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여년-791화 (791/1,108)

791화 세월과 소송 (1)

부귀영화는 일장춘몽, 공명은 종이 반장, 하나 시비는 천장에 이르는 파도와 같아라. 이제 막 내린 서리 위로 말발굽을 내달리고, 그 사이 아침 새소리를 들었노라. 흙먼지 낀 의관에 강호에서의 삶을 꿈꾸다가 황가 봉각(鳳閣)직에서 내려올 생각을 해본다. 수양산에서의 백이와 숙제의 삶은 흠모하나, 미앙(未央)에서 죽은 한신과 팽월은 내가 봐도 애닳으니, 하여 일찌감치 미친 척 사직서를 내 노라.

* * *

강남에서 송세인은 그야말로 최고로 잘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경도로 돌아온 후에는 태자가 아직 폐위되기 전이어서 황태후의 진노를 사고 말았다. 이에 노부인이 가볍게 언급만 했을 뿐인데도 천하제일 소송대리인은 황궁에 의해 바퀴벌레처럼 짓이겨져 순식간에 가산도 잃고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결국 그는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연꽃 연못 거리에서 자리를 깔고 호객 행위까지 하게 되었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아 곧 굶어서 죽게 될 지경까지 갔었다.

다행히 그때 경도로 돌아온 범한이 암암리에 송세인를 경도에서 내보내 주는 것은 물론, 과거 일에 대한 보상으로 그에게 돈도 넉넉히 챙겨 주었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경력 8년 초, 경도 상황이 안정되자 범한은 송세인 일가를 다시 경도로 불러왔다. 그리고 경도성 서쪽에 집을 마련해주는 것은 물론 관직까지 주었다.

천하제일 소송대리인이었을 때 그는 돈을 많이 벌기는 했지만 신분은 관리만 못 했었다. 이에 관직을 갖게 된 송세인은 감격한 나머지 작은 범 대인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바치겠노라 다짐했다.

그렇게 몇 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송세인은 과거의 오만함은 온데간데없는, 일단 겉으로 보기에는 차분하고 소박한 사람으로 거듭나 있었다. 하지만 법률 관련 능력에서만큼은 여전히 뛰어난 능력을 잘 유지하고 있었다.

그는 이제 감찰원 8처의 집률사(執律司: 법률 관련 일을 한다는 뜻) 관원으로, 감찰원을 대신해 전문적으로 소송 관련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감찰원에서도 소송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자면 긴데, 그래도 처음부터 이야기해야만 할 것 같다. 사실 중요 내용은 다음의 두 가지이다.

첫째, 몇 년 전에 황제가 감찰원의 사건 심리 권한을 전부 몰수해 형부와 대리사로 나누어 준 일이 있었다. 그리하여 이제 감찰원은 주로 소송인 역할밖에 못하게 되었다.

최근 2년 동안 감찰원의 작은 공작 어르신은 어떤 자극을 받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황제 폐하께 명을 내려달라 청한 후 관리들 숙청 작업에 들어갔다.

이에 감찰원은 각 로와 각 부에서 셀 수도 없이 많은 탐관들을 잡아들였다. 한데 관리를 잡아들였으면 자연스레 심리를 해야 하는데, 그 모든 걸 형부와 대리사에게만 맡기자니 감찰원 입장에서는 마뜩지가 않았다.

그리하여 둘째, 작은 범 대인은 이와 같은 상황을 마냥 받아들이고 싶지만은 않았다. 모두 알다시피 초록은 동색이고 관리들끼리는 서로 봐주는 게 일이지 않던가. 그래서 감찰원에서 청소를 시작한 이상 범한은 이들 문관에게 다시 뭉칠 기회를 줄 수는 없었다.

