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4화 형과가 진씨 가문의 사람을 찌르다! (1)
흑기의 기마술은 그야말로 뛰어나, 빠르게 내달리면서도 진형을 재빨리 전환하는 게 가능했다.
대오 전체가 갑자기 흩어지더니 최전방의 기마병을 향해 오른쪽으로 말고삐를 당겼다. 그 후 빠른 속도와 거대한 돌파력으로 뒤쪽에 있는 기마병 대대의 길목을 잠시 막아버렸다.
그리고 남은 백여 명의 흑기는 늑대 무리가 목표물 선정을 마친 것처럼 왼쪽으로 찌르듯 들어갔다. 그들은 진항이 있는 선봉대로 바짝 따라붙어 들고 있던 사냥감을 물어뜯듯 목을 칼로 내리쳤다.
순식간이었다.
진항이 있던 선봉대에서 참혹하게 사상자가 나왔고 뒤쪽 기마병 대대는 갑자기 치고 들어온 공격에 갈팡질팡하느라 앞으로 나가 구조 지원을 하지 못했다.
한편 이때 광장에는 반군이 수적으로 많기는 했지만,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었고, 또 특히 대오의 진형을 바꾸던 터라 살짝 혼란한 상태였다.
이에 흑기가 전광석화와 같이 돌격하는 걸 보고도 그 누구도 저들 수백 명의 기마병을 큰 부대로 둘러싸 깔끔하게 없애버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 * *
우레와 같은 말발굽 소리가 울렸다.
흑기가 탄 말들은 조용히 앞으로 내달리기만 했고 진씨 가문의 기마병이 탄 말들은 비명을 지르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말이 등에 타고 있는 주인의 마음을 대변해 주고 있는 것만 같았다.
흑기의 추격 속도는 대단히 빨랐다. 잠깐 사이 진항이 있는 선봉대에 따라붙어 광장 안쪽으로 일정 거리를 들어간 후 선봉대를 뒤쪽 대대와 분리시켜 버렸다.
보고 있으면 너무 놀라워서 그야말로 심장이 떨리게 만드는 광경이었다.
이에 주변이 모두 반군이다 보니 진 영감님과 섭중은 일찌감치 대응에 나섰다.
그들은 부하들에게 서북 방향의 틈이 생긴 곳으로 가 합류하라고 명했다. 그리고 흑기가 목적을 달성하기 전에 반드시 진항과 합류하라고 했다.
만이 넘는 반군이 둘러싼다면, 제아무리 흑기가 강하다 한들 죽기밖에 더할까.
물론 흑기가 범한의 명에 따라 진항 참수에 성공한다 해도 지금 이 상황에서 그들에게 남아 있는 건 죽음밖에 없었다.
하지만 형과를 위시한 흑기는 그 점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만이 넘는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무수히 많은 반군이 포위해 오는 가운데 드넓은 황궁 앞 광장에서 그들은 목숨을 돌보지 않고 용감하게, 심지어는 오만하게 진항의 선봉대에 바짝 따라붙었다.
흙먼지가 점점 많이 일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만의 반군 앞에서 백여 명의 검은 기마병들이 진씨 가문 정예 기마병 백여 명을 쫓았다.
결연한 태도, 미친 듯한 기세, 누가 봐도 두려움이 일게 한 이 상황은 길이길이 사람들 마음에 남는 명장면이었다.
수백 명의 기마병이 용처럼 길게 먼지를 일으키며 목숨을 걸고 쫓았다. 그리고 광장 서북 쪽 한 귀퉁이에서 광장 중앙을 향해 내달렸다.
* * *
진항은 약자가 아니었다. 그가 약자였다면 삼십 대에 경도수비사가 되어 섭중 이후 두 번째로 젊은 통령 대인이 되지도, 젊은 나이에 추밀원 부사도 되지 못했을 것이다.
전쟁터에서의 현 상황에 대해 진씨 가문의 2세 장수는 분명 자신만의 지혜와 판단력을 발휘하는 중이었다. 그는 병사들을 이끄는 데 능했고, 반응 속도도 빨랐다.
흑기의 그림자가 눈가 쪽에 나타나자 그는 즉각 결단을 내려 첫 번째 정면충돌에 나섰다. 첫 번째 공세를 잘 버텨내고 후방에 있는 대대가 와 준다면, 상대방은 2백 명 밖에 안 되니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 판단해서였다.
다만 오늘 경도에서의 전투는 전쟁터와는 많은 부분이 달랐다. 정양문 아래 골목에서의 전투 역시 과거 병법서에서 본 골목 전투 방법과 너무 큰 차이가 있었다.
진항은 정보 수집과 암살에 모두 가능한 감찰원이란 부서가 뜻밖에도 골목 전투에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해 진씨 가문 기마병에게 심각한 손실을 입히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아울러 자신들이 사기, 정신력, 체력을 이렇게나 많이 소모하게 될 줄도 몰랐다.
