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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여년-747화 (747/1,108)

747화 진업 죽이기 (2)

‘칵!’ 하는 소리가 나지막하게 울렸다. 반군 중앙 군영에서 난 소리였다.

궁전의 전신 갑옷과 투구가 체내에서 요동치는 정기 때문에 철컹철컹 소리를 내며 어지럽게 울렸다. 강력하고 횡포한 정기는 그의 수염과 머리털마저 긴장시킨 상태였다. 그런 그가 두 손으로 직도를 움켜쥐고 진 영감님의 목을 내리쳤다.

이 일격에는 궁전 전신의 공력이 들어가 있었다. 궁전은 수년을 기다려 온 꽉 찬 8등급의 실력을 이 일격에 모두 실은 채 힘을 폭발시켜 버렸다.

진 영감님의 눈동자에 분노와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손으로 궁전이 난폭하게 휘두른 검을 꽉 잡고 있어서였다.

진씨 어르신의 손아귀에서 선혈이 떨어지고 있었다.

음험함이 극에 달한 급습에 경국 제일 원로이자 9등급 상의 강자는 범한이 하늘에서 내려온 걸 봤을 때처럼 계속해서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단지 가벼운 떨림 정도였지만 진 영감님의 얼굴에 일었던 홍조는 순식간에 창백함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궁전은 더 이상 장도를 쥐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궁전과 동시에 공격에 나선 이가 있었다. 아주 중요한 사람이자, 강자였다.

섭중이 사납게 공격에 나섰다. 얼마나 사나웠는지 정주의 황량한 모래바람이 섞여 부는 것만 같았고 저승의 의지가 섞여 있는 것만 같았다.

그가 자신과 진 영감님 사이에 있는 반군 장수의 몸을 단호하고 무정하게 꿰뚫은 후 진 영감님의 허리 쪽을 공격했다.

섭중과 궁전이 동시에 진 영감님을 상대로 급습에 나선 것이다!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도무지 믿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진씨 어르신조차도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곁에 두던 집안 장수들이 태자를 편궁에 데려다주기 위해 호송에 나선 지금, 옆에 있는 장수 여덟은 아예 반응조차 보이지 않고 있었다.

거대하고 낮게 깔리는 소리가 들린 후 반군 중앙 군영에서 먼지 꽃이 활짝 피었다. 그리고 먼지가 아직 내려앉기도 전에 각각 세 사람을 태우고 있던 말 세필이 강력한 정기의 진동에 울지도 못하고 몸이 폭발해 버렸다.

진 영감님이 입에서 피를 뿜었다. 그의 허리 복부 쪽에는 끔찍한 상처가 생겼다. 말라 죽은 대나무가 재빠르게 자신을 공격한 손을 찾아 들어가더니 칼을 쥐고 있는 섭중의 팔을 꽉 움켜쥐고는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섭중이 고개를 숙이자 차분하고 묵직한 산과 같은 양 눈썹이 보였다. 체내 정기가 거대 물결처럼 용솟음쳐 올라오자 섭중이 허리를 낮추고 나지막하게 소리를 냈다. 그런 후 큰 보폭으로 한 발 앞으로 나아가 상대를 한 발짝 더 압박해 들어갔다.

진씨 어르신이 또 몸을 부들부들 떨자 거대한 힘이 그 늙은 몸에서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이어 왼쪽 팔꿈치가 툭 튕겨 오르더니 한 손으로 궁전의 칼을 쥐고 이내 팔꿈치로 궁전의 흉부를 인정사정없이 가격했다.

궁전이 ‘풉!’ 소리와 함께 피를 안개처럼 뿜었다. 그런데 그는 오히려 피를 뿜을 때의 기세를 이용해 크게 소리를 치며 죽기 살기로 온몸을 있는 힘껏 위로 올렸다. 그 후 칼끝을 눌러 진 영감님의 왼손을 그의 목 쪽으로 붙이려 했다. 그러자 ‘지지지직’ 하는 무서운 소리가 났다.

이 모든 게 아주 단시간 안에 일어났다. 섭중은 이번이 유일한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묵직한 그의 성격으로는 절대 실수할 리 없었다. 이에 그는 단순히 심호흡하는 것같아 보이는 동작으로 어느새 가슴을 확장시키고는 왼손을 진동시켜 철판처럼 단단하게 만들며, 진 영감님의 이상하리만치 강력하고 횡포한 악력에서 벗어났다.

철판처럼 단단하게 변한 왼쪽 손이 대벽관의 기세로 선혈이 흘러내리고 있는 진 영감님의 가슴과 복부에 육중하게 타격을 가했다.

권법에 있어서는 역시 섭중이 천하제일이었다!

강력한 충격이 일자 경국 군을 이끌고 있는 고위 고수 셋이 청석판 위에서 턱턱 소리를 내며 뒤로 물러났다. 한데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닥이 깨지며 먼지가 일었다.

