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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여년-757화 (757/1,108)

757화 왕도(王道) (2)

손가락 끝이 다시 내려와 ‘윙’하는 소리와 함께 신속하고 빠르게 고하의 명치를 찔렀다. 비록 손가락 하나로만 이루어진 동작이었지만 어렴풋하게 용이 뚫고 들어오는 것 같은 강인함이 느껴졌다. 손가락 하나에 제왕의 만세의 존엄이 담겨 있었다.

이때 이미 자신의 오른손을 거둔 고하는 엄지손가락을 들어 그 집게손가락을 막으려 할 때 ‘푹!’ 하는 소리가 울렸다.

집게손가락이 다시 한번 고하의 가슴을 찌르려 했다.

고하가 눈꺼풀을 내려뜨리자 삼베옷이 살짝 하늘거렸다. 그가 손가락을 쫙 펼치더니 산세를 타고 흐르는 실개천처럼 자연스럽게 오른손을 늘어뜨려 가슴을 찌르려 하는 손가락을 막았다.

모든 것의 진행은 자연의 흐름처럼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고하의 몸이 격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의 오른손 손바닥 중심 부분에는 붉은 반점이 생기더니 마치 달궈진 인두에 찍히기라도 한 듯이 ‘치이익’하는 소리가 들렸다.

바로 그때 안정된 손에서 세 번째 손가락이 나왔다. 세 번째 손가락은 싸우려 하지도 않았고 때려 부수지도 않았고, 저항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정정당당한 것이 습격하려는 의도도 전혀 없었다. 제왕의 지략과 기개가 담긴 세 번째 손가락을 통해 왕도의 기개가 온전히 드러났다.

하늘에서 다시 천둥 번개가 쳤다.

고하의 몸이 끈이 잘린 연처럼 힘없이 멀리 날아갔다. 대동산 돌계단 옆에 있는 큰 나무 아래로 날아간 그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한숨을 쉬었다.

고하는 자신이 틀렸다는 걸 알았다.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틀린 거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치명적인 오류는 세 번째 손가락이 나오기 전에 이미 일어났었다.

홍사상이 대종사가 아니라는 걸 알아챘을 때 그는 반응 속도를 최대한 높이고, 법문으로 최대한 대응해 자신의 상태를 완벽을 넘는 경지까지 끌어 올려야 했다.

그 순간에 고하 대사는 인간 세상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우뚝 솟은 나무와 같았고 드넓고 잔잔한 맑은 가을 호수와도 같았다.

하지만 그 사람이 세 번째 손가락을 뻗었을 때 그의 체내에 있는 정기 절반이 고하의 체내로 주입되었다.

왕도의 기세를 통해 패도의 정기가 몸 안에 주입된 것이다. 짧은 시간 안에 이 모든 공격을 받은 고하 대사의 상태는 우뚝 솟은 나무가 더 큰 거목에 짓눌리거나 넓은 호수가 더 큰 호수 안에 던져진 것과 같았다.

물이 지나치게 많으면 호수의 제방도 무너지는 법이었고, 자신보다 더 큰 나무에 짓눌리면 아무리 단단한 나무라도 ‘쩌억’ 소리를 내며 부러지는 법이었다.

일반 사람들과 비교해보면 대종사의 마음의 경지는 거의 신의 경지에 근접했다고 할 수 있다. 고하는 인간 세상에서 가장 신에 근접한 사람이었지만 대종사들도 어쨌거나 약점을 가진 인간이었다.

그들의 약점은 바로 자신의 육체였다. 체내의 경맥도 한계가 있었고, 육체가 감당하는 능력에도 한계가 있었다.

고하는 세 번째 손가락을 통해 주입된 정기로 말미암아 한계를 넘게 되었고, 이에 체내의 경맥과 육체는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되었다.

나무 아래서 가부좌를 틀고 앉은 고하는 몸과 피부에서 전해지는 팽창되는 느낌을 느꼈다. 그는 도무지 풀리지 않는 의문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사람은, 그 손의 주인은 어떻게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이처럼 많은 정기를 분출해 낼 수 있었을까? 그건 인체의 경맥이 감당할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이미 끝난 상태였다.

* * *

홍사상이 피 안개로 변했을 때 사고검의 왼손이 허공에 쥐고 있는 공검이 살짝 비틀하더니 텅 빈 곳에 떨어졌다. 그는 공격을 통해 섭류운을 저지하려 했지만, 섭류운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섭류운이 쏘아 보낸 구름은 이미 사고검의 얼굴을 덮치고 있었다.

