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2화 천생연분
형부 13관아의 몇몇 고수들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각자의 눈에 담긴 경계심과 불안감을 보았다. 지금 이들은 마차 안에 있는 사람들이 감찰원 관원들임을 자연스레 알고 있었다. 조정 6부와 3사 관원들은 애당초 감찰원에게 공포감과 거부감이 있었다.
그래서 평소라면, 이들 형부 관원들은 감찰원에게 정면으로 맞서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은 조정 일을 하는 거고, 무수히 많은 눈이 감찰원 관원 사이에 누워 있는 피 범벅의 범인을 보고 있던 터라 그들은 평소보다 훨씬 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형부 관원들이 느긋하고 안정적으로 발걸음을 옮겨 마차 옆으로 가 섰다. 마차 옆에 있는 몇몇 감찰원 관원들은 아무런 행동에도 나서지 않았다. 마치 조정에서 찾는 범인 때문에 궁정 및 형부 전체와는 반목하고 싶지 않아 하는 것만 같았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이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호위 고달 옆으로 다가간 형부 관원들이 칼을 꺼내 드는데도 그 과정을 지켜만 보았다. 형부에서 고달의 손목에 칼을 채우려는 순간, 줄곧 깊은 생각에 잠겨 이맛살을 찌푸리고 있던 감찰원 2처 부주판이 느닷없이 말을 꺼냈다.
“아무래도 안 되겠습니다. 대인이 조정에서 쫓는 범인이라고 해서 꼭 그러리란 법은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대인은 조정 태감이지 대리사 정경이 아니지 않습니까!”
말을 마친 그가 곧바로 손을 휘휘 내둘렀다.
그러자 촥촥, 하는 소리가 수차례 울리며 싸늘한 빛이 번뜩였다. 고달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감찰원 관원들은 여전히 뒷짐을 진 채 가만히 옆에 서 있을 뿐이었다. 마차 주변의 암흑 속에서 몇몇 검수들이 질풍처럼 나타나 전광석화처럼 검을 빼 들어 형부 관원들 목에 겨눈 것이었다.
형부 관원들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그들은 줄곧 조심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횃불이 비추고 있는 도로 주변에서, 그것도 저 먼 어둠처럼 보이는 곳에 이리 대단한 고수들이 숨어 있을 줄은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이에 형부 관원들은 단 한 초식도 펼쳐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제압당해 버렸다.
궁정 고수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눈을 가느다랗게 뜨기 시작했다. 그리고 살짝 축소된 동공으로 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과 온통 검은색으로 차려 입은 검수들을 바라보며 참을 수 없는 한기를 느꼈다. 감찰원 6처 살수들은 과연 명불허전이었던 거다.
하지만 조금도 두렵지 않았던 그는 2처 부주판 응시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제 보니, 대인께서도 저 범인의 신분을 알고 계셨군요. 저자가 범 원장님의 과거 측근이었다는 사실을…….”
규탄이 무엇인고 하니, 이런 게 규탄이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죽여 입막음을 할 수 없으니, 수백 명의 사람들에게 일부러 들으라고 말한 거였다. 오늘 궁정에서 범인 체포하는 걸 막았는데, 여기에 범한까지 끌어들이면, 이 소식은 자연스레 경도까지 전해질 것이었다.
감찰원 관원이 살짝 고개를 숙이고 잠시 생각해보았다.
“죽일 태감 같으니. 대인이 어떤 말을 하든 상관 않겠소. 황명을 받들고 있다고 하였으니, 들고 있는 성지만 보면 됩니다. 그런 게 없다면, 형부에서 발행한 체포 문서를 잠시 보여주시지요. 그게 아니라면 제가 그쪽을 시골 산적으로 간주해도 할 말이 없겠지요?”
말을 마친 관원 입가에 냉소가 떠올랐다. 그런 그의 모습은 무엇보다 싸늘하고 냉정하고 자신감에 넘쳐 보였다.
