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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여년-720화 (720/1,108)

720화 수많은 화살 (1)

두려움을 자아낼 정도로 싸우며 죽이는 소리가 난 건 아니었다. 단지 몇 차례 참담한 비명과 소란만 있을 뿐이었다. 그런 후 감찰원 소속의 약 3백에 이르는 관원이 형부 관아 대청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들어와 그대로 광장까지 밀고 갔다.

형부 차역(差役: 옛 중국에서 일반 백성이 무상으로 노동을 제공하는 것)과 감옥의 간수들이 감찰원 관원들에게 둘러싸였다. 옷매무새가 흐트러져 있던 주관(主官)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저도 모르게 심장이 오싹해지는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양측은 인원수가 비슷해 서로 겨뤄볼 만도 했다. 하지만 금군 통령과 마찬가지로 감히 귀가하지 못하고 형부에서 감옥을 지키고 있던 상서 대인은 아예 반항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우선 저 검은색 옷을 입은 자들이 쇠뇌를 들고 있어서였다. 다음으로 상대방이 경국 관원 중 가장 무섭다는 감찰원 소속이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감찰원이 이리 난폭하게 손을 쓴 거면, 저 작은 범 대인이 분명 경도에 피바람을 불러 올 거란 걸 상서 대인은 알고 있어서였다.

감찰원이 아직 위력을 행사할 수 있으니, 범한의 명성은 누군가를 두려움에 떨도록 만들기에 아직 충분했다. 그리고 장 공주의 도움 없이 정면으로 나서서 감찰원에 대항할 수 있는 이는 얼마 없었다.

더군다나 상서 대인도 황궁 안에서 연화령이 터졌다는 소리를 들었다. 이에 황급히 경계를 한 그는 황성에서 나는 하늘을 찌를 듯한 죽이라는 고함 소리도 이미 들은 터였다.

그는 그것이 금군의 소행임을 몰랐다. 하지만 황성에서 변고가 일어났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 * *

바닥에 드문드문 시체가 널려 있었다. 감찰원 관원 중 대장인 이가 싸늘한 눈빛으로 포위당해 있는 형부 상서를 바라보고 있다가 매 단어를 똑똑히 말했다.

“본관은 황태후마마의 명과 화친왕 군령을 받들어 여러 노(老)대신들의 출옥을 맞으러 왔습니다. 하여 상서 대인, 번거롭더라도 그분들을 넘겨주시지요.”

넘겨달라고? 아니다. 이건 엄연히 감옥을 습격해 범인을 빼내는 거였다. 그런데도 형부 상서는 벌벌 떨기만 할뿐 감히 꾸짖지도 못했다. 어젯밤에 그가 의지하던 좌시랑, 우시랑이 관아 대청 안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시랑들이 어찌 죽었는지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상서는 제2의 억울하게 죽은 이가 되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투항하면 살려주려나? 일렁이는 횃불에 형부 상서의 얼굴이 괴이해졌다.

그의 마음을 알아차렸다는 듯 감찰원 대장이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태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무릇 반역자를 따랐던 무리 중 정말로 후회하는 자가 있다면, 과거의 잘못은 묻지 않겠다라고 말이지요.”

형부 상서는 계속 씁쓸하게 웃기만 했다.

‘황태후의 명까지 나온 마당이니, 담박공이 이미 황궁을 통제 하고 있다는 뜻 아닌가. 장 공주 쪽에서는 아직 소식이 없는데, 어쩌면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겠군. 대세가 이리 된 마당에 내가 어찌 견딜 수 있을꼬?!’

하지만 순간 그가 생각을 바꾸었다.

‘만약 황궁에서의 싸움이 아직 끝난 게 아니라면? 범한이 아직 선기를 잡지 못한 거라면? 그런데도 내가 쉬이 투항해 버린다면, 나중에······ 태자와 장 공주는 어찌 대해야 하는 거지?’

이를 악 물고 있는 형부 상서는 눈빛이 쉼 없이 변하고 있었다.

형부 상서를 싸늘하게 바라보고 있던 감찰원 관원이 그와 더 이상 교섭하지 않고 천천히 오른 손을 들었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수백 명의 감찰원 관원이 일부는 쇠뇌를, 일부는 쇠꼬챙이를 들고 육중한 형부 감옥문을 공격할 준비를 했다.

“셋을 세겠습니다.”

감찰원 관원이 무표정하게 말을 이어 갔다.

“셋, 둘······.”

“잠시 멈추시오!”

짧지만 거꾸로 숫자 세는 소리에 심리적인 저항선이 무너져버린 형부 상서가 갈라진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기다리시오! 담박공의 말을 듣고 싶소이다!”

