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1화 필사적으로 싸우다 (2)
사람은 다 죽일 수 없는 거고, 칼은 언젠가는 잘리는 순간이 있는 거였다. 그러니 어찌 혼자서 강대한 국가 기관에 대항할 수 있을까? 고달이 강력하다고는 해도, 그는 대종사는 아니었다. 경국 조정의 강력한 포위 아래 밤까지 버틴 것만으로도 그는 이미 충분히 무시무시한 사람이었다.
고달은 온몸에 피를 뒤집어쓰고, 피로가 극에 달했다. 하지만 달주성에서 3리 밖까지밖에 못 나온 상태였다. 고달을 포위한 형부 고수들과 군사들이 똑똑하게도 거리를 유지하며 조를 나누어 공격을 하고 있어서였다. 이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범한에게 틈을 타 포위를 뚫고 나갈 기회를 주지 않아서였다.
사방에 횃불이, 그것도 국도 사방에 켜져 있어 하늘의 별 보다도 더 밝게 빛나고 있었다.
궁정 고수는 앞으로 뻗어 있는 국도를 냉정한 눈으로 바라보며 추격하고 있었다. 고달이 힘이 빠지면 그때 덮칠 생각이었다. 그가 미간을 아주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아이는 조심하시오. 등에 업고 있는 저 여인에게도 가급적 손을 대지 마시오.”
형부 관원이 살짝 경악해 고개를 돌려 그를 잠시 바라보며 물었다.
“태감, 그건 왜죠?”
관원들의 판단은 이러했다. 일단 호위 고달은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했다. 하지만 품에는 아이를, 등에는 여인을 업고 있어 칼로 그쪽을 공격하면 고달은 공격을 꺼릴 것이고, 그러면 고달에게 더 많은 상처를 입힐 수 있는 거였다.
궁정 고수가 느긋한 발걸음으로 공격대 중앙으로 걸어갔다. 그는 걸어가는 내내 기침을 해댔다. 그가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말했다.
“손이 헛나가 저 여인을 죽이면 고달이 미쳐 날뛸 터인데, 어찌 생포할 수 있겠소? 또 저 여인은 살아 있기만 한다면 고달의 약점이 될 것이오. 그리고 자살하려 해도 생각할 시간은 줘야 하지 않겠소이까.”
상황이 이런데도 궁정 고수는 여전히 고달을 생포할 생각인 거였다. 필경 하 대학사가 무수히 신신당부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고달이 죽으면 어찌 범한을 위협할 수 있겠는가? 하종위는 고달을 이용해 범한과 황제 폐하 사이를 갈라놓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 점은 궁정 고수들도 알아차리지 못한 일이었다.
고달은 얼마나 죽였는지 모를 만큼 사람을 죽였다. 그리고 온통 피투성이가 되어 미친 호랑이처럼 날뛰었다. 궁정 고수 셋 중 이미 둘이 고달의 육중한 공격에 중상을 입었고 형부 관원 역시 무수히 많은 수가 고달의 칼에 죽은 터였다. 하지만 그의 칼에서도 점점 허점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체내 정기도 이제 곧 고갈될 지경에 처하고 말았다.
그러자 흉악한 조정 범죄자에게 몇 십 명의 사람을 대가로 바친 후 드디어 그가 지탱하지 못하고 쓰러지기 직전인 게 모두의 눈에 들어왔다. 이에 모두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형부에서 특별 제조한 마취 약물을 칼날에 바르고 마지막 포위 작업에 들어갈 준비를 했다.
바로 이때, 국도 저편에서 검은색 마차 대열이 다가왔다. 이 마차 대열은 너무나도 괴이했다. 어두컴컴한 것이 마치 저승에서 나타난 것만 같았고, 끝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길게 늘어서 있었다.
오른쪽에 있는 13관아 고수 팔을 칼로 내리친 고달은 순간 왼쪽 무릎에 힘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이에 자신이 기름 떨어진 등불이 되었다는 걸 알아차리고는 지지 않겠다는 듯 미친 사람처럼 울부짖으며 마차 대열로 돌진했다.
