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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여년-726화 (726/1,108)

726화 악독한 수단 (3)

하지만 모두의 예상과 달리 시간 끌기가 제법 오래가 언빙운은 성문사 관아에 감금된 거나 다름없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마실만한 따뜻한 차도 내주지 않고, 무료함을 달래 줄 곡조도 들려오지 않아 언빙운은 지금 이 상황이 견디기 힘들었다. 물론 그를 가장 힘들게 한 건 사방에서 전해져 오는 압박이었다.

그가 마실 수 있는 건 오로지 서북풍뿐이었고, 들을 수 있는 건 경도에서 수시로 들러오는 싸우고 죽이는 소리였다. 그리고 가끔씩 옅게 타는 냄새가 날아왔다. 분명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불을 놓은 게 분명했다.

성문사 통령인 장덕청은 많은 일들을 처리해야 했기에 그에게는 언빙운과 계속 함께 앉아 있을 시간은 없었다. 그래서 지금 그는 허리에 찬 칼을 움켜쥔 채 밤에 둘러싸인 성 담벼락 위를 걷고 있었다. 아래로 축 내려와 있던 위 눈꺼풀은 기적처럼 사라지고 없었고, 그의 동공은 매처럼 번뜩이며 경도에서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했다. 아울러 자신의 부하들에게 수시로 명령을 내려 정변에 참여하는 걸 엄격히 금하는 동시에 관병 3천에게 9개의 성문이나 확실히 지키도록 했다.

그렇다. 범한이 이끄는 소위 정의의 역량들이 그의 눈에는 단순히 정변을 일으킨 자로 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유조를 보았으니 그로서도 범한에게 대의명분이 있다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의 무의식은 황궁을 공격하는 건 모두 나쁜 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북제 상경성과 비교했을 때 경국의 경도에는 지나치게 묵직한 역사는 없었다. 하지만 군사의 흔적은 훨씬 더 많았다. 그래서 경도성 담벼락은 얼룩덜룩해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매우 두툼하고 실하게 지어져 있었다. 높이는 황성에 비해 높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각종 장치가 있어 방비를 하는데 있어서는 훨씬 더 효율적이고 강력했다.

장덕청은 경도성 담벼락에 서 있었다. 그리고 벽돌을 쌓아 만든 이 두툼한 담벼락에서 무궁무진한 힘이라도 얻은 것처럼 용감하게 어떤 선택들을 했다.

조망대에 서서 그는 저 멀리에 있는 황성 쪽을 바라보았다. 경도의 소란은 점점 가라앉고 있었다. 마치 경도부가 범한에게 이미 항복이라도 한 것처럼 아속들이 거리에서 징을 울리며 백성들을 다독였다.

장덕청은 경도 황궁 변란의 두 주모자인 1 황자와 범한이 지금 황성 담벼락에 서서 성문 방향을 바라보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 그의 눈에서 잠시 담담하게 걱정하는 기색이 스쳤다. 만약 일이 정말로 그런 식으로 바뀐다면, 그로서는 유조를 받들 수밖에 없어서였다.

어쩌면 이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순간 마차 바퀴가 바닥석을 누르는 소리가 장덕청에게 들려왔다. 분명 그의 귀에 선명히 들려오는 소리였다.

“3각석 길(三角石路)이고 성문 근처군.”

장덕청은 20년 동안 관리해 온 성문 부근에 대해 유난히 잘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마차가 지나갈 때 나는 소리만 듣고도 그곳이 푸른색 바닥인지, 아니면 3각석 바닥인지 명확히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가 한동안 침묵하고 있다가 높이 솟은 성문 담벼락 아래로 내려가 성문사 관아로 향했다.

마차 소리가 성문 쪽에서 울리기 시작하자 언빙운은 이미 씁쓸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옆에서 그를 지키고 있던 병사들이 긴장하며 칼을 빼 들고 그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언빙운은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병사들에게 둘러싸여서가 아닌, 마차 소리 때문이었다. 한밤에, 그것도 경도에서 마차를 타고 성문으로 다가오다니. 대체 누구지? 경도 백성들은 조정 내 알력싸움을 오래 겪은 터라 오늘 밤 같은 상황에서 놀라 집을 버리고 도망갈 리는 않는다. 더군다나 이런 상황에서 마차를 타고 있으면, 살기가 올라 눈을 시뻘겋게 뜨고 있는 군사들에게 괴롭힘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일반 백성이라면 그리 우둔한 짓을 할 리 없었다.

그러니 지금 마차를 타고 경도를 나가려 한다면, 이는 딱 한 부류 밖에 없었다.

바로 이때 장덕청이 걸어 들어왔다. 그리고 침울한 표정으로 언빙운에게 말했다.

“미안하오, 언 대인.”

그가 이어 소리쳤다.

“이 조정 내 범인을 잡아들이라!”

언빙운의 동공이 살짝 수축했다. 장덕청의 행동이 왜 갑자기 아까와 전혀 다르게 변했는지 그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설마 범한의 황궁 공격이 실패한 건가?