감찰원 관원 입가에 조롱이 떠올랐다.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 단단히 겁을 집어 먹은 형부상서가 그래도 바보까지는 되지 않아서였다. 그는 황태후의 명령은 그저 쓸모없는 찢어진 종잇조각일 뿐이고, 정말로 그의 명줄을 쥐고 있는 건 제사 대인임을 명확히 알고 있던 거였다.

그러자 감찰원 관원이 품에서 일찌감치 준비해 두었던 문서를 꺼내 형부 상서 쪽으로 던졌다.

형부 상서가 바닥에서 종이를 주워 흐릿한 횃불에 비추어 보며 그것이 작은 범 대인이 친필로 쓴 문서임을 확인했다.

이 문서가 언제 작성되었고, 언제 준비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다음의 내용만큼은 명확히 적혀 있었다. 일단, 장 공주와 태자가 음모를 꾸며 동이성 및 북제 자객과 결탁해 대동산에서 황제 폐하를 시해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이 밖에 여러 죄명이 명확히 열거 되어 있었고, 맨 마지막에는 이번 음모에 가담한 정북 대도독 연소을을 범한이 이미 직접 처단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형부 상서에게는 죄명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러니 그가 제일 관심을 가졌던 건 맨 뒷부분의 내용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맨 마지막 부분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조금이나마 편안한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 이 문서는 반역에 가담한 이들을 향한 것이었다. 그다지 길지 않은 글로 마지막 4분의 1을 차지하는 부분에는 조정 대신들도 이승건에게 속은 것이니 뉘우치고 공을 세우면 과거의 잘못은 묻지 않겠다고 명확히 쓰여 있었다.

문서를 들고 있는 형부 상서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었다. 여기에 찍힌 게 황태후마마의 인장이 아닌 황제 폐하의 옥새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맨 마지막에 범한이 직접 날인을 했다는 거였다.

이런 중요한 시국에 옥새니 인장이니 하는 것보다 더 강력한 효력을 지니는 건 범한의 날인 임을 형부 상서는 잘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그는 범한이 식언을 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믿고 있었다.

형부 상서의 얼굴은 갈수록 창백해져 갔다. 그가 주변을 잠시 둘러보고 억지로라도 용기를 냈다. 한데 이미 흙빛이 되어 있던 형부 관원들, 아속들, 감옥 간수들은 감찰원 관원 앞에 무릎을 꿇고는 처량하게 읍소했다.

“소신······ 죄를 지었나이다.”

* * *

모두들 무기를 내려놓고 포승줄에 몸을 맡겼다. 형부에 있던 무장한 이들이 지극히 짧은 시간 안에 제압된 것이었다. 한편 상서 대인은 관복과 관모를 제대로 챙겨 입지 않고 있었지만, 그래도 감찰원 관원들은 그의 체면을 세워주려 했다.

각양각색의 칼, 창, 몽둥이가 한쪽에 잔뜩 쌓였다. 모든 형부 관원들은 두 팔을 뒤로 한 채 감찰원에서 특수 제작한 강철 손가락으로 결박당했다. 강철 손가락 수갑 사이에는 질긴 삼밧줄이 연결되어 있었다. 이에 수갑을 찬 형부 관원들의 모습은 기근 때 불에 구워먹기 위해 꼬치에 끼워둔 메뚜기처럼 보였다.

모든 동작은 능숙하고 빠르게 이루어졌다. 감찰원이란 관아가 탄생 첫날부터 이런 수단으로 방대한 다른 관아들을 상대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형부 상서를 두고 겁쟁이에 담력이 약한 사람이라 말할 수도, 경국의 관아가 전혀 쓸모없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단지 감찰원이 경국 관원들 마음 깊숙이 무서운 존재로 뿌리 내린 지 이미 여러 해가 되어서였다. 그래서 관원들은 이들 검은색 관복을 입은 사람들 앞에만 서면 무슨 천적이라도 만난 듯 반항할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뿐이다.

가공할만한 특무 기관인 감찰원은 경국 황제가 붕어하고 진 평평이 중독된 후에는 범한에게는 가장 날카로운 칼날이 되었다.

감찰원 관원들은 형부에서 남은 일을 처리함과 동시에 굳게 닫혀 있던 감옥 문을 열었다. 그런 후 안으로 들어가 여러 조로 나뉘어 엉망진창이 되어 있는 관원 사오십 명 정도를 부축해 데리고 나왔다.

