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5화 구름은 소매를 떠날 마음이 없고 뜻을 가진 검은 돌아갈 생각이…
대종사들에게는 계략이랄 게 없었다. 비록 경제가 계략을 세워 섭류운의 정체를 마지막까지 숨기려 했지만 사고검은 검 한 자루로 경제의 계략을 폭로했다. 게다가 사고검은 이 좋은 기회를 이용해서 자신의 모든 검의를 다시 검에 불어 넣었다.
섭류운은 옆에 경제가 있었기에 맹렬한 검을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저 운수(雲手)를 사용해 검을 막을 뿐이었다. 하지만 엄청난 기세를 품은 검을 육체로 맞서는 것인 만큼 섭류운은 산수 기술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었고, 이에 상황은 사고검에게 우세했다.
대종사의 싸움이란 우연한 생각으로 천지를 바꿀 수 있고, 약간의 치우침만으로도 대세가 바뀔 수 있다.
사고검이 처량하면서 우렁찬 목소리로 소리치자 사고검의 손에 잡혀 있는 검에 포악함 검기가 들어갔다. 빠른 속도로 검기가 검에 흡수되자 검의 온도가 급격하게 상승했다. 어찌나 뜨거워졌던지 검 손잡이에 감겨 있는 밧줄의 모든 수분이 증발할 정도였다.
사람들의 심장을 떨게 만드는 소름이 끼치는 금속 마찰음이 계속 울려 퍼지는 가운데 섭류운의 양손 사이에 갇혀 있던 검이 1촌 정도 앞으로 움직였다.
섭류운은 여전히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었고, 양팔의 넓은 소매는 나비처럼 이리저리 춤을 추고 있었다. 검은 세상에서 가장 안정된 양손 사이에 끼워져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잠시 뒤 손의 피부가······ 찢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피부병을 앓고 있는 환자처럼 생기를 잃고 늙은 피부가 갈라졌다. 경력 5년 큰 가뭄에 시달렸던 때 땅이 쩍쩍 갈라졌던 것처럼 피부가 갈라지는 모습은 신기하기도 하면서도 두렵기도 했다.
섭류운이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침착하게 자신이 손바닥에서 조금씩 움직이는 검을 바라보았다. 검이 조금씩 자신의 몸을 향해 다가오는 걸 보면서도 그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그저 한 글자를 외칠 뿐이었다.
“운(雲)!”
엄청난 검기에 자극을 받아 쩍쩍 갈라지던 양손의 피부가 섭류운의 외침과 함께 이전의 부드러운 모습으로 변했다. 바다보다도 깊고 호수보다도 잔잔하며 강남 여자의 눈동자보다도 부드럽고 순수한 모습이었다.
하늘 위 뭉게뭉게 피어나는 구름처럼 그의 손이 검을 감싸자 하늘을 찌를 듯이 검세를 내뿜던 검이 순간 온화해지더니 잠시 조용해졌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짧은 1초 동안 하늘을 뒤덮고 있는 먹구름 안에서 번개가 번쩍하더니 산 정상을 밝게 비추었다.
번개가 치자 사고검의 삿갓 아래 얼굴이 드러났다. 그의 두 눈동자는 야수와 같은 야만스러운 광기로 가득했다.
그는 한 글자도 말하지 않았다. 그저 처량하게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대동산을 휘감은 그의 처량한 외침에 놀라 얼마나 많은 사람이 기절시켰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그는 검을 사용하는 대종사였고, 그가 사용하는 것은 사고검이었다.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용감히 앞으로 나가는 사고검이었다.
처량한 외침과 함께 검의 기운도 다시 용솟음치더니 너무 강렬해 막을 수 없는 살기와 난폭한 기운이 검 한 자루에 모두 실렸다.
이건 사고검의 일생 중 가장 강력하게 찌른 검이었다. 그의 생명, 정신, 신념이 모두 응축된 검이었다. 검세의 맹렬하고 포악한 기세는 천지의 기운을 역행하는 것이었다. 이전에 대륙에서 이런 검을 내지른 사람은 없었고 아마 이후로도 없을 것이었다.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설사 섭류운이라도 불가능했다.
국(局), 종종 당사자와 제삼자를 확실하게 구분하지 못할 때가 있다. 어떤 상황에서는 승부를 결정짓는 사람들이 종종 일이 끝나는 순간에야 비로소 자신이 주도면밀하게 세운 계획이 자신의 목숨을 해칠 수 있다는 슬픈 결말을 발견할 때가 있다.
지금도 항상 상황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싶어 했던 누군가가 세운 당초 계획이 상황과 점점 동떨어지고 있었다. 만일 경제가 미리 시계의 초침이 정지된 지금, 이 순간에 벌어질 일들을 예측했었다면 아마 처음부터 호위들을 산 정상에 모았을 것이었다.
