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여년-860화 (860/1,108)

860화 검려 안의 손님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두 강자가 범한을 잡아들이기 직전인데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서였다. 오두막에 있는 사람이 뜻밖에도 나뭇가지와 나뭇잎을 이용해 두 강자를 뒤로 물러나도록 압박한 것이었다.

이 세상에서 끝을 알 수 없는 심후한 경지에 들어선 자는 몇 안 되었다. 그런데 검려에 있는 주인이 그중 하나였다. 이제 보니, 검려 밖에서 소란이 일어 성격이 포악한 검성 대인의 신경을 거슬리게 한 모양이었다.

사고검이 나뭇가지 하나와 나뭇잎으로 인간 세상에서 최 정점에 있는 실력자라 불리는 9등급 강자 둘을 뒤로 물러나게 한 것이었다. 대종사의 경계는 과연 속인의 범주를 초월해 있었다.

그런데 이 대종사는 심성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 보니 자신의 큰 제자에게는 나뭇잎을, 랑도에게는 나뭇가지를 사용한 건 있었다.

두 번째 문 안에서 푸른 잎사귀들이 날아오는 걸 발견한 운지란은 두려움 속에서 후퇴하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한편 랑도는 오히려 전의가 끓어올라 자신에게 날아오는 나뭇가지를 억지로 막았고 그 결과 내상을 입어 피를 토했다. 그런데 이 모든 건 찰나의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검려에 숨어 3년 간 침묵하며 손님도 받지 않던 사고검이 오늘에서야 행동에 나선 것이었다. 그런데 아예 안 나섰으면 모를까, 이왕 나선 거 사고검은 주변을 깜짝 놀라도록 해버린 거였다.

오두막 문밖에 있는 모든 검려 제자들이 ‘솨락’ 하는 소리와 함께 일제히 바닥에 꿇어앉았다. 그런 후 검려 방향을 향해 고개를 조아리며 문안 인사를 올렸다. 그런데 왕 십삼랑을 막는데 가담했던 제자들은 더 큰 두려움과 강한 불안감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이에 이들의 눈빛은 무의식적으로 대사형을 찾기 시작했다. 고전 소설을 보면 남에게 누명을 잘 씌우는 무리가 종종 등장하는데, 이 대사형이란 자가 뒤에서 모함하는 일을 제일 많이 한 게 분명했다.

운지란은 차분한 표정으로 한쪽 무릎을 바닥에 꿇고 있었다. 그런데 바람에 흩날리듯 가볍게 떨리고 있는 소맷자락 때문에 지금 그의 진짜 심정이 어떤지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다. 그는 스승대인께서 언제 검려 앞쪽까지 오신 것이며, 그리고 스승 대인께서 그의 행동에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 알지 못했다. 다만 스승님께서 허락하지 않은 이상 이렇게 꿇어 앉아 있어야 한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하도인이 다친 랑도를 부축했다. 북제의 고수들은 모두 놀란 모습으로 굳게 닫힌 검려의 문을 주시했다.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제 곧 무슨 일이 일어날지, 그리고 사고검이 왜 범한을 도와 자신들의 황제 폐하를 압박하려는 건지, 황제 폐하는 지금 안전하신 건지 알지 못해서였다.

그들은 자신들 중 가장 강한 랑도 대인이 사고검이 대충 던진 나뭇가지 하나도 막아내지 못하는 실력 차를 보이자 더는 앞으로 나설 용기를 내지 못했다.

랑도가 입가에 묻은 핏자국을 천천히 닦으며 검려 깊숙한 곳을 싸늘하게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에서는 복잡한 감정이 스치고 있었다. 본인의 생각과 벗어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느낀 것만 같았다.

* * *

단단한 푸른 바닥석 위로 범한의 발이 무겁게 떨어졌다. 범한의 발은 바닥과 부딪히는 순간 움츠러들더니 탄성을 이용해 그의 몸을 일으켜 세워주었다. 그리고 젊은 황제의 손은 이미 놓은 상태라 범한의 손은 위로 들려 있었다. 위로 들린 오른쪽 팔은 검은색 비수를 들고 있었고, 그의 몸은 반쯤 웅크린 상태로 뒤에 있는 나무문을 노려보고 있었다.

범한은 짧은 시간 안에 강제로 방향을 틀어 필살의 초식을 펼칠 준비를 마쳤다. 호랑이로 토끼 잡을 자세를 취한 거였다. 이는 현재 범한의 실력이 상당히 강력한 경지에 올라왔음을 말해주는 거였다.

그러니 지금 운지란과 랑도가 문을 부수고 들어온다 하더라도, 범한은 적어도 아까 같은 낭패를 당할 리는 없었다. 오히려 상대방에게 매서운 일격을 날렸을 것이다.

다만 나무와 짚으로 만들어져 바람에 훅 날아갈 것 같아 보이는 문은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도 여전히 조용히 닫혀 있기만 했다. 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이는 없었으며, 심지어는 문 밖에서 나던 소리도 점점 작아지기 시작했다. 지극히 평범하게 생긴 여닫이문이, 놀랍게도 모든 비바람과 피 비린내를 문 밖에 묶어두고 있었다. 이에 문 안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가 되어 검려 안에서 평안하게 세상의 낙이나 즐겼다.