그런데 뒤쪽에서 쫓아오던 관원들은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마차 대열이 어떤 황당한 재난을 맞게 될지 걱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차분하게 정속을 유지하며 고달에게 다가가기만 할 뿐이었다.
바로 그때 검은색 마차 안에서도 바깥에서 일어난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창문 가림막 옆에서 노인과 이야기를 나누던 감찰원 관원으로, 그는 온 성을 밝히고 있는 불빛과 피투성이가 된 사람을 발견하고는 눈빛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감찰원 관원은 피투성이가 된 사람이 근처까지 오자 그때서야 그들이 총 세 명이란 걸 알아차렸다.
감찰원 관원이 그 세명에게 날듯이 다가갔다. 이어서 피투성이가 된 사람이 땅바닥에 쓰러지려는 순간 그를 부축하며 눈썹을 씰룩였다. 그리고 쉰 목소리이기는 했지만 살짝 격앙된 음성으로 말했다.
“고달, 너 이 자식 마누라까지 얻었구나.”
고달은 쥐고 있던 칼을 땅에 꽂고 자신을 부축한 자를 인질로 삼으려 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웃음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나는 쪽을 쓱 바라보니, 거기에는 낯선 사람이 있었다.
낯선 사람은 낯익은 관복을 입고 있었고, 이에 고달은 마음을 놓고 감찰원 관원 품에 엎어졌다.
* * *
검은색 마차 대열이 국도를 밝힌 별빛 같은 횃불에 둘러싸였다. 그런데 대열의 길이가 너무 긴 탓에 달주성 관아에서 모든 관원이 총출동을 해버렸다.
경도에서 온 13관아 고수들은 3명의 궁정 태감들의 통솔 아래 마차 대열을 절반만 잘라낼 수 있을 뿐 전체 대열을 포위할 수는 없어서였다.
한편 이들 관원은 조정에서 찾는 범인에게서 절대 눈을 떼지 않았다. 하지만 아내와 아이까지 데리고 있는 피투성이가 된 자가 사람들 눈앞에서 사라질 거란 걱정은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그 누구도 고달에게 달려들어 그를 잡으려 하지는 않았다. 모두들 살짝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했기 때문이었다. 범인을 안고 있는 사람이 무언가 익숙한 관복을 입고 있는 게 분명 평범한 백성은 아닌 듯해서였다.
그래서 지금 제일 관건은 아무래도 검은색의 긴 마차 대열이었다. 평범한 마차이지만 서른 몇 대가 줄줄이 이어져 오는 것이 쉬이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었다. 그러니 제아무리 아둔한 사람도 마차 안에 몇몇 대단한 인물들이 타고 있을 거라 충분히 예측할 수는 있었다.
형부 13관아 관원들이 몰래 침을 퉤 하고 뱉으며 몰래 불길하다고 말했다.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 일어나서였다. 달주성이란 이런 외진 고을 밖에서, 그것도 자기네 일행의 운이 최고조에 달해 조정에서 장기간 몰래 쫓던 범인을 체포하기 직전인데, 뜻밖에도 기괴한 마차 대열과 부딪히다니.
형부 관원들은 절대 허둥대지 않았다. 마차 안에 있는 사람의 신분은 아직 모르지만 그래도 자신들은 문하중서의 명령을 받아 일을 하는 중이었다. 그러니 절반은 황제 폐하의 명으로 일하고 있는 것이니 세상에서 감히 막을 자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검은색 마차 대열 안에 조정의 왕공귀족이 타고 있다 하더라도 상대방이 조정의 범인을 잡아들이는 일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궁정 태감 셋이 횃불에 둘러싸여 있는 사람들 속에서 걸어 나갔다. 그런 후 우두머리인 늙은 태감이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기괴한 마차 대열과 온통 피를 뒤집어쓰고 있는 범인을 바라보았다. 마차 앞 땅바닥에 누워 있는 그를 몇몇 검은색 관복을 입은 자들이 치료해주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새하얗게 질린 아낙은 아이를 앉은 채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범인을 지켜보고 있었다.
