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9화 풍경 속 두 사람의 마음 (1)
현재 포월루는 이미 천하 곳곳에 거대한 연결망을 구축해 놓은 상태였다. 각 방면의 세력들도 천하에서 가장 큰 기생집 연합을 범씨 집안이 주관하는 사업이라는 걸 알았지만 통제할 방법이 없었다. 정당한 사업인 만큼 어느 국가의 법률로도 통제할 수 없는 것이다.
포월루는 기생들에 대한 대우가 무척이나 좋았고, 손님들의 만족도도 높아서 일하는 사람이나 찾는 사람이나 모두 즐거운 곳이었다.
이에 더불어 범한의 권력과 하명기와 초상전장의 자금을 지원받으면서 포월루는 4년 만에 천하 방방곡곡에 촉수를 뻗을 수 있었다.
물론 포월루의 정보 수집 수준은 전문적인 감찰원보다는 한참 못 미쳤지만, 최소한 범한에게 색다른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었다.
감찰원은 경국의 특수 권력 기구인 만큼 범한은 어느 날 갑자기 황제 폐하가 감찰원의 권한을 자신에게서 빼앗아 눈과 귀를 막아버릴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그런 상황에서 포월루는 범한에게 상당한 힘이 되어주었다. 더구나 이번에 포월루가 은밀하게 보고한 1 황자와 관련된 소식만 보아도 범한이 포월루를 적극적으로 지원할 이유는 충분했다.
심지어 포월루가 은밀하게 보고한 내용은 감찰원 보고서에도 언급되어 있지 않았고, 계년조의 비밀 보고에서조차 한 글자도 언급되지 않은 내용이었다.
그러니 만약 포월루에서 정보를 알아내 보고하지 않았다면 범한은 영문도 모른 채 경도에서 벌어진 사건을 맞서게 되었을 것이다.
물론 이 일로 감찰원과 계년조를 탓할 수는 없었다. 감찰원은 정부 정보기관인 만큼 설사 황실 체면이 걸린 민감한 일을 알아냈다고 하더라도 사실을 확인하기 전에 함부로 보고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궁정과 도찰원 어사의 관리 감독을 받는 상황에서 함부로 상황을 조사하거나 취조해 보고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포월루는 달랐다. 범한이 가진 조직 기구에서 포월루는 어사대(禦史臺)처럼 거리에서 나오는 소문을 자유롭게 보고하고 논의할 수 있었다.
이번에 은밀하게 보고한 1 황자가 측비를 들이려 한다는 소문도 경도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소문에 불과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는 법 없듯이, 이런 소문이 나돌아 다니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게 분명했다. 이에 범한이 미간을 찌푸리며 경도의 지금 상황과 앞으로 일어날 일을 생각했다.
사실 1 황자가 측비를 들이는 일은 지극히 사소한 일이었으므로 범한이 이렇게까지 긴장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포월루에서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측비를 들이는 일은 황궁 안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한 일로 1 황자는 사전에 전혀 사실을 알지를 못한 상태였다.
더욱이 소문에 따르면 뒤늦게 이 일을 알게 된 1 황자가 노발대발해서는 두 차례나 입궁해 폐하와 갈등을 빚었다고 했다.
범한은 1 황자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에 벌써부터 머리가 아팠다.
설사 1 황자가 황제 폐하의 의도를 이해했다고 하더라도 기개가 있고 고집이 센데다가 큰 왕비와 사이도 좋으니 황궁에서 결정한 혼사를 받아들이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황제 폐하가 1 황자에게 측비를 들이게 하려는 건 여러 가지 측면을 다양하게 고려해서 내린 결정이라는 걸 범한은 알고 있었다.
경도 반란을 완벽하게 평정한 뒤 그동안 쌀쌀맞게 대했던 장자 1 황자를 다시 총애하기 시작한 황제 폐하는 곧장 이 일을 계획했다.
1 황자를 국경 지역을 지키는 대원수로 발령하지 않고 암암리에 측비를 들이도록 일을 준비한 것이다. 그러니 측비를 들이는 일은 사실 오랫동안 암암리에서 진행되고 있던 일이었지만, 그동안 1 황자의 강력한 반대에 막혀 수면에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었다.
