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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여년-745화 (745/1,108)

745화 형과가 진씨 가문의 사람을 찌르다! (2)

무서운 추격전이 벌어지는 동안 반군의 황성 공격도 쉼 없이 이루어졌다.

황궁문을 부수는 예첨중차는 피곤한 줄 몰랐고, 낙석과 화염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리고 차례대로 황궁 문 세 곳을 향해 출격했다.

낮고 거대한 소리가 황성 위아래에서 수시로 메아리쳤다. 그 소리는 마치 사람의 영혼을 울리기 위한 절주 있는 북소리처럼 들렸다.

광장에서의 기이한 추격전이 마지막을 향해 가고, 진항의 검이 형과 목에서 불과 세 치[寸] 떨어져 있었을 때, 황궁문을 향한 공격과 방어에 놀라 만한 변화가 일어났다.

‘쿵!’ 하는 거대한 소리가 울렸다. 정중앙에 있던 제일 두툼하고 육중한 황궁 문이 드디어 열린 것이었다.

이 순간, 모든 반군은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는 눈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곧이어 모두들 기쁨에 휩싸여 극도로 흥분하기 시작했다.

바로 이때 흑기는 이미 패했고 형과는 죽기 직전이었다. 황궁 문이 열리자 승리의 저울이 의심할 여지 없이 모든 저울추를 버리기라도 한 듯 벌벌 떨며 반군 쪽으로 붙어버렸다.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태자는 정신이 번쩍 났다. 그가 옆에 있는 진 영감님과 섭중을 쓱 바라보며 심호흡을 했다.

“전력으로 공격하시오!”

* * *

범한은 검은색 관 위에 서서 다른 사람에게 들리지 않도록 발끝으로 관을 일정 속도로 두드리고 있었다. 그러다 황성에 치명적인 변화가 일자, 여전히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발로 관을 열어 그 안에서 저격총을 꺼냈다.

범한은 다른 이들보다 높은 곳에 서 있었다. 이에 진평평이 가르쳐줬던 것처럼 다른 사람보다 더 먼 곳에서 그들이 보지 못하는 세세한 부분까지 볼 수 있었다.

서쪽 반군 진영에서 정주군 장수가 2 황자와 무언가를 상의하는 게 범한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점점 2 황자에게 다가가며 그의 측근들을 자연스럽게 밖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반군 중앙 군영을 보니 처음 기쁜 기색을 드러낸 태자와 달리 섭중은 평소와 다름없이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궁전은 한자리 더 뒤로 밀려나 있었다.

반군이 대오를 바꾸고, 진항을 구하느라 소란이 인 가운데 정주군 군대가 점차 대형을 바꾸었다. 비록 아주 미세하기는 했지만 높은 곳에서 바라보고 있는 범한의 눈에는 그게 상당히 거슬렸다.

만약 이 복잡한 국면을 무수한 화면으로 구성한다면, 그 화면들은 모두 범한의 눈에서 아무도 모르게 변화를 일으키고 있었다. 그런데 범한은 자신이 하려는 도박은 이들 화면의 변화에 따라 최후 승패가 갈린다는 걸 알고 있었다.

범한이 위(魏)나라 천자의 검을 등에 단단히 묶었다. 그리고 3처가 2년 전에 자신을 위해 준비해준 갈고리 밧줄을 잡아 당겨보고는 수성용 쇠뇌가 있는 쪽을 잠시 바라본 후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준비!”

그런 후 마지막으로 발끝으로 관을 톡 친 후 속으로 ‘오늘은 널 쓸 일이 없어.’라고 말했다.

* * *

다음 순간에 갑자기 변화가 일어났다. 이번 변화는 경국의 오늘과 내일을 결정할 것이고 또한 나중에 양심적인 청년 역사학자들이 흥미롭게 연구할 내용이 될 것이었다.

첫 번째 변화는 은색의 가면을 쓴, 곧 죽게 생긴 형과였다. 진항의 검이 목 앞부분을 공격할 때 형과가 고개를 숙였다.

형과가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숙이는 건 간단한 동작처럼 보이지만, 찰나의 순간에 이를 행하는 건 대단히 힘든 일이었다.

그런데도 그가 이리 자연스럽고 빠르게 동작을 해낸 건 이미 오래 전부터 진항의 검이 어디로 와서 어디로 흘러갈지 알고 있어서였다.

아울러 일찌감치 수없이 많은 예행연습을 함으로써 진항의 검을 맞을 준비를 한 때문이었다.

다행히 형과가 살며시 고개를 숙인 덕분에 진항의 살기등등한 검은 그의 은색 가면만 스치고 지나갔을 뿐이다. 이에 검과 은색 가면이 부딪히며 불꽃만 일으켰을 뿐 형과의 목은 베지 못했다.

그런데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아까 형과가 온몸의 기백을 불어 넣어 시전한 공격에서 창은 허공을 찌른 후 청석판을 깨뜨렸었다. 그런데 창이 갑자기 생명이라도 갖게 되었는지 빠르게 위로 튀어 올랐다. 그리고 형과의 빈 손아귀 속으로 ‘슉’ 소리를 내며 들어갔다.

