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4화 달빛 아래에서 문을 열어 맹렬하게 돌진하다 (2)
황성은 세 개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맨 뒤쪽은 냉궁인 추원(秋園)이라는 작은 전각이었다. 한데 지금 내쫓긴 후궁이 살고 있지도 않아 그곳은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잊힌 공간이나 마찬가지였다.
군림광장(君臨廣場) 앞에 황성으로 둘러싸인 구역에는 태극전을 포함한 장엄한 전각들이 모여 있었다. 이 구역의 건물 안에서는 경국 황제와 군신들이 경국 대소사에 대해 토론하고 결정했다.
귀인들의 거주지는 태극전 뒤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곳에는 수많은 궁전들이 들어서 있었다. 이곳은 뒤쪽에 자리 잡은 궁전이라 하여 일반적으로 후궁(後宮)이라고 불렸으며, 호위병인 대내시위와 궁정의 태감들이 지키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황성에 들어오면 후궁 쪽으로도 순조롭게 들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황제라는 수컷이 자기 영토와 암컷들을 얼마나 신경 써서 지키는지 모르고 하는 말일 뿐이다.
역대 왕조의 황제들만 봐도 그들은 자신의 후궁들을 밀착 감시를 했다. 황제에게는 여인뿐만 아니라 천부적 재능도 너무 많았다. 그렇기에 자기 여인에게 너무 소홀하게 굴면 자연스레 그 누구보다도 쉽게 바람난 아내를 가진 남자로 전락할 수 있었다.
아내가 자기 몰래 바람피우지 않도록 황제들은 태감, 내시란 걸 발명해 냈다. 그리고 후궁이 지내는 구역과 다른 구역 사이에 높은 담벼락을 세우고 그곳에 믿을만한 호위병들을 곳곳에 배치했다. 그렇기에 역사적으로 봤을 때 후궁에서 기거하는 비빈들에게 손을 대거나 한 다리 걸치는 색귀들이 기본적으로 호위병, 태의, 태감 이 세 부류였던 것이다.
후궁에 둘러쳐진 높은 담벼락은 살구나무가 담벼락 밖까지 뻗어나가는 건 막지 못했어도 여러 모반을 꿈꾸는 이들은 성공적으로 막아냈다.
이 점은 역사적으로도 증명이 되었다. 백여 년 전 위(魏)나라 때, 한 문신이 황제가 멀리 순시를 나간 걸 틈타 모반을 일으켰다. 그는 오늘 밤에 범한이 한 것처럼 천 명만 데리고 들어와 황성 내 사람들을 제거했다. 불가사의한 방식으로 금군의 방비까지 뚫고 들어가 곧 성공을 눈앞에 둔 그였는데······ 후궁에 남겨져 있던 황후에게 당하고 말았다. 황후가 호위병과 태감, 궁녀들을 이끌고 모반에 가담한 병사들을 궁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버려서였다.
겁 없이 모반을 꾀한 이 문신은 최후에 이르러서야 절망적인 사실을 하나를 깨닫게 되었다. 저 아녀자처럼 여리여리한 고자들이 금군보다 더 뛰어난 실력자란 사실이었다. 그것도 자신을 황궁 밖에 장장 3일이나 묶어둘 정도로 말이다.
반역자는 결국 사망으로 최후를 맞았다. 이때 반역을 성공적으로 저지할 수 있었던 건 황후의 냉정하고 용감한 결단력도 있었지만 이것 말고도 태감, 궁녀, 호위병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서였다. 한데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원인은······ 황제가 여인들을 가두기 위해 세운 높은 담이 너무나도 견고해서였다.
* * *
그런데 벽이 둘러쳐져 있는 곳에는 지하 묘지가 아닌 이상은 반드시 문도 있는 법이다. 더군다나 인류는 하늘의 신이 열어둔 창문으로나 기어서 드나드는 건 싫어하다 보니, 제아무리 견고하고 삼엄한 건축물일지라도 형태는 달라도 문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문이 있다는 건 자연스레 그 문을 열 수 있는 사람도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공략하기 쉬운 문을 정할 때 관건은 문의 두께와 빗장을 강철 재질로 만들었는지가 아닌 문을 열어줄 이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었는지 여부였다.
* * *
그러니 범한이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후궁 쪽을 강력히 공격한 건 당연히 문 열어줄 사람을 확보하고 있어서였다.
‘금군’ 2백 명이 평소 다니던 길을 따라 조용하고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순시를 돌았다. 그들은 높은 황성 담벼락 위에서 서쪽으로 움직였다. 금성이 아래쪽으로 내려왔을 때 하늘에서 갑자기 구름이 나타나 별빛이 점점 옅어지고, 성벽 꼭대기도 점점 어두워졌다. 그러자 금군은 평소 오가는 돌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태극전에는 등불이 한 점도 없었다. 하지만 가끔 등롱(燈籠: 등잔 등을 살로 감싼 것으로 들고 다니거나 달 수 있는 것)을 들고 순시를 하는 호위병들, 야경을 돌기 위해 허리를 굽히고 걸어가는 내관은 있었다.
