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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여년-713화 (713/1,108)

713화 달빛 아래에서 문을 열어 맹렬하게 돌진하다 (1)

황성(皇城)의 권력자들은 경도의 그들보다 훨씬 낯짝이 두꺼웠다. 이에 위로 올라가면 말을 탈 수 있었고 아래에서도 재물 축적이 가능했다.

심지어는 금군이 회의하는 방도 그 푸른빛이 도는 응회암 사이에 설치해 둘 정도였다. 방은 어두컴컴한 가운데 스산함을 풍기고 있었다.

몇 개 안 되는 불꽃이 팔딱이며 방 안 사람들의 얼굴과 눈을 비추는 바람에 모두를 깜짝 놀라 깨고 말았다.

금군의 고위급 장수인 교위들은 확실히 지쳐 있었다. 경도로 들어온 기마병 셋이 대동산의 일을 보고한 후 온 경도에 비바람이 불려 해서였다.

그리고 그들이 호위를 책임지고 있는 황궁은 각 세력들이 주시하는 폭풍의 핵이 되어 있었다.

연속 며칠 동안 고위 장수 중 그 누구도 황성을 떠날 수 없었다. 설령 이미 교대를 바꾼 후일지라도 감히 집으로 돌아가 쉴 수 없었다.

화염은 어느새 1 황자 눈에서 연소하는 광채가 되어 있었다. 그가 실내에 있는 십여 명의 장수들을 그윽하게 바라보며 싸늘한 음성으로 말했다.

“본왕이 한 말을 모두들 똑똑히 들었는가?”

실내는 침묵뿐이었다. 장수 하나가 찡그린 얼굴로 한쪽 무릎을 땅에 댄 채 이를 악물고 말했다.

“말장은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유조(遺詔: 황제가 죽기 전에 남긴 조서)를 다시 한번 읽어야겠는가?”

1 황자가 눈을 부라리며 싸늘하게 말을 이어 갔다.

“태자가 황위를 찬탈하기 위해 동이성 자객과 결탁해 대동산에서 선제 폐하를 살해하였네. 그런 후 그 죄를 작은 범 대인에게 뒤집어씌우려 했지. 본왕은 선제 폐하의 유조를 받았으니 처벌할 자들은 처벌할 것이야!”

그러자 그 장수가 1 황자 곁에 있는 얇은 종이를 잠시 바라보고는 두 눈을 살짝 가늘게 떴다.

“마마, 아무리 유조라 하지만 과연 진짜인지 가짜인지 어찌 알겠습니까?”

1 황자가 싸늘하게 말한 장군을 바라본 후 품에서 천천히 상자를 꺼내 탁자 위에 놓았다.

상자를 열자 안에서 작은 도장이 나왔다. 바로 실종된 지 수일이 지나 황궁에서 내린 명령이 순조롭게 통과되지 못하도록 한······ 황제 폐하의 옥새였다!

옥새가 나타나자 방안에 있던 장군들의 낯빛이 순식간에 변했다. 그리고 모두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옥새를 향해 예를 차려 절을 하고는 그 누구도 더 이상은 감히 토를 달지 못했다.

“마마의 군령을 받들겠습니다.”

“작은 범 대인이 역도들을 처단하기 위한 명을 받았다네. 그리고 본왕에게 도울 것을 명했지.”

1 황자의 눈빛이 바닥에 꿇어앉아 있는 고위 장수들의 얼굴을 천천히 훑으며 그들의 생각을 읽었다. 그는 범한의 권유에 따라 안심하고 금군을 통솔자가 된 후 금군 안에 자신의 측근 여럿을 심었다.

한데 연소을이 금군을 지휘하면서 남겨두었던 잔존 세력이 아직 많았다. 그러니 유조와 옥새를 가지고 이들에게 자진 복종을 받아내 자신이 쓰고 싶은 대로 쓰려면······.

1 황자가 눈가를 잠시 씰룩이더니 진심으로 자조하듯이 소리 내어 싸늘하게 웃었다. 세상에 그리 간단히 해결되는 일은 없어서였다.

“본왕과 함께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장군은 부디 일어나 주게.”

1 황자가 차분하게 말했다. 그러자 방안 한쪽 구석에 놓여 있던 등잔 불빛이 1 황자의 얼굴을 감싸 안으며 그의 얼굴에 점점 혈기를 북돋아 주었다.

방 안에 있던 장군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勢)가 사람보다 강하다고, 이 방 안에 있는 이들은 모두 1 황자의 수하 교위(校尉)였다. 그러니 연소을 편인 장수들이 딴 마음은 품어도 감히 이상한 짓은 할 수 없었다.

