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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여년-838화 (838/1,108)

838화 감찰원과 도찰원의 사이의 갈등 (1)

하종위가 어떤 인물인지는 모든 관리들이 잘 알고 있었다. 그와 범한이 과거의 일로 원한을 가진 사이였다. 비록 아주 오래전 일이었지만, 범한은 한번 품은 원한은 절대 잊지 않는 성격이었고, 게다가 하종위라는 이름 세 글자는 그의 마음속에 아주 깊이 각인되어 있었다.

“대학사를 뵙니다.”

“소공야를 뵙니다.”

하종위가 비굴하지도 거만하지도 않은 모습으로 점잖게 인사를 했다. 호 대학사가 껄껄 웃으며 몇 마디 농담해서 그에게 너무 예의를 차리지 않아도 된다는 표시를 했다. 하지만 옆에서 가만히 이 젊은 대신을 바라보는 범한의 머릿속에는 여러 장면이 떠올랐다.

경력 7년 초 범한이 산골짜기에서 군대 측의 습격을 받은 일을 계기로 황제 폐하는 조정의 인원을 새롭게 정비했다. 그때 조정에 일곱 명의 젊은 관리가 들어왔는데, 민간에서는 이들을 칠군자(七君子)라고 불렀다.

칠군자 중에서 진항은 반란에 참여했다가 죽었고, 언빙운은 조용히 감찰원에서 맡은 일을 처리하며 범한의 제사직을 넘겨받을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편 하종위는 젊은 관리들 중에서 폐하의 신임을 가장 많이 받으며 가장 빠르게 승진했다.

경도 반란이 평정되는 과정에서 범한, 1 황자, 섭중은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세 사람이 이미 누릴 수 있는 만큼의 권세와 부를 누리고 있어 폐하가 더 봉해줄 작위나 상이 없었다.

반면 하종위는 폐하에게 많은 총애를 받으며 세 단계나 파격 승진을 했고, 어느덧 조정의 정치 중심에 진입하게 되었다. 이처럼 파격 승진을 하다 보니 경도에서 범한 말고 그를 누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범한도 명확히 알고 있었고, 하종위 자신도 또렷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사실 조정과 민간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는 일이었다. 하종위가 파격 승진을 거듭하며 폐하의 신뢰와 권세를 얻게 된 것은 범한이 가진 권력과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라는 걸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게 황제 폐하가 범한을 의심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황제 폐하가 이런 조치를 한 이유는 범한과 같은 권신과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이 조정에 없어서 문제가 생기는 걸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하종위는 문하중서에 들어갔지만, 여전히 도찰원 좌도어사직을 겸임하고 있었다. 황제의 지원 아래 도찰원은 상당한 권력을 누리며 감찰원의 권력을 상당히 압박했다. 이에 최근 2년 동안 감찰원과 도찰원 사이에서는 적지 않은 소송이 벌어졌고, 양측이 긴장 상태는 갈수록 고조되었다. 이에 송세인과 진백상을 수장으로 한 8처 집률사(執律司)는 쏟아지는 업무에 바빠서 죽을 지경이었다.

집률사는 범한이 말재주가 뛰어난 도찰원 어사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새롭게 설치한 감찰원 부서였다.

이런 점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범한은 하종위를 무척이나 싫어했다. 하종위는 범한의 장인어른이 관직에서 물러나도록 일을 꾸몄을 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그와 부딪쳤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범한이 그를 경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상대방이 침착하고 점잖은 표정으로 마음속 증오와 분노를 숨기고 있는 점이었다.

‘세 가지 성을 가진 종놈’이란 별명이 범씨 집안 서재에서부터 나왔다는 것과 범한이 도찰원 대문을 걷어차고 쳐들어간 일로 사람들도 작은 범 대인이 하종위를 눈엣가시처럼 경멸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매번 조회나 공당에서 마주칠 때면 하종위는 범한에게 극진한 존경을 표하면서 범한이 자신을 경멸하는 사실이나 두 사람이 일석거에서 처음 만났을 때의 일을 모두 잊은 것처럼 굴었다.

