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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여년-760화 (760/1,108)

760화 대동산 사건의 원인과 결과 (1)

이건 황제의 외부와 내부에 잠재해 있는 장애물을 해치울 기회였다. 자신이 죽었다는 소문을 퍼뜨려 조정 안에 있는 불순분자들을 가려내 제거할 수 있었다.

평상시 황제에게 충성하던 대신들이라고 해서 황제가 죽은 뒤에도 충성하리란 법은 없었다. 대신들은 과연 황제가 죽기 전에 남긴 유훈을 따르려 할까? 죽은 황제의 말을 조금이라도 두려워할까? 그동안 충신인 척하며 본모습을 숨기고 있던 간신배들이 고개를 쳐들고 본모습을 드러내지 않을까?

황제는 범한과 아들들에게 여러 차례 강조하였듯이 사람의 진심을 파악하는 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경도의 상황은 사람들의 진심을 파악해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였다.

황제가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서 상처를 치료하고 있는 섭류운 앞에 서서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가 요 태감에게 내린 명령은 단순한 것이었다. 진평평에게 범한과 섭중이 진상을 알지 못하도록 정보를 봉쇄하라는 교지를 보내라는 것이었다.

황제는 이번 일을 계기로 자신이 가장 믿는 두 사람의 진심을 알아볼 생각이었다. 그리고 만일 범한과 섭중이 이번 시험을 통과한다면 그들은 황제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을 것이었다.

대동산 정상에 있는 황제는 경도의 상황이 그 정도로까지 위험해질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황궁 안에 있는 사람들이 엄청난 타격을 입을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자신의 누이가 그렇게 강력하게 대항할 거라고도 예상하지 못했다.

섭류운이 한숨을 쉬며 나지막이 말했다.

“빨리 경도로 돌아가지 않으면 엄청난 혼란이 생길 겁니다.”

큰일을 하려면 반드시 큰 혼란이 따르는 법이다. 피바람을 일으켜 모레와 금을 가려내고 모두를 한마음으로 똘똘 뭉쳐야만 2, 3년 뒤에 있을 천하통일을 위한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이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르던 경제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다만 그는 자신의 누이의 능력을 지나치게 낮게 평가하고 있지는 않았기에 앞으로 경도의 상황이 불안정해지리라는 건 짐작하고 있었다.

“이 강산은 짐의 것입니다.”

황제가 담담히 말했다.

“그리고 운예라면 짐처럼 경도를 안정화시킬 수 있을 겁니다.”

이 말을 끝으로 황제는 입을 다물었다. 마른기침하던 그가 천천히 요 태감의 부축을 받고 대동산 아래 피로 더럽혀진 산문을 지나갔다.

이때는 이미 공격 명령이 내려진 뒤라서 산 아래에서는 싸우는 소리가 다시 들리고 있었다. 하늘에 제사를 올리기 위해 따라온 관리와 시종들은 겁에 질린 얼굴을 한 채 경제를 따라 산에서 내려갔다. 그리고 섭류운은 사람들이 만든 들것에 눕혀서 내려갔다.

이 시대에 정보 전달 속도가 느렸지만 멀리 경도에 있는 진평평은 일찌감치 모든 걸 준비해 두고 있었다.

감찰원의 힘을 총동원해서 진실이 새어 나가지 못하도록 동산로를 최대한 봉쇄한 것이다.

그리고 황제는 경도에서 반란이 일어날 시기를 정확하게 오만하게 미쳐 날뛰고 있는 누이가 알 수 있도록 자신이 죽었다는 소식을 경도에 알렸다.

이로써 사태는 돌이킬 수 없는 미친 상황으로 치달아 갔다. 그렇다. 이미 화살이 날아갔으니 되돌릴 방법은 없었다.

장 공주는 대동산에 사건이 벌어진 이상 황제가 죽었든 살았든 상관없이 황제가 죽었다는 걸 전제로 경도 안에서 모든 일을 진행해야 했다. 이것은 돌아갈 길을 잃은 사람의 마지막 승부였다.

하지만 고하와 사고검은 간신히라도 살아서 대동산을 내려갔고, 또 산 아래에 있는 5천 명의 반란군과 바다 위에 있는 교주 수군 반란군이 아직 진압되지 않은 상태라서 최대 7일 뒤면 대동산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와 황제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알려질 수 있었다.