이들 ‘금군’이 황성 아래 후궁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집합했다. 그런 후······ 바람처럼 흩어졌다.
범한은 냉정하게 자기 부하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무수히 많은 매가 되어 태극전 쪽에 남아 있는 사람들과 등불을 덮쳤다. 한데 순식간에 등불이 몰려왔고, 이에 호위병들이 찍소리도 못 내고 칼에 찔려 죽었다.
범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전 행동에 나선 금군 2백은 실은 혼합 편성 부대였다. 5백의 흑기에서 100명, 나머지 100명은 6처에서 선발한 최후의 자객 부대였다. 이에 어둠속에서 움직이는 그들은 과연 모질고도 유능했다.
범한 옆에 있던 흑기 부통령 형과가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가 다시 수십 장 밖에 있는 후궁의 높은 담벼락을 잠시 바라보고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강공(强攻)을 펼치실 겁니까?”
그러자 황궁 담벼락 아래에 놓인 별로 눈에 띄지도 않는 문을 범한이 곁눈질로 힐끔 바라보고는 고개를 가로로 내저었다.
“우리는 문으로 걸어 들어갈 겁니다.”
“문으로 걸어 들어간다고요?”
형과가 깜짝 놀라 제사 대인을 잠시 바라보며 생각했다.
‘대인께서 하신 말씀이 기묘하군. 설마 대동산에 다녀오시더니 전설 속 신묘의 담벼락 뚫고 들어가기 능력이라도 배워 오신 건가?’
범한은 형과에게 아무런 대꾸도 않은 채 걸치고 있던 금군의 묵직한 투구와 갑옷을 벗고 입고 있던 검은색 야행복을 드러냈다. 그런 후 태극전 쪽 나무를 엄폐물 삼아 사전에 알아 놓은 문으로 다가갔다.
형과가 범한 뒤쪽에서 수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주변 어둠 속에 흩어져 있던 돌격 소대가 순식간에 박쥐처럼 날아올랐다. 그런 후 범한을 중심으로 두 줄로 직선의 대열을 이루고는 후궁 담벼락 아래로 바짝 붙었다.
형과도 뒤를 따랐다. 그러다 범한 뒤쪽에 두 장(丈) 정도 떨어진 곳에 서서 고개를 들어 담벼락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너무 높은 건 아니군. 적어도 이들 2백 중 절반은 넘어갈 수 있겠어.’
바로 이때, 하늘을 덮고 있던 구름이 살짝 흩어졌다. 구름에 가려져 있던 달이 얼굴을 드러내고 은색의 달빛이 형과의 은색 가면 위에 비추는데 정말이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달빛이 비추는 가운데 범한이 문 앞에 서서 가볍게 문을 두드렸다.
* * *
손가락이 육중한 문 위에 내려앉으며 자그마하게 둥둥, 하는 소리를 냈다. 한데 문소리를 내는 건 단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문 뒤에서 아무도 대꾸를 하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곧이어 용수철이 움직일 때 나는 미세한 울림이 들려왔다.
범한 옆으로 숨어 있던 검은색 옷을 입은 2백 명의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들 2백 인은 오늘 밤 작은 범 대인을 따라 선제(先帝)의 유조를 받들어 황궁을 공격하러 들어온 거였다. 그렇기에 그 누구보다 용감하고 충성심이 강했고 이에 비장하게 필사의 각오를 하고 온 터였다.
그런데 작은 범 대인이 후궁 문을 살살 두드려서 열다니!
살육전을 불사하고 황성에 잠입한 부하들은 일순간 범한에게 무한한 경외심이 일었다. 그리고 오늘 밤 일의 성패를 두고 믿음이 배가되었다.
후궁의 나무문은 육중하기가 말도 못했다. 그러니 안에서 문을 열어주는 간자도 분명 힘깨나 쓰고 있는 중일 것이다. 범한이 두 눈을 감고 손바닥을 나무문에 바짝 가져다가 댔다. 그런 후 갑자기 이맛살을 잠시 찌푸리고는 체내의 정기를 살짝만 운행시켜 온화한 천일도 정기가 손바닥을 타고 문에 도달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자 정기의 진동에 문이 두 사람 정도 들어갈 수 있을 만한 너비로 열렸다.
그런데 매우 부드럽게, 그것도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열렸다.
범한은 바람처럼 문 안으로 쏙 들어갔다. 그런 후 문 뒤에서 놀라 긴장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태감을 바라보며 살며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고생하였네.”