앞서 말을 건넨 장군의 입가에서 살짝 씁쓸함이 배어나왔다. 그는 줄곧 장 공주와 연락을 해오던 사람으로 오늘 밤에 1 황자가 갑자기 반기를 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 모든 장수들을 밀실에 모아 놓고 회의를 열고, 더군다나 대응할 시간도 전혀 없이 이리도 빨리 행동을 취한 건 그에게는 모두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금군 장군들이 빠짐없이 밀실에 모여 있었으니, 1 황자가 살해하려고 나와도 누구 하나 항거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연소을의 부하들은 잠시 거짓으로 따르는 척을 할 수밖에 없었다.

* * *

“장호, 진일강······.”

1 황자가 갑자기 입을 뗐다. 그리고 장군 다섯을 호명했다.

다섯 장군이 순간 싸늘하게 얼어붙은 낯으로 서로를 쳐다보고는 불길한 기분과 함께 대열 밖으로 걸어 나왔다. 이 다섯 사람은 모두 과거에 연소들이 뽑아 놓은 부하들이었다.

1 황자가 싸늘하게 다섯 사람을 바라보며 잠시 머뭇거리다가 자그마한 소리로 느릿느릿 말했다.

“본왕이 그대들을 왜 불렀는지 알걸세.”

장군 하나가 낯빛이 흙빛이 되어 철퍼덕 소리를 내고 1 황자 앞에 꿇어앉았다.

“마마! 말장은 오로지 마마의 명만 따랐을 뿐 절대 다른 마음을 가진 적이 없습니다.”

1 황자가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여주고는 온화하게 말했다.

“힘들겠지만 우선 이곳에서 더 있어주게. 어떠한가?”

그러자 장수의 낯빛이 변했다. 그리고 그가 결국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벽 쪽으로 돌아갔다.

나머지 네 사람은 마음이 너무나도 복잡했다.

‘1 황자의 수하병사이 이 밀실 안을 지키고 있는 거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 궁으로 지금 상황을 알릴 수 있을까?’

네 사람이 서로를 잠시 바라보았다. 그러자 앞장서서 입을 열었던 사람이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그는 성이 진씨이고 이름은 일강으로, 연소을이 과거 직접 뽑은 측근이었다.

오늘 1 황자가 반기를 들었으니, 어찌 자신을 용서해 주겠는가? 더군다나 자신의 운명은 정해진 거였으니, 그로서는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만은 없었다.

진일강이 한동안 조용히 있다가 입을 열었다.

“왕야, 지금 황성에 2천 명 이상의 금군이 있습니다. 그중 적어도 6백에서 7백 명은 저희 다섯 사람의 수하입니다. 하여 감히 말씀드리는데, 저희들의 도움이 없이 어찌 모든 금군을 굴복시킬 수 있으시겠습니까?”

그가 갑자기 고개를 치켜들고 싸늘하게 웃었다.

“경도수비사가 언제든 경도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또한 금군의 삼분의 일이 대동산으로 가 있습니다. 현 상항이 이러할진대 무엇으로 저 호랑이와 이리 같은 장수들을 막으시겠다는 것입니까? 하여 이 말장, 감히 왕야께 청하옵건대 부디 스스로 목숨을 중히 여기십시오.”

엄숙하게 건넨 말 같았지만 방 안에 있는 군관들은 모두 알 수 있었다. 진일강이 생각해주는 척하면서 마지막으로 친 몸부림이란 걸.

“본왕은 이미 결정을 끝낸 일에 대해서는 재고의 여지를 두지 않는다네.”

진일강을 싸늘하게 바라보는 1 황자의 눈빛에서 점점 살의가 번져갔다. 과거 서쪽에서 호인들을 죽이며 갈고 닦은 얼음장 같은 살의였다.

진일강은 심장이 떨렸지만 이내 뜨거운 피가 솟구쳤다. 그가 포효하며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챙!’ 소리와 함께 칼을 칼집에서 빼 들고 1 황자를 향해 돌진했다.

하지만 그의 칼은 포효 소리와 함께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긴 창 세 개가 냉혈하고 난폭하게 진일강의 몸으로 파고들어서였다. 그는 어느새 창 세 개에 몸이 꿰인 채 허공에 붕 떠 있었다.

진일강이 입에서 피를 왈칵 쏟으며 지금 이 상황이 불만스럽고 절망적인 표정으로 세 자[尺] 떨어진 곳에 있는 1 황자를 바라보았다. 그런 후 창끝에서 두어 번 경련을 일으킨 후 고개를 축 늘어뜨리고 죽었다.

진일강이 칼을 뽑고 달려들 때 연소을이 남겨둔 나머지 세 장수도 동시에 칼을 빼들었다. 그리고 절망적이긴 했지만 용감하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실내에 있는 이들은 모두 1 황자의 측근들이었다. 이에 ‘솨라락’ 하며 베는 소리가 몇 번 들리고, 등불에 칼날의 빛이 몇 번 번쩍이더니······.