궁정 고수들이 눈을 가느다랗게 뜨기 시작하고 콧방울을 살짝 씰룩였다. 의외의 일이 일어나 불안해서였다. 그리고 마차 안에 있는 검은색 관복을 입은 사람이 어느 정도의 실력자인지 금세 알아차린 거였다.
한 차례 교전을 치르는 동안 고달은 용감하게 도로 위를 내달리며 궁정 고수 둘에게도 중상을 입힌 터였다. 하지만 결국 궁지에 몰리게 되자, 그가 보호해야 하는 등에 업은 아내와 품 안에 있는 아이의 몸에 애당초 생기지 말았어야 하는 상처가 잔뜩 난 상태였다.
체포를 주도하던 궁정 고수는 몸 안에서 피가 들끓어 올라 순간 진정할 수 없었다. 이에 그가 눈앞에 있는 마차 대열을 바라보며 아주 살짝 눈을 찌푸렸다. 일 처리를 마음껏 할 수 없게 되자 조금 두려웠던 거였다.
그는 궁정 고수였고 황명까지 받고 움직이는 것이니, 마차 대열이 정말로 감찰원 대오라 해도 두려워 할 이유가 없었다. 문제는 이 마차 대열이 감찰원에서 차지하는 품계와 등급이었고, 더 관건인 문제는 오늘 조정에서 체포하려는 범인이 호위 고달이고, 과거에 작은 범 대인의 측근 호위란 점이었다. 그러니 감찰원에서 이 점을 알아차린다면, 그리고 작은 범 대인이 이 마차 대열 안에 있는 거라면…….
태감이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횃불이 비추는 가운데 그가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가 도로 위에 있는 완전히 새카만 마차를 향해 쉰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궁정 소속 하칠간이 황명을 받아 범인을 체포하는 중입니다.”
그는 마차 대열에 있는 사람의 신분부터 묻는 게 아닌 자신의 신분부터 말하고 보았다. 검은색 마차 대열 내부에서 정말로 이상 행동을 보인다면, 궁정 쪽에서 기회를 선점하기 위해서였다.
그 사이 형부 13관아 고수들은 무언가 잘못되어간다는 걸 알아차렸다. 이에 그들은 아까 보여주었던 자신감은 온데간데없이 경계하며 마차 주변으로 흩어지기만 할 뿐이었다.
한편 달주성 관아의 군사들은 지금 상황이 전혀 이해가 안 되었다. 경도에서 온 어르신들이 모두 눈을 위로 치켜뜨고 있어서였다. 아까 흉포한 호랑이 같았던 범인과 맞설 때는 반보도 물러나지 않던 사람들이 왜 저 검은 마차를 보고는 이리도 쩔쩔 매는 건지.
“범인이라고?”
고달 옆에서 쭈그리고 앉아 그의 상처를 돌봐주던 감찰원 관원이 갑자기 이맛살을 찌푸렸다. 궁정 태감의 말에 그의 눈에서 갑자기 복잡한 감정이 번뜩였다. 그가 혼미한 고달을 바라보며 혼잣말하듯 나지막하게 말했다.
“이제 보니, 그때 도망갔었군.”
궁정 태감으로부터는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지만 그건 이미 예상한 일이었다. 감찰원은 늘 은밀하게 일을 진행했다. 하지만 일단 조정의 몇몇 중추 관아와 맞서게 되면 오히려 이상하리만치 오만하고 난폭하게 나서기도 했다. 그러니 궁정에서 명의상으로는 감찰원을 감독하는 기능을 갖고 있기는 해도 진평평과 범한이라는 전임 현임 원장의 고의적인 용인하에 감찰원은 이들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마차 안에 감찰원의 어느 분께서 계시는지는 모르겠사오나, 중요한 일이십니까?”
궁정 태감이 눈꺼풀을 살짝 내리깔고 싸늘하게 입을 열고는 말을 이어 갔다.
“대인, 부디 이 범인을 우리 궁정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해주시지요.”
족히 서른 대는 넘어 보이는 마차 안에 얼마나 많은 밀정 관원과 중요 인물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대체 어느 정도 능력자이기에 감찰원에서 서른 대 이상의 특제 마차로 행동에 나선 건지도 알 수는 없었다.
