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7화 경도로 돌아가 관직을 청해야지 (1)
잠시 아무 말 없이 사고검을 바라보던 범한이 공손하게 가르침을 청했다.
“종사께서 지난 몇 년 동안 어떻게 목숨을 유지했는지 알고 싶습니다.”
사고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범한이 앞으로 걸어가 침대 가에 서서 그가 덮고 있는 이불을 살짝 걷고는 아주 조심히 대종사의 얇은 옷을 풀었다. 그리고는 사고검의 가슴에 난 커다란 상처를 바라보고는 한참 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범한의 행동은 상당히 무례하고 공손하지 못한 행동이었다. 지금 검려 방안에 다른 사람이 없었지만 범한은 여전히 자신의 행동이 무례하고 부적절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한두 번 살피고는 다시 조심히 사고검의 옷을 여미어 줬다.
아무리 죽음을 앞두고 있다고 해도 사고검의 성격이라면 범한이 자신의 몸을 시체 검안하듯이 보는 행동에 마땅히 화를 내고 분노해야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사고검의 눈빛에는 조금의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천장 대들보만 바라보고 있었다.
다시 의자로 돌아온 범한은 머릿속으로 방금 보았던 상처를 떠올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는 사고검의 상처에 상당한 흥미를 느꼈다. 상처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 저 대종사가 3년 동안 목숨을 유지한 게 더욱 놀랍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 황제 폐하는 일격으로 사고검에게 회복할 수 없는 치명상을 입혔다.
‘아무래 대종사라고 하지만, 어떻게 복부 경맥이 다 망가지고 장기가 못쓰게 되었는데 살 수 있단 말인가?’
성주부 안에서 그림자가 사고검을 찔렀을 때 대종사의 복부에 난 기이한 상처가 범한의 눈을 사로잡았었다.
그 상처는 공포스러울 정도로 파란색을 띠고 있었는데, 범한에게도 아주 익숙한 맹독의 색깔이었다. 의자에 앉아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범한이 돌연 입을 열었다.
“비개 선생님이 동이성에 얼마나 오래 머무셨습니까?”
사고검이 난처하게 웃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너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영리한 놈이야.”
범한이 가만히 의자에 앉아 말했다.
“맹독을 사용해 경맥을 끊고 부패한 오장육부를 경직시키려면 독을 아주 정교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지요.”
그리고는 머리 아프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쉬며 자신의 태양혈을 부드럽게 눌렀다.
“이런 경지를 어렸을 때 스승님에게 한 번 들은 적은 있지만 누군가가 실제로 해낼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 없었습니다. 천하에 3대 독 종사 중 소은은 세상을 떠났고, 동이성에 있는 그 사람은 종사가 불러도 나올 사람이 아닌 걸 압니다······. 그러니 독을 사용해 종사를 몇 년 동안 살려둔 사람이 비개 선생님이 아니면 누구겠습니까.”
“게다가 스승님께서 계속 저에게 바다로 나갈 거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천주로는 가지 않으셨더군요. 그렇다면 동이성으로 갔겠지요.”
범한이 혼잣말을 하는 것처럼 조용히 말했다.
“스승님께서는 이전에도 종사를 치료한 적이 있으셨으니 이번에 또 치료했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지요.”
“그렇다.”
몸이 경직되어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 있을 수밖에 없는 사고검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비개는 검려에 1년 반 정도 머물다가 바다로 나갔어.”
그 말을 들은 범한이 실의에 빠진 표정을 지었다. 사실 성주부에서 사고검의 상처를 보았을 때 그는 어쩌면 비개 선생이 검려 안에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했었다. 그런데 그의 예상과는 달리 비개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이 세상에서 두 번째 삶을 살게 된 이후 가족인 할머니와 오죽 아저씨를 제외하면 비개 선생은 그가 처음 본 어른이자 진심으로 그를 아껴준 사람이었다. 비록 괴짜이기는 했지만, 범한은 비개와 돈독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시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시체를 이용해 독약을 배우면서 서로 무척이나 가까워졌다.
비개 선생이 정말 바다로 나갔다면 이번 생애에는 대륙에 돌아오지 않을 수 있었다. 순간 범한은 마음이 텅 비면서 옅은 슬픔이 용솟음치는 게 느껴졌다. 순간 훗날 아버지와 진평평, 심지어 황제까지도 모두 자신의 곁을 떠나서 자신만 홀로 이 세상에 남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자 그는 덜컥 겁이 났다. 그런 슬픔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비개와 섭류운이 함께 바다로 나갔어.”