그리고 이때, 쇠뇌의 화살 꼬리에 묶어둔 밧줄이 잘려 범한은 허공에 떨어져 버렸다. 그런데 범한은 반군이 포위하고 있는 곳으로 떨어지지는 않고, 발끝으로 어느 반군의 투구를 밟아 추진력을 얻은 후 연기처럼 가볍게 중앙 군영으로 돌진했다.

그때 섭중은 진 영감님의 허리와 복부 사이에 난 상처를 대벽관으로 인정사정없이 내리치고 있었다.

범한이 검은 그림자처럼 몸을 웅크려 회전한 후 몸을 펼쳤다. ‘쨍’ 하는 소리가 두 번 나더니 왼손으로는 등에 묶어 두었던 위나라 천자의 검을, 오른손으로는 영 재인으로부터 돌려받은 장화 속 검은색 비수를 꺼내 들었다.

한 손에는 검을 다른 한 손에는 비수를 들고 그는 다시 검은 연기로 변했다. 그런 후 반군 중앙 군영의 진씨 가문 장수 여덟 명의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스윽’ 하는 소리가 여러 차례 날카롭게 울렸다. 장수 여덟 중 다섯이 목이 베여 죽었고, 세 명은 가슴에 상처를 입고 뒤로 물러났다.

잠깐 사이에 환생 후 가장 강력한 실력을 발휘해 버린 거였다.

범한은 다시 거대한 새가 숲으로 몸을 던지듯 야수처럼 서로 공격하고 있는 세 사람에게 달려들었다.

진 영감님의 고함 공격을 받자 섭중은 손을 뒤집어 손가락만 오므린 후 온 힘을 다해 타격을 가했다. 그러다 방어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던 왼쪽 어깨가 공격을 받아 으스러지고 말았다.

그 순간 섭중은 한 발로 바닥을 힘껏 밟았다. 그리고 바닥에 발바닥 자국 하나를 남기고는 서둘러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섭중이 끄응 소리와 함께 양손을 마주하고 대벽관의 ‘합관 일식(合棺一式)’을 펼쳤다. 진 영감님의 정기가 미친 듯이 자기 몸 안에서 요동쳐 오른손이 계속 떨리는 걸 억누르기 위해서였다.

온몸이 피로 물든 궁전은 진 영감님의 왼쪽 팔을 움켜쥔 채 자기 몸을 상대에게 밀착시키고 있었다.

진 영감님의 강력한 손바닥 저항을 사이에 둔 채 궁전은 온몸의 힘을 이용해 두 사람 사이에 낀 칼 두 개를 진 영감님의 목에 찔러 넣으려 했다.

뒤엉켜 싸우던 세 사람이 빠른 속도로 십여 장을 뒤로 물러나게 되었다. 그러다 목재 건물의 담벼락과 부딪혔는데,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충격으로 먼지가 잔뜩 일었다.

하지만 그들보다 더 빠른 이가 있었다. 범한이었다. 검은 새가 되어 베틀의 북처럼 전광석화처럼 파고들어 진 영감님 앞에 나타났다. 그런 후 들고 있던 장검을 돌려 ‘푹!’ 소리와 함께 그의 아랫배를 찔렀다.

피 꽃이 피어나고, 장검은 진 영감님과 몰아일체가 되었다. 범한이 고개를 숙이고 검 자루를 잡은 후 낮게 끄응 소리를 내고는 계속 앞으로 공격해 나아갔다.

그런데······ 강한 충격 때문에 강자 4인이 건물의 두 번째 담벼락을 무너뜨리고, 다시 세 번째 담벼락을 무너뜨리고······. 결국 먼지가 자욱하게 일었고 이 음험하고, 후안무치하고, 피비린내 진동하는 살육전은 수만의 시선과 차단된 상태에서 진행되었다.

주변의 전각이며 풍경이 시간을 되돌리듯 스치고 지나갔다. 그런데도 범한, 섭중, 궁전은 그 누구하나 공격을 늦출 수 없었다.

음흉한 자객 셋은 진 영감님이 습격을 받아, 그것도 9등급 상 둘과 8등급 용자(勇者) 수준 하나의 합동 공격으로 돌이킬 수 없는 부상을 당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경국군 측의 최고위 원로가 생의 마지막 순간에 어떤 빛을 폭발시킬지는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쿵!’, 하며 소리가 낮게 울렸다. 그리고 그동안의 야만적인 싸움이 드디어 마지막 담벼락 앞에서 멈추었다.

섭중은 여전히 대벽관으로 진 영감님의 가장 강력한 오른손을 사력을 다해 막아내는 중이었다. 궁전은 아직도 진 영감님의 왼쪽 팔을 누르고 있었다.

범한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양손이 바들바들 떨리는 가운데 피가 가득 묻은 검을 쥐고 있었다. 검은 검자루만 진 영감님 복부 밖으로 나와 있었다.