하옥되어 있던 관원들은 아직 관복을 입은 채였고,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 그래서 이것만 봐도 태자가 태극전에서 이들 관원을 체포할 때 얼마나 급하고 혼란스러웠는지 충분히 알 수 있을 지경이었다.

관원들은 고문을 당한 터라 걸음을 옮길 힘조차 없었다. 이에 감찰원 관원들이 이들을 부축했고, 그제야 이들은 곧 숨이 끊어질 것 같은 모습으로라도 감옥 문을 나설 수 있었다.

감찰원 대장 관원의 시선이 한 곳을 주시했다. 그러더니 그가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가 감옥에서 나온 관원을 향해 무릎을 꿇고 예를 차려 인사를 올린 후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관은 감찰원 2처 주부 모용연입니다. 황태후마마의 명을 받아 여러 대인 분들을 모시러 왔습니다. 여러 대인 분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부축을 받아 문밖으로 나온 문관들은 검은 관복의 감찰원 관원을 보고는 만감이 교차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모용연이 몸을 일으키지 않고 제일 높은 관원 둘을 향해 목소리를 낮추고 정중하게 말했다.

“제사 대인께서 하관에게 일러 두 분 대학사께 감사의 인사 올리라 하셨습니다.”

그렇다. 이 두 관원은 태극전에서 용감히 나서서 태자의 등극을 강제로 막은 일품 대신으로, 바로 문하중서의 수령인 호 대학사와 서무였다.

얼굴에 상처가 난 서무가 모용연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에게는 감옥에서 살아서 나와 다시 하늘을 보게 된 기쁨보다는 경도 국면에 대한 깊은 걱정뿐이었다. 그는 범한의 성정을 알고 있었다. 오늘 밤 감옥을 습격하는 모험을 했으니, 황궁에서는 분명 큰 혼란이 일었을 터. 그렇다면 황제 폐하의······ 폐하의 가족이 이번 풍파에서 얼마나 많이 죽게 될지 모를 일이었다.

한편 호 대학사는 웃음을 지었다.

“담박공이 틀렸구려. 나는 그를 돕지 않았는데, 어찌하여 감사하다는 말을 하는 것인가?”

모용연은 순간 어리둥절했다.

이에 그는 황궁 내 상세 국면에 대해 말할 때를 놓치고 말았다. 형부 밖에는 일찌감치 십여 대의 마차가 와 있었다. 이에 감찰원은 이들 다친 대신들을 마차에 태운 후 황궁으로 향했다. 지금 경도는 여전히 위험한 국면이라 이제 막 감옥에서 나온 대신들은 잠시 자택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형부 문 앞에 서서 감찰원의 보호를 받으며 긴 거리를 따라 황궁 방향으로 가고 있는 마차를 보며 모용연이 드디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뒤쪽에 자리 잡은 형부 관아에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잔뜩 있었지만, 그래도 그는 이미 마음의 안정을 찾은 상태였다.

그는 2처의 주부로 정보를 귀납하는 쪽의 일을 책임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모용연은 이번 감찰원이 일으킨 사변에서 작은 언 대인으로부터 형부를 공격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어쩌면 언빙운이 그의 냉정함을 눈여겨봤기에 이번 일을 시킨 것일 수도 있었다.

형부 공격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어려운 일을 꼽으라면, 감옥에 있는 저 대인들을 아무 문제없이 구출해 내는 것이었다. 모용연은 이 점을 명확히 꿰뚫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제사 대인도 데려다 쓸 사람이 모자란 마당에 자신에게 수백 명이나 줄 리 없었다.

구체적인 임무는 언빙운에게서 내려온 것이었지만, 위와 같은 사항은 범한이 직접 정한 것이었다. 범한은 이번 형부 감옥과 관련해 반드시 완수해야 하는 임무를 내렸다. 바로 서무 대학사와 호 대학사, 그리고 다른 문신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범한도 알다시피, 문신들이 죽음도 불사하며 태극전에서 반대를 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태자의 등극 날짜를 억지로 미루지 않았다면 조정은 한바탕 혼란의 소용돌이에 휘말렸을 것이다. 그러면 경도의 안전은 물론이고 범한이 기회를 틈타 황궁을 습격하는 것도 어려웠을 거였다.

목숨 걸고 간하는 것 말고는 다른 역량이 없을 것 같은 문신들이야 말로 범한에게는 이번 행동을 할 수 있게 해준 공신들이었다. 다시 말해, 범한은 이들 대신들에게 신세를 진 것이었다. 그러니 고마움과 마음의 짐 때문에라도 범한은 이들이 몸이라도 잘 추스를 수 있도록 해주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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