형과가 창 끝부분에서 아래 세 치 떨어진 곳을 꽉 움켜쥐고 맹렬하게 찔렀다.

모두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은색의 가면에 일었던 불꽃이 사라지지도 않았는데 형과 손에 들린 창이 사납게 진항의 아래턱을 찔러버린 것이었다.

‘컥!’,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창끝이 진항의 아래턱에서 곧장 뇌로 향했다. 선혈이 여기저기 날리고 진항은 순간 몸이 뻣뻣해졌다가 곧바로 흐느적거리더니 그대로 즉사하고 말았다.

형과가 창을 꽉 움켜쥐고 창끝으로 진항의 사체를 들어 올렸다.

그 순간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형과의 은색 가면이 반으로 쪼개져 미끄러지듯 바닥으로 떨어졌다. 형과의 진짜 얼굴이 드러났다.

범한은 그동안 형과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했었다.

진평평이 감옥에서 구해주고 흑기 일원이 된 후 형과는 은색 가면 아래에 얼굴을 숨기고 살았다.

이마며 눈가며 수려한 얼굴이었다. 한데······ 왼쪽 귀부터 오른쪽 귀까지 어떤 날카로운 것으로 길게 찢어진 상처가 있었다. 오래된 상처였지만 지금 봐도 끔찍할 지경이었고, 과거 그가 어떤 식으로 다친 건지 충분히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상처는 대단히 크게 나 있었다. 피부 안에 있는 뼈와 흰 이까지 드러나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나도 끔찍했다.

특히 아까 은색 가면으로 진항의 검을 막기는 했지만, 그래도 검의 기운이 얼굴 앞부분을 건드리는 바람에 그 충격으로 옛 상처가 다시 벌어지고 피가 흘러내려 더 흉악해 보였다.

광장은 쥐죽은 듯 조용했고 사람들은 너무 놀라 이 광경을 지켜보기만 했다. 흉악한 흑기 부통령이 영감님의 외아들을 창으로 꽂아 들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어느새 범한이 진씨 가문의 대를 끊어놓겠다던 저주를 떠올리고 있었다.

목에서 똑똑 떨어지는 피는 창대를 따라 손까지 타고 내려간 후 바닥을 흠뻑 적셨다.

형과는 아무 말 없이 속으로 말했다.

‘옛날에 네 형이 그 초식으로 내 얼굴을 망가뜨렸지. 그동안 진씨 가문을 향한 원한을 담아 이 은색 가면을 쓰고 살아왔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너희 가문의 살생 초식을 연구해 왔어. 그런데 오늘 네가 이 초식을 쓰다니. 내 손에 죽었어도 억울하다 생각지 말아라!’

형과가 창으로 진항의 시신을 들고는 반군 진영의 진 영감님이 있는 곳을 바라보며 매섭게 소리쳤다.

“나는 형과다! 진업! 네가 우리 집안사람을 몰살했으니, 나는 너의 가문을 몰살할 것이다!”

형과의 창에 진항의 사체가 피를 줄줄 흘리며 꽂혀 있었다. 바로 이때 형과의 가슴에는 복수했다는 쾌감과 피비린내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이내 만군에 포위된 가운데에서 목청껏 외치고 싶었다.

‘내가 드디어 가족의 복수를 했다! 어둠 속에서 몇 년을 숨어 지낸 끝에 드디어 복수를 했다!’

그는 교주성 밖에서 처음으로 범한에게 자신의 과거를 털어놨었다. 그리고 반년이 지난 지금, 범한의 허락으로 그에게 복수할 기회가 찾아왔다.

형과는 작은 범 대인이 자신의 소원을 들어 줄 만한 능력이 있다고 생각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그 소원은 현실이 되어 있었다.

쾌감이 밀려왔다. 무궁무진한 쾌감과 살의가 자신을 감싸자, 그는 즐겁게 웃기 시작했다. 그러자 양 귓가에 있는 끔찍한 상처가 벌어져 버렸다. 어릿광대의 입처럼 말이다.

웃음 때문에 상처가 더 크게 벌어져서 유난히 더 무서운 모습으로 변해 버렸다. 하지만 동시에 또 유난히도 처량해 보였다. 눈물이 비처럼 그의 얼굴을 타고 미끄러져 내리고 있어서였다.

이 광경을 본 사람들은 심장이 오그라들 정도로 오싹했다. 말 위에 있던 진 영감님은 심장이 찢어지는 듯 아팠고 눈앞이 캄캄해져 왔다. 하지만 말 위에 용맹한 모습으로 꼿꼿하게 앉아 그 누구도 자신이 정신적인 충격을 받아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지경이란 걸 알아차리지 못하게 했다.

낯빛이 창백해진 진 영감님은 백발을 휘날리며 저 괴물 흑기의 창에 꿰어 있는 외아들을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바로 이때, 황성 아래에서 암류처럼 조용히 두 번째 변화가 나타나고 있었다. 그림의 명인이 산으로 가득 찬 가을 풍경에다가 일부러 붉은 점을 흩뿌려 산야에 갑자기 무수히 많은 야생화를 피우고, 쓸쓸한 풍경을 순식간에 풍성하게 과실이 열린 풍경으로 바꾸어 놓은 것만 같았다.