경국의 두 대종사와 고하, 사고검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었고, 오죽은 옆에서 불구경하듯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백 명의 호위가 있어 양측이 모두 상처를 입은 뒤 공격을 감행했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이 출현했을까?
사고검은 일생의 가장 중요한 날에 대종사의 지혜와 결단을 완벽하게 드러내며 검 한 자루를 사용해 섭류운을 억누르고 있었다. 그는 경제가 세워둔 계략 및 경제의 생명을 완벽하게 이용해 섭류운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었다.
만약 사고검이 대동산 돌계단을 올라오면서 백여 명의 호위를 처치하느라 자신의 정력을 일부 소모하지 않았다면 지금 맹렬한 기세를 뿜고 있는 검은 아마도 진작 섭류운의 가슴을 찔렀을 것이었다.
물론, 만약 백여 명의 경국 고수들의 피가 검에 묻어 피비린내와 살기를 축적하지 않았다면, 사고검은 이처럼 포악하고 강렬한 검기를 발산할 수 없었겠지만 말이다.
이제 섭류운이 사고검의 검에 대응하는 방식은 세 가지였는데, 그 세계에서 삼십육계 중에 마지막 계책과 같았다. 상황이 극단으로 치달았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종종 가장 간단한 방법이었다.
경국 대종사는 최고의 동작술과 류운 산수를 이용해 사고검에 대응하고 있었다. 이에 가장 처음 시작했을 때 그는 물러나 도망가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었고, 산수운해로 검을 잠시 막은 뒤 그 찰나의 순간을 이용해 검세가 장악한 범위에서 벗어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만일 도망친다면 옆에 잇는 황제는 사고검의 검에 공격을 받아 몸이 여러 조각으로 잘릴 게 분명했다. 그래서 섭류운은 도망칠 수 없었다. 지금 그에게는······ 사고검의 검을 피할 방법이 없었다.
한편 오래된 사원 문 앞에 서 있는 오죽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언제부터인지 허리춤에 차고 있던 쇠막대기가 쥐어져 있었다. 하지만 경국 황제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도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1초가 지나는 그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에 섭류운의 고졸한 얼굴에서 갑자기 옅은 미소가 드리웠다.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기괴한 미소였다.
흘러가는 구름 같은 양손이 갑자기 산 정상에 바람의 한 부분을 스치며 휘감더니 곧장 사고검의 얼굴을 향해 쏘았다.
쏘아 보낸 구름이 도착하기도 전에 삿갓이 먼저 멀리 날아갔고, 강력한 바람이 사고검의 오관(五官)을 때렸다.
검을 막을 수 없다면 어떻게 상황을 타개해야 할까?
섭류운이 선택한 건 한 손을 치우는 것이었다. 구름을 휘감아 사고검의 얼굴을 때린 방법은 무술 초심자들이 가장 즐기는 방법이었지만, 지금 대종사의 손에서 펼쳐지니 더욱 초탈하고 자연스러웠다.
하늘에 있던 구름이 난폭하게 하늘로 치솟는 검의를 따라 부드러우면서도 빠르게 사고검의 얼굴을 덮쳤다.
만약 사고검이 이 산수를 무시했다면 장검은 섭류운의 가슴을 찌르고, 검에 농축된 검의와 살기가 순식간에 섭류운의 오장 육부를 조각내 버렸을 거였다. 그랬다면 설사 섭류운이 운이 좋게 살아남는다고 하더라도 더는 싸울 수 없었다.
그리고 만일 그가 이 산수를 피하려 한다면 집중력이 흩어져서 검에 불어 넣고 있는 정력에 빈틈이 출현할 수 있었다. 완벽하지 못한 검술로 어찌 대종사를 찌를 수 있겠는가?
지금 순간 섭류운의 선택은 아주 지혜로웠고, 심지어 아주 아름다웠다. 그는 자신의 공격이 사고검에게 중상을 입힐 수는 없지만 사고검에게 짧은 시간 안에 선택하게 만들 수는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죽을 걸 감수하고 사고검에게 중상을 입힐 모험을 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사고검이 이미 극단의 상황에 이르렀다는 걸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산 정상에는 아직 오죽, 요 태감, 그리고 모두가 있었다.
그래서 섭류운은 죽을 수 있었지만, 사고검은 중상을 입어서는 안 됐다. 왜냐하면, 중상을 입는다면 사고검은 경국 황제를 죽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고검은 이런 결말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었다.
