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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여년-799화 (799/1,108)

799화 독주로 덥히는 심장 (3)

죽은 2 황자를 언급하자 분위기가 갑자기 무겁게 짓눌리기 시작했다.

한참 후, 이홍성이 억지로 웃으며 말을 이어 가기 시작했다.

“물론, 그 일을 두고 자네를 탓할 수야 없지. 그날 포월루 밖 찻집에서 자네가 둘째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둘째를 통해 다 들었는데······ 자네가 둘째를 꺾어서 그의 목숨을 구하려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네. 단지······ 그가 말일세, 사실은 자네와 마찬가지로 고집이 세서 다른 사람 말은 도통 들으려 하지 않아 그런 거였어.”

이홍성은 황위 계승 쟁탈전에서 처음부터 2 황자 편에 섰다. 범한은 감찰원을 지휘하게 된 후 강력하게 공격을 퍼부어 경도라는 독이 풀린 연못에서 이홍성은 쫓아내지만 2 황자에게는 그리하지 않았다.

이홍성이 2 황자를 지지한 게 단순히 장래 이익 때문이 아니라 원래 사이좋은 친구 사이이기에 그리 한 거란 걸 범한은 알고 있어서였다.

“그들이 세상을 떠나게 되어 나로서도 유감입니다.”

범한이 말을 이었다.

“하나 세상에는 우리가 완벽히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아요.”

“줄곧 궁금했다네.”

이홍성이 범한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둘째든, 태자 전하든 모두 어떤 일을 위해 노력했지. 한데 자네만 처음부터 황자들의 고군분투가 결국에는 침통한 실패로 끝날 거라 단정했어. 왜 그렇게 판단한 건가? 설마 처음부터 신묘한 계산 능력을 발휘해 그들이 전혀 성공하지 못할 걸 알고 있었던 건가?”

“내가 어려서부터 받은 교육 때문일 겁니다.”

범한이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어려서부터 할머님께서 나를 품에 안고 계속해주시던 말씀이 있었거든요. 황제 폐하께서는 어떠시고, 황제 폐하께서는 저쩌시고, 또 황제 폐하께서는 무적불패시고, 황제 폐하께서는 이렇고 저렇고 등등 말입니다. 그게 습관이 되었고, 받아들이고 있던 거였죠. 더군다나······.”

범한이 고개를 가로로 내저었다.

“결국에는 증명이 되었지만, 황제 폐하께서는······ 정말로 무적불패셨습니다.”

이홍성이 아무 말 없이 고개만 가로로 내저었다.

“그래도 경도로 돌아가십시다. 경도로 돌아가면 가슴 아픈 생각이 떠오른다는 거 내 다 압니다. 하나 둘째를 보러 가 보는 것도 좋을 것 같군요. 그와 승건, 황후마마, 장 공주는 모두 풍광 좋은 아름다운 동산에 묻혀 있어요.”

범한이 집을 나와 돌아갈 생각이 없는 떠돌이를 향해 간절하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또 왕야께서도 몸이 갈수록 안 좋아지십니다. 아들 된 입장에서 돌아가 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이홍성은 돌아가겠다 말겠다는 대답 대신 다음과 같이 진심을 담아 말했다.

“부왕께서 작년에 크게 병이 나셨는데 자네가 돌봐드렸다더군. 유가가 서한으로 모두 말해주었지. 고맙네.”

“우리 사이에 고맙고 말고 할 게 뭐 있겠습니까.”

범한이 이홍성을 바라보며 우연히 터져 나온 말처럼 말했다.

“설 즈음에 약약이가 경도로 돌아온다던데.”

“섭령아는 정주에서 마음을 식히고 있다던데, 어째 코빼기도 볼 수가 없는 겁니까?”

범한은 앞서 언급했던 것에 대해서는 더는 말하지 않고 자신이 관심을 갖고 있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나 물었다.

2 황자가 죽은 후 한동안 임완아는 섭령아와 함께 있어 주었다. 하지만 효과가 없었는지 섭중은 황제 폐하게 청해 자신의 딸을 어릴 때 지냈던 정주성으로 보내 놓았다.

정주성에는 이홍성이 있었고, 그는 2 황자와 깊은 우정을 쌓은 사이였다. 그러니 이홍성에게 섭령아를 돌보도록 하는 게 비교적 더 괜찮은 결정이었다.

이홍성이 씁쓸하게 소리 내어 웃었다.

“왕비가 너른 들판을 보게 되니 마음이 많이 안정되셨나 봐. 한데 그분이 어디 가만히 있는 성격이던가? 그래서 지금은 청주에 가 계시다네.”

“청주에요?”

범한이 찬 공기를 씁, 하고 들이마시고는 이홍성을 타박했다.

“그곳은 제일 변두리에 있는 성 아닙니까. 언제든 서호가 쳐들어와 전투가 벌어질 수도 있고요!”

“내게 달리 방법이 있는 줄 아는가?”