황궁 정문이 열리자 반군이 함성을 지르며 안으로 돌격했다. 하지만 문에서 거대한 칼이 날아와 싸늘한 빛과 함께 핏빛을 뿌리고 여러 명의 머리를 땅으로 떨어뜨렸다.

차가운 빛이 크게 지나가는 가운데 전신을 갑옷으로 무장한 1 황자가 말을 타고 용맹한 기세로 나타났다. 그리고 그가 천신이라도 되는 듯 황궁 문을 넘더니 큰 칼로 피의 길을 열었다.

‘칵, 칵, 칵, 칵.’

반군 선봉대의 팔과 다리가 잘려나갔다.

1 황자가 크게 소리치며 장도를 든 2백 명의 금군 돌격대를 이끌었다. 그리고 황궁의 문이 부서져서 열리는 순간, 적의 예상을 깨고 먼저 공격을 퍼부었다.

황궁 문 안쪽에 있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진정한 의미의 첫 공격이 시작된 것이었다.

말발굽 소리가 크게 울리기 시작했다. 황궁 문 안에 가짜 산과 진흙으로 만든 벽은 일부가 헐려 작은 길이 나 있었다.

하지만 1 황자의 반격 속도를 늦추지는 못했다. 2백 명의 말을 탄 금군이 순서대로 빠르게 빠져나갔다. 빠른 돌격을 앞세워, 뛰어난 기마전 실력으로 칼로 두부 자르듯이 문 앞에 있는 반군 선봉대를 뚫고 나가 큰 구멍을 만들었다.

싸늘한 빛이 향한 곳마다 막을 자가 없었다. 감히 막으러 나선 자는 모두 땅바닥 위에서 사체가 되거나 사지가 잘려나갔다.

고작 찰나였을 뿐인데 금군은 황궁 문 앞에 뻥 뚫린 구멍을 내고 바깥으로 근 20장 정도를 전진했다. 마치 은색의 강이 거침없이 흐르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이때, 반군 역시 속도를 높여 뚫린 황궁 문으로 빽빽하게 밀고 들어갔다. 메뚜기 떼가 무리를 지어 가는 것 같은 오싹한 광경이었다.

금군 2백 명은 위세가 대단했다. 하지만 반군 자체가 워낙 수도 많고 강력하다 보니 그들은 그저 한 가닥 은실처럼 보일 뿐이었다.

그러나······ 1 황자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범한을 믿기로 한 이상 생사는 신경 쓰지 말아야 했다.

이에 그는 공중에 큰 호를 그리듯 대도를 휘두르며 빠르게 우측 전방을 향해 나아갔다. 그러자 날카롭게 ‘칵’ 소리와 함께 반군 교위가 들고 있던 단창이 잘려나갔다.

대도는 그 교위의 어깨도 잘라버렸다. 이에 1 황자는 낮게 콧방귀를 뀌고는 허리와 복부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기운이 아래로 내려왔다가 팔로 옮겨갔고, 이에 ‘촤락’, 하는 소리와 함께 칼끝이 교위의 몸을 뚫고 나가 그의 몸을 반 토막 내버렸다.

1 황자는 이내 몸을 굽혀 바로 앞에서 날아오는 가시 달린 몽둥이를 피했다. 이때 그의 손에 들린 대도는 몸 뒤로 가 허리를 따라 한 바퀴 회전했고, 강력한 팔 힘의 도움을 받아 몽둥이를 비스듬히 쪼개버렸다. 대도의 칼끝이 공중에서 처량하고 날카롭게 울며 대단히 거칠게 좌측에 있는 반군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그러자 ‘팍!’, 하는 소리가 작게 울리더니 무수히 많은 피가 분수처럼 쏟아지며 1 황자의 은색 갑옷과 투구를 적셨다. 그가 들고 있던 장도도 짙은 핏빛이 되어 버렸다.

은색에 붉은색이 더해지니 갑옷은 그가 평소 걸치기 좋아했던 붉은색의 외투처럼 변해 버렸다.

금군이 목숨을 걸고 돌격해 나간 길에는 붉은 피의 선이 그려졌고 그 선은 놀랍도록 장엄하고 아름다웠다.

투구는 어느새 칼날 같은 눈썹 선에 겨우 걸쳐 있었다. 1 황자는 들불처럼 이글거리는 눈으로 저 멀리 있는 반군 중앙 군영을 바라보며 부하들을 이끌고 돌진했다.

가는 길에 얼마나 많은 방해와 공격을 받을지 모르고, 또 영원히 이승건 앞까지 갈 수 없을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그는 계속 돌격해 나가려 했다.

왜냐하면 그는 경국 정서군 대원수이자 황자들 중 유일하게 전쟁을 치러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범한이 무슨 목적을 가졌는지 모르겠으나, 그래도 자신의 사명으로 받아들인 이상 그는 그것을 끝까지 관철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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