병사들이 둘러쌌지만 언빙운은 반항하지 않았다. 세인도 알다시피, 작은 언 공자와 작은 범 대인의 가장 큰 차이는 무공 실력이었다. 이에 언빙운은 자신이 아무리 공격을 펼쳐봤자 살상력이란 게 없기 때문에 그냥 가만히 있었다.

언빙운이 자신의 생명을 걸고 모험을 할 리 없었다. 그는 장덕청이 단순히 자신을 잡아두려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럴 때 자신이 반항하면, 십여 개의 창이 자신의 몸을 파고들 거고, 그러면 분명 기분이 너무 안 좋을 거라 여겼다.

성문사에는 감찰원의 강철 손가락 수갑 같은 건 없었다. 대신 팔에 채우는 소형 칼[枷]은 있어서 손목에 채우면 절대 풀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언빙운이 제대로 구속되자 장덕청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살짝 의심하며 어둠이 가득한 밖을 바라보았다.

“정말로 혼자 온 거였다니.”

장덕청의 미간이 잔뜩 일그러졌다.

“작은 범 대인이 바보 같다고 해야 할이지, 아니면 그대가 대담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군.”

발길질에 바닥으로 고꾸라진 언빙운이 좀처럼 짓지 않는 웃음을 내지어 보였다.

“사실, 이건 그냥 사람이 문제인 거죠.”

그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어 갔다.

“제가 사람을 잘못 봤다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일어났군요.”

장덕청이 아무런 대꾸도 않다가 한참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이유야 간단하지. 자네들이 이겼다면, 내 자연히 그 유조를 받들었을 걸세. 하나 자네들이 졌는데, 내가 유조를 받들어봤자 무슨 득이 있겠는가?”

언빙운이 이맛살을 찌푸리고 한참 후 한숨을 내쉬었다.

“충신, 충신 했는데, 어찌 이리 충성스러우신 겝니까.”

“나는 황제 폐하께 충성한다. 그러니 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도 안 되는 유조 따위에는 충성할 리 없지 않겠느냐.”

장덕청의 낯빛에 살짝 난처함이 어렸다. 황제 폐하의 유조를 거슬러 무언가 살짝 두려움에 찬 것만 같았다.

한데 성문사 통령은 다음과 같이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 황제 폐하께서 아직 살아 계신다면, 나는 평생 충신으로 살았을 거다. 하지만 황제 폐하께서 붕어하신 마당에 누가 평생 낡아빠진 9개 성문이나 지키며 살기를 바라겠느냐?’

언빙운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성문사까지 오는 모험을 한 건 장덕청에 대한 판단 때문이었다. 하지만 충성스러웠던 통령이 왜 이렇게 쉽게 유조에 반하는 쪽을 택한 건지에 대해서는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범한이 패했나? 언빙운은 대단히 곤란한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것처럼 계속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장덕청과 언빙운과는 고작 세 걸음 떨어져 있었다.

언빙운의 미간이 갑자기 활짝 펴졌다. 하지만 눈썹 꼬리 쪽에서는 식은땀이 한 방울 미끄러져 내렸다.

그 순간 장덕청은 파열음을 들었다. 탁자 다리를 누간가가 억지로 분질러버린 것 같은 소리였다.

언빙운이 고개를 홱 치켜들고 매 글자를 힘주어 말했다.

“13성문사 통령 장덕청은 황명을 거역하고 반역을 도왔다. 무릇 경국 백성이라면 황제 폐하의 유조를 따라야 하거늘. 그대를 주살하겠다.”

장덕청이 시선이 살짝 흔들렸다. 언빙운이 대체 누구에게 들으라고 저런 말을 한 거지? 지금 관아 대청에 있는 이들은 모두 자신의 측근이니 그 누구도 함부로 공격을 개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무언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나 꽉 붙잡혀 있는 언빙운과 멀리 떨어지려 했다.

그 순간 누군가가 움직였다. 그 자는 언빙운이 아니고 장덕청의 측근 병사 중 한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언빙운의 말에 얼굴을 찡그리고 이를 꽉 깨물고는 들고 있던 칼을 치켜들고 장덕청의 뒤통수를 쪼개버릴 듯 달려들었다.

앞서 말했듯이 경국 황제는 장덕청의 충성심을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성문사에는 첩자들이 포진해 있었다. 이들 첩자는 당연히 대부분 감찰원에서 보낸 이들이었다. 범한과 언빙운은 이들 첩자들과 접촉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언빙운은 유조와 이들 첩자들이 지닌 뜨거운 피를 가지고 도박을 했다. 1할의 가능성이었지만, 그래도 그의 계획은 제대로 먹혀들었다.

순간 칼바람이 일었다.

