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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여년-733화 (733/1,108)

733화 영광 (1)

한데 그에게 갑자기 우레와 같은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긴 거리의 끄트머리의 넓은 지대를 보니 그곳에 갑자기 2백여 명의 기마병이 나타났다.

저들 기마병이 대체 언제 저곳에 나타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빛나는 갑옷과 장도로 무장한 채 조용히 그리고 싸늘하게 반군이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 기마병 옆에는 십여 구에 달하는 시신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바로 진씨 가문의 반군 중 제일 먼저 달려 나갔던 십여 기의 척후병이었다. 한데 척후병만 죽은 게 아니라 전투말도 바닥에 고꾸라져 있었다.

진씨 가문 선봉장의 눈동자가 수축되었다. 저들 기마병이 실력자라는 걸 금세 알아봐서였다. 그게 아니라면 자기 부하 십여 명을 한꺼번에 죽일 수는 없었다. 그것도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말이다.

‘금군이군!’

이제 와 멈출 수는 없었다. 선봉장이 쥐고 있던 강철 창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창의 거칠고 차가운 질감이 그에게 무한한 믿음을 갖게 해주었다. 그가 말의 배를 툭 치고는 뒤쪽에 있는 몇십 명과 함께 금군을 향해 전속력으로 내달렸다.

금군 장수는 온몸을 갑옷과 투구로 무장한 채 눈만 밖으로 내놓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눈에는 차분함, 냉담함, 결심 말고는 다른 감정은 없었다. 그건 생명에 대한 냉담한, 대원수님이 맡긴 임무를 완수하고자 하는 결심이었다.

금군 장수가 들고 있던 마도(馬刀)를 높이 치켜들었다. 번쩍번쩍 빛나는 칼날은 누구든 벌벌 떨게 할 살기를 발하고 있었다. 말의 배를 차자 그가 타고 있던 전투마가 맹렬하게 자리에서 벗어나 시위를 떠난 활처럼 빠르게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러자 수백의 기마병도 오로지 전진뿐이라는 용기로 앞을 향해 돌진했다. 이에 색상이 다른 두 개의 물줄기는 곧 충돌만을 앞두고 있었다.

* * *

바로 이때, 이제 막 안정을 찾은 긴 거리에서 갑자기 감찰원의 명령이 들려왔다.

“놔라!”

진씨 가문의 선봉장은 벌겋게 달아오른 눈으로 빠르게 달려오고 있는 금군 기마병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다 크게 소리를 내지르며 갑자기 말을 더 빠르게 몰아 길 입구를 곧 빠져나가려던 찰나에 ‘놔라!’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정신력이 강하고 독한 이였다. 이에 조금도 허둥대지 않았고 감속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감찰원이라는 이 쥐새끼들을 아예 염두에도 두지 않고 있던 터였다.

그가 염두에 두고 있는 건 정면에 있는 강한 금군이었다. 자신의 장군을 위해 핏빛 길을, 바로 황궁으로 통하는 핏빛의 길을 열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검은 그림자 하나가 거리 옆 민가에서 툭 튀어나왔다. 그것도 선봉장이 타고 있는 말머리 앞 공중으로 튀어나왔다.

맹장이 팔꿈치를 구부려 어깨에 메는 자세를 취하더니 창끝이 번쩍하며 여러 차례 ‘촥’, 하는 소리를 냈다.

검은 그림자가 잠시 갈기갈기 찢어지는가 싶더니, 찢어진 천이 여기저기 날리고 그 안쪽에 있던 가루 분말이 허공에 흩뿌려졌다. 그러자 일부만 맹장의 몸으로 날아가고 대부분의 말 위로 쏟아졌다.

맹장이 순간 숨을 참았다. 그의 두 눈은 온통 붉게 충혈이 되어 있었다. 그는 감찰원의 독이 대단하다는 건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그리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독이 바로 심장에 들어가지만 않으면 거리가 좁혀지고 있는 금군들을 죽여 물리칠 수 있어서였다.

다만 타고 있는 말이 걱정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는 마음을 모질게 먹고 말 엉덩이를 힘껏 한 대 쳤다. 그러자 깜짝 놀란 말이 다시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툭툭툭’ 무언가 발사되는 소리가 들렸다. 한동안 고요했던 거리에 다시 쇠뇌가 발사되기 시작했다.

진씨 가문의 선봉장이 싸늘하게 ‘흥!’, 하고 콧방귀를 내뱉고는 긴 창을 휘둘러 자신의 급소와 말머리를 보호했다.

창을 휘둘러 바람을 일으킨 것만으로 수많은 화살이 어느새 땅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

화살 몇 발이 그의 갑옷과 투구를 맞추기는 했지만, 날카롭게 ‘쨍’ 하는 소리와 함께 무기력하게 땅으로 추락할 뿐이었다.

그런데…… 빗발치는 쇠뇌의 화살 속에서 맹장의 눈에 순간 불길한 붉은 것이 들어왔다.

‘붉은색……? 불인가?’