이홍성이 범한을 향해 눈을 부라리고는 말을 이었다.

“서대영에는 섭씨 가문의 옛 장수들이 많이 있어. 그들 장수들은 섭령아 왕비를 무슨 집안 작은 어르신 대하듯 하느라 방귀도 맘껏 못 뀐다네. 그런 왕비께서 변방으로 가서 싸우고 부상자를 치료 하겠다 하시는데, 내가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범한이 계속 고개를 가로로 내저으며 한마디 해주었다.

“진짜 엉망진창이군요!”

한데 무언가가 생각났는지 범한이 곧 말을 이었다.

“괜찮습니다. 내가 바로 청주로 가겠습니다. 돌아올 때 그녀를 묶어서라도 데려올 겁니다.”

범한의 말에 이번에는 이홍성이 ‘씁’하고 찬 공기를 들이마시고는 대로했다.

“자네가 창주로 간다고? 설마 사고 칠 생각은 아닐 테지? 그런 다음 황제 폐하께서 자네와 함께 정주군이 죽도록 만들려는 건 아니냔 말일세!”

이홍성의 반응을 바라보는 범한의 눈동자는 별 관심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청주가 최전방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서대영의 통제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 무서워하는 것입니까?”

이홍성이 범한의 코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크게 화를 냈다.

“높은 관원에 신분까지 높은 사람이 마음이 살짝 동했다고 곧바로 청주로 가다니. 설마 자네가 어떤 번거로운 일을 야기할지 모르고 하는 이야기인가?”

청주성은 경국에서 가장 변방에 있는 주이자 성이었다. 과거 1 황자가 처음으로 병사를 이끌고 가 획득한 땅이었으며, 가장 최근에 주성이 들어선 곳이기도 했다.

들판 가장자리에 들어서 있어서 삼면이 모두 텅 빈 공터라 양측이 언제든 충돌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서호가 감찰원의 범한이 청주까지 들어온 사실을 알게 된다면, 모든 대가를 불사하고서라도 공격을 해올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범한이 자신을 겨누고 있는 손가락을 툭 쳐서 내린 후 화를 냈다.

“세자는 관원에 신분 높은 귀인이 아니랍니까? 화친왕은 그런 분 아니시고요? 섭령아도 그런 신분이 아니랍니까?”

“하나 우리는 모두 군영에 있지 않은가!”

범한을 바라보고 있던 이홍성이 분노해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자네를 모른다고 생각하는가? 자네가 청주에 도착하면 가만히 있을 수 있을 것 같나? 나는 자네에 대해 너무 잘 알아. 눈앞에 초원이 보이는데 자네가 안 들어가고 배기겠냐고! 자네는 모험을 좋아하잖나. 몰래 하는 걸 즐기고 말일세. 자네는 절대 부대와 함께 전진하고 후퇴할 사람이 아니야! 내 관할 구역에 들어왔는데 자네가 저기 저 초원으로 들어가고 있는 걸 내가 가만히 보고만 있을 것 같나?”

이홍성이 꽉 깨물고 말을 이었다.

“내 말해 두는데, 자네가 나갈 문은 없을 걸세!”

범한은 침묵했다. 이홍성이 자기 생각을 바로 알아차릴 줄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 속 불길은 이미 아무도 모르게 활활 타오르는 중이었다. 그는 어떻게든 청주로 가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봐야만 했다. 이런데도 초원으로 들어가지 말라고?

“내 약속하지요. 저 들판에 부하들을 데리고 가지는 않겠습니다.”

범한이 이홍성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그냥 청주로 몇 가지만 조사해보러 가는 것뿐이에요. 하여 만약······ 내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 사람이 없을 것 아닙니까. 이번 건은 정말 중요한 일이니 그냥 나를 믿어줘요.”

“청주로 가서 무엇을 조사하려고 그러는가?”

이홍성이 냉정을 되찾고는 매 글자에 힘을 줘가며 물었다.

“황제 폐하의 명에 있는 거라면 내 자네들을 풀어주겠네. 하나 없다면 더는 언급하지 말게.”

“내가 황명이 받았다면 무엇 하러 세자에게 털어 놓는 이런 헛짓거리를 했겠습니까!”

범한은 이홍성에게 자신의 말이 먹히지 않자 어느새 분노가 끓어올라 막무가내로 말하기 시작했다.

“잊지 말라고요! 나는 흠차 대신이에요! 황제 폐하께서 내 마음껏 일하라 하셨음에도 세자에게 알린 건 모두 세자를 존중해서 그런 거라고요! 그리고 내가 정말 청주로 가버리면 세자가 무슨 수로 나를 막을 수 있단 말입니까?”

범한의 말에 이홍성은 이를 악물었지만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이에 그가 한참 후에야 싸늘한 음성으로 말했다.

