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2화 감찰원을 빼앗고 권력을 탈취하다 (2)
범한이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하지만 제가 진정한 원장이 되기 위해서는 대인이 최대한 빨리 계획을 세워주셔야 합니다.”
언빙운이 의심하는 눈빛으로 범한을 빤히 바라봤다. 마치 범한의 말이 내포하는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대인의 아버지를 포함해서 7처의 대머리 수장이나 심지어 항상 절름발이 노인 옆을 지키는 늙은 종까지 사실 감찰원 안에서 원장 대인의 통제력은 저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높습니다.”
범한은 상대방의 눈빛을 알아채지 못한 듯 냉정한 말투로 말했다.
“제가 진정한 원장이 되려면 늙은 동료들을 모두 몰아내서 그들이 감찰원 원무에 참여하지 못 하게 해야 합니다.”
“대인의 말은 진 원장을 감찰원에서 철저하게 손을 떼게 할 뿐만 아니라 손을 뻗고 싶어도 하지 못하게 수족까지 전부 자르겠다는 겁니까?”
“바로 그겁니다.”
충격을 받은 언빙운이 잔뜩 굳은 표정으로 범한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범한이 왜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화가 치솟은 언빙운이 피식 웃음이 터뜨리며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대인께서는 지금 저보고 친아버지를 공격하라 말하고 계신 겁니다.”
“감찰원을 새롭게 재정비하기 위해서······.”
범한이 말꼬리를 늘리며 웃었다.
“상대가 누구든 잘라내야 합니다.”
“이러는 이유가 뭔지 말해주십시오.”
범한이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려면 제가 대인에게 눈발이 휘날리던 산골짜기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말해야 합니다.”
이후 설명을 끝낸 범한이 언빙운을 바라보았다.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언빙운이 얼굴을 잔뜩 구기며 말했다.
“원장 대인께서 제사 대인을 얼마나 아끼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데 그런 일을 벌이셨을 리 없습니다.”
“저도 믿기지 않습니다.”
범한이 골치가 아프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폐하께서 이미 조사해 알고 계신 것 같습니다. 만약 폐하께서 절름발이 노인이 저를 죽이려 했다고 믿으신다면 앞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질 것 같습니까?”
“대인께서는 폐하께서 황궁으로 불러들인 칠군자 중 한 명이지 않습니까. 그중 진항은 이미 죽었으니 이제 여섯 명만 남았군요. 아무튼 그러니 제가 감찰원을 완벽하게 쥘 수 있도록 대인께서 도와주셔야 합니다.”
* * *
마차를 타고 성을 나가는 범한은 또 다시 득의양양한 웃음을 터뜨렸다. 어젯밤에 황제 폐하를 속인 그는 오늘 뛰어난 연기력으로 언빙운까지 속여 감찰원 관리들에게 처단하도록 했다. 게다가 그는 잠시 뒤 진편평을 만나서 자신이 가장 걱정하는 일을 감찰원 전체를 재정비함으로써 영원히 발생할 수 없는 일로 만들 생각이었다.
산골짜기 습격 사건 배후에는 감찰원이 있었다. 만약에 당초에 진평평의 지시를 받은 언약해가 진씨 집안에 협조하지 않았다면 산골짜기 습격 사건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만일 진씨 집안이 혼자서 효산 요충지 사병을 동원하고 진항이 이끄는 경도 수비사 엄호를 받으며 움직였다면 강남에서 돌아오는 범한의 마차 행렬이 어느 길로 오는지 미리 파악하지도 못했을 것이고, 그처럼 맹공을 퍼부을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진평평이 정말 범한을 죽일 마음을 품었다는 건 이 사건만 봐도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범한은 이 일을 이용해 언빙운이 자신의 진심을 믿도록 설득했다. 자신이 보복할 마음이 없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2 황자를 공격했던 것처럼 진 원장이 조용히 퇴직하게 할 수 있도록 먼저 움직이려는 거라고 믿게 했다.
그가 이런 방식으로 일을 추진하는 이유는 그림자에 관한 일이나 섭경미와 관련된 일을 어느 사람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언빙운은 물론이고, 심지어 아내에게조차 말할 수 없었다.
“대인이 저를 죽이려 했던 일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지 알려 주십시오.”
