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2화 결전의 밤 (2)
줄곧 동궁 쪽 사람이었던 하종위는 장 공주가 전임 재상 임약보를 내쫓는 걸 도와주기도 했고, 범씨 집안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윈수 사이이기도 했다. 그래서 황태자는 그가 자신의 가장 믿을 수 있는 충신이 되어 줄 거라고만 생각했지, 군대를 경도로 들이려 하는 일에 핏대를 세우며 반대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하종위의 반대는 무척이나 격렬했다. 그는 관복을 벗어 던지고는 십여 명의 어사들을 이끌고 태극전 앞에서 무릎을 꿇고 소란을 피웠다. 이에 화가 난 황태자가 곤장 12대를 때린 뒤 황궁 밖으로 쫓아냈는데, 과거 경도의 인재로 명성을 떨쳤던 그는 핏자국이 얼룩덜룩하게 묻은 옷을 그대로 입은 채 황궁 문 앞에서 무릎을 꿇고 간언을 올리고 있었다.
“하 어사의 반대도 일리는 있다.”
황태후가 살며시 눈을 감은 채 피로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나도 하 어사와 같은 걱정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진씨 집안 군대가 경도로 들어오는 걸 허락하지 않은 거란다······. 경국은 항상 군대가 경도에 들어와 정치에 간섭하는 걸 엄격하게 금지해 왔다. 만일 이번에 관례를 깨게 된다면 앞으로 상당한 후환이 될 수 있어.”
황태자도 황태후의 걱정이 뭔지 알고 있었기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황태후는 황태자가 평화롭게 즉위에 오르기를 바라고 있었다. 일단 군대가 끼어들어 진씨와 섭씨 집안의 역할이 커진다면 황태자는 부황처럼 군대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었고, 그렇게 된다면 앞으로 경국이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진씨 집안은 대대로 나라에 충성하였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지.”
황태후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진씨 집안과 관계가 무척이나 깊었기에 진씨 집안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섭가는 어떠하냐? 섭중은 둘째의 장인어른이 아니냐!”
황태후가 줄곧 말이 없는 황태자를 바라보며 깊을 숨을 들이쉰 뒤 음침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만 범한이······ 제멋대로 날뛰고 있으니 군대가 진압을 하지 않는다면 경도는 아마 영원히 안정을 되찾을 수 없을 게야. 그럼, 네가 감옥에 갇혀 있는 대신들을 모두 죽인들 무슨 소용이 있겠니? 이대로 며칠을 더 끌다가 경국 5로에 주둔해 있는 정예병의 군심이 흔들린다면 사태는 더욱 악화할 거다.”
황태자가 허리를 숙여 공손히 말했다.
“그래서 소자가 경도에 군대를 들이자 요청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미래의 우환을 걱정하기보다는 범한을 처리하는 게 먼저입니다.”
그가 살며시 인상을 찌푸리며 계속 말했다.
“다만······ 하종위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좌도어사인 하종위가 황궁 밖에서 어사들을 이끌고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으니 말입니다······.”
황태자의 걱정도 일리는 있었다. 역사에서 대신을 죽이는 경우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간언을 하는 대신을 죽이는 건 문제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과거 막강한 권력을 가졌던 경제도 어사들이 똘똘 뭉쳐 자신의 사생아 아들 범한을 공격했을 때 함부로 하지 못하고 몽둥이로만 다스렸었다.
“항상 누군가는 악인의 역할을 해야 하는 법이지.”
황태후가 황태자를 바라보며 자상하게 말했다.
“그들은 내가 알아서 처리하마.”
황태후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다시 말했다.
“군대가 경도로 들어오면 네 형의 통령 자리도 넘겨받도록 해라.”
예상치 못한 말에 황태자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공손히 알겠다고 대답했다.
* * *
광신궁은 함광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기에 곧바로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계획을 세우고 냉정하게 상황을 살피며 무대 위에서 다양한 역할을 해온 장 공주는 처음으로 근심에 휩싸였다. 왜냐하면, 오늘 일어날 일들에 수상한 점을 느꼈기 때문이다.
“어째서 아직도 범한을 잡지 못하는 것인가?”
그녀가 후 내관을 바라보며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궁정에 고수가 없는 것도 아니고 경도부가 힘이 없는 것도 아닌데, 본궁이 얼마나 더 기다려야 그놈의 머리를 볼 수 있는 거지?”
그녀는 이 말을 자신의 딸이 있는 앞에서 하고 있었다. 하지만 임완아는 남편의 안위가 걱정되지 않는다는 듯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묵묵히 말을 들었다. 이미 며칠이 지났지만, 황실은 아직도 범한을 잡지 못하고 있었고, 아마도 이대로라면 영원히 잡지 못할 것 같았다.
후 내관이 급히 밖으로 나가자 장 공주가 바로 표정을 바꿨다. 조금 전까지 화를 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평온한 표정이었다.
사실 그녀는 범한이 쉽게 잡힐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대동산에서 살아 돌아온 것으로 그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이미 증명이 되었으니 말이다.
이것은 천하의 대세와 관련된 것이므로 장 공주의 마음은 항상 경도가 아닌 대동산에 쏠려 있었고, 범한이 경도로 살아 돌아올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범한이 경도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녀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범한이 살아 돌아왔다는 건 연소을이 죽었다는 의미였다. 이운예가 천천히 눈을 감으며 범한이 앞으로 어느 경지까지 오를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그는 경도에서 대놓고 암살을 실행하며 황궁의 권위에 도전하고 있었다.
