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9화 도망 중인 진평평의 그림자와 아이 (3)
진평평이 자신을 데리러 오자 사사는 깜짝 놀랐었다. 그리고 출산을 할 때 그녀 옆에는 완아나 범씨 가문 사람들 없이 오로지 진평평이 데려온 아주머니만 있는 상태였다. 그러니 심적으로 많이 지치고 힘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사도 진 원장이 악의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단지 왜 집 밖에서 아이를 낳아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되었을 뿐이었다. 이에 그녀는 저도 모르게 모 대부호 가문의 비밀을 떠올라 기분이 계속 가라앉았다.
“며칠 후면 범한이 돌아올 거네.”
진평평이 웃으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산부에게 제일 필요한 건 기쁘고 좋은 생각만 하는 거지. 그러니 범한이 내게 자네를 데려가 달라고 청한 거였고.”
아무리 봐도 억지로 꾸며낸 이야기 같았다. 하지만 사사는 아이를 낳은 후로는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아 그냥 믿어버렸다.
“일단 좀 쉬게.”
진평평은 기분이 좋은 상태라 아이를 내려놓을 생각도 않고 사사에게 말했다.
“내 아이 좀 안고 밖에 나갔다 오겠네.”
사사가 대답했다.
“찬바람을 너무 많이 쐬지 않도록 조심해 주세요.”
진평평이 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미 앞에서 아이를 데려가려면 고분고분 행동해야 했다.
* * *
진평평이 계속 아기와 장난을 치며 다른 방으로 왔다.
그가 방 안에 있는 그 사람을 향해 말했다.
“보여주러 왔네. 범한의 딸이다.”
단단히 묶인 채 불안하고 가슴 아픈 얼굴을 하고 있던 자가 진평평의 말에 갑자기 기뻐하기 시작했다.
“원장, 아가씨의 이름은 지었습니까?”
그가 진평평 머리카락 근처에 꽂힌 작은 흰 꽃을 보고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범소화는 어떻습니까. 대인께서 분명 좋아하실 겁니다.”
이름을 짓는 데 무슨 만담 보조처럼 말하는 걸 보니, 이자는 범한의 측근인 왕계년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이자가 어떻게 대동산에서 이곳까지 도망쳐 온 것일까?
그리고 왜 진평평에게 붙잡혀 이 방 안에 묶여 있단 말인가.
진평평이 그를 향해 눈을 부릅떴다.
“무슨 헛수작이냐!”
왕계년은 눈에 띄게 말라 반쪽이 되어 있었다.
대동산에서 도망 나온 후 길에서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원장 품에 안긴 갓난아기를 보고는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경도에 있는 자기 딸과 지금 막 폭풍우를 맞고 있는 범한 생각이 났다. 그리고 어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코끝이 시큰해졌다.
“대인께서 제 딸을 보셨는지 모르겠군요.”
그가 울상이 되어 말했다.
“대체 어찌 된 일인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모르겠습니다.”
진평평이 차분한 얼굴로 대꾸했다.
“나도 경도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잘 모른다. 하나 경도에서 분명······ 무언가가 일어나리란 건 알고 있었다.”
* * *
범한은 황성 담벼락 위에 서 있었다. 그리고 동쪽에서 이제 막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 있었다.
온통 붉게 변한 하늘에 범한은 도리어 이맛살을 찌푸리고 한숨을 한 차례 내쉬었다. 지금까지 임완아와 임대보의 행방을 알아내지 못해서였다.
다행히 정왕부에서 아버지와 새어머니는 모두 안전하며, 지금 황궁 방향으로 오고 있다는 답장을 받았다.
그리고 손가락을 꼽아보니 사사도 곧 출산할 시기가 되어 있었다.
범한은 갑자기 실종되어 버린 사사가 잘 지내는지. 그리고 아이는 딸인지 아들인지 궁금했다.
가족들 중 범한이 지금 가장 걱정하지 않는 건 이상하게도 출산을 앞둔 사사였다.
집안사람들이 사사와 관련해 입을 닫고 있는 걸 보면 그녀를 데려간 이는 분명 진원에서 홀로 지내는 늙은 절름발이일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범한은 언빙운도 걱정이 되었다. 그는 성문사로 들어간 후 줄곧 아무 소식이 없었다. 더군다나 감찰원에 소식을 전달하던 사람 역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이는 무언가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었다.