큰 왕비는 북제 공주였고, 경국과 북제의 평화적인 분위기는 진작 식어버린 상황이었다. 황제 폐하는 미래 전쟁을 위해서라도 자신의 장자가 북제 여자에게 고분고분 길들여지는 걸 허락할 수 없었다.
게다가 향후 북벌을 진행할 때 1 황자는 선봉 대원수를 맡을 최적의 인물이었다. 그러니 이번 계획에서 황제 폐하의 의도는 아주 분명했다. 바로 일단 1 황자에게 측비를 들이게 한 뒤에 시기를 봐서 적당한 이유로 큰 왕비를 내쫓겠다는 생각이었다.
모든 상황을 고려해 세운 결정이었음에도 안타깝게도 1 황자는 부황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사실 1 황자는 애초부터 이런 일을 고분고분 따를 성격이 아닌 만큼 2년 동안이나 강력하게 반대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포월루가 이번에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황궁은 이 일을 공개적으로 밝힌 뒤 강제로 추진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범한은 1 황자가 고집스럽게 반대하는 이유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가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무릎을 끌어안았다.
‘황제 폐하의 뜻이 이처럼 단호하니, 잠시 물러서 상황을 보는 것도 좋을 텐데. 그럼 시간을 조금이라도 끌을 수 있잖아. 설마 황제 폐하께서 조서를 내리시면 다시 황궁으로 달려가서 싸울 생각인 건 아니겠지?’
황족의 자제들은 처한 상황이 상황인 만큼 애처가가 될 수 없었다. 그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1 황자는 큰 왕비와 화목한 부부를 꿈꾸며 오래도록 서로를 아끼며 함께 늙어가고 싶어 했고, 그 모습에 범한은 혀를 내두르며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이지 감탄스러운 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골치 아픈 일이기도 했다. 포월루에서 보고한 정보는 정확하지 않았지만, 어렴풋하게 한 가지 상황을 암시하고 있었다.
바로 영 귀비와 상의를 한 황제 폐하가 잠시 분노를 가라앉히고 범한을 경도로 불러들여 1 황자가 측비를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일을 맡길 생각이라는 것이었다.
경도 반란으로 황태자와 2 황자가 죽은 뒤 경제는 남은 세 아들들에게 이전보다 훨씬 너그럽게 대했다. 만약 이전이었다면 황제였다면 곧장 자신의 뜻을 거역하는 1 황자를 왕부에 연금시키면 시켰지 화를 참고 범한에게 설득하라고 시키지 않았을 거였다.
포월루가 소문을 수집하는 속도가 빨라서 밀지가 도착하기도 전에 경도 상황을 알게 된 범한이 근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황제 폐하의 밀지가 곧 자신이 있는 곳으로 전달될 거라는 사실에 그가 머리를 싸매며 속으로 생각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큰 공주가 1 황자와 혼인하려고 남쪽으로 내려올 때 동행한 사람이 나였잖아? 내가 두 사람의 사이를 이어준 거나 다름없다고. 그런 나보고 4년이 지난 지금 두 사람의 혼인을 깨버리라는 건가?’
* * *
오전 시각, 동쪽에서 비친 햇살이 청주 군아에 있는 마른 가을 나무를 통과하면서 몇 조각의 밝은 빛으로 부서졌다.
부서진 빛 조각들이 비쳐 밝게 빛나는 종이를 바른 창문 앞으로 여시종이 쟁반을 들고 지나갈 때마다 창문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옆에 서 있는 그림자가 아무 말 없이 근심 가득한 범한의 얼굴을 바라봤다. 천하에서 제일 자객인 그는 진평평이나 범한 옆을 지킬 때면 습관적으로 건물이나 경치의 어둠과 하나가 되어 기척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감찰원의 두 주인이 가끔 근심하는 표정을 짓는 걸 자주 보았지만, 대화하는 데 소질이 없는데다가 권모술수 같은 건 전혀 알지를 못해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는 사람을 죽이는 일을 가장 잘하는 만큼 머리를 써서 계획하는 건 그의 임무가 아니었다.
그림자는 초원에서 돌아온 뒤 입고 있던 목축 민족 복장을 벗어 던지고 다시 범한 옆을 지켰다. 과거 몇 년처럼 인기척 없이 조용하게 있었지만, 범한은 천하제일 자객인 그가 이따금 상처를 치료하고 있는 왕 십삼랑을 복잡한 감정이 섞인 기괴한 눈빛으로 바라본다는 걸 알고 있었다.
