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여년-938화 (938/1,108)

938화 아내

호위(虎衛)는 황궁을 호위를 하는 시위와는 달랐고, 누군가를 시중드는 사람도 아니었으며, 오로지 살인을 위해서만 존재했었다.

아속들은 갑자기 앞에 산 하나가 떡하니 나타난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이에 순식간에 국수 노점 주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에 눌린 아속들이 저속한 말을 늘어놓던 걸 뚝 멈추었다.

잠시 후, 그들은 자신들이 넋이 나갔던 게 수치스러웠다. 그리고 앞에 있는 이 우직한 사람이 어찌하여 자신들을 놀라게 해 감히 입도 뻥끗하지 못하게 만들었는지 궁금했다.

분명 이 송씨 놈은 몸을 굽힌 채 한결같이 웃고 있는데 말이다. 수치심에 이들은 더 극성을 떨기 시작했고 탁자 위에 있는 칼집을 하늘이 울릴 정도로 내리쳤다.

고달의 눈빛이 그들의 칼집 위로 떨어졌다. 그리고 문득 이미 오랫동안 칼을 잡아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때 그의 손은 검은색의 긴 젓가락 한 쌍만 쥐고 있을 뿐이었다.

고달은 입도 뻥끗 않고 반항도 하지 않았다. 그저 저들이 욕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아내와 아내의 아이를 보호하고, 또 아내와 아이가 자기 때문에 천하를 떠돌게 만들 수는 없어서였다.

그리고 사실은 고달 본인도 더는 천하를 떠돌고 싶지 않았다. 과거 대동산에서 도망쳐 나온 후 그는 동이성이나 북제로도 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자신은 경국 사람이니, 경국에 머물고 싶어서였다. 자신이 머무는 지역에 아무리 호랑이와 승냥이 같은 관리가 있고, 또 그곳 세상이 아무리 불공평할지라도 말이다.

그래서 고달은 참는 게 무척이나 고달팠지만 그래도 꾹 참았다. 그리고 약한 척하는 게 서투르기는 했어도 그래도 약한 척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 고달에게 기괴한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술 취한 아속 하나가 자기 아내 곁에서 삐딱한 자세로 치마 아래쪽에 손을 대고 둥글게 문지르고 있었다.

고달이 젓가락을 더 강하게 쥐었다. 그런데 그 모습은 마치 예전의 그 길고 긴 칼을 쥐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의 얼굴이 무표정하게 변했다. 눈빛은 차분했으며, 더는 참는다거나 척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더는 생각하고 말고 할 게 없었다. 단지 3년간 멀리했던 본능을 따라 자연스럽게 단번에 베어버렸을 뿐이었다.

소은을 벨 때처럼, 자객을 벨 때처럼, 바람을 벨 때처럼 말이다.

호위는 장도를 사용했다. 그리고 그것으로 평생 가장 간단한 방식으로 앞에 나타난 모든 문제들을 베어버렸다.

어쩌면 3년 동안 고달은 줄곧 잘못된 길을 선택해 왔던 것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는 칼잡이지 아랫것이나 될 사람은 아니었던 것이다.

* * *

고달은 자신이 쥐고 있는 게 칼이 아니란 걸 잊은 듯했다. 하지만 한 쌍의 젓가락은 그냥 그대로 상대 앞으로 나아갔다.

그래서 아속들은 하하하 큰 소리로 웃으며 고달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이따가 저 형제에게 벙어리 아낙의 궁둥짝이 얼마나 탱탱한지 물어보려던 참이었다. 더군다나 저 송씨란 남자를 흠씬 패서 바닥에 고꾸라뜨린 후 자신도 그 틈에 저 아낙의 엉덩이나 좀 주물러 볼까 생각했다.

팍, 하는 소리와 함께 젓가락이 부러졌다.

그리고 국수 노점은 이내 고요해졌다.

멍하니 지켜보고 있던 벙어리 아내의 동공이 점점 작아지기 시작했다. 그 어느 때보다 놀라고 공포에 질린 모습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본 걸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놀랐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지만 몸이 굳어서 무엇도 할 수 없었다.

국수 노점의 아속들 역시 웃던 걸 뚝 그치고 일이 터진 방향만 멍청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검은색의 긴 젓가락이 두 동강이 났다. 그런데 그중 하나가 마치 날카로운 꼬챙이처럼 아속의 목 부위를 절단해 버렸다.