한참 후 범한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여닫이문을 바라보았다. 운지란과 랑도가 아까 공격하러 안으로 들어오지는 못했으니, 적어도 단 시간 안에는 두 번째 시도를 할 용기를 내지는 못할 건 알고 있었다.

범한은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알고 있어서 생각이란 걸 할 필요가 없었다. 검려가 무도의 성지이기는 했지만, 운지란이 봤을 때 범한을 쫓아낼 수 있는 사람은 검려의 주인, 즉 성정 포악한 대종사뿐이었던 거다.

하지만 범한에게는 전혀 의외의 일이 아니었다. 아까 억지로 검려로 돌격해 들어온 건 분명 사고검이 자신에게 손해 입히는 일은 하지 않으리란 걸 예측해서였다. 그래서 범한은 사고검이 어떤 방법으로 그 자신의 태도를 드러낼지 궁금할 뿐이었다.

검려 안쪽은 고요했다. 범한이 몸을 돌리자 푸른 바닥석 위에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앉아 있는 북제 젊은 황제가 보였다. 그런데 발을 세우고 있는 걸로 보아 아까 바닥과 부딪힐 때 다친 모양이었다. 범한은 그를 신경써주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래서 주변이나 둘러보았지만 사람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범한에게는 나뭇가지나 나뭇잎 같은 게 날아들지 않았다. 하지만 몸을 앞으로 돌리려는 찰나 눈언저리 쪽에서 익숙한 사람의 형체가 포착되었다. 이에 범한은 조금 기괴한 기분이 들었다. 범한은 오늘 검려에 그림자를 데려올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저 사람 형체는 대체 누구지? 만약 사고검이라면, 내게는 왜 이렇게 익숙하게 느껴지는 거지?’

푸른색 바닥석 위에서는 지푸라기 같은 게 바람 따라 천천히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검려 밖이 떠들썩했던 건 이미 여러 해 전 일인 것만 같았다. 범한이 북제 젊은 황제 곁으로 걸어가 한손을 쑥 내밀어 그를 부축해주었다. 그런 후 검려 안쪽에 있는 세 번째 문을 향해 나아갔다.

두 사람이 그 문으로부터 세 걸음 떨어진 곳에 도착하자 사립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동자가 머리를 삐죽 내밀고는 똘똘해 보이는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며 범한과 북제 젊은 황제의 몸을 두 번 훑어보고는 히히히 웃기 시작했다.

“두 분 중 어느 분이 범씨이고, 어느 분이 전씨인가요?”

“짐이 바로 북제의 황제니라.”

북제 젊은 황제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복사뼈 부분이 견딜 수 없이 아픈 것 같았다. 하지만 검려 내부에서도 그는 여전히 버릇대로 누구보다 먼저 입을 열었다.

그 순간 범한은 기분이 묘했다. 검려에서 어떤 일을 당하게 될지 알 수 없어서였다. 그가 살짝 비웃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렇다면 내 성이 범씨가 되겠구나.”

두 사람으로부터 대답을 들은 동자가 매우 즐겁게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립문을 활짝 열고 공손하게 예를 갖추어 인사했다.

“두 귀빈께서는 저를 따라오시지요. 방은 저 안쪽에 있습니다.”

동자가 뒤로 돌아 길 안내를 시작했다. 그런데 범한 품 안에 있는 북제의 젊은 황제가 미간을 찌푸리기 시작했다. 그는 동이성에 이미 수일 전에 와 있었고, 여러 차례 검려에 들어와 본 터라 이곳 길이 낯설지 않았지만, 정작 사고검은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 한편 오늘 범한은 랑도와 운지란의 방해를 억지로 뚫고 검려로 들어온 거였다. 그런데도 사고검은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두 사람을 만나겠다는 의사를 보인 거였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북제 젊은 황제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리고 은근히 무언가 심상치 않다는 기분까지 들었다.

하지만 범한의 눈빛은 오히려 동자의 뒷모습에 꽂혀 있었다. 동자는 등에 장검을 메고 있었고, 장검은 비쩍 마른 그의 몸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자는 두 사람을 검려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어느 방으로 데려다 주었다. 그러자 여종이 뜨거운 물과 간식을 가져다 놓고는 곧바로 물러갔다. 이 조용한 방 안에 범한과 북제의 젊은 황제, 딱 둘 만 남겨둔 거였다.

그리고 이곳 주인은 말을 걸어주지도 보러 와 주지도 않았다. 그래서 두 손님은 수동적으로 따라주는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검려 깊은 곳까지 들어와 있다 보니, 방안이 유난히 조용하다는 거였다. 그래서 범한과 북제 젊은 황제는 조용한 방에 함께 있다 보니 어느새 기분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범한이 창가로 걸어가 창문을 열어 놓고는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회(回)자 모양의 정원 가운데에 있는 큰 구덩이가 눈에 들어와 범한의 동공이 살짝 수축되었다.