“지금은 경도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범한은 그림자가 수다쟁이인 왕계년과는 비교할 것도 없고 무뚝뚝한 언빙운이나 등자월보다도 말이 없다는 걸 알았기에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계속 말했다.
“서량로 일이 아직 안 끝났고 경도에서 아직 소식이 들리지 않았는데 급하게 돌아가는 건 적절치 않아요.”
“이건 작은 일일 뿐입니다.”
그림자는 범 제사가 자신과 대화하고 싶어 한다는 걸 알고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너무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범한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작은 일이 아니에요. 대인이 이씨 집안 남자들을 몰라서 그러시는 겁니다. 하나같이 성격이 괴벽스럽다고요. 폐하에게 굴복하지 않겠다고 죽음을 선택한 승건과 둘째만 봐도 알 수 있잖아요. 1 황자 저하께서는 비록 도량이 넓은 분이시지만 동이성 사람들의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성격도 가지고 있으니 폐하께서 계속 압박하신다면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과감한 방법으로 대항하려 할 수 있습니다.”
범한은 그림자가 다시 말을 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근심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계속 말했다.
“더구나 폐하를 비롯한 조정과 일반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 같이 같은 나라, 같은 민족이 아니면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다른 민족은 다른 마음을 품고 있으니 믿을 수 없다는 거지요. 그러니 절반은 동이성 핏줄인 1 황자가 황위를 계승할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더구나 동이성 혈통을 가진 1 황자의 부인인 북제 사람이잖아요. 그러니 폐하가 큰 왕비를 폐위하려는 건 어찌 보면 1 황자를 보호하고 중요한 일을 맡기려는 조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경도 반란을 진압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공신은 총 세 명으로, 범한, 섭중, 1 황자였다. 당시 금군을 지위하고 있던 1 황자는 황제 폐하가 남긴 소위 유훈을 따르겠다는 일념으로 과감한 결정을 내렸고, 반란 상황을 경도 국력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통제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 일을 계기로 평소 1 황자에게 냉담했던 황제 폐하의 태도도 상당히 많이 변하게 되었다.
“정확하게 말해서 황제 폐하는 1 황자 저하에게 약간 미안한 마음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범한이 골치 아프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미간을 누르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래서 1 황자에게 합당한 보상을 해주고 싶으신 거지요. 1 황자가 평생 추구해 온 길을 보면 가장 좋은 보상은 선봉장을 맡아 경도 남쪽을 정벌하고 북쪽을 통일해 천하를 통일하는 데 일조할 수 있게 해주는 겁니다. 한마디로 전쟁터를 누비며 자신의 타고난 능력을 드러내고 명성을 높일 기회를 주는 거지요······. 하지만 만일 정말 폐하께서 1 황자를 선봉장으로 세울 결정을 내리셨다면 먼저 큰 왕비를 반드시 폐위시키려 하실 겁니다.”
여기까지 말하자 범한은 다시 황제 폐하에 대한 불만이 솟구쳤다. 큰 왕비가 과거 북제 큰 공주 출신이라는 사실은 분명 1 황자가 핵심 장군이 되어 북벌을 이끄는 데 상당한 걸림돌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굳이 측비를 들여야 했을까? 굳이 본궁과 후궁 사이에 싸움을 부추기는 비겁한 방법을 사용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했을까?
이건 한 나라를 통치하는 군주가 마땅히 가져야 할 풍모와는 부합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들에게 자기주장만 내세우며 투정을 부리는 노인의 모습에 가까웠다.
순간 이런 생각을 하던 범한의 머릿속에 한 가지 의문이 스쳤다. 만약 황제가 이전의 일들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했다면? 여전히 모든 것들을 의심하고 있다면? 각종 수단을 동원해서 의심의 싹을 모조리 잘라버리려 할 터다.
범한은 점점 마음속에 한기가 들면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는 자신이 몇 년 동안 잘못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자신이 여전히 황제 폐하의 권력에 대한 강력한 욕망을 과소평가해 왔으며, 제왕이란 사람들은 본래 의심이 많고 냉혹한 사람들이라는 걸 간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