아속의 가슴팍에서는 피가 가득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젓가락에 절단된 목 부위로 기도, 식도,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혈관 같은 게 보였다.

아속은 썩은 생선 같은 눈알을 부릅뜨고 산처럼 우뚝 서 있는 고달을 주시한 채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그는 저 여인의 궁둥이만 좀 주물렀을 뿐인데 왜 목이 잘려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이 국수 노점 주인이 쥐고 있는 건 검은색 젓가락인데 왜 이리 날카로운 건지에 대해서도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고달의 손은 반 토막 난 젓가락을 쥐고 있었고, 자세도 매우 안정적이었다. 그래서 아속이 죽은 순간 그는 더 이상 국수 노점 주인이 아닌 대단히 무시무시한 검객이 되어 있었다. 그 익숙한 감각이 그에게 다시 돌아온 거였다.

고달이 앞으로 나아가 아내를 부드럽게 끌어안은 후 그녀의 귓가에 대고 자그마하게 몇 마디 속삭였다. 그의 미간은 아주 살짝 일그러져 있었다. 고달은 자신이 너무 험하게 손을 썼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속이 죽을죄를 진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경국이라는 강대한 국가 기관이 나선다면, 어쩌면 자신의 내력이 모두 까발려질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단지…….

고달은 화가 나 공격을 시작하면 인사불성까지 되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실제로도 그는 젓가락을 담담하게 휘두르기만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잊고 있는 게 있었다. 자신이 이미 8등급 정점에 올라 있는 고수란 점이다. 그리고 오늘 국수 노점에서 소란을 피운 사람들은 군산회나 북제 금의위 급의 적이 아닌 단순히 가증스럽고 불쌍한 보잘것없는 아속들이란 거였다.

단지 오해였을 뿐인데. 치명적인 오해 말이다. 그래서 고달은 이들 아속들을 과대평가했고, 그래서 그중 하나를 손쉽게 죽인 거였다.

국수 노점에서 이 광경을 지켜본 나머지 아속들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이 노점 주인이 대체 뭐하던 사람인지 알지 못한 채 이 피비린내 나는 장면에 너무 놀라 있었다. 그러다 한참 후, 드디어 어느 담력 약한 아속이 날카롭게 비명을 질렀다.

그의 비명소리에 나머지 사람들은 정신을 차렸고, 세상에 젓가락 한 쌍으로 살인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도무지 믿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눈이 잘못된 거라 생각했다. 어쩌면 이 국수 노점 사장이 어딘가 흉기를 숨겨 놨었는데, 자신들의 형제가 그 흉기에 목숨을 잃은 거라고 생각했다.

한 아속이 관부로 보고를 하러 몰래 빠져나갔다. 그리고 나머지는 작은 두목의 인솔하에 탁자 위에 두었던 박도(朴刀)를 꺼내 들고 야단법석을 떨며 고달을 향해 돌진했다.

고달은 들고 있던 젓가락을 땅바닥에 떨어뜨린 상태였다. 그리고 암담한 모습으로 고개를 숙이고 아내에게 무언가를 설명하려 했다.

순간 아내가 까무러치게 놀라는 걸 보고 상황을 알아챘다.

고달이 칼바람이 부는 한가운데로 손을 쭉 뻗어 칼 한 자루를 빼앗아 대충 휘둘렀다. 그러자 한바탕 금속음과 함께 피비린내 나는 바람이 불고, 피 안개가 뿌려졌다. 그리고 아속들은 전혀 반격을 하지 못한 채 국수 노점 이곳저곳에서 고꾸라져갔다.

아속들이 전부 죽은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깔끔하게 죽어버린 거였다.

온몸이 핏물로 물든 고달은 한 손으로는 칼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아내를 부축한 채 국수 노점을 떠났다. 거리에서 그 광경을 지켜본 사람들은 깜짝 놀라 왁자지껄 떠들기 시작하다가, 바닷물이 갈라지듯 그들에게 길을 터주었다.

고달도 알다시피, 그는 최대한 빨리 달주를 떠나야 했다. 어떻게든 서둘러야만 했다. 아속들을 죽인 건 별일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는 고달이고, 호위 수령으로 본래 살인 무기였으므로 과거 인생과 삶의 역사가 그에게 영원히 국수 노점을 하도록 허락하지 않은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아내와 아이 때문이라도 조정의 추격을 받아 죽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러니 어떻게든 있는 힘껏 도망가야 했다.