진원 조용한 방 안에서 범한이 싱글벙글 웃으며 옆에 앉아 있는 노쇠한 진평평을 바라보았다. 먼 방에서는 시시덕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진평평이 침착한 얼굴로 범한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나를 경도에서 떠나게 하려고 이런 일을 벌인다는 건 이해가 된다만, 그 일은 언약해가 주도 했다는 걸 알면서도 왜 언빙운에게 조사를 맡긴 것이냐?”
“저는 조사가 어찌 되든 상관없습니다. 제가 바라는 건 대인께서 얼른 고향 집으로 돌아가시는 것입니다.”
범한이 ‘하하’하고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제가 감찰원 원장이 되면 대인은 퇴직한 뒷방 늙은이가 되실 텐데 저와 싸우실 수 있겠습니까?”
범한이 갑자기 미소를 거두고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대인께서는 애초에 제가 놓으라 말하면 단념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지만 대인이 그리하려 하지 않으시니 이제 저는 대인을 내쫓을 수밖에 없습니다.”
“네 놈을 정말 배은망덕한 놈이야!”
진평평이 기침을 하면서 소리쳤다.
“내가 아무것도 관여하지 않고 있는데도 안심하지 못하겠다는 거냐?”
“안심하지 못하겠냐고요?”
범한이 상심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대인께서 아무 일도 하지 않니 안심하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럼 이제 말해보십시오······ 3년 전에 스스로 독을 먹고 중독된 이유가 뭡니까?”
한 사람의 비통함으로 진원 전체의 분위기를 무겁게 가라앉힐 수는 없었다. 더욱이 범한의 상심 가득한 표정을 오히려 비웃음만 불러왔다. 바퀴 달린 의자에 앉은 진평평이 범한을 빤히 바라보다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범한은 지난 5년 동안 진평평을 꾸준히 봐오면서 그의 늙어가는 모습과 과묵한 모습도 보았고, 또 그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진평평이 아이처럼 순수한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바퀴 달린 의자에 항상 드리워 있던 어두운 분위기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오늘은 보이지 않았다. 지금 진평평은 마치 한평생 채식만 하며 살아온 신도처럼 평온하고 참신한 분위기를 풍기는 게 안에서부터 밖까지 모두 투명하게 보이는 것만 같았다.
범한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진평평의 얼굴을 바라봤다. 어떤 마음을 가지냐에 따라 사람의 모습이 바뀐다는 건 알았지만, 진평평이 오늘 무슨 마음을 먹었기에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지는 이해되지 않았다. 진평평의 노쇠한 눈동자에는 평소 무자비한 냉혹한 기색은 사라지고 평온함만 담겨 있었다. 차분히 범한을 바라보던 진평평이 나지막이 물었다.
“독을 먹은 것 말고 또 아는 게 있느냐?”
“이전에 대화했을 때 말씀드렸듯이 많은 걸 알고 있습니다.”
범한이 한숨을 쉬며 진평평의 눈을 바라봤다.
“대인이 비개 선생님을 동이성으로 보내 사고검의 목숨을 연명하게 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범한이 더는 진평평에게 묻지 않고 그동안 자신이 알아낸 것들을 자세하게 이야기했다.
“고하가 모든 방법을 동원해 대인의 목숨을 연장하려 한 건 대인이 오래 살면 살수록 대인과 폐하 사이가 틀어질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범한이 고개를 숙이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대인께서 사고검의 삶을 연장하려 한 것은 검려가 그림자의 신분을 폭로해 황제 폐하가 대인을 가만두지 못하도록 만들기 위해서였지요.”
“폐하께서 나를 가만두지 못한다고?”
진평평이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진평평이 웃는 이유를 모르는 범한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3년 전에 대인이 독에 중독되었던 이유도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대인은 독에 중독되었다는 이유로 경도에 들어가지 않고 장 공주와 황태후가 안에서 마음대로 움직이도록 내버려 두셨습니다. 그 명목상의 이유는 폐하의 밀명을 따르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실은 다른 큰 의도를 가지고 계셨던 거지요.”
범한이 자조 섞인 미소를 지으며 계속 자신의 생각을 설명했다.
“당시에는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데다가 위험에 처해 있어서 깊이 생각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알겠더군요. 장 공주의 수석 모사였던 원굉도 대인과 진씨 집안 어르신이 가장 믿는 감찰원 밀정인 언약해 대인은 모두 대인의 심복이었습니다. 그러니 대인은 몸은 경도 밖에 있었지만, 반란이 진행되는 상황을 누구보다도 자세하게 알고 계셨을 겁니다. 그리고 대인은 두 사람의 은밀한 도움을 받고 있었으니, 만약 황제 폐하를 대신해 경도 안 상황을 통제하셨다면 그렇게까지 상황이 아비규환으로 변하지도 않았겠지요.”