웃는 얼굴이 침을 못 뱉는다는 속담이 있듯이 범한 역시 자신의 심기를 건들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하종위를 함부로 대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하종위가 천연덕스럽게 웃는 얼굴을 볼 때마다 범한은 속으로 그를 경계했다. 하종위는 상황에 따라서 언제든지 태도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인만큼 겉으로는 순종적으로 행동하면서 언제든지 몰래 등 뒤에서 칼을 꽂을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인사를 마친 하종위는 마치 범한이 자신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지 않는 게 아쉽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다시 범한과 호 대학사에게 인사를 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몇 마디 말을 남긴 뒤 등불을 따라 황궁 아래 어둠 속으로 돌아갔다.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등불을 바라보던 범한이 더는 하종위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그제야 탁한 숨을 토해냈다. 호 대학사가 온화한 눈빛으로 범한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 대인은 지금 황제 폐하의 굳건한 총애를 받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분수를 망각하고 함부로 행동할 사람은 아닙니다. 감찰원과 도찰원 사이의 싸움은 그저 서로 맡은 바 책무를 다하기 위한 것일 뿐이지요.”

호 대학사가 하종위를 대신해서 해명하자 범한이 입을 샐쭉거리다가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만약 하종위가 대인의 따님과 혼인을 하고 싶다고 한다면 기꺼이 그러라 하시겠습니까?”

놀란 호 대학사가 연신 기침을 하면서 화가 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다는 표정으로 범한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지금 경도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늦게 결혼하는 게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다. 설사 황궁에서 이런 유행을 싫어하는 기색을 보였음에도 바꿀 수가 없었다. 예를 들어서 정왕 세자나 하종위는 이미 서른이 되었음에도 혼인할 생각이 없는 듯 혼자 생활하고 있었다.

“우리 집 딸아이는······.”

호 대학사가 말꼬리를 늘리더니 씨익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듣자하니 작은 범 대인께서 왕 대도독의 딸을 제자로 받으셨다고 하더군요. 이왕 이렇게 된 김에 겸사겸사 제 딸아이도 받아주실 수 있으십니까?”

범한이 당황한 표정을 지으면서 자신이 왕동아를 제자로 받아들인 사실을 떠올렸다. 이 일은 저번에 어서방에서 황제 폐하와 의견 충돌을 빛은 뒤 이미 사실이 되어 있었다.

이에 그는 득의양양 기뻐하며 더 많은 이득을 얻기 위해 한발 물러서서 황제 폐하의 요구대로 1 황자가 측비를 들이는 일을 도맡아서 처리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호 대학사가 이런 말을 하자 그는 비로소 자신의 또 다른 문제에 걸려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범한이 손을 휙휙 내저으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대학사께서는 학식이 풍부하신 분이시니 따님도 분명 총명한 분일 것인데, 저 같은 폐물이 뭘 해드릴 수 있겠습니까.”

범한이 직접적으로 거절하자 호 대학사가 겉으로는 웃으면서도 속으로 섭섭한 마음에 생각했다.

‘작은 범 대인이 폐물이면 천하에 폐물이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조정 문무백관들은 모두들 작은 범 대인이 지금 천하에서 가장 뛰어난 스승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범한은 과거 비열하고 고집이 셌던 3 황자를 교육해 온화한 군자의 모습을 갖추도록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말괄량이였던 섭씨 집안 아가씨를 교육해 온순하고 부드러운 왕비로 탈바꿈시켰다. 더구나 범한은 시선이라 불릴 만큼 문예에도 뛰어났고, 무예에서도 9품 강자의 경지에 있는 만큼 호 대학사도 자신의 딸을 범씨 집안에 보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물론 첩이 아니라 여제자로 보내는 것이었다.

범한이 씨익 웃으면서 주제를 바꿔 말했다.

“대학사께서는 절대 따님을 하종위에게 시집보내셔서는 안 됩니다. 그 사람이 마음이 올곧지 못하다는 걸 아시지 않습니까? 그런 소인배에게 어찌 겉으로라도 친한 척 할 수 있겠습니까.”

호 대학사가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쉬며 속으로 지금 조정에서 하종위에 대해 이처럼 신랄한 비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작은 범 대인뿐일 거라고 생각했다. 다만 호 대학사는 범한이 하종위를 이렇게까지 싫어하는 이유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하종위가 지금껏 했던 일들은 모두 개인의 바람이 아닌 황제 폐하의 뜻에 따른 것이었으니 말이다.

사실 범한이 하종위를 경계하고 싫어하는 이유는 여러 방면과 관련이 있었기에 한마디로 딱 잘라서 이유를 설명하기 힘들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할 일이 없었기에 범한은 호 대학사와 함께 계속 대화를 나눴다.