범한이 1 황자에게 계획을 실행하라고 통지했다. 언빙운이 령전을 쏘지 않아 가슴이 좀 답답한 상태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아침 해가 지평선 위에 걸리자 범한도 갑자기 마음이 두근거렸다.
인간 세상에 몇 안 되는 아름다운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해서였다.
물론 범한이 생각한 아름다운 일은 경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경도는 위험했다. 그래서 범한은 어떻게든 자기 자신을 안심시켰다.
바로 가장 위험할 때 누군가가 분명 오색구름을 타고 나타나 자신을 구해줄 거라 말이다.
* * *
가까스로 깨어난 원굉도는 뒤통수 쪽에서 극심한 통증이 밀려들었다.
그는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적 안에 숨어 사는 동안 생긴 습관 때문에 그는 일단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왕계년과 마찬가지로 이 감찰원 관원은 마음에 담아 둔 궁금증이 수없이 많았다. 반년 전 황제 폐하께서 장 공주마마를 처음 공격할 때도 그는 원인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감찰원이 반 시진 안에 겉으로 드러난 장 공주의 세력을 단번에 쓸어버릴 수 있었던 건 바로 이 신양 제1 모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원굉도에게는 최근 반년 동안 줄곧 이해 안 되는 게 있었다. 일단 그 계획이 시행된 후 자신은 원래 이중 간자의 삶에서 벗어나야 했다.
감찰원 원무 조령(條令)에 따라 경치가 수려한 곳을 선택한 후 영광스러운 퇴직을 해야 했다. 그런데 별저에서 도망 나온 후 그 작은 집에서 언약해는 그에게 신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신양으로 돌아가라고 말이다!
즉, 장 공주의 신양 모사는 운 좋게 감찰원의 추격을 벗어난 후, 원칙에 따라 신양으로 돌아가야 했다.
한데 원굉도는 감찰원의 이번 지령에서 다른 냄새를 맡아 버렸다.
그날 밤 몰아친 천둥 번개에 장 공주가 확실히 무너져 내려 영원히 사라지는 거라고 한다면, 진 원장이 자신에게 신양으로 돌아가라고 한 건 무엇 때문일까?
‘조정에서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내가 신양으로 돌아가 더 해야 할 일이 있는 거야?’
원굉도는 몇 개월 동안 계속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 장 공주가 너무나도 쉽게 별장 호위병을 통해 신양 쪽으로 그녀의 계획을 전달하고, 아울러 신양의 하부조직을 경도로 옮기자 원굉도는 그제야 무언가를 조금 알 것만 같았다.
감찰원은 처음 행동을 시작할 때부터 장 공주가 완전히 무너지지 않는다는 걸 알았던 거다. 어쩌면 황제 폐하께서 처음부터 장 공주의 힘을 완전히 빼버릴 준비를 하지 않아서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이 첩자를 다시 신양으로 돌려보내, 장 공주가 불러줄 날을 기다리도록 하고, 또 그날이 오기만을 기다리도록 한 거였다.
황제 폐하가 대동산으로 가서 자객에게 당하고, 경도가 혼란에 빠지고, 태자가 등극하고, 장 공주가 군 측에 연락해 반역을 준비시키고······. 장 공주는 대동산 일을 계획할 때 원굉도 모르게 했지만, 그래도 원굉도는 나중에 이 일에 모두 직접 참여했다. 그래서 장 공주가 모략을 짜는 초기에 관련 소식을 알게 된 것이다.
이에 원굉도는 자신에게 경국 제1첩자의 능력을 발휘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가 돼서야 그도 눈치챈 사실이 하나 있었다. 지금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을 밖으로 내보려 해도 감찰원에 통보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모든 통로가 순식간에 효력을 잃어서였다.
딱 하나 남아 있던 연락선도 툭 끊겨 버렸다.
이에 원굉도는 언약해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었고 진평평에게는 연락할 방법이 더더욱 없었다. 그래서 원굉도는 겉으로는 차분함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당황해 불안한 상태였다.
그는 감찰원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불안한 상태는 결국에는 범한이 황궁을 급습하고 손에 쥔 무력으로 경도 반대파들을 소탕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원굉도는 감찰원에게 몰래 협조해 장 공주가 잠시 기거하고 있는 황실 거처가 공격당하도록 했다.