그래서 구름을 쏘아 보낸 그는 사고검의 검의 기세가 변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사고검의 검의 기세는 변하지 않았다. 그의 눈동자는 여전히 야수처럼 번뜩였고, 검은색 머리카락은 산바람에 따라 미친 듯이 춤을 추고 있어 마치 검을 휘두르는 마귀처럼 보였다. 그리고 지켜보는 사람마저 겁에 질리게 할 만큼 엄청난 위력을 지닌 장검은 여전히 용감하게 섭류운을 압박했다.
그가 왼손으로 허공을 잡더니 비스듬히 손가락으로 왼쪽을 가리켰다. 자신의 얼굴을 덮치러 오는 구름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모습이었다.
세상에서 검술 종류는 수만 가지가 있었지만 검을 잡는 수법은 단 하나였다. 사고검의 왼손은 이때 가장 기본적인 검을 잡는 자세를 하고 있었다. 엄지손가락과 다른 네 손가락을 동글게 말았는데 그 안은 텅 비어 있었지만, 순식간에 아주 미약한 검의가 텅 빈 공간에서 분출돼 나왔다.
비록 약간 약해져 있었지만, 왼손의 공검(空劍)은 기괴할 만큼 빠른 속도로 황색 형체를 향해 달려들었다.
섭류운은 사고검을 공격해 저지하려 했고, 반대로 사고검은······ 허공 속에서 칼자루를 쥐고는 검의로 허공을 가르며 자신을 저지하려 하는 섭류운에게 반격을 가했다.
* * *
대동산 정상.
사고검은 검이 원만함과 난폭함이 서로 융합되도록 이미 자신의 정력과 기백을 모두 안에 주입했다.
이런 상황에서 섭류운이 쏘아 보낸 구름에 대응하려면 검을 거두어야 했다. 만약 검을 거두지 않는다면 적을 공격함으로써 위기를 모면하는 방법밖에는 없었지만, 그러기에는 분산시킬 수 있는 정력이 너무 조금 밖에 없었다.
지금 대동산 정상에 있는 다섯 명 중에서 약간의 정력만으로도 죽일 수 있는 사람은 유명무실한 기세를 가진 경국 황제 폐하뿐이었다.
사실 사고검은 검을 꺼낸 뒤 모든 기세와 지혜를 동원해 섭류운을 저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섭류운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와 싸우며 상당히 놀란 상태였다.
그리고 사고검을 놀라게 하고 분노하게 하고 불안해 어찌할 바를 모르게 한 것은······ 섭류운이 사고검이 허공에 쥐고 있는 공검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섭류운이 쏘아 보낸 구름은 여전히 그의 얼굴을 향해 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허공에 쥐고 있는 공검이 ‘윙’하는 소리를 내며 살짝 움직이더니 축축한 산 정상의 석판 위에 구멍을 뚫고는 텅 빈 곳에 떨어졌다.
밝은 황색 용포를 향해 달려들 던 공검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대동산 정상에서 4대 종사들과 한 시대를 대표하는 황제 사이에 일어난 이러한 일들은 오랜 시간을 두고 일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단 1초 안에 일어난 일들이었다.
단 1초 동안 사고검은 자신의 손에 있는 검을 사용해 섭류운을 공격하고, 실체가 없는 공검으로 경제를 찌르려 했다. 그리고 이 1초 동안 다른 쪽에서는 사람의 마음을 전율하게 할 만한 놀라운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이 이야기를 하려면 이 1초가 시작되는 순간으로 돌아가야 한다.
사고검이 날려 보낸 검이 경제의 등을 찌르려 할 때 황제는 탄식하며 홍 내관의 노쇠한 손을 놓았다. 마치 자신 때문에 늙은 홍 내관이 인생의 마지막 싸움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걸 원치 않는다는 듯이 말이다.
그때 북제 고하 국사의 손은 쉬지 않고 끈질기게 늙은 홍 태감의 가슴을 쓰다듬고 있었다. 늙은 홍 태감의 가슴을 쓰다듬고 누르는 엄지와 검지는 마치 산언덕에 부는 맑은 바람처럼 부드러웠다. 폭우와 천둥이 몰아치는 주변 풍경과는 다르게 산언덕에도 바람은 불었지만 큰 혼란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았다.
늙은 홍 태감이 가만히 고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양손이 마치 한 쌍의 채찍처럼 비틀어지고 변형되어 고하의 오른팔을 기어올랐지만, 쓰다듬는 손길을 막지는 못했다.
‘훅’하는 묵직한 소리와 함께 늙은 홍 태감의 가슴이······ 가슴이 부서졌다. 하늘의 도리에 통달한 고하가 싱그러운 속에 함축된 천지의 위력을 발산하자 늙은 홍 태감의 가슴뼈가 부드러운 두부처럼 무너지고 짓이겨지고 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