서무가 노령으로 은퇴한 뒤 범한은 약간의 의외인 사실을 발견했다. 바로 호 대학사가 서무 대인만큼이나 재미있는 사람이며 시대에 뒤떨어진 진부한 모습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경도에서 반란이 일어났을 때 범한은 서 대학사와 호 대학사와 함께 일을 수습하면서 상당한 우정을 쌓았다. 세 사람은 매일 공무를 의논하면서 사이가 무척이나 가까워졌고, 고난을 함께 이겨냈기에 남다른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범한은 호 대학사와 함께 있을 때 그가 당시에 일으켰던 문학 개선 운동에 관해 이야기하는 걸 좋아했다. 문학 개선 운동은 비록 결실을 보지 못하고 희지 부지로 끝나기는 했지만, 호 대학사의 일생 동안 이룬 가장 큰 성취였고, 심지어 문하중서에 들어간 것보다도 대단한 일이었다. 이에 문학 개선 운동의 중요성을 아는 범한은 호 대학사와 함께 그때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황궁의 조용한 분위기를 깨뜨릴 만큼 큰 소리로 웃으며 즐거워했다.

황궁 정문 앞에는 무수히 많은 등불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모두들 범한과 호 대학사가 히히덕덕 즐겁게 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모두들 문하중서의 수장인 호 대학사와 소공야가 하는 대화에 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들은 자신에게 그럴 자격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조회가 열리기를 기다리면서 큰 소리로 웃을 수 있는 건 두 사람과 같은 지위와 배짱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잠시 뒤 몸을 꼿꼿이 세우며 말을 잠시 멈춘 범한은 주변 분위기가 이상한 걸 감지하고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한숨을 쉬었다.

그런 범한을 바라보던 호 대학사는 그가 뭘 생각하는지 알았기에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범한은 황제 폐하가 경도 반란을 평정한 뒤에 아주 찰나의 순간이기는 하지만 그에게 황위를 계승해주는 문제에 대해 고려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황제 폐하가 나중에 이런 생각을 자신의 머릿속에서 깔끔하게 지워 버렸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황제 폐하가 경국 조정을 새롭게 계획하면서 하종위에게 도찰원을 맡겨 감찰원의 권력과 균형을 이루게 하고, 호 대학사를 문하중서의 수장으로 맡겨 조정의 기장을 바로 잡으려 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이런 계획이라면 아마도 경국은 20년 동안은 조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 것이었다.

다만 지금 범한의 가진 권력이 너무 큰데다가 호 대학사와 관계가 무척이나 돈독한 바람에 황제의 계획이 제대로 된 효과를 보기는 어려웠다. 이에 황제는 하종위를 문하중서에 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폐하의 뜻은 아주 분명합니다.”

범한을 바라보던 호 대학사가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황제 폐하는 관리들이 물과 기름처럼 서로 갈등하는 걸 원치 않으십니다. 하 대인이 조금 전에 다가와 인사하며 서로의 관계를 부드럽게 하려고 한 것도 이 때문이지요. 작은 범 대인은 총명하신 분이시니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아시리라 믿습니다.”

범한이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등불에 비친 범한의 영준한 얼굴은 무척이나 침착해 보였다. 그는 1년 반 전에 도찰원 문을 걷어차고 들어가 하종위를 비롯한 십여 명의 어사들에게 신랄한 욕을 퍼부었다.

이에 세상 사람들은 작은 범 대인이 기고만장하게 날뛰었다고만 생각했지 나중에 그가 어서방에 불려가서 안색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릴 때까지 황제 폐하에게 꾸지람을 들었다는 건 알지 못했다.

이 일을 계기로 황제 폐하가 조정의 안정된 균형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도찰원을 감싸려 한다는 게 명확해졌다. 그날의 경험을 통해서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알게 된 범한은 줄곧 그렇게 행동해 왔다.

하종위가 분수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는 이상 그 역시 거친 방법으로 공격하지 않았다. 8처에 집률사를 만들어 도찰원을 곤란하게 만들었을 뿐 그의 특기라 할 수 있는 음흉하면서 악독한 수단을 사용하지는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건 범한이 용인할 수 있는 상황이 지속할 때만 유지될 수 있는 평화였다. 만약 하종위가 그가 용인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른다면, 황제와 혈연관계이자 진정한 실력을 갖춘 범한은 단칼에 하종위를 죽여 버릴 것이었다.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황제 폐하는 무척이나 화를 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사생아 아들에게 죄를 물어 목숨을 내놓으라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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