이런 이유로 송세인이라는 신예가, 그러니까 소송만 전문으로 하는 감찰원 관원이 큰 역할을 맡게 된 거였다. 그리고 그가 나선 이상 죄명은 기본적으로 감찰원에서 못 박은 것으로 확정되었다. 조정 내부에서 문관 체계를 이용해 어떻게든 막으려 해도 잘못을 저지른 관리는 빠져나갈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니 정말로 감찰원 관원들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든 건 경도 사건 후 황제 폐하께서 내린 몇 개의 황명이었다.

이 황명들은 칠군자(七君子)를 입궁시켰을 때 정한 결정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기는 했다. 하지만 이번 황명으로 좌도어사 하종위는 황제 폐하의 총애와 명료한 명령 내용을 믿고 자신의 권력을 제대로 운용하기 시작했다. 이에 그는 감찰원의 권력을 약화시키는 한편 감찰원 내부의 위법한 일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하늘과 땅이 크다 한들 황제 폐하의 명보다 클까. 2년 동안 도찰원은 점점 강대해진 권력으로 감찰원 관원들 목에 끈이라도 매 놓은 듯 그들을 겨우겨우 숨만 쉴 정도로 만들어 놓았다.

하종위는 사냥개처럼 감찰원 밖을 열심히 지켰다. 그리고 감찰원에서 드러내놓고 하는 행동 중 누군가가 법률에 반하는 일이 저지르면, 봐주는 법 없이 곧장 문서를 작성해 대리사로 보내 조정에서 법률로 다스려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감찰원에서도 딱히 좋은 해결 방법을 내놓을 수 없었다. 감찰원 설립 초기에 만들어진 경국 법률에 따라 감찰원은 도찰원에게 손을 쓸 수 없도록 되어 있어서였다.

물론 이 규정은 진평평과 범한이란 강력한 인물들로 인해 사람들에게 잊힌 터였다. 그런데 이제와 황제가 이 규정을 다시 상기시키는 바람에 도찰원의 위세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 거였다.

다행인 건, 작은 범 대인이 여전히 감찰원 제사로 있던 터라 도찰원이 그나마 부드럽게 행동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하종위가 조심하며 범한의 한계선까지만 건드린 것이다. 즉 경국 법률만 가지고 논할 뿐, 감히 감찰원에게 모욕을 주는 행위까지는 하지 못했다.

그런데 감찰원에서 암암리에 행하는 일들은 경국 법률에 저촉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에 도찰원이 황명을 이유로 대리사에 심리를 재촉하면 범한도 딱히 그에 대응할만한 적당한 방법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게 황제 폐하의 뜻이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범한도 알다시피 감찰원만 유독 힘이 세지는 건 조정 입장에서는 절대 좋은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사정을 잘 안다고 해서 꼭 받아들이란 법은 없었다.

경력 8년 어느 날, 범한은 도찰원 대문을 발로 ‘뻥!’ 하니 걷어차고 들어가 하종위 및 이십여 명에 달하는 도찰원 대부들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비난을 해댄 후 송세인을 경도로 데려왔다.

어차피 소송 아니던가? 감찰원이 도찰원 사람들에게 쩔쩔매야겠어?

* * *

송세인은 오늘 대리사에서 소송 두 건을 진행해야 했다. 하나는 공부(工部) 소속 원외랑 하나가 하운총독 관아 첨사(僉事)와 결탁해 강둑 공사에 쓸 은전을 횡령한 사건으로 감찰원에서 심문하는 건이었다.

이 은전은 다른 데서 출현한 것도 아닌, 범한의 돈이었다. 범한이 온갖 고생을 해가며 강남 황실 금고 내 자신의 작은 금고에 아껴두었던 돈을 아내 임완아가 관리하는 자선 단체 항주회로 보내 하운 총독이 있는 관아로 전달한 것이었다.

감히 감찰원 내 윗전의 돈을 탐내다니. 감찰원에서는 그냥 봐줄 리 만무했고, 이 원외랑이 조정에 어떤 인맥을 갖고 있는지 따위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더욱이 하운 총독 대인이 사적으로 탄원서까지 보냈지만, 그마저도 무시했다.