시체가 바닥을 나뒹굴고 피비린내는 점점 진해져만 갔다. 금군 장수 넷이 이렇게 굴욕적으로 목숨을 잃은 것이었다.

1 황자가 발아래에 널린 시체들을 차분하게 바라보다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마지막 남은 장수를 바라보았다. 한데 그가 앞으로 돌진할 용기조차 내지 못하고 두 다리만 부들부들 떨고 있자 1 황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그마한 소리로 혼잣말처럼 심한 욕을 내뱉었다.

“잘 감시하거라.”

측근들에게 분부를 내린 후 1 황자는 뒤로 돌아보지도 않고 회의가 열렸던 방에서 나갔다.

* * *

황성 높은 곳으로 올라온 1 황자가 각루에 서서 고정되어 있는 수성용 쇠뇌를 가볍게 어루만졌다. 그리고 검은 빛을 반짝이고 있는 거대 쇠뇌의 화살과 그것이 가리키고 있는 방향을 바라보다가 황성 밖에 있는 광장으로, 그리고 광장 밖에서 이미 금군에게 통제되고 있는 네거리 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대원수령(令)에 따라 그 6백 명은 현재 전원 교대 후 휴식에 들어가 있습니다.”

범한에게 직접 군대를 이끌고 황궁에 들도록 한 교관이 1 황자 뒤에 서 있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보고를 했다.

하루 반나절에 걸쳐 금군 교대 시간에 몰래 손을 써둔 결과 1 황자는 성공적으로 그 6백 명의 금군 병사들을 황성으로 이동시킬 수 있었다. 그리하여 장수 넷을 이미 제거했음에도 그들이 놀라 움직이지 않도록 할 수 있었다.

1 황자가 자그마한 소리로 차분하게 말했다.

“준비했는가?”

그러자 아까 보고했던 교관이 고개를 들어 1 황자를 잠시 바라보고는 의연하게 보고했다.

“천 2백이 이미 포위를 마쳤으니, 언제든지 손을 쓰실 수 있습니다.”

조금 전 제거된 장군들 수하에 있는 금군은 주둔지에서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이에 1 황자에게 충성을 바치는 부하 천 2백 명이 어둠을 타고 잠입해 6백 명의 방사들을 나누어 포위했다. 그리고 명령이 내려오면 도살용 칼로 금군 내 최후 불안 요소를 깨끗이 제거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저 병졸들은 분명 아직 자고 있겠지.”

1 황자가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어 갔다.

“잠결에 죽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1 황자는 과거 수만에 이르는 군을 이끌고 서쪽 정벌에 나섰고, 서호와의 전투에서 거대 업적을 세워 모두에게 칭송을 받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병사들을 자식처럼 아끼는 한편 그들에게도 행동거지를 올바로 하도록 했다. 한데······ 자애로움으로는 군을 장악할 수 없지 않은가. 특히 경국 앞날이 걸린 큰일이니, 1 황자는 마음을 단단히 먹을 수밖에 없었다.

“대원수 령을 받들겠나이다.”

측근은 1 황자가 지금 무슨 생각중인지 알 수 없어 마음이 초조했다. 그리고 작은 범 대인이 이미 입궁했는데, 왕야께서 지금 갑자기 마음이 약해지시기라도 하면, 날이 밝은 후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었다. 이에 그는 위와 같이 조심스럽게 재촉을 해보았던 것이다.

1 황자가 잠시 자조적으로 웃었다. 그런 후 어둠에 싸여 있는 민가에서 시선을 거두고 고개를 돌려 더 깊고 어두운 밤에 휩싸여 있는 황궁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한참을 바라보기만 할뿐 시종일관 명령을 내릴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저곳이 여전히 고요했기 때문이다.

“공격 시점은 내가 결정할 사항이 아니네.”

1 황자가 육중한 수성용 쇠뇌를 살며시 토닥이며 말을 이어 갔다.

“우리가 먼저 공격을 개시하면, 황궁 사람들을 놀라게 할 수 있으니······ 언제 공격해야 할지는 범한이 결정할 걸세.”

조용하고 깊은 황궁을 바라보고 있던 그가 참다못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자신의 처지가 여기 담벼락 위에 있는 수성용 쇠뇌와 너무나도 비슷했다. 수성용 쇠뇌가 아무리 강한 위력을 지녔어도 언제나 어떤 구체적인 또는 허무한 것에 손발이 묶인 채 화살 끝을 황궁 밖으로만 겨누고 있어야 했고, 그러면서도 황궁을 향해서는 매정한 짓을 할 수 없는 게 자신과 너무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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