사람들 뒤쪽에 서 있는 달주 지부는 품계만 놓고 보면 이들 관원 중 제일 상관이었다. 그리고 그가 봤을 때 이번 일에는 수상쩍은 점이 많았다. 하지만 감찰원, 문하중서, 궁정과 형부까지 관련되어 있어 작은 고을의 지주인 그는 감히 이번 일에 끼어들 수 없었다.
이에 지주는 산적이란 말에 참지 못하고 씁쓸하게 웃으며 이리 많은 조정 관원 앞에서 궁정 태감에게 감히 산적이라고 말하는 배짱을 보니, 과연 감찰원 관원은 사납고 후안무치하다고 생각했다.
고달과 왕계년 체포는 원래 하종위가 암암리에 진행하는 일이었다. 그는 황제 폐하와 범한 사이에서 폭발한 모순이 해소되지 못하도록 이 일을 끝까지 비밀로 할 생각이었다. 그러니 이번 일은 황제 폐하께 사전 보고도 되지 않았을 뿐더러, 그렇기에 관련 성지가 존재할리는 만무했다.
또한 하종위는 강대한 세력을 지닌 범한 부하들에게는 더더욱 자신의 속셈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모든 일은 암암리에 진행되었으니, 형부의 체포 문서는 애당초 있지도 않았다.
만약 고달이나 왕계년을 잡아들인다면 후속 조치들은 수월하게 진행될 터였다. 하지만 감찰원 관원의 눈썰미는 과연 매서웠다. 그는 단번에 문제점을 간파해 버리고 단 한 마디로 궁정과 형부 특별사 관원들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궁정 태감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황제 폐하의 성지나 형부 체포 문서를 내놓을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고달이라는 조정에서 찾는 범인이 바로 앞에서 도망가는 걸 눈 뜨고 지켜볼 수만도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 신분은 자연스레 형부 여러 대인들께서 증명해줄 것입니다. 형부 여러 대인께서는 모두 영패를 지니고 있으니까요.”
궁정 태감이 냉정하게 화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저 사람을 잡아가야 하는데 감찰원에서 막겠다면 우리를 모두 죽여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의 말에 도로 위가 조용해지면서 차갑고 살벌한 기운이 사람들 사이로 퍼져나갔다. 긴장한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궁정 태감은 차분한 상태였다. 감찰원 마차 대열에 있는 관원들이 이미 최단 시간 내에 호위 고달의 신분, 그리고 그와 범 원장 대인과의 관계를 알아차렸을 게 분명해서였다. 그리고 조정에서 이 일로 어떤 구실을 삼을지, 저들이 알아낼지를 떠나, 저들이 분명 궁정에서 이대로 고달을 잡아가도록 놔두지는 않을 거라 태감은 이미 확신해서였다.
그러니 문제는 감찰원에서 관련 정보를 범한에게 전달하기 전에 궁정과 형부에서 반드시 고달을 경도로 체포해 가야만 하는 거였다. 그래서 이들은 어떻게든 강하게 나간 거였다. 감찰원이 제아무리 강경해도 경국 산야 안에 있는 이상은 여기에 모인 사람을 전부 죽이지는 못할 거라 궁정 태감은 믿은 거였다.
태감은 감찰원 마차가 서른 몇 대나 있으니 이들에게는 분명 자신들을 몰살시킬 능력이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감찰원에서 반역을 꾀하려는 게 아니라면 그와 같은 잔인한 방법은 당연히 쓰지 않을 거란 생각이 더 강했다.
그래서 태감은 냉담한 모습으로 느긋하게 고달을 향해 걸어갔다.