* * *

‘촥!’, 하는 소리와 함께 쇠뇌의 화살 세 발이 각각 선봉장의 갑옷, 말머리 쪽으로 발사되었다. 화살에는 불을 피운 솜이 달려 있었다. 햇빛 때문에 붉은색이 선명하게 보인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대단히 치명적이었다.

불꽃이 육중한 갑옷에 묻어 있던 분말과 닿자 ‘슉!’ 하는 소리와 함께 불이 붙었다. 말머리에서 갑옷, 그리고 다시 투구까지 분말이 묻은 곳마다 불길이 순식간이 번져나갔다. 이에 눈 깜짝할 사이에 불길이 활활 타올랐고, 선봉장은 금세 불길에 휩싸이고 말았다.

타닥타닥……. 화염 속에서 처참한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그리고 이 용맹한 선봉장은 아직도 적진으로 돌격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어느새 불타는 횃불로 변해 있었다.

그가 무섭게 소리를 지르며 들고 있던 창을 내던져 버렸다. 그리고 몸에 붙은 불을 끄기 위해 몸을 두드렸다.

하지만 불은 이미 그가 해결할 수 없는 지경이 옮겨붙어 있었고 감찰원이 놓은 불은 쉬이 끌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제 끝이란 걸 안 순간 그는 전에 없던 공포에 휩싸여 버렸다.

말도 통증이 어마어마했는지 이리저리 날뛰었다. 이에 말과 기수는 불길에 휩싸인 채 금군의 전방 수비 위치 앞쪽으로 내달렸다.

금군 장군은 미친 듯 달려오는 화염에 휩싸인 사람을 싸늘하게 비웃고 있었다. 그러다 두 사람이 서로 교차하는 순간 장도가 ‘청!’ 소리를 내며 휘둘러 졌고, 이후 장도는 소리 없이 불을 뚫고 들어가 진씨 가문 선봉장의 머리를 베어버렸다.

그러자 ‘칵!’ 소리와 함께 머리가 갑옷 목 부분에 매달린 채로 불이 옮겨붙었다.

불에 휩싸인 말은 괴롭게 울부짖으며 무작정 내달렸다. 그리고 이미 머리가 사라진 주인을 그대로 태운 채 거리 옆에 있는 골목길 담벼락에 부딪혔다.

그러자 육중한 소리와 함께 말에 있던 사람이 바닥으로 떨어졌고, 말은 구슬픈 소리로 처참하게 울어댔다.

그 누구도 저들을 살피러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기마병 2백여 명으로 구성된 금군 기병은 그저 빠른 속도를 유지하며 내달릴 뿐이었다.

금군은 벌집이 된 곳과 불에 타 검은 재가 되어 있는 반군 선봉장의 시신을 지나 진항이 있는 중군(中軍: 전군에서 가운데에 위치하는 군대)을 향해 내달렸다.

* * *

진항은 자신이 가장 신임하는 측근 선봉장이 얼마나 염치없고 음험한 공격을 받아 죽었는지 모르고 있었다.

감찰원에서 나온 두 번째 “기다려!”라는 명령을 들은 후 그는 자신의 군대에게 긴 거리 양측에서 압박 작전을 펼치라는 명령을 내린 터였다. 감찰원의 2차 공격이 이미 시작되어서였다.

오랜 침묵 후 떨어진 “기다려!”라는 냉혹한 명령 후, 반군에게는 쇠뇌의 화살이 빗발쳤다. 그리고 깃발이 있는 중군 쪽에는, 그것도 진항의 병사들이 있는 곳에는 훨씬 더 집중된 공격이 들어왔다.

“연발식 쇠뇌다!”

드디어 반군 기마병들도 겁을 집어먹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쇠뇌의 화살이 ‘쉭쉭’ 소리를 내며 바람을 가르는 와중에 들려온 반군의 외침이라 유난히 더 놀란 것처럼 들렸다.

‘탁탁탁.’ 발사 소리가 연달아 촘촘하게 울리는 가운데 첫 번째 쇠뇌의 화살은 막았다지만, 두 번째, 세 번째는?

십여 명의 병사들이 진항의 말 앞에서 용감하게 막았다. 하지만 팔꿈치를 방패로 쓸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빠르고 빼곡하게 쏟아지는 쇠뇌의 화살을 막아 내는 건 근본적으로 역부족이었다.

이에 이들은 자신의 몸과 키가 큰 전투마를 진항을 위한 살아 있는 방패로 쓸 수밖에 없었다.

긴 거리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고, 말이 고통스럽게 우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왔다.

그리고 대체 얼마나 많은 반군의 얼굴에 쇠뇌의 화살이 꽂힌 건지 모르겠지만, 이들은 피와 땀이 섞인 채 서로 살려달라고 외쳐댔다.

순식간에 진항 곁에 있던 병사 절반이 죽었다. 얼굴이 피로 물든 진항은 감찰원의 목표가 자신임을 알게 되었다.

피로 물든 그의 얼굴은 유난히도 흉악해 보였다. 그리고 바로 이때, 진항은 범한이 정양문 쪽에 감찰원을 매복시켜 놓은 건 단순히 시간 끌기 용 급습이 아니라 자신의 목숨을 여기에서 끝내기 위해 벌인 일이라고 확신했다.