사고검이 또 비밀을 털어놨다.
범한이 한참 동안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대종산 사건이 일어난 뒤 섭류운은 두 달 동안 상처를 치료하고는 수십 년 동안 해왔던 것처럼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아무도 그의 소식을 아는 사람이 없었고, 심지어 섭중과 섭류운도 그가 어디로 갔는지 몰랐다. 하지만 경국 관리와 백성들은 이미 대종사가 구름처럼 이리저리 한가롭게 떠돌며 살아간다는 걸 알았기에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바다로 나갔다고? 신대륙이라도 발견하려는 건가?’
범한이 씁쓸한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뜨렸다.
“모두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버렸군요.”
“섭류운은 대동산에서 내 칼에 맞았으니 다시는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할 거야.”
침대에 누운 사고검의 담담한 말투에는 조금의 거만함이나 오만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함께 바다로 나간 비개가 그의 상처를 살펴주겠지. 섭류운은 자신의 두 손으로 비개를 보호해 줄 테고. 그러니 두 사람 모두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을 거야.”
자리에서 일어난 범한이 잠시 아무 말 없이 사고검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경국과 동이성의 협상은 계속될 겁니다. 종사께서도 아시다시피 이 일은 단시간 안에 끝낼 수 없는 일이니까요. 다만 제후국 왕공 귀족 중에는 분명 여전히 반감을 품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종사께서 세상을 떠나 이러한 문제들을 더는 통제할 수 없게 된다면 저는 강력한 방법을 사용할 겁니다.”
“이건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네.”
이불 아래 빼빼 마른 몸으로 힘없이 누워 있는 사고검의 모습은 무척이나 가련하고 아파 보였다.
“자네가 나를 찾아와 이런 말을 하는 건······ 컥······ 커억······ 떠나야 하기 때문이겠지.”
“잠깐 경도에 돌아갔다가 올 겁니다. 돌아와서는 후속 일들을 처리할 생각입니다.”
범한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문으로 걸어갔다. 문지방을 넘으려던 그가 발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진평평 대인이 비개 선생님을 보내서 종사에게 뭐라고 한 겁니까?”
사고검은 잠이 든 것처럼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범한이 문지방 앞에서 몸을 돌려 근심 가득한 얼굴로 계속 물었다.
“고하는 진평평 대인의 목숨을 연장하고 싶어 했고, 진평평 대인은 종사의 목숨을 연장하려 했습니다. 도대체 이렇게까지 고생을 하는 이유가 뭡니까? 가끔씩 저는 정말이지 원장 대인이 이런 길을 선택하셨다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 이건 원장 대인의 기존 모습과는 완전히 배치(背馳)되는 일입니다.”
“나도 엄청나게 놀랐네.”
사고검이 귀에 거슬리는 웃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오로지 경국 황제에게만 충성하는 검은 개가 어째서 내 목숨을 연장해주려 했을까? 설마 내가 현공 사당 일을 까발릴까 봐 두려워서 그런 걸까?”
범한이 아무 말 없이 속으로 생각했다.
‘늙은 절름발이 노인은 단지 인간의 본성을 이용하려 했을 뿐이야. 도대체 이건 얼마나 참혹하고 고통스러운 모략인 걸까?’
“3년 전 경도에서 반란이 일어나기 직전 원장 대인께서 독에 중독되셨습니다.”
범한이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원장 대인을 독에 중독시킨 사람은 동이성의 사람이겠군요.”
이 말을 끝으로 그가 방을 나섰다. 그리고는 활기라고는 조금도 없지만 살기는 충만한 방으로 걸어갔다. 그가 검려 정중앙에 있는 큰 구멍 옆에 서서 고개를 들고 한참 동안 아무 말 없이 하늘을 바라봤다. 파란 하늘 위에는 하얀 구름이 떠다니고 있었고, 밝게 빛나는 둥그런 태양은 긴 구름 끝에 걸려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끝에 불이 붙은 커다란 붓이 파란 하늘에 눈이 부신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태양은 자신을 연소시켜 다른 이들을 밝게 비춰 주었다. 이 우주는 본래 어두운 곳이지만 태양은 자신의 눈앞에 조금의 어둠이 드리우는 것도 용납하지 못했다. 자신이 가진 연료를 필사적으로 연소시켜 별 뒤편에 있는 어둠까지 모두 밝히려 했다.