뜨거운 태양이 하늘에서 내리쬐는 날, 거리에서 살인을 한 고달은 아내와 함께 도망자의 길로 들어섰다. 부부는 서로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가장 먼저 집으로 돌아와 이웃집 아주머니에게서 아들을 건네받았다. 그런 후 은전을 챙겨 성 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도망치는 내내 아내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억척스럽지만 아름다운 얼굴에는 자기 남자를 신뢰하고 우러러보는 기색이 가득했고 그와 함께 떠나기를 바라고 있었다.

뙤약볕 아래에서 고달은 아이를 안고 단도를 차며 아내를 바라보았다. 그는 훗날 강호를 떠도는 삶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가슴 속에서 미안한 마음이 강하게 밀고 올라와 다음과 같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여보, 내가 당신에게 너무 많은 빚을 졌구려.”

하지만 달주성의 관아는 그 어느 때보다도 빨리 반응했다. 고달이 마음속의 빚을 갚기도 전에 달주 성문이 굳게 닫히기 시작했다.

* * *

고달은 운이 나빴다. 분명 너무 나쁜 거였다.

고달은 아까 국수 노점에서 아속 하나가 몰래 빠져나갔다는 걸 알아채고도 그때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원래 아속과 관원은 모두 제 살길만 챙기는 무리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 작은 주군에는 대단한 사람이 없을 거라 판단해서였다.

그리고 그와 벙어리 아내는 제법 빨리 움직인 편이었다. 집으로 돌아가 아이를 안고 성문으로 가기까지, 관부에서는 아예 대응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빨리 움직인 거였다.

하지만 성문으로부터 약 반 리 떨어진 곳까지 갔을 때 그에게 육중하게 성문 닫히는 소리, 어수선하게 소리치는 소리, 긴장에 찬 인력 배치 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고달은 눈을 부릅뜨고 저 멀리 보이는 성문을 바라봤고, 그곳에서는 아속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었다. 의외의 상황에 부닥치자 그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면서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고달이 고개를 틀어 옆에 있는 아내를 잠시 바라보았다. 너무 급히 움직이는 바람에 아내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살쩍에서는 땀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맑고 투명했던 눈동자에는 공포와 불안감이 가득 차 있었다.

고달이 그녀의 손을 토닥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겁먹지 말아요. 내가 있지 않소.”

그러자 아내가 입을 반쯤 벌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속으로는 상공이 아속을 죽인 건 조정과 맞서는 것이니, 어쩌면 자기네 세 식구는 살아남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이에 그녀는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앞을 가려 모든 게 다 슬펐다.

성문 있는 곳에서는 언제 호령을 받은 건지 모르겠지만 서둘러 성문을 닫고 있었다. 그런데 수색 범위까지 넓힌 건 아니어서 고달은 대응할 시간을 벌기는 했다. 고달이 이맛살을 잠시 찌푸린 후 아이를 품에 안고 아내의 손을 이끌며 민가가 모여 있는 뒤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이들 셋은 달주 성 안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 * *

앞서 고달의 운이 너무 나쁘다고 한 건 형부 전안사(專案司) 관원이 달주에 오기로 정해져 있어서였다. 그리고 정말 공교롭게도 전안사 관원은 문하중서 대학사인 하종위가 파견한 사람이었고, 조사 내용이…… 과거 대동산에서 도망갔을 수도 있는 호위 고달에 관한 거였다.

하종위는 요 몇 달 동안 경도에서 조용히 지내던 터였다. 왜냐하면 자신의 조정 내 실력과 인맥 그리고 황제 폐하의 총애를 가지고 다 따져보아도 자신은 범한의 지위를 압도하지 못해서였다. 그래서 그는 암암리에 그 일에 대해 조사하고 있던 거였다.

그는 왕계년이나 고달을 가지고 흠을 잡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수개월을 조사했지만 감찰원의 왕계년에 대한 실마리는 아직도 잡히는 게 없었다. 왕씨가 일가족을 모두 데리고 숨은 거였는데도, 전안사에서는 그 어떤 실마리도 잡지 못했다.

한편, 하종위의 강력한 압박과 지원 하에 형부 관원들은 대동산 아래에서 발견한 아주 자그마한 단서를 가지고 조사에 들어갔다. 그리고 어렴풋하게나마 고달이 어느 경로로 도주했는지 단서를 잡게 되었다. 그 결과 그가 은닉해 있을 수 있는 지역이 동산로 이남, 강북로 이북의 7개 주현성(州縣省)으로 좁혀졌다.

정주는 그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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