대동산과 경도의 거리를 고려하고, 또 감찰원이 필사적으로 길을 봉쇄한다는 걸 가정해도 대략 30여 일 뒤에는 경도 사람들도 경천동지할 진실을 알게 될 수 있을 거였다.

그리고 그때면 장 공주가 움직인 지 십여 일은 되었을 테니 과연 경도를 지킬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황제는 평온한 얼굴로 산 아래를 바라보면서 속으로 이 모든 걸 계산하고 있었다. 그는 이번 일을 성공적으로 치를 자신감이 넘쳤지만, 자신의 경도나 경국에 너무 큰 혼란에 휩싸이는 건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한편으로는 나라의 혼란을 감수하고서라도 사람들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숨겨진 진심을 보기를 원했다.

황제는 사람들의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 알고 싶었고, 특히 범한이 가진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시험해 보고 싶었다.

범한에게 황제의 마음을 읽을 능력이 있는지, 황제를 대신해 자신의 집안과 나라를 지킬 능력이 있는지 보고 싶었다.

그는 범한의 아주 뛰어난 기지를 발휘해 황궁을 습격했지만, 미리 이 사실을 알고 있던 장 공주가 더욱 허를 찌르는 일격을 사용해 궁지에 몰아넣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고, 더욱이 범한이 마침내 황제의 마음을 추측해 낼 거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

더구나 그가 경도와 집안을 지키기 위해 벌인 방법들은 황제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고, 보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이런 결과가 벌어진 이유는 모든 상황을 예측하고 계산한 황제가 정작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바로 그것은 황태후의 태도였다.

천하에서 둘째라면 서러울 만큼 효성이 지극하기로 유명한 황제는 자신의 어머니가 어떤 태도를 보일지는 고려하지 않았다. 황제는 황태후가 경국의 영토와 황실의 존속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머지 자신의 목숨을 제외한 다른 이들의 목숨을 모두 희생시킬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산 아래로 내려가기 전에 인생에서 가장 큰 성공을 이룬 황제 폐하는 침착하게 산 아래 반란군의 우두머리를 생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산 아래 검은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은 비록 대종사는 아니었지만, 경제에게는 죽이기 아까운 중요한 인물이었다.

* * *

왕계년은 미친 듯이 내리는 비에 고개를 숙인 채 깊은 숲을 따라 산 아래로 도망치고 있었다. 고하가 늙은 홍 태감의 가슴을 손바닥으로 쓰다듬기도 전에 이 눈치 빠른 감찰원 관리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틈을 타서 몰래 빠져나왔다.

감찰원에서 종추와 함께 가장 뛰어난 추격자로 불리는 그는 과거 동이성과 북제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도둑질을 한 경험이 있었기에 누구보다도 빠르게 현장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예리한 나뭇잎이 그의 몸에 스쳤다. 비록 감찰원이 특수 제작한 관복을 찢지는 못했지만 놀라게 하기는 충분했다. 그는 산 정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자신과 같은 사람이 알아서 좋을 게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가 봤을 때 황제는 분명 죽을 운명이었다. 대종사 세 명의 합동 공격에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었다. 그래서 황제가 죽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을 때 그가 맨 처음 한 생각은 도망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생각은 아주 단순했다. 가장 빨리 이 놀라운 소식을 경도에 알리는 것이었다. 도망치는 도중에 범한을 만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지만, 최소한 진 원장에게는 이 사실을 알려야 했다.

산간 평지를 지난 그가 비바람을 뚫고 수풀에 몸을 숨기며 소리 없이 산허리까지 내려오고 있을 무렵이었다. 갑자기 산 정상에서 천둥과 같은 우렁차 소리가 들리더니 이후 어렴풋하게 종소리가 들렸다.

바로 황제가 사용한 왕도의 권법을 맞은 사고검이 사원 종과 충돌해서 난 소리였다.

왕계년은 놀라면서도 발걸음을 절대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뒤에서 인기척이 느낀 그가 재빨리 몸을 잡풀 속에 숨기고는 멀리 돌계단을 바라봤다.

돌계단에서 피범벅이 된 두 사람이 내려오는 게 보였다. 그중 젊은 청년은 왕계년에 눈에도 익은 사람이었다. 바로 강남에서 함께 지냈던 왕 십삼랑이었다. 그렇다면 그의 등에 업힌 사람은 누구일까?

왕계년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피범벅이 된 두 사람이 무기력한 목소리로 나누는 익살맞은 대화를 들은 그는 왕 십삼랑의 등에 업혀 있는 사람의 정체를 알아냈다.