어두운 표정의 장덕청이 고개도 돌리지 않고 검을 들었다. 날카로운 소리만 들렸을 뿐인데 장덕청은 어느새 충격에 밀려 앞으로 한 발짝 나아가 있었다. 그런데 뒤쪽에서 날아온 감찰원 밀정의 칼은 막아낸 상태였다.

긴창이 일제히 공격에 들어갔다. 그리고 밀정은 순식간에 피로 물들어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언빙운이 움직였다.

그는 이마에서 식은땀을 흘리던 순간부터 행동 개시에 들어간 거였다. 이를 악물고 왼쪽 팔목을 억지로 부러뜨린 거였다. 언빙운은 평범한 관원도 장수도 아닌 감찰원 후임 제사였다. 그러니 그가 혼자서 성문사까지 온 건 당연히 그만한 배짱이 있어서였다.

감찰원은 성문사의 결박 도구에 대해서는 충분히 연구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언빙운이 최종적으로 찾아 낸 단시간 안에 손목용 칼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손목 관절을 분리시킨 후 극심한 통증을 참고 손을 빼내는 거였다.

언빙운은 아픈 걸 잘 참아냈고, 자신에게 충분히 악독한 수단도 쓸 수 있었다. 이에 장덕청이 앞으로 밀려 자신에게 한 발작 다가왔을 때 그는 표범처럼 뛰어나가 한쪽 손목에 칼을 찬 상태에서 장덕청의 머리를 인정사정없이 내리쳤다.

장덕청의 눈에 공포가 스쳤다. 어쩌면 황제 폐하를 배반한 것 때문에 마음이 불안정해진 것일 수도 있었다. 이에 그는 언빙운 손목에 있는 칼을 감히 막지는 못하고 황급히 뒤로 물러나기만 했다.

한데 이때 그의 뒤에 있던 병사들은 가까스로 감찰원 밀정을 찔러 죽인 터라 때마침 장덕청의 퇴로를 막고 있었다. 이에 장덕청은 잠시 공격을 피하기 위해 재빨리 관아 대청 문 쪽으로 향했다.

언빙운이 구름처럼 몸을 날려 장덕청 뒤를 쫓았다. 그러던 중 언빙운이 칼이 채워져 있는 손을 뒤집어 장덕청 손에 들려 있던 검을 빼앗았다. 검날이 날카로운 빛이 번쩍이며 장덕청을 구하러 온 교관의 팔목을 잘라버렸다.

무슨 거머리라도 된 것처럼, 그리고 하늘을 덮어버린 구름처럼 언빙운은 첫 한 걸음을 바닥에 대기도 전에 관아 대청 문 앞까지 도망 온 장덕청에게 바짝 따라붙었다.

뒤쪽에서 오싹한 칼의 기운이 느껴지자 장덕청은 너무 놀라버렸다. 언빙운이 이리도 멋들어지고 잔인한 검술을 익히고 있었다니, 그에게는 정말로 의외였다.

그렇다. 언빙운은 무공이 뛰어나지는 않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괴물인 범한과 비교했을 때 그렇다는 말이었다. 일단 살기를 폭발시켰으니 감찰원 역사상 가장 유명한 간첩을 어찌 20년 동안 성문만 지킨 장덕청이 막아낼 수 있으랴!

번개처럼 펼쳐진 추격전에 성문사 병사들은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이 관아 대청문에 도착했을 때 장덕청의 몸에는 이미 상처가 나 있었다. 그러니 만약 언빙운이 장덕청을 제압해 성문사를 통제할 생각이었다면, 장덕청은 일찌감치 죽은 목숨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때 갑자기 맹렬한 원기가 곧바로 언빙운의 몸으로 돌진했다. 지극히 횡포하고 갑작스러운 공격이었다.

언빙운이 끄응 소리와 함께 검을 거둬들인 후 가슴 앞에서 방패처럼 휘둘러 기의 공격을 겨우 막아냈다. 그 결과 그의 입과 코에서 피가 흘렀다. 한데 거칠게 달려들던 공세가 사라지자 엉망진창이 된 장덕청은 누군가의 발 아래로 몸을 굴렸고, 이에 평범한 복장 안에 숨어 있는 황궁에서나 입는 옅은 색의 치맛자락이 보였다.

장 공주마마 이운예가 차분한 얼굴로 군산회 소속 두 고수의 호위를 받고 있었다. 그녀가 미소를 지은 얼굴로 언빙운을 바라보았다.

“작은 언 공자와 말을 좀 나눠야겠군. 덕청이 반역할 수 있었던 건······ 그가 본궁의 사람이기 때문이야.”

언빙운의 눈동자에서 너무 놀라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스치더니, 그는 이내 잿빛이 되고 말았다. 더군다나 왼손은 이미 못 쓰게 된 상태에서 성문사 관아 대청 안에, 그것도 용감하게 죽은 밀정이 쏟은 피 앞에 서 있다 보니 그는 외로워보였다.

장 공주가 젊은 감찰원 관원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여 명을 내리고는 미소 짓는 얼굴로 말했다.

“잘 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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