를 질책하지 않았다. 그저 약간은 지친 목소리로 몇 마디 지시를 내리고는 내쫓았다.

시원한 도찰원 관아 안에서 하종위는 땀을 식히며 깊은 생각에 감겼다.

‘폐하가 화를 내지 않으신 이유가 뭐지? 설마 달주에서 궁정과 형부 관아가 무언가를 찾아낸 것인가? 호위 고달과 절대 죽었을 리 없는 왕계년의 행적이 드러난 건가?’

달주는 경도와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지만 보고가 전해지려면 그래도 시간이 필요했다. 하종위는 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잔뜩 흥분하고 긴장한 상태로 그곳의 소식이 들려오기만을 기다렸다.

사실 그는 상황이 이렇게 될 때까지도 자신이 고달을 잡으려 움직였던 일로 인해서 아주 우연히도 마침 고향을 내려가던 진 원장을 성 밖에서 막아 세웠을 뿐암 아니라 동시에 진 원장에게 나설 기회를 주었다는 걸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물론 이건 황제 폐하가 나설 기회이기도 했다.

달주에서 발생한 일의 내막을 모르는 건 하종위 만이 아니었다. 문하중서의 호 대학사와 6부 3사의 경국 관리들도 오늘 경국에 엄청난 혼란이 생기리라는 걸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물론 관리들은 변화에 예민한 만큼 이상한 낌새를 맡기는 했지만, 그것이 고향으로 내려간 진 원장과 관련이 있을 거라는 건 아무도 알지 못했다.

아무리 총명한 사람이라도 감히 황제 폐하와 진평평 사이에 문제가 생겼다는 생각을 할 수 없는 만큼 일반 관리들은 더더욱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감찰원 관리들을 포함해서 세상 누구도 진평평의 경국을 아끼는 마음과 황제 폐하를 향한 충성심을 의심하지 않았다. 황제 폐하에게 충성을 다하고 경국의 이익을 위해 헌신한다는 건 처음 감찰원에 들어온 관리들과 밀정들이 가장 먼저 받는 교육이었다.

그래서 수십 년 동안 진평평을 필두로 한 검은 관복을 입은 감찰원 관리들은 이 목표를 지키며 경국이 더 강대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황제 폐하의 안위를 위해 헌신해 왔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늘 감찰원이 황제 폐하가 처단하고 싶어 하는 대상으로 전락했다는 걸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물론 모두가 수상한 낌새를 알아차리지 못한 건 아니었다. 민감한 감각을 가진 몇몇 사람들은 수상한 낌새의 원인에 대해 탐색을 하기 시작했다. 바로, 천하에서 가장 강력한 정보 체계를 가지고 특수 임무를 수행하는 기구 안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감찰원 관리들은 오늘 경도 안에서 나타난 이상한 동향과 여러 수상한 움직임들을 놓치지 않고 포착했다. 금군의 방어 체계가 평상시와 다르게 최고 단계까지 높아진 점과 경도 수비사가 갑자기 병력을 이동시킨 점, 그리고 갑작스럽게 입궁한 하 대학사가 넋이 나간 모습으로 궁에서 나온 모습 등을 밀정들은 빠짐없이 포착했고, 각기 다른 경로를 통해 정방형 검은 건물에 정보를 전달했다.

감찰원 여덟 처 중에서 5처 흑기를 제외한 모든 수장들이 검은색 감찰원 건물에 있었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 무렵 수집된 모든 정보들이 2처에 모였고, 각기 다른 정보 담당 관리들을 거쳐 분야별로 정리를 거친 뒤 정보를 주관하는 2처 수장의 책상 위에 올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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