검갱 옆에 선 범한이 깊이 숨을 들이켜고는 체내의 두 대주천(大周天)을 천천히 회전시켜 천일도 정기가 자신의 심맥을 보호하게 했다. 그가 패도의 정기를 가장 높은 경지까지 끌어 올리자 몸 안에 정기가 충만해져서는 바람이 불지 않는 데도 옷깃이 펄럭이며 요동을 쳤다.
무궁무진한 정기가 그의 팔을 타고 손바닥까지 전해진 뒤 천천히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러한 정기의 운행 법문은 모두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범한은 어린 시절 절벽을 기어오르기 위해 생각해낸 방법을 20년 동안 꾸준히 연마하였고, 덕분에 능수능란하게 부릴 수 있게 된 거였다. 정기를 배출해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모습이 무척이나 자연스러워 보였다. 과거 재치로 생각해낸 방법이 오랜 시간 뒤 이런 모습이 될 거라고는 그 역시 생각지 못했다.
검총 옆에 선 범한이 양팔을 쭉 펼쳤다.
그러자 정기에 감화된 듯이 구덩이 안에 있는 무수히 많은 검들이 윙윙대며 떨기 시작했다.
그중 평범해 보이는 한 검이 정기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윙윙대며 구슬픈 소리를 내며 구덩이 황토에서 벗어나려고 발악을 했다. 결국 사고검이 버린 낡은 천 조각, 쓰레기와 함께 날아오른 검이 범한의 손으로 들어왔다.
범한이 손에 들어온 검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가 자주 사용하는 대위 천자의 검과 비교하면 분명 보잘것없었다. 그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것도 인연인 건가?”
어두운 방 안 침대에 누워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사고검이 웃으면서 혼잣말을 하듯이 중얼거렸다.
“아직 이르지 못했군.”
범한이 손에 쥔 검을 바라보며 탄식했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군.”
* * *
밤중에 마차 세 대가 빠른 속도로 서쪽에서 출발했다. 마차 안에는 경국의 존귀한 손님이 타고 있었는데, 지금의 상황에서 동이성이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의 범위 안에서 이 마차를 막고 검사할 사람은 없었기에 마차는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더욱이 이 마차들은 전부 색깔이 검은색이었다.
뜨거운 물이 담긴 대야를 든 목풍아는 달리는 마차 안에서 쏟을까 걱정하며 조심스럽게 제사 대인 앞으로 가져왔다.
호화스러운 생활을 누리는 범한은 감찰원 관리들이 어디서 뜨거운 물을 가져오는지 몰랐다. 그가 뜨거운 물에 담긴 수건을 들어 피곤한 얼굴을 벅벅 닦으며 물었다.
“경도에서 새로운 소식이 전해진 건 없는가?”
“모든 게 평소와 같습니다.”
목풍아가 제사 대인을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실 그는 제사 대인이 이처럼 급히 경도로 돌아가려 하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비록 동이성 협상에 골치가 아픈 부분이 많아서 제사 대인이 경도로 돌아가 협상의 세세한 부분을 황제 폐하에게 말하고 지시를 받아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어째서 이렇게 서둘러 돌아가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더구나 위험하게 어두운 밤에 빠른 속도로 마차를 몰면서까지 말이다. 다행히 동이성 부근에는 산길이 없어서 마차가 전복된 위험은 없었지만, 만일 그런 사고가 생긴다면 황제 폐하는 수행한 감찰원 관리 전부의 목을 베어버리려 할 거였다.
목풍아의 대답을 들은 범한은 안심이 되었다. 현재는 경력 10년으로 그가 감찰원에 정식으로 들어온 지도 어느덧 5, 6년이 되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는 태어난 그 날부터 진평평의 손에 길러지면서 감찰원을 물려받을 준비를 해왔다.
5살 때부터 그는 비개 선생에게 독약을 배우는 시간을 제외하면 시간 대부분을 감찰원의 조례와 조직 체계를 배우는 데 쏟았다. 덕분에 범한은 이미 감찰원이라는 공포스러운 기구를 완전하게 장악해 부하 중 충성스럽게 능력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까지 파악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