범한이 왜 이렇게 자신을 죽이는 데 혈안이 된 건지 모르겠으나, 그래도 진항은 두려워하기는커녕 본연의 차분한 모습만 유지할 뿐이었다.

그리고 이때, 다시 쇠뇌의 화살 소리가 긴 거리에 크게 울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달리 방법이 없었던 그의 부하들은 독 가루가 묻은 쇠뇌의 화살을 용감하게 일일이 손으로 쳐내기 시작했다.

진항의 관자놀이에서 핏줄이 선명하게 도드라지고 그의 가슴에도 분노가 가득 들어찼다.

‘저 쥐새끼들이 이런 품위 없는 수단을 쓰다니! 설마 나를 여기에 묶어 둘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가 허리춤에 차고 있던 장검을 꺼내들고 말의 배를 툭 찼다. 그리고 마치 용이 도약하듯 쇠뇌의 화살 사이에서 솟구쳐 올라 소리쳤다.

“경국을 위해 죽어라!”

지휘관이 죽음을 무릅쓰고 돌진하자 반군의 사기가 크게 올랐다. 그들은 일제히 “죽어라!”를 외쳤고, 빗발치는 쇠뇌의 화살을 무릅쓰고 길 양측의 종심을 향해 돌진했다.

그렇게 이들은 목숨을 걸고 온몸으로 감찰원의 2차 공세를 막아 내 감찰원의 기세를 어느 정도 눌러 놓았다.

어찌 되었든 반군이 수도 많고 세도 더 강하지 않은가. 그러니 어둠에 숨어 있는 감찰원 관원과 정면 승부를 펼친다면 그들은 자연스레 최후의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때, 거리 끄트머리에 있던 금군이 이미 도착해 있었다. 고작 2백여 명이었지만, 2천 명에 맞먹는 기세로 살기등등하게 다가와 도저히 막을 수 없을 정도였다.

이미 대형이 흐트러져버린 진씨 가문의 군사들 속으로 금군이 거센 물줄기처럼 밀고 들어왔다. 양측은 모두 갑옷과 투구, 칼과 검으로 무장한 상태라 살기가 하늘을 찌르는 듯했다.

비록 진씨 가문 군대의 대열이 조금 엉망이 된 건 있었지만, 그래도 폭이 그다지 넓지 않은 곳에서 부딪히다 보니 이번 전투는 퇴로가 없는 정면충돌이 되고 말았다.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던 양측의 기마병이 정양문 쪽 긴 거리에서 첫 번째 정면 대결을 펼쳤다. 두 개의 거대한 쇠망치처럼 양측이 매섭게 부딪히자 고막이 터질 듯한 무시무시한 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순식간에 무수히 많은 기마병이 말에서 떨어지고, 처참하게 짓밟혔다. 말에 있던 사람들이 받치고, 압사당하고, 토막이 나고, 충격을 받아 죽었다.

칼, 창, 갑옷, 그리고 기세가 부딪힌 것이었다.

진항이 잔뜩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이 광경을 지켜보며 생각했다.

‘범한과 1 황자마마께서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데리고 있기에 정양문 아래에 이리 많은 사람을 매복시켜 둔 거지?’

* * *

“움직일 수 있는 자들이 있다면 저는 그 모두를 정양문 안에서 부숴버릴 것입니다.”

범한이 경도 곳곳에서 피어오른 봉화를 바라보며 굳은 표정으로 말을 이어 갔다.

“저들이 9개 성문을 모두 이용할 정도로 세력이 크다는 걸 알아차리지는 못했습니다. 하나 정양문 안에서 격퇴하면 분명 제게 그에 따른 소식이 전달될 거 아닙니까!”

1 황자가 범한을 잠시 바라보고는 다시 점점 황궁 쪽으로 압박해 들어오고 있는 거리 위 반군의 깃발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참다못한 그가 동공이 수축되더니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결국 길은 하나야. 대세는 되돌릴 수 없는 거고. 조금 전 그 순간에 자네가 정양문 안에서 역공격을 했어도 포위를 뚫을 기회가 생긴다고는 장담할 수는 없는 거네.”

“장 공주는 경도 밖에 분명 예비 부대를 마련해 뒀을 것입니다.”

범한이 말을 이어 갔다.

“그러니 포위를 뚫는다고요? 제가 대체 무슨 수로 포위를 뚫을 수 있겠습니까?”

“형과가 흑기 2백을 데리고 경도로 사라지지 않았는가?”

1 황자가 범한을 잠시 바라보았다.

범한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대신 잔뜩 심각한 얼굴로 황궁 아래쪽 광장을 바라볼 뿐이었다. 엄청나게 넓은 광장이었다.

과거에 수만에 이르는 대열이 열병식을 하던 곳이라 그렇다. 이제 슬슬 대지의 진동이 전해져오고 있었다. 이제 곧 저 여덟 가닥의 반군이 이곳을 포위하겠지.

범한은 과거 이러한 기세를 가지고 생사가 무엇인지 간파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가슴이 떨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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