그러다 범한이 이미 치명적인 착오를 일으켰다는 걸 알고는 최후의 순간에 감찰원 관원에게 소리를 치는 모험을 했다.
그는 그 누구도 믿지 않았다. 그래도 진평평과 언약해와 연락할 수 없게 되기는 했어도 진평평의 후임자인 작은 범 대인은 온 조정을 통틀어 그가 그나마 가장 믿는 인물이었다.
한데 안타깝게도 목풍아가 어떤 성미를 지닌 덜렁이인지 알지 못해 결국에는 그의 주먹에 맞아 처참하게 기절하고 말았다.
원굉도는 엎어져 있는 상태에서 숨을 쉬고 있었다. 그리고 두 눈을 떠보니 황성의 어느 각루에 와 있었다.
그의 앞에서 잘생긴 청년 하나가 잔뜩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원굉도는 이 젊은이의 신분을 알고 있었다. 상대방이 왜 이리 긴장이 고조되어 있는 시기에 자신을 심문하러 직접 온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그는 곧바로 하려던 말을 했다.
“장방이 장 공주 사람입니다.”
범한은 고개만 끄덕이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장방은 13성문사 통령의 이름으로 자가 덕청이었다. 세인들은 장덕청이 다른 마음을 품지 않는 인물이라 여겼다. 그런 그가 장 공주의 사람이었다니. 누구든 놀라기에 충분한 정보였다.
하지만 범한 입장에서는 이미 유감스러워 기운이 빠진 상태인데 여기에 더해 근심하는 모습까지 내보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그는 속마음을 내비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언빙운은 돌아오지 않았다. 감찰원의 망을 보는 관원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니 성문사 쪽은 분명 문제가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원굉도는 너무 늦게 깨어났다.
범한이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하늘에서는 이미 여명이 밝아오는데 경도 성문사를 지키는 건 실패로 끝났고, 이에 섭씨와 진씨 두 가문의 대군은 언제 경도 성안으로 진격해 올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중요한 시기에 범한은 원굉도란 인물은 생각지도 못하고 태극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대신들이나 보러 다녀온 거였다.
온통 무력감에 빠져 있는 범한에게 오주에 계시는 장인어른의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한 시대를 풍미한 간악한 재상 임약보가 조정에서 기피한 사람은 딱 세 명이었다.
그중 둘은 진평평과 범건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바로 군을 이끄는 진 영감님이었다.
권력자인 전임 재상은 범한에게 여러 나무 사이에서 혼자만 높이 자라면 거센 바람에 넘어가게 되어 있으니, 자신이 조정에서 지니고 있던 비장의 패들을 범한에게 주지 않겠노라고 말했었다.
단······ 그의 말이 유효한 건 새 황제가 즉위하기 전까지만 이었다.
경국 황제는 이미 붕어했고, 이에 범한은 셋째에게 황위를 빼앗아주려는 중이었다. 이에 경도에 있던 임약보 파벌에 속한 문신들이 그동안의 위장을 벗고 범한 뒤에 섰다. 그리고 서무와 호 대학사를 따라 태자의 등극을 막았다.
범한은 자기 파벌들이 나설 시기를 정확히 계산한 장인어른이 정말 똑똑한 분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일의 성공 여부는 아직 미지수였다.
한데 범한은 전임 재상 임약보의 마지막 말을 아직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나중에 경도에서 정말로 변란이 인다면, 어쩌면 원굉도가 자네를 도와줄 수 있을 거네.’
임약보는 일찌감치 1년 전에 대동산에서의 일을 예측했었다.
범한은 장인어른의 안목을 높이 사고 있던 터라 그의 조언을 잊지 않고 있었다. 이에 자신의 힘으로는 벗어날 수 없는 위기에 빠졌을 때 그는 바로 장 공주 수하로 있는 신양의 제1 책사를 떠올렸었다.
그와 같은 생각은 과연 적중했다. 원 선생은 감찰원이 신양에 꽂아 놓은 첩자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범한은 너무나도 놀라는 한편 바로 고뇌에 빠졌다.
‘성문사 문제를 일찌감치 알았더라면, 나와 1 황자마마가 이리 수동적으로 나오지 않아도 되는 거였는데. 결국에는 때를 놓쳐버렸구나. 이건 운명의 문제야. 그러니 내 운이 계속해서 좋을 거란 보장은 없다.’
원굉도가 범한의 두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왜 감찰원과 연락을 할 수 없었던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