이때 북제 젊은 황제는 범한 뒤에 있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범한의 뒷모습을 싸늘하게 주시하고 있었다.

“범한, 이제 자네와 나 둘만 남았으니, 할 말이 있으면 해보거라.”

그러자 범한이 고개도 돌리지 않고 자그마한 소리로 말했다.

“폐하께서 제게 한 모든 말은 사고검에게도 모두 똑똑히 들릴 것입니다······ 한데 정말로 궁금하기는 합니다. 제가 사리리 방에 숨어 있다는 걸 어찌 알아차리신 건지요?”

북제 젊은 황제가 살짝 기괴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런 후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해주기는커녕 오히려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짐이 보기에도 너무 괴이하구나. 왜 짐이 자네의 행방을 알아차렸고, 또 자네를 죽이기 위해 누군가를 보냈을 거라 생각한 것이냐?”

범한이 어깨를 으쓱이더니, 큰 구덩이 안에 있는 각양각색의 검에게서 시선을 거두어 들였다. 그리고 몸을 돌려 북제 젊은 황제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해명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냥 좀 화가 나서 물은 거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왜 이렇게 바보 같고 유치한 행동을 하시는 것입니까?”

범한이 천천히 눈꺼풀을 내리며 말을 이어 갔다.

“저를 죽이시면 향후 천하가 어떤 대가를 치를지 생각해 본 적 있으십니까?”

젊은 황제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데 발이 아파서 참을 수 없어 그런 건지, 아니면 범한이 자신에게 저급한 평가를 해주어 그런 건지는 알 수는 없었다.

범한이 창가 쪽에서 돌아와 침대 옆에 놓인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았다. 그런 후 차분하게 젊은 황제의 얼굴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다가 느닷없이 입을 열었다.

“이제는 나이가 차셨지만, 그런데도 저는 버릇처럼 황제 폐하가 아직 어린 사람으로 보이는군요.”

북제 황제를 범한은 평범한 사람 대하듯 했다. 그러한 범한의 태도와 감정 때문에 북제 황제는 마음이 좀 요동쳤다. 이건 실력 문제 때문이 아니었다. 골수 안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평등의식을 느낀 때문이었다. 랑도나 운지란은 황제와 대면하면 한없이 공손한 태도로 일관했다. 그 누구도 범한처럼 군왕의 존엄을 별 것 아닌 것처럼 여기지 않았다.

맑지만 평범하게 생긴 황제의 용안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던 범한은 무언가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세상 그 누구보다도 이 젊은 황제가 대단하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수년 전 황제는 유치하고 연약했지만 그래도 경국 강남 일대의 국면을 좌지우지했다. 향후 황실 금고를 통제하는 자가 범한이든, 장 공주이든을 떠나 그는 어떻게든 이익을 챙겼다. 그리고 또 북제 금의위 지휘사 심중이 사망한 일은 이 젊은 황제가 상삼호를 교묘하게 이용해 일거삼득의 결과를 도출해낸 거였다. 그래서 북제 황제는 그야말로 마음이 거울과 같아서 모두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사람인 것만 같았다.

그렇다 할지라도 범한은 상대방이 왜 자신을 죽이려 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경국 7년 경도에서 반란이 일었을 때, 북제 젊은 황제가 장 공주를 통해 자신을 죽이고 이후 1 황자를 등극시키려 시도를 한 건 북제에게는 지극히 이로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미 3년이나 지난 시점에 동이성에서 자신을 죽이면 북제는 어떻게든 그 죄를 뒤집어 쓸 수밖에 없었다.

“동이성 안에서 자네를 죽이면, 적어도 동이성이 경국의 손에 떨어지지 않도록 압박은 할 수 있지 않은가.”

말을 마친 황제는 싸늘하게 범한을 바라보았다. 범한에게 해명을 하는 게 전혀 거리낌이 없어 보였다.

“자네가 죽었을 때 경국 조정의 분노를 사는 거? 그런 건 짐의 고려 사항이 아니다······. 자네를 멀쩡히 살려둔다고 해서 자네 황제 아버지가 우리 위대한 북제에 군대를 파견하지 않을 것 같은가?”

젊은 황제가 소리 내어 싸늘하게 웃었다.

“자네가 죽든 살든, 큰 전쟁이 발발하는 건 막지 못해. 하나 자네를 죽이면 적어도 동이성이 짐에게 투항은 하겠지. 오히려 우리에게는 이득인데, 짐이 왜 안 하겠느냐?”

눈앞에 오죽아저씨의 모습이 스쳐지나가자, 범한이 젊은 황제를 바라보며 조롱과 안타까움이 담긴 모습으로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손가락 하나로 황제의 반질거리는 이마를 사정없이 탁탁 때리기까지 했다.

“우리 황제 폐하께서는 어쩌면 옥체를 보전하시느라 직접 공격에 나서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냥 출병을 해 저 대신 복수나 해주시겠지요. 하나 당신께서 정말로 저를 죽인다면, 맹세하건데, 고하가 없는 북제는 피바다로 변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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