그래도 감찰원에서는 특별히 중요 인물을 보호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분명 매우 중요한 임무를 수행 중일 것이었다. 이에 태감은 자신이 궁정 고수이기는 해도 감찰원 원무에 영향을 미치고 싶지는 않았다. 특히나 자신이 운이 너무나도 없어 달주성에서 작은 범 대인을 만나게 되는 건 아닐까 두려웠다.
줄곧 고달 옆에 꿇어앉아 있던 감찰원 관원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눈이 부신 횃불 쪽을 향해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궁정 고수를 말없이 바라보더니 한참 후 느닷없이 입을 열었다.
“본관은 감찰원 2처의 부주판(副主辦)입니다. 번거롭겠으나 성지를 직접 보여주셨으면 합니다.”
그러자 궁정 태감의 태양혈 쪽으로 열이 확 몰리며 그곳의 핏줄이 불끈하고 뛰었다. 본인 일행의 신분을 밝혔는데 뜻밖에도 감찰원 관원이 자신에게 갖고 있는 성지를 보여 달라 요청해서였다.
감찰원이 궁정 쪽을 무서워하지 않으니 궁정 쪽에서도 자연스레 감찰원을 더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니 그들이 무서워하는 건 감찰원의 전임과 현임 원장뿐이었다.
이들 원장들이 황제 폐하께 지니는 무게감이 온 궁정을 합친다 해도 훨씬 무거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소 왕래 할 때 궁정은 감찰원에게 공손했고, 감찰원도 궁정 쪽에 밉보이지 않으려 했다.
그러니 오늘 같은 국면에서 감찰원 관원이 성지를 내보여 달라고 말한 건 정말 횡포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다. 이에 궁정 태감은 속으로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그리고 감찰원의 평소 행동과 너무 달라 설마 저 마차 안에 있는 사람이…….
“작은 공작 어르신께서 마차 안에 계신다면, 소인이 직접 인사를 드리고 싶군요.”
궁정 태감이 이를 악물었다. 감찰원이 아무리 강대해도 그는 무섭지 않았다. 다만 작은 범 대인이 정말로 마차 안에 있다면, 그게 아니라면 이 관원이 이렇게나 냉랭하고 고집을 피울 리는 없는 거였다.
“원장께서는 지금 동이성에서 일이 있어 이곳에 오시지 못했습니다.”
부주판이라는 감찰원 관원이 이맛살을 찌푸리고 그를 잠시 바라보았다. 상대방이 이리 빨리 떠보러 나올 줄 생각하지 못한 듯 보였다. 이에 그가 다시 냉담하게 말했다.
“모두 조정 일을 하는 것 아닙니까. 한데 제가 갖고 계신 성지를 보는 게 무슨 문제가 되는 것입니까?”
범한이 마차 안에 없다는 말에 궁정 태감은 순간 마음이 안정되었다. 한편 감찰원은 아무리 무시무시한 곳이라 해도 황제 폐하의 특무기관이다. 그러니 감찰원 쪽에서도 궁정 태감이 하는 일을 무턱대고 막을 수만은 없는 거였다.
“궁정에서 하는 일입니다. 한데 무엇하러 감찰원에 알려야 합니까?”
궁정 태감의 얼굴이 점점 침울해지더니 쉰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여봐라! 조정에서 쫓는 저 범인을 당장 체포하라!”
명령을 내린 후 그의 시선이 2처 부주판의 얼굴 위로 옮겨갔다. 그는 상대방을 찍어 누르려는 듯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지금 궁정에서는 13관아를 데리고 일 처리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 감찰원에서 어떻게든 강제로 끼어들려 한다면 그게 반역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1년이란 시간 동안 그는 황제 폐하의 명으로 하 대학사의 부하가 되어 고달을 잡기 위해 경국 산야를 쉼 없이 누볐다. 심지어는 경도로 돌아가지도 않았다. 그런 이유로 이 궁정 태감은 감찰원 쪽 정보에 대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었고, 아는 거라고는 작은 범 대인이 동이성을 귀속시키는 일로 바쁘다는 거였다. 그렇기에 그는 검은색 마차 대열 안에 누가 있는지 전혀 모른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