“이번만큼은 반드시 경고를 해야겠군. 지금 변경은 과거와 다르다네. 이곳 이민족들은 갈수록 음험해지고 있어. 쉬이 죽을 수 있다고······. 한데 그들 하는 짓이 자네 수단과 비슷하군. 자네가 성으로 데리고 들어 온 감찰원 관원이 왜 이리 쉽게 잡혔는지 아는가? 정주성에 지금 첩자들이 많이 섞여 들어와 있어서 서대영과 서량로 총독관아 모두 이 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서 그런 걸세.”

“자네들의 이번 위장은 나를 속이지 못했어. 한데 저 이민족들은 속일 수 있을 것 같나?”

이홍성이 범한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열심히 설득했다.

“섭령아와 자네는 달라. 서쪽 지역에서 섭씨 가문은 이민족들에게 여전히 경외의 대상이야. 하나 자네의 명성은 조정의 체면을 대표하기 때문에 이민족들은 자네를 죽이기 위해서라면 분명 어떤 대가도 불사할 것이네.”

“첩자라······. 첩자가 확실히 많기는 하더군요.”

범한이 길게 탁한 숨을 내쉬고는 느릿느릿 말하기 시작했다.

“과거 30년 동안 서호는 경국 안으로 첩자를 들여보낼 수 없었습니다. 우리와 생긴 게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인데······. 그런데도 최근 2년 들어서는 많아졌단 말이지요. 그래서 호기심이 일었어요. 대체 어디에서 불쑥 튀어나온 첩자가 우리의 정보를 서쪽 이민족에게 팔아넘기는지 말이지요.”

이홍성의 눈빛에서 이채가 번뜩였다.

범한이 이홍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번에 그곳으로 가는 제일 중요한 목적은 우리의 정보를 팔아넘기는 그 사람, 그리고 그 사람과 관련된 모든 이들을 알아내기 위해서입니다. 이번 일을 위해서 내가 꼬박 4개월을 준비했다고요! 그런데도 나를 막겠다면, 황제 폐하께 달려가 명을 내려달라 청해야 할 것입니다.”

이홍성이 양손을 들어 포기했다는 뜻을 내비추었다. 하지만 얼굴에는 여전히 싸늘한 웃음이 걸려 있었다.

“한데 생각을 해보았는가? 만약 자네에게 문제라도 생기면, 황제 폐하는 어쩌란 말인가? 내가 이끄는 서대영 사람들은 또 어쩌고 말이야?!”

“서쪽 이민족들에 대해 너무 높이 평가하는군요.”

범한이 살짝 눈꺼풀을 내리고 조소하듯이 말했다.

“나에 대해서는 과소평가하고 있고요.”

깜짝 놀란 이홍성이 느닷없이 범한을 끌고 지도가 있는 서재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후원을 지나 어느 방안으로 들어가니, 밝게 등불이 켜져 있었다.

이홍성이 커다란 지도 한 장을 쫙 펼치고는 극(極)서쪽의 어느 곳을 손바닥으로 무겁게 내리치며 찬바람이 쌩쌩 돌게 말했다.

“청주 위치를 보게. 저 멀리 2백 리 밖에 있어. 만약 자네가 가야겠다면 내가 배웅하는 차원에서 천 명을 보내 주겠네. 만약 배웅이 싫다면······ 마지막 30리에 달하는 허허벌판 사막에서 이민족들이 습격해 오면 자네는 어찌 대응할 생각인가?”

범한이 지도를 자세히 바라보았다. 이 지도를 놓고 경도 감찰원에서 여러 차례 연구를 해보기는 했지만, 지금 와 다시 마주하니 심장이 서늘해지는 건 여전했다.

청주로 가는 길은 초원 가장자리에 바짝 붙어 있었다. 이민족들은 들판에서도 신출귀몰하게 나타나는 능력이 있으니, 언제든 습격을 해올 가능성은 확실히 있었다.

“나는 지금 상인이고, 서쪽 이민족들은 상인을 죽이지 않아요.”

범한은 고개를 숙이며 말하는 동안 호가와 맺은 협의를 떠올렸다.

이홍성은 범한의 말에는 대꾸도 않고 지도를 가리키며 자기가 하려던 말만 했다.

“최근 2년 동안 초원에서 이민족들이 매일 뛰쳐나와 청주 후방에 있는 밭작물을 약탈해 갔는데······ 그것 때문에 몇이나 죽었는지 아는가? 이민족들이 살인에 맛을 들였는데 자네가 상인인지 아닌지 무슨 상관이겠나? 자네가 아무리 9등급 상의 고수라지만, 수백이 말을 타고 휩쓸고 지나갈 텐데 살아 도망칠 방법이 있을 것 같아?”

범한이 대답도 하기 전에 이홍성이 지도 위에서 손가락을 이동시켰다.

“이 방향을 보게. 이건 서쪽 이민족들의 주공격 방향이야. 최근 2년 동안 이미 밭을 지키던 군인 1천여 명을 죽였지.”

범한도 변방의 참극에 대해 알고 있던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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