하지만 가장 관건이면서 진항이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게 있었다. 바로 2백밖에 안 되는 흑기가 뜻밖에도 강한 기세, 빠른 돌파력, 냉혹함이 극에 달하는 살인기술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선봉대인 기마병 5백 명이 상대방의 첫 번째 공세도 막아내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토막이 나버린 것도 진항으로서는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진항은 심장이 싸했지만 그래도 반응만큼은 빨라 빠르게 내달렸다. 제 자리에서 흑기와 맞서 싸운 게 아니라 곧장 속도를 높여 자기 기마병들을 이끌고 광장 중앙으로 내달렸다.
사방은 모두 반군이었으니, 저들과 합류하기만 한다면 흑기에게 남은 건 죽음뿐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지금 그에게 필요한 건 속도, 최대한의 속도였다.
* * *
진항이 이리 빨리 대응한 걸 보면 진씨 가문 기마병이 받는 훈련이 효과를 발휘했다고 말할 수 있었다.
늑대 떼 같은 흑기에게 물어뜯기는 상황에서 선봉대가 성공적으로 세 갈래 길을 빠져나와 광장으로 도망갔으니 말이다.
다만 흑기가 더 빠르고 더 사납다는 게 문제였다. 흑기는 조금도 뒤처지지 않았고, 오히려 은근히 포위까지 해나갔다. 한편 은색 가면을 쓴 흑기 대장이 측면에서 튀어나와 진항으로부터 겨우 말 세 마리 정도 떨어진 거리만큼 다가갔다.
투구 사이로 진항이 싸늘하게 눈빛을 쏘았다. 흑기의 용맹함이 자신의 예상을 뛰어넘어서였다.
자신이 반군 사이로 들어갔는데도 쫓아오고 있다니. 사력을 다해 자신을 죽이려는 모습에 감탄이 나왔다.
하지만 진항이 봤을 때 흑기의 습격은 이미 실패한 작전이었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자신이 죽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고, 또한 반군에서 보낸 구원병도 이미 오고 있어서였다.
이때 반군의 대오 변경은 절반 정도가 진행된 상태였다. 그러다 진항이 위험에 처해 고전을 면치 못하는 걸 알아차리고는 대대 둘을 구원병으로 보냈다.
이들은 흡사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만 같은 흑기 기마병을 깨끗이 섬멸해버리려 했다.
한데 지금 이 두 대대와 용처럼 기다란 먼지는 아직 거리가 많이 떨어져 있었다. 그러니 대대 대부분이 보병인 상황에서 진항 구조와 흑기 섬멸을 가능하게 하려면 급습에 나선 흑기와 도망가는 진항의 유난히 빠른 속도를 구원병들이 따라잡아야 했다.
그런데 바로 이때 반군 중앙 군영에서 위풍당당한 외침이 들려왔다.
“쏴라!”
* * *
황성 위쪽은 신주 덕분에 화살 비가 쏟아지지 않는 광명을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광장에서 벌어진 일은 그 누구도 막지 못했다. 진 영감님의 결심이기 때문이다. 이에 명령이 떨어지자 무수히 많은 화살촉이 긴 먼지 쪽을 향해 발사되었다.
빽빽하게 ‘촥’ 하는 소리가 한동안 연달아 울렸다.
지금 생사의 경계에서 사력을 다해 달리고 있는 기마병들은 모두 사정권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흑기에게 쫓기는 이들이 아군이란 걸 아예 신경조차 쓰지 않은 것이다.
진항은 자신의 아버지가 나와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있었기 때문에 달리 망설이지 않았다. 그리고 화살이 빗발칠 것도 알았다. 이에 그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입술이 창백해지도록 빠른 속도로 내달렸다. 그리고 화살이 도달하기 전에 몸을 돌려 뒤쪽으로 도망갔다.
무정하게도 화살이 사람들 몸에 푹푹, 소리를 내며 꽂혔다. 빠르게 돌격하던 기마병의 몸도 뚫어버렸다. 화살촉은 회전하면서 기마병이 입고 있던 얇은 갑옷을 뚫어버린 후 연약한 살갗을 찢고 오장육부와 뼈까지 파고들었다.
고속으로 내달리고 쫓고 있던 양측의 기마병들은 순식간에 들어온 화살 공격에 낙마하고, 바닥으로 뒹굴고, 사지가 떨어져 나갔다. 여기저기에서 신음하는 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진씨 가문의 기마병이든, 감찰원 흑기든 모두 같이 처참한 운명을 맞은 것이었다.
흑기의 갑옷과 투구는 황실 금고 병 작업장에서 특별 제작한 것이었다. 경국 군은 좋은 소재로 갑옷과 투구를 만들었는데 감찰원 것은 그보다 더 가볍고 튼튼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하지만 빗발치는 화살 아래서는 참담한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진씨 가문의 기마병 역시, 치명적 재난 수준의 손해를 입었다.
* * *
태자가 고개를 홱 돌려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진 영감님을 바라보았다. 그가 왜 이런 무시무시한 명령을 내렸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설마 진항의 생명도 걱정하지 않는다는 건가?’