대 태감이었다. 한데 그는 자신을 압박하고 있는 시커먼 어둠 때문에 놀라 경황이 없어 침만 꿀꺽 삼킬 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어쩌면 이건 장 공주 쪽에서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황궁 안에 멸문지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범한의 간자 노릇을 해주고 있는 자가 있다니. 그리고 그 간자가 아직 과거의 권세를 되찾지 못한 평범하고 불쌍한 늙은 대 태감이었다니.
그렇다. 범한은 일찌감치 대 태감에게 은혜를 베푼 적이 있었다. 그것도 적어도 세 번에 걸친 큰 은혜였다. 한데 대 태감이 이리 큰 위험을 무릅쓰고 범한을 도운 건 단순히 보은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첫째, 그는 범한을 돕는 것으로 잃어버린 과거의 권세를 되찾고 싶었다. 둘째, 요 몇 년 동안 그는 범한과 매우 깊이 얽혀 있었다. 그러니 태자가 정말로 황제가 된다면, 어쩌면 완의국의 차사를 못 하는 건 물론이고 그냥 죽을 날만 기다려야 해서였다.
그런데 제일 중요한 건, 대 태감도 잘 알다시피, 사실은 그의 조카가 계속 범한의 감시 하에 있어서였다. 그리고 대 태감은 말년에 그 조카가 자신을 돌봐주기를 아직 바라고 있었다.
대 태감이 놀라 허둥대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문은 왜 이리 쉽게 열린 거며, 주변을 주시하며 살피는 호위병들은 왜 여태 자신을 발견하지 못한 걸까? 그는 지금 이 상황이 이해가 안 되어 속이 답답했다.
“대인, 소인네가 길을 안내하겠······.”
두 사람 정도 드나들 수 있게 열린 문으로 검은색 옷을 입은 자들이 계속해서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빠른 몸놀림으로 눈 깜짝 할 사이 후궁으로 들어오더니 어느새 엄폐물을 찾아 들어가 몸을 감추고 없었다. 그 광경을 본 대 태감은 너무 놀라 간담 서늘해지는 기분이었다. 작은 범 대인이 황궁을 어지럽히기 위해 데리고 온 부하들이란 걸 그는 알 수 있었다. 한데 보고 있자니······ ‘인원수가 너무 적은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어디든 들어가 죽은 듯 있게.”
범한이 대 태감에게 목소리를 낮추어 당부를 해두었다. 범한 눈에 담긴 결의가 점점 짙어져 갔다. 그가 황궁 내 지형을 잘 알고 있다는 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한데 그는 함광전에 열쇄를 훔치러 들어오기 전에 황궁 내 공격과 철수 노선에 대해 여러 차례 되뇌어 본 적 있었다.
기회란 항상 준비 된 자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대 태감은 몸을 굽히고 서둘러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범한의 당부대로 죽은 듯이 몸을 숨길 수 있으면서 사람의 이목을 끌지 않을 곳을 찾아갔다.
이로써 2백 명의 야행자들은 제각기 최후의 준비를 마치게 되었다. 범한이 잠시 형과를 바라보며 입술을 살며시 움직였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싸늘하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돌격!”
* * *
임무는 입궁하기 전에 이미 배분을 마친 상태였다. 궁궐 안에는 누구도 예측 못한 밀정이 숨겨져 있었고, 또 각각의 영역에 있는 이들이 황궁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범한에게 정보를 주었다. 이에 범한은 황궁 상황에 대해 무척이나 정확히 알고 있었고, 이에 2백 명을 모두 4개의 조로 나누었다. 그중 제일 중요한 이들은 범한 자신과 형과가 이끄는 두 개 조였다.
범한은 6처 자객인 검수들을 데리고 곧장 함광전으로 갔다. 그는 궁인들이 낌새를 알아차리고 행동에 나서기 전에 어떻게든 영 재인, 의 귀빈, 3 황자 이 세 사람을 황태후의 관할권 밖으로 빼내려했다.
이는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1 황자가 감히 금군을 이끌고 반기를 들 수 있었던 건 범한이 자신의 어머니를 구출해 낼 걸 믿어서였다. 그리고 범한은 자신을 믿어 준 형님을 실망시킬 수 없었다.
한편 지금 형과는 흑기 중에서도 단독 행동이 가능한 고수들을 이끌고 있었다. 이에 형과는 지금 당장 광신궁으로 밀고 들어가 단번에 공격을 마치려 했다.
왜냐하면 광신궁에 있는 장 공주를 죽이지 않으면, 범한 입장에서는 독사 한 마리가 계속해서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고 신경 써야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범한이 조사를 해본 결과 임완아와 임대보는 지금 광신궁에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이 직접 광신궁으로 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한편으로는 함광전이 더 중요하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무의식이 그런 국면이 일어나는 걸 꺼려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런 이유로 형과에게 광신궁 쪽을 맡긴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