화가 난 사고검이 부들부들 떨면서 광인이나 내지를 만한 날카로운 고함을 질렀다. 고개를 숙이고 오른손 손목을 돌려 검세로 섭류운의 복부를 눌렀다.

왼손 공검의 공격이 허사로 돌아가자 그가 고개를 숙였다. 포악하면서 또 원만하던 검세에서 마침내 약한 부분이 드러났다. 그가 어쩔 수 없이 피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급작스럽게 변한 상황에서도 직감적으로 자신은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사고검은 살아남았다. 그의 볼 반쪽의 뼈가 섭류운의 산수를 맞아서 으스러졌다.

섭류운도 살아남았다. 무관심하게 고개를 숙인 그는 왼손으로 검을 꽉 움켜쥐었다. 검은 그의 복부에 한 치 정도 들어간 상태였다.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섭류운이 산수의 기세는 아직 사그라지지 않은 상태에서 대범하게 손으로 사고검의 어깨를 내리쳤다. 다섯 손가락이 용의 발톱처럼 맹렬한 기세로 돌진해오더니 ‘푸욱!’ 소리를 내며 손가락 끝으로 살을 뚫고 뼈를 짓눌렀다.

하지만 사고검은 조금도 고통스러워하지 않았다. 마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왼손을 돌려 ‘푹’ 소리와 함께 자신의 팔을 공격했다.

장검이 다시 섭류운의 복부를 한 치 정도 찔렀다······. 그런 뒤 날카로운 검 끝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검이 어마어마한 기세를 내뿜기 시작했다. 이윽고 화려한 꽃잎처럼 붉은 피가 분출되었다.

정말이지 무시무시한 검이었다. 도중에 여러 예기치 못한 문제들을 만나면서도 끝까지 난폭한 기세를 잃지 않았던 검은 결국 섭류운에게 중상을 입히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바로 그때 피 안개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밝은 황색의 그림자가 피 안개 뒤에서 나타났다. 마치 제왕들이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위해 무수히 많은 사람의 피를 제물로 삼는 것처럼 말이다.

밝은 황색의 그림자가 섭류운과 사고검 사이에 나타나서는 일격을 날렸다.

화려함이니 기교도 없었다. 그냥 평범하고 단순한 공격이었다.

하지만 세상에서 이처럼 단순하면서 강력한 일격을 날릴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정정당당하고 광명정대해서 피할 방법이 없었고, 심지어······ 피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먼저 ‘쨍’하는 소리가 울리더니 몸에 강력한 정기의 충격이 느껴졌다. 섭류운의 손에 붙잡혀 있던 사고검의 오른팔이 충격에 그대로 찢겨 절단되었다.

이어서 오래된 사원의 종이 묵직하게 울렸다. 사고검이 복잡한 감정이 실린 눈으로 앞에 있는 밝은 황색 그림자를 바라봤다.

복잡한 감정이 실린 표정을 한 사고검은 한쪽 팔이 잘린 채로 날아가 대동산 경묘 나무문과 부딪쳤다. 그 강력한 충격에 낡고 오래된 사원의 건물들이 연이어 부서졌다.

부딪치는 모든 걸 부숴버리던 사고검은 마지막에 사원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큰 종과 부딪쳤고, 이에 사방에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래된 사원의 맞은편에 있는 돌계단 옆 큰 나무 아래에는 삼베옷을 입은 고하가 실의에 빠진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던 그는 종소리에 어떤 자극을 받은 것인지 체내에서 갑자기 어떤 사물이 폭발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갑자기 미친 듯이 팽창하는 몸을 서둘러 진정시키려 했지만 벌써 붉은 피가 그의 눈과 귀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고하의 몸 뒤에 있던 나무가 갑자기 쓰러지더니 산산조각이 났다. 또 주위 5척 이내에 있는 청석들은 그의 체내에서 폭발적으로 분출되는 정기에 의해 산산이 부셔져 떨어지는 빗방울에 쓸려 내려갔다.

낡고 오래된 경묘 안에 있는 건축물들은 대부분 부서져 버려 고즈넉한 사원의 모습은 이미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고, 푸른 이끼가 가득 퍼진 연못에도 큰 구멍에 뚫려 빗물과 주변 흙이 빨려 들어가 혼탁하게 변해 버렸다.