더군다나 2백여 명에 달하는 흑기는 더 큰 손실을 낼 수도 없는데, 화살을 쏴 적이고 아군이고 할 것 없이 도살해 버리다니. 설마 군심이 이탈할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는 건가?
진 영감님이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그러자 그 작은 틈으로 싸늘한 눈빛이 발사되었다.
현장에 있던 이들 중 흑기의 목적이 무엇인지 아는 건 진 영감님 한 사람뿐이었다. 만약 저 2백여 명의 흑기를 내버려 뒀다면 진항이 이끄는 선봉대는 반군이 도와주기 전에는 절대 흑기의 추격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진 영감님은 흑기가 얼마나 위력적인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범한이 정양문 아래에서 급습을 하고, 이곳에 흑기를 매복시켜 놓은 건 모두 아까 성벽 꼭대기에서 자신을 머리끝까지 분노하게 한 그 말을 이행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내가 진씨 가문의 대를 끊어놓을 겁니다!’
진 영감님은 잔인한 사람이었다.
범한이 대를 끊어놓겠다고 하자 차라리 자신이 해치워버리면 해치워버렸지 비굴하게 범한이 내세운 사람에게 아들이 살해당하도록 내버려 둘 수 없었다.
더군다나······ 영감님은 진씨 가문의 아들은 그리 쉽게 죽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물론 진항은 죽지 않았다. 그가 타고 있는 말이 화살을 잔뜩 맞고 두어 번 비명을 지른 후 무겁게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쳤지만 말았다.
말이 고꾸라져 앞으로 구르는 바람에 진항은 지면에 매섭게 부딪혔고, 갑옷과 투구에서는 지면과 마찰하는 바람에 무수히 많은 작은 불꽃이 일었다.
하지만 그는 일찌감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말에게 모든 화살을 맞도록 했다.
화살이 빗발친 건 딱 한 번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쫓고 쫓기던 기마병들이 모두 피바닷속에서 고꾸라져 버렸다.
흑기 쪽 생존자가 더 많기는 했지만 그래도 전투마를 잃고, 중상 내지는 경상을 입었다.
하지만 이들은 두려워 않고 칼을 다시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근처 바닥에 엎어져 있는 진씨 가문의 기마병들을 해치워 나갔다.
이때 진항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반군 지원병이 재빨리 그에게 다가왔다.
은색 가면을 쓰고 있는 흑기 부통령 형과. 그는 근접전 시작 때부터 흑기의 날카로운 칼로서 다듬어진 상태였다. 그런 형과가 결연하면서도 재빠르게 진항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다. 형과는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빗발치는 화살 공격으로 형과와 그의 말도 참혹한 타격을 입었다. 화살 한 대가 교묘하게 형과의 갑옷을 꿰뚫고 들어가 어깨에 비스듬히 박혀 피가 주르륵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형과가 타고 있던 말도 앞발에 힘이 풀려 바닥에 고꾸라진 상태였다.
빗발치는 화살이 멈추자 그 즉시 형과는 검은색 창을 들고 힘껏 말안장을 밟고 나가 늑대처럼 진항을 덮쳤다. 다년간 숨겨 두었던 피를 향한 굶주림을 발산하는 중이어서 그런지 그의 기세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형과는 3장의 거리를 순식간에 뛰어넘었다. 이때 진항은 이제 막 말 아래에서 허벅다리를 빼내고 힘겹게 일어난 상태였다. 딱 봐도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 이미 고갈된 상태였다. 이에 살기를 담고 맹렬하게 다가오는 검은색 창에 속수무책으로 죽는 수밖에 없어 보였다.
하지만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진항은 피곤에 지친 모습이었지만, 순간 다시 활력을 되찾았다. 그리고 사납게 소리치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그가 어느새 제자리에서 검을 뽑아 들고 빠르게 몸을 회전시켰다.
진항이 마치 그림자처럼, 그것도 매우 기이하게 사나운 창 그림자를 스치듯 피했다.
형과가 온 힘을 다해 찔렀지만 상대방은 기묘하게 창을 피하는 기술을 갖고 있었다. 형과는 정신과 기백을 창에 모두 쏟아부었다. 하지만 창끝은 허공을 찌르고는 진항 바로 옆 광장 바닥에 매섭게 꽂혀버렸다. ‘펑!’ 소리와 함께 석판은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나지막한 소리가 울리는 동안 진항은 계속 회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가 형과를 압박하듯 다가갔다.
싸늘한 콧방귀 소리와 함께 왼쪽 팔꿈치 쪽으로 파고들어, 손에 들고 있던 검으로 형과의 목을 그어버렸다.
몸을 회전시켜 단번에 그어버린 것이다. 깔끔한 공격을 이리 복잡한 전투 상황에서 발휘하다니. 진항은 과연 강했다.
어쩐지 진 영감님이 자기 아들을 많이 믿어주고 또 그가 은색 가면을 쓴 형과와 단독으로 싸우도록 내버려 뒀다 했더니!
이 정도 거리 내에서 이리 사나운 공격을 해오면 범한이라도 막을 수 없었다. 그러니 형과의 목은 그 일격으로 떨어지고 말았을 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