진평평이 웃으며 가시 돋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냐? 그럼, 네가 봤을 때 내가 경도 상황을 통제하지 않은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느냐?”
“대인은 경도가 혼란에 휩싸여 자신이 증오하는 황궁 안 사람들이 모두 죽기를 바라셨던 겁니다.”
범한이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설명했다.
“황제 폐하가 불을 지르자 대인은 그 불을 더욱 크게 퍼뜨리셨습니다······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불태워 죽이려고요. 대인께서는 모든 게 불타고 재만 남은 상황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저와 첫째를 데리고 상황을 수습할 생각이셨던 거지요.”
“너는 아직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구나. 내가 왜 폐하를 배반하려 했을 것 같으냐? 설마 그만한 능력을 갖춘 네가 경도 안에서 고작 너와 친왕 두 사람밖에 지키지 못했을까?”
“대인도 능력을 갖추고 계시지 않습니까. 저는 단 한 번도 이 점을 의심해 본 적 없었습니다. 만약 폐하가 정말 대동산에서 돌아가셨다면······ 원굉도 대인과 언약해 대인의 역할은 완전히 발휘될 수 없었을 테니 대인이 직접 원굉도 대인을 버리셨겠지요.”
진평평을 바라보는 범한은 입안에서 쓰고 시큼한 맛이 느껴졌다.
“대인이 폐하를 배반하려 한 이유도 잘 알고 있습니다.”
진평평이 큰 소리로 웃으며 바퀴 달린 의자 손잡이를 두드리자 안이 텅 빈 대나무를 두드리는 것처럼 ‘퉁퉁’하는 소리가 났다. 한참을 침묵하던 진평평이 범한의 눈을 쏘아보았다. 마치 아주 오래전에 젊은 그 사람을 노려보았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는 안 됐다고 말하려는 거냐?”
범한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는 진평평의 물음에 뭐라 대답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녀의 아들인 그가 어찌 그래서는 안 됐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심지어 범한은 진평평이 섭경미를 뼈에 사무치도록 그리워하고 있으며, 이에 모든 걸 불살라 버릴 만큼 강렬한 복수심을 품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있었다.
진평평은 황제 폐하의 가장 가까운 신하였다. 어려서부터 성왕부에서 일해 온 진평평은 섭경미와 긴 시간을 알고 지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인생의 여정에서 잠시 스친 손님과 같은 섭경미는 천하에서 가장 어두운 밀정 우두머리의 마음속에 비수를 숨겨두었다. 20여 년 동안 숨겨져 있던 비수는 그의 마음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마음을 찌르고 상처를 주었다.
진평평이 피곤한 듯 바퀴 달린 의자에 기대며 말했다.
“너는 그때를 모른다. 알 수가 없지.”
범한은 당시 일을 직접 경험하지 않았기에 쉽게 안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는 그저 침묵하고 계산하고 참으며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했다. 만약 사람과 사람 사이에 복수와 원망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세상은 훨씬 단순해질 거였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항상 복잡한 법이었다.
“대인이 독을 먹은 두 번째 이유도 알고 있습니다.”
진평평의 마른 우물처럼 고요한 두 눈을 바라보던 범한은 인간 세상의 일은 항상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를 남기는 법이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아파졌다.
“대인께서는 폐하가 대동산에서 살아 돌아오지 못할 거라 생각하시고는 폐하의 세상을 무너뜨리려 하셨지요. 대인께서는 이 모든 일을 마치면 평생을 모신 황제 폐하를 위해 황천길까지 같이 가서 군신의 의를 다하려 하신 겁니다.”
진평평이 두 눈을 감고 천천히 말했다.
“어쨌든 나는 폐하와 어린 시절부터 함께해오지 않았니. 그분이 성장해 제왕이 되는 모습을 봐왔기에 누구보다도 그분에 대해 잘 알고 있단다. 폐하는 외로운 걸 두려워하는 분이야. 그래서 나는 그분이 저승길을 걸어갈 때 두려워하지 않도록 배웅해 들릴 생각이었다.”
“배웅한다고요?”
범한이 가시 돋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폐하께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 아십니까? 황천길에 폐하를 배웅할 사람은 차고 넘칠 텐데 굳이 대인까지 나서실 필요가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