한쪽 팔이 잘리고 중상을 입은 채 피 칠갑을 한 왕 십삼랑의 등에 업혀 있는 사람을 향해 ‘스승님’이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다 등에 업혀 있는 사람은 바로 사고검이었다.

왕계년은 상자에 대해서도 알고 있을 만큼 범한의 심복 중에서 심복이었고, 이에 당연하게도 왕 십삼랑의 진짜 신분도 알고 있었다.

왕 십삼랑은 동이성 사고검의 마지막 제자다. 그리니 그가 스승이라 말하는 사람은 분명······ 사고검이었다.

너무 놀라 토끼 눈을 한 왕계년은 소리를 지르고 싶은 걸 애써 참았다. 그가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두 사람이 처량한 모습으로 돌계단을 내려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잠시 뒤 그가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도대체 산 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천하에서 누가 사고검을 저렇게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잠시 뒤 왕계년이 놀란 마음을 진정시킬 새도 없이 삼베옷을 입은 또 다른 사람이 아주 기묘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공중에 매달린 것처럼 산 위를 날아 내려온 것이다. 그 모습을 본 왕계년은 하마터면 너무 놀라 피를 토할 뻔했다.

‘저건 고하 대사 아닌가? 술법이라도 부릴 줄 아는 거야? 까까머리 중의 얼굴이 왜 저렇게 처참한 꼴이지?’

두 대종사가 연이어 기진맥진한 모습으로 왕계년의 앞을 지나갔다.

대종사들은 아마도 왕계년이 들쥐처럼 잡풀 속에 숨어 있다는 걸 알았을 터다. 그러나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그들은 왕계년에게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

반면 엄청난 충격을 받은 왕계년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방금 본 장면이 이해되지 않았다.

대동산 정상에서 신출귀몰한 무술 실력을 뽐냈던 대종사 어떻게 잠깐 사이에 저런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단 말인가?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놀란 마음을 추스른 그가 후들거리는 다리에 애써 힘을 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고개를 들어 구름 속에 있는 대동산 정상을 바라봤다.

‘설마 폐하께서 이기신 건가?’

그는 속으로 지금이라도 산 정상에 돌아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확인해 봐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너무 놀라고 두려운 마음에 산 아래로 발걸음을 옮겼다.

정오가 지나 하늘이 어둑어둑해지자 산 아래 사방에서 교전하는 소리가 들려 도망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박쥐처럼 어둠 속에 숨은 왕계년은 기회를 엿본 끝에 전장에서 빠져나오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바로 그때 그는 자신의 두 눈으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바로 폐하가 아직 살아 있으며, 그것도 아주 멀쩡하게 살아 있다는 사실 말이다. 그것은 바꿔 말하면 반란이 실패하였으며, 대종사들은 철저하게 패배했다는 의미였다.

이 순간 그는 자발적으로 결정을 내렸다. 황제의 대열을 따라가지 말고 최대한 빨리 경도 방향으로 질주하기로 한 것이다.

그는 무슨 수를 써서든 범한에게 이 일의 진상을 알릴 생각이었다. 작은 범 대인이 경도에서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최대한 빨리 이 사실을 알려야 했다.

감찰원 관리인 왕계년은 황제 폐하의 신하였지만, 범한의 심복으로서의 역할을 더욱 중요시했다. 그는 누구보다도 범한의 의도와 생각을 많이 알고 있었고, 그래서 범한이 폐하가 사망했다는 잘못된 정보를 듣고 돌이킬 수 없는 잘못된 결정을 내릴까 걱정했다.

게다가 왕계년은 황제 폐하의 생각이 뭔지도 예측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더 두렵고, 더 범한이 걱정되었으며, 경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걱정되었다.

죽을힘을 다해 가장 빠른 속도로 이동한 그는 여러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경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감찰원보다도 빠르고 장 공주의 시선보다도 빨리 움직인 그는 경천동지할 소식을 가지고 진원에 도착했다.

그는 천하에서 가장 먼저 대동산의 진실을 전하러 온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 소식을 제대로 전달할 수는 없었다. 감찰원 절름발이 노인이 그의 손발을 묶고 입에 재갈을 물려 그가 소식을 전달할 기회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절름발이 노인은 대동산에서의 상황을 알게 된 뒤 며칠 동안 습관적으로 한숨을 쉬며 자신의 늙은 종에게 중얼거렸다.

“한 사람을 죽이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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