진 영감님의 백발은 헝클어져 있었지만, 눈동자에서만큼은 무시무시한 빛을 번뜩였다. 그가 죽기 직전의 사자 왕처럼 분노에 찬 포효를 했다. 그러자 그의 온몸이 맹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이 강력한 떨림은 9등급 상의 강자가 죽기 직전에 최후의 반격을 펼칠 것임을 알리는 징조였다.

그런데 진 영감님 뒤쪽에 있던 나무 벽에서 갑자기 소리소문없이 검 하나가 삐죽 솟아 나왔다.

검은 고작 4치[寸] 정도만 솟아 나왔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진 영감님 몸의 연문(練門)을, 그러니까 꼬리뼈 세 번째 관절 부위를 정확히 찔렀다.

검은 신기한 공격을 펼치고는 이내 사라져버렸고, 이는 진 영감님에게는 가장 치명적인 공격이었다.

‘컥’ 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여러 차례 울리고 중상을 입은 진 영감님이 온통 시뻘게진 얼굴로 입에서 피를 뿜었다.

그 후 그의 몸이 나무 벽을 타고 무기력하게 미끄러져 내렸다.

침묵이 일었다. 죽음 같은 침묵이. 어쩌면 순간일 수도 있고, 또 어쩌면 순간이 아닐 수도 있었다.

길게 잡으면 30년, 짧게 잡으면 3년. 정기의 진동으로 부서진 나무판이며 의자의 잔해들이 사방에서 투두둑 떨어지고, 피가 뚝뚝 흘렀다.

범한이 날카로운 검을 천천히 뽑아내는데 검의 본체가 살점과 마찰하며 참혹하고 애처로운 소리가 났다.

섭중이 철판처럼 단단히 만들었던 손에 힘을 풀고, 궁전도 피를 칵 뱉어내고 몸을 일으켰다.

진 영감님은 두 눈을 부릅뜬 채 피에 절어 있었다. 담벼락에 웅크리고 앉은 채 눈도 못 감고 죽어 있었지만 두 손으로는 무언가를 잡으려 했던 것만 같았다.

경국군 측의 원로가 드디어 죽은 것이었다. 경국 개국 이래 준비 기간이 가장 길었고, 가장 오래 숨겨 두었던 음흉한 살해 계획 속에서 죽은 거였다.

범한은 다치지 않았다. 하지만 몸에 냉기가 도는 게 느껴져 고개를 들고 지극히 이상한 눈빛으로 오른손 쪽에 조용히 있는 궁전을 잠시 바라보았다.

자신이 16살에 경도로 들어온 후 처음 만난 시위(侍衛) 대신을 그는 괴물 보듯이 바라보았다.

그런 후 고개를 돌려 섭중을 잠시 바라보았다. 섭중을 보는 그의 시선은 무게감이 있었다. 그런데 하필 이때 섭중도 범한을 보고 있었다. 두 사람이 눈빛을 서로 마주쳤지만 불꽃 같은 건 일지 않았다. 하지만 깨달음이 살짝 담긴 텅 빈 시선 속에는······ 서로에 대한 탐색도 살짝 섞여 있었다.

범한은 자신의 도박이 어찌 보면 완전히 성공했음을 알게 되었다. 황성 위에서 감히 도박을 행할 수 있었던 건 어떤 내막을 알고 있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황태후의 발을 잡았을 때 담주 할머니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황제 폐하는 애당초 준비 없이는 싸움을 않는 분이었다. 심지가 굳었고, 생각하는 것도 비범했으며, 약점이 없었다. 그래서 범한은 궁지에 몰렸을 때 황제 폐하가 경도에 아무런 준비도 해놓지 않았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그렇게 경도 상황을 명확히 꿰뚫고 계셨던 분이 왜 대동산으로 천제를 지내러 가신 건지 의문이 들었다.

이에 범한은 도박을 감행했다. 반군 안에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변수는 있었다. 섭씨 가문이 반군의 뒤통수를 친 것이었다.

아니! 경국 역사상 최고로 강력한 이중간자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범한이 도박을 감행하기로 결정했을 때 스스로에게 합당한 이유를 제시할 수 없었다.

그러다 섭중 눈에서 드러난 그것을 통해 ‘왜 섭씨 가문이 갑자기 공격을 한 걸까?’에 대한 답을 알게 되었다.

눈 깜짝할 사이란 말이 있다. 눈 깜짝할 사이는 아마 1초 정도가 될 터인데, 이는 범한에게 많은 걸 알게 해주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과거 범한이 궁금했던 문제들, 최근 4년 동안 경국 조정에서 보아왔던 이상했던 일들. 그로써 증명된 황제 폐하의 과한 의심과 겉으로 드러난 그분의 결점들. 이 모든 게 완벽히 설명 가능하게 되었다.

범한은 섭중을 1초 정도만 보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요 몇 년간, 그리고 십여 년간의 과거를 꿰뚫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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