결국 감찰원에서는 한밤중에 관련자 20여 명을 곧바로 체포한 후, 7처 감옥에 며칠 가두었다가 대리사로 보내버렸다.

두 번째 소송은 좀 골치 아픈 건이었다. 남조국 주둔 중인 감찰원 4처 모 관원이 홍려사에서 보낸 은전을 일부 몰래 지출한 사실이 도찰원 조사로 밝혀진 거였다. 관련 관원은 경도로 돌아와 진술했다. 그는 경비가 부족한 상황에서 남조국 내 첩자를 늘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공금을 사용한 거라 해명했다.

하지만 진술 내용만 보면 그가 대체 금액을 얼마나 유용했으며, 개인적으로 착복했는지 여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런데도 감찰원 내부에서는 동료가 개인적인 용도로 돈을 챙겼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다만 이국 타향에서 밀정 노릇을 하다 보니, 아무리 범 제사가 감찰원에서 매달 주는 녹봉을 세 번이나 올려주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자금이 빠듯했을 것이고, 이에 성인이 아닌 이상에는 공금에 손을 댈 수밖에 없을 거라 생각했다.

“사건 관련 내용은 모두 준비되었습니까?”

송세인이 옆에 있는 조수를 쓱 바라보았다. 그의 조수는 성은 진이요, 이름은 백상이었다. 바로 강남에서 송세인과 함께 겨루었던 바로 그자였다.

결국에는 범한에게 반은 끌려오다시피 경도로 와 8처에서 전국 각지의 이름난 소송대리인을 모아다 신설한 집률사에 들어오게 되었다.

진백상은 자신이 당한 일이 떠오를 때마다 조금의 요동도 없이 차분하기만 한 송세인을 향해 씁쓸한 웃음을 날리며 생각했다.

‘작은 범 대인의 일처리 방식은 여전히 오만하시군. 분명 황제 폐하께서는 도찰원을 가지고 감찰원과 균형을 맞추려 하고 계시거늘, 어찌하여 당신은 대놓고 상대방과 맞서는 거요? 그것도 통쾌하게 말이오!’

진백상이 대답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목철은 감찰원 1처 관원으로 오늘 대리사로 와 소송을 방청하는 중이었다. 이는 첫째는 공부 원외랑이 어떤 판결을 받게 될지 보기 위해서였고, 둘째는 감찰원 4처 관원에게 큰일이 나지 않도록 보장하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이유로 감찰원 관원들은 과거 소송대리인을 했던 이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최대한도로 보장해주고 있어서 집률사를 좋아했다.

목철이 송세인의 어깨를 토닥여주며 간절하게 말했다.

“대인, 힘내세요!”

대리사 문 밖에서는 빗줄기가 점점 가늘어지고 있었다. 송세인이 일단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자신감에 가득 찬 얼굴로 뒷짐을 지고는 대리사 관아 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안에 있는 형부며 도찰원은 안중에도 없는 듯 그의 걸음걸이는 차분하고 안정적이었다.

송세인이 시원시원하게 걸어가자, 대로 맞은편에서 구경하던 경도 백성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내질렀다. 감찰원이 탐관오리를 몽땅 처단해버리기를 바라서였다.

최근 2년 동안 감찰원은 권력이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명성만큼은 오히려 더 높아졌다. 감찰원을 어둠 속에서 끌어내고자 몇 년 동안 기울인 범한의 노력이 빛을 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연이어 실시한 우레와 같은 숙청 작업 덕분에 백성들 앞에서 감찰원은 떳떳한 모습으로 재탄생한 상태였다.