소리에 놀란 백로 몇 마리가 연못 뒤쪽으로 숨자 황포가 하늘하늘 내려와 처참한 모습으로 누워 있는 사고검을 덮었다. 황포 아래 사고검의 힘없는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처량한 목소리로 뭐라 울부짖고 있었지만, 목소리가 너무 작았고 그의 머리 위에서 울리는 종소리에 가려져 잘 들리지 않았다.

‘댕, 댕, 댕’ 종소리가 대종산 정상에 울려 퍼졌다.

해변에서 불어온 태풍은 다가오는 속도가 빨랐던 만큼 지나가는 속도도 빨랐다. 마치 인간 세상의 무상함이나 제왕들의 분노와 기쁨을 보여주듯이 말이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미친 듯이 퍼붓던 빗방울도 바람이 사라지자 잦아들었다.

하늘 위에 먹구름이 갑자기 흩어지면서 구름에 가려져 있던 푸른 하늘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밝은 햇살이 대동산 절벽 가에 서 있는 황색 그림자를 비추자 모두가 그의 얼굴을 또렷이 볼 수 있었다.

창백한 얼굴로 원래 자리에 서 있는 황제의 손과 발이 떨리고 있었다. 그는 체내에 있는 패도의 정기 중 절반을 고하에게 주입하고 마지막에는 최후의 정력까지 쥐어짜서 왕도의 권법을 휘두른 탓에 피로가 극에 달한 상태였다.

천하에서 가장 강대한 군주인 그는 비에 흠뻑 젖은 용포를 입고, 머리는 산발이 되어 힘없이 축 처져 있었다. 그의 침착한 눈동자에 의미를 알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배어 나왔다.

그의 일생에서 이렇게 궁지에 몰렸던 적은 없었다.

그의 일생에서 이렇게 강대했던 적은 없었다.

* * *

경력 7년 동안 바다와 인접해 있는 대동산에서는 태풍이 한바탕 비를 퍼붓고 지나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태풍은 이제부터 일정 기간 가뭄이 든 경국의 광활한 영토에 소중한 비를 뿌려줄 것이었다. 게다가 움직임이 무척이나 부드러워서 큰 재난을 초래하지도 않을 것이었다.

물론 지금 산 정상에 있는 오래된 사원의 낡은 처마는 태풍의 공격을 받은 뒤 황폐해져 버린 상황이었다. 깨진 기와와 벽돌 조각이 사방에 나뒹굴고, 진흙과 모래가 어지럽게 바람에 날리는 모습은 참혹하여 차마 보고 있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또 하늘에서 쏟아진 빗물은 빠르게 산 아래로 흘러가 절벽에 하얀 폭포를 만들어냈다.

폭포에 가끔 아주 옅은 붉은 색이 물이 흘러가는 게 보였다. 비에 씻긴 덕분에 치열한 전투가 일어났음에도 산 정상에는 피 냄새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 생겨난 것은 조물주 때문일까? 아니면 대종사들의 천지를 뒤흔들 만한 싸움을 했기 때문인 걸까?

사실 이것은 천자의 위엄이었다. 대동산 산 정상 부근의 하늘이 밝아지면서 모두의 눈에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산 정상을 뒤덮고 있던 두꺼운 먹구름이 바람에 따라 서쪽 내륙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게 육안으로도 보일 정도였다. 먹구름이 사라지면서 다시 나타난 햇살이 절벽 가에 서 있는 천하에서 가장 강한 사람을 비췄다.

그 사람은 천하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었다.

이 세상에 그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천하에서 가장 강대한 국가인 경국의 황제 폐하였기 때문이다.

또 그는 과거 대군을 이끌고 세 차례 북벌을 단행해 대위를 산산이 붕괴시키고 천하 지도를 바꾼 명장이자, 제왕의 지모를 가지고 모든 걸 철저하게 계산하고 때를 기다려 움직일 줄 아는 천하 최고의 음모가였다.

그를 지칭하는 황제, 명장, 지략가라는 세 가지 호칭만으로도 그는 천하의 일인자로 불리고 있었다. 더욱이 오늘 대동산에서 종사들에게 둘러싸여 죽을 상황에 몰렸을 때 그는 그동안 숨기고 있던 자신의 또 다른 정체를 드러냈다.

천하 4대 종사 중에는 가장 베일에 싸인 인물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가 밖으로 나오지 않고 경국 황궁 안을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과거 경도에 침입한 사고검이 황궁에서 난폭한 기세를 이기지 못하고 물러나면서 황궁 안을 지키는 대종사가 있다는 추측은 더욱더 확실해졌다.

한 번도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던 그 대종사는 바로 경국의 황제 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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