감찰원 관원이 몸을 비틀어 곁눈질로 그를 싸늘하게 바라보았다. 마치 지금 이 국면을 어찌 처리해야 하는지 속으로 계산하는 것처럼 보였다. 만약 다른 때였다면, 이 부주판은 일찌감치 음험한 방식으로 궁정과 형부 사람들에게 제대로 엿을 먹였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일은 갑작스레 고달과 마주쳐 그가 조정에서 잡아가려는 범인이란 소식까지 듣게 된 경우였다. 특히나 이 일에는 제사 대인을 끌어들일 수 있는 위험 요소가 많이 숨어 있었다. 이에 부주판은 속에서는 요동치고 있었지만 그래도 곧바로 결정을 내리지는 못했다.
마차에서는 아무도 내리지 않았다. 그리고 모든 감찰원 밀정 관원들은, 어둠 속에 숨어 있는 6처 검수들을 포함해 모두 그가 말하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는 궁정 태감이 고달 곁으로 다가갈 때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바로 이때 느닷없이 소란스러운 소리가 나 달주성 밖을 감싸고 있는 고요함과 엄숙함을 깨뜨렸다. 여인들이 낄낄거리며 웃고 떠드는 소리가 갑자기 밤하늘에서 울렸다. 마치 고대 소설 속의 여우 신선이라도 등장한 것처럼 고요한 밤이 별안간 누군가의 산책으로 낙원으로 변한 것만 같았다.
이에 모두 귀를 쫑긋 세우고 긴장하기 시작했다. 한밤중에 갑자기 어디에서 이리 많은 여인들이 나타난 거지?
곧이어 이들은 눈이 번쩍 뜨였다. 도무지 생각지도 않은 일이 일어나서였다.
이런 날이, 아니, 이런 밤이 있을 수가! 한꺼번에 이렇게나 많은 미인을 보게 되다니!
각양각색의 치마를 두른, 바람처럼 하늘거리는 화장한 미인들이 마차대열 뒤쪽에서 엄숙한 현장 쪽으로 재잘거리며 밀려들었다. 그녀들은 이곳이 일촉즉발의 분위기라는 걸 모르는 듯 여행의 수고로움이며, 누구네 연지분이 잿더미가 됐다는 등을 소재로 열심히 수다를 떨어댔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은 너무 멀고, 또 마차에서 너무 오랫동안 앉아 있던 탓에 살짝 뒤가 급해 풀숲으로 들어가 잠시 쭈그리고 볼일을 보고 싶던 차였다.
그런데 감찰원의 거친 사내들은 작은 범 대인처럼 섬세하고 자상한 면이 없어서 마차를 잠시 쉬어간다는 말조차 해주지 않은 터였다. 그리고 어렵사리 마차가 섰는데도 아무도 그네들의 작은 손을 부축해주는 사람도 없고……. 마차가 높은데도 말이다.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져서 이 장면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순간 자신이 꿈속으로 들어왔다고 착각했다. 특히나 가장 앞에 있는 형부 관원은 재잘대는 여인들을 무슨 귀신 보듯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껏 차분하게 고달 옆으로 다가갔던 궁정의 나이든 태감은 갑자기 눈꺼풀을 홱 치켜들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미녀들을 바라보며 순간 경도 사람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그 원(園)을 떠올렸다.
이후 완전히 새카만 바퀴 달린 의자를 누군가가 온통 검은색 마차 안에서 끌어 앉고 내리는 장면이 태감의 눈에 들어왔다.
바퀴 달린 의자에는 늙은 절름발이가 앉아 있고, 그의 무릎에는 양털 담요가 덮여 있었다. 늙은 절름발이가 태감 우두머리를 바라보며 살짝 날카롭고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왜 이렇게 오래 멈춰있는 것인가? 이제 보니 원장직을 관뒀더니만 어린놈한테도 말이 씨알도 안 먹혔나 보군.”
궁정 고수는 귀신을 보듯 진평평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뜬금없이 달주성에 나타난 이 노대인 때문에 심신이 모두 공포에 휩싸여버려 무릎 아래를 무의식적으로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자신이 최대의 착오를 범했음을 알게 된 거였다. 작은 범 대인이 마차 안에 없으니 감찰원이 궁정의 권위에 도전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작은 범 대인이 없으니 대신 노원장이…… 마차에 있을 경우도 생각 했어야 하는 거였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태감이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고개를 한껏 숙이고 최대한 공손하게 말했다.