지금 민간의 여론 풍향계를 보면, 백성들은 기본적으로는 감찰원 편이었고, 도찰원은 좀 염치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송세인이 대리사를 향해 걸어 들어갔다. 그의 얼굴 표정은 차분했지만 마음은 절대 그렇지 못했다. 작은 범 대인을 대신해서 하는 일이니 통쾌한 기분을 느끼기는 했다. 이는 줄곧 이겨서 그런 것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어서이기도 했다.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 않은가.

1년여 동안 송세인은 감찰원을 대신해 소송에 나섰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그리될 게 분명했다.

송세인은 경국 문관 체계에 이미 죄를 질 만큼 진 상태였다. 그러니 더더욱 감찰원이란 배에서 내릴 수 없었다. 일단 감찰원이란 배에서 내리는 순간 그는 거대한 파도에 삼켜지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는 무섭지 않았다. 감찰원이란 배에 작은 범 대인이 조타수로 있는 한, 다시 말해, 작은 범 대인이 있는 한 천하에서 자신에게 불이익을 줄 이는 없기 때문이었다.

“남조국 쪽은 조금 문제가 있습니다. 도찰원과 형부에서 그 관원이 적지 않은 은전을 썼다는 걸 알아냈습니다.”

진백상이 ‘대인’의 낯빛을 살피며 조심스레 경고를 해두었다.

“돈을 게워내게 하고, 관직에서 물러나게 하면 무죄입니다.”

송세인이 고개도 돌리지도 않고 답하고는 소리를 낮추어 말을 이었다.

“제사 대인께서 제시한 하한선이에요. 그러니 만약 도찰원이 더 나가려 한다면, 안면몰수 하고 공격해야지요. 우선 형부에서부터 시작합시다. 그들 중에 깨끗한 이가 몇 없거든요.”

진백상은 심장이 싸해졌다.

‘작은 범 대인은 과연 진 노(老)원장님처럼 단점을 꽤나 감싸주는 대단한 분이시군. 만약 도찰원이 규범 3조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작은 범 대인께서 제멋대로 나오시겠지.’

진백상은 저도 모르게 오싹하니 전율이 일었다. 작은 범 대인이 그런 식으로 나오니 도찰원이 자신들과의 소송에서 이기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그러니 하종위란 대인이 아무리 황제 폐하의 총애를 받고 있고, 또 제아무리 용을 써도 시시각각 안면을 바꾸는 작은 범 대인을 이길 수는 없을 터······!

작은 범 대인이 정말로 안면을 바꾼다면, 하종위가 어찌 버틸 수 있으랴. 그분의 성정으로는 황제 폐하의 말도 소용없을 수 있었다. 그리고 황제 폐하가 그분을 얼마나 신임하고 총애하는지 모두들 다 알고 있는 사실 아니던가.

“제사 대인께서 오늘은 어째서 구경을 안 오신 걸까요?”

진백상이 걸어가는 와중에 침을 삼키며 물었다.

요 1년 동안 범한의 가장 큰 취미생활은 담당 부하 대신 대리사로 찾아가 뒷배 노릇을 하며 심리 내용을 듣고, 도찰원 어사들의 얼굴이 시퍼렇게 질리는 걸 보는 것인 듯했다. 원칙대로라면 심리 내용을 옆에서 듣고 있는 건 목철로 족했다. 언빙운은 귀찮아 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목철은 빠짐없이 참석했다.

작은 공작 어르신이 대리사 관아에 나타나 다리를 꼬고 앉으면 심리를 하는 관원들은 모두 졸아붙기 시작했다. 결국 그 누구도 감히 감찰원 관원에게 형을 언도하지 못했는데, 범한은 바로 그런 효과를 노린 것이었다.

“황제 폐하께서 대인을 다른 데로 파견하셨어요.”

송세인은 내부 사정을 대충만 알고 있을 뿐이라 더 이상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가 팔을 주무르고는 재판장 안에 있는 도찰원 어사 및 형부 관원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런 후 얼굴을 차분하게 가다듬고, 싸늘하게 콧방귀를 한 차례 뀌고는 정식으로 싸우러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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