“소인네 원장 대인을 뵙습니다.”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이나 벌리고 있던 관원과 아속, 군사들도 이내 늙은 절름발이의 신분을 알아차렸다. 이에 수십 년 동안 경국의 음지 권력을 쥐고 있던 자가 뿜어내는 압박감에 모두들 얼어붙어 허리를 꼿꼿이 선 자세로 무릎을 땅에 꿇었다. 그건 달주 지주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렇게 국도 양측으로 빽빽하게 있던 관원들이 마차 옆에 있는 늙은 절름발이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진평평이 차분한 낯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갑자기 주먹 쥔 손을 입에 대고 기침을 두어 번 했다. 눈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이 스치더니 그가 혼잣말하듯 웅얼거리며 말했다.
“섭씨 아가씨가 한 말이 맞았어. 귀여운 어미가 과연 아이도 귀엽게 낳는 거였어.”
* * *
나흘 전 경도 황궁. 장엄한 황궁은 늦여름과 초가을 햇살을 맞아 청명하고 평온했다. 경국에서는 한창 기쁨이 넘쳐나고 있었고, 위로는 황제 폐하로부터 아래로는 심부름꾼들까지 모두들 발전의 기운을 산뜻하고 매혹적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과거 음침하고 차가웠던 황궁에 변화가 찾아 온 것만 같았고, 태극전 위에서 서서히 이동하는 빛도 장난질을 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유일하게 변하지 않은 곳이 있다면, 그건 어서방이었다. 이곳은 겨울이면 따뜻하게 난로를 피웠고, 여름이면 얼음 대야를 가져다 놓아 사시사철 언제나 봄이었고 변화란 게 없어 싫증이 나는 곳이었다. 그래서 어서방의 주인인 경국의 위대한 황제 폐하는 이곳에서 수십 년을 한결같이 지내온, 변화라고는 없는 무서운 인물이었다.
“형부 사람이 달주에 도착했을 것이다. 하여 때를 보아 이 일을 처리하겠군.”
황제 폐하가 싸늘하게 찻잔을 내려놓았다. 이때 1 황자는 이미 동이성에 도착해 소량국 반란을 처리하기 시작한 터였다. 범한으로부터 비밀 상주문도 들어와 황제는 두어 번 대충 읽어 보고는 더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자신의 아들 둘이 동이성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처리하러 나섰으니 분명 쉬이 처리할 거라 생각해서였다.
“하 대학사가 힘을 많이 썼사옵니다.”
요 태감이 단정하고 예절 바른 모습으로 평소처럼 대꾸했다.
그런데 평소 같다고는 해도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하종위는 궁중의 우두머리 태감들과 관계를 잘 맺어두기 위해 그들에게 엄청난 열정과 돈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이유는 모르겠으나 범한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존경하고 좋아하는 황궁 태감들과 궁녀들의 마음을 돌릴 수는 없었다.
그러니 요 태감의 방금 전 말은 의심할 여지 없이 몰래 하 대학사를 찌르는 검이었다. 하지만 경국 황제는 전혀 동요하지 않고 소리 내어 아주 살짝 웃고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종위도 죽는 게 두렵겠지. 하나 고달이란 자는 이미 너무 오랫동안 살아 있었으니, 짐으로서는 안지의 체면을 충분히 생각해준 것이야. 비록…… 그 아이가 그 반역자가 살아 있다는 건 전혀 모르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지.”
이에 요 태감이 갑자기 떨리는 음성으로 대꾸했다.
“노원장이 사흘 뒤면 달주를 지납니다. 하여 폐하께서는 성단(聖斷)을 내려주시지요.”
“짐은 생각을 더 해봐야겠구나.”
경국 황제의 눈동자에 갑자기 멍하고 피곤한 기색 스치더니 그가 천천히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