장 궁주가 미간을 찌푸리며 서늘한 광신궁 안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궁전은······ 다 타버린 재처럼 생기가 없어서 나가고 싶어진단 말이야.”
옆에 있던 임완아가 자신의 어머니를 가만히 바라보며 물었다.
“두려우신 거군요.”
“내가 두려울 게 뭐가 있겠니? 범한이 오늘 밤에 황궁을 공격할까 두려워할 것 같으냐?”
장 공주가 딸의 마른 뺨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만큼 범한을 잘 아는 사람은 없어. 범한은 쥐새끼처럼 어둠 속에 숨어 암살이나 하지 정면으로 싸우려 하지는 않을 거다······. 왠지 아니? 누구보다 죽는 걸 두려워하거든 그래서 용기를 내지 못하는 거야.”
장 공주가 고개를 옆으로 살짝 숙이며 자신의 딸을 바라봤다.
“줄곧 묻고 싶었던 게 있어. 만약 네 목숨을 가지고 위협하면 범한이 무슨 선택을 할 것 같니?”
“정말이지 그 애가 어떻게 나올지가 궁금해.”
장 공주가 즐겁다는 듯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범한이 내 앞에서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어.”
* * *
범한은 자신이 황태후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씨 집안 큰 어른인 황태후는 황위 계승이 평화롭게 진행되는 걸 원하므로 군대에게 수습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권한을 주어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자신의 계획을 주도면밀하게 진행해 나갔다.
다만 그는 어둠 속 암살자라는 자신의 명성이 황궁 귀인들에게 얼마나 큰 공포로 다가올지는 분명히 예측하지 못했고, 이에 경도에서 자신이 벌인 암살로 황태후와 황태자가 군대를 경도로 들여 진압할 마음을 먹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만일 다음날 원대 병영에 있는 경도 수비사가 경도로 들어와 진압을 실시하기 전까지 범한이 황궁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그는 필연적으로 암담한 결과를 맞게 될 거였다.
더욱이 그는 자신이 항상 깔보고 미워했던 하종위가 진씨 집안 군대가 경도로 하룻밤 더 늦게 들어오도록 시간을 끌고 있다는 사실도 까마득히 몰랐다.
결과적으로 하종위는 그에게 가장 큰 도움을 준 사람이었다.
황태후와 황태자의 결심을 하루 늦춰 줬으니 말이다.
* * *
모두가 잠에 빠져 있는 조용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금군이 교대를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금군은 황성 앞의 절반의 궁전과 황성 밖에 여러 갈래의 중요 길들을 통제했다. 오늘은 무척이나 긴장된 밤이었기에 교체된 금군들은 진영으로 돌아가지 않고 잠시 거리에 있는 민가에 머물렀다.
한 열에 약 200명인 금군 대열이 전신에 투구와 갑옷을 입고 이상할 만큼 조용히 황궁 정문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근무를 서고 있는 금군과 구령을 교환하고 교대를 시작했다.
현재 상황이 상황인지라 금군 대통령인 1 황자는 이미 3일째 왕부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황궁 각루에 서서 아래 부하들이 교대하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갑옷과 투구를 입은 그가 마치 황궁 밖의 모든 공격을 막을 기세로 황궁 정중앙에 섰다.
그가 차가운 눈빛으로 2백여 명의 금군 대열을 바라보다가 잠시 뒤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옆에 있는 친병 교관은 마른 침을 삼키며 긴장한 기색으로 앞으로 나와 교대를 한 뒤 약간은 낯선 금군 관병들을 바라보다가 황궁 안으로 들어갔다.
1 황태자가 문 앞에 서서 교대한 금군이 자기 양쪽으로 지나가도록 했다.
교대한 금군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움직이는 게 군기가 상당히 들어 보였다.
금군 대일 맨 마지막에 있는 사람이 문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1 황자가 갑자기 한숨을 쉬었다.
금군 대열의 맨 마지막에 있는 그 사람이 1 황자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원수, 이제 어찌하면 됩니까?”
그 교관은 1 황자의 측은으로 서정군에서 고위 군관에 올랐던 인물이었다. 그러니 굳이 직접 교대 업무를 할 필요는 없었지만, 이번 교대 업무만큼은 직접 해야 했다.
황궁 각루를 지키던 금군 사병들이 점점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던 교관이 마른 침을 삼켰다. 그가 애써 두려움을 억누르며 떨리는 목소리로 1 황자에게 물었다.
1 황자가 허리춤에 차고 있는 검을 천천히 움켜쥐었다. 밤바람을 맞고 있는 그의 얼굴 윤곽은 오늘따라 더욱 강인해 보였다.
“모두를 깨우게. 임시 회의를 소집할 거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엄청난 살기가 그의 몸 밖으로 뿜어져 나왔다. 1 황자는 무예 고수는 아니었지만, 그동안 참혹한 전쟁터를 누비면서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이들을 죽여 왔다. 이에 그는 오늘 밤 결심이 선 이상 금군 내부에 있는 불안 요인들을 계속 남겨둬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교관은 대원수가 오늘 밤 살인을 하려 한다는 걸 알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금군은 원래 연소을의 심복들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불안 요인을 제거하려면 상당히 많은 수의 사람을 죽여야 했다. 하지만 교관은 두려워하기보다는 오히려 잔뜩 흥분한 표정으로 곧장 명령을 이행하러 갔다.
황궁의 앞 성벽은 말 네 필이 오고 갈 수 있을 만큼 크고 넓은 데다가 푸른 돌로 지어져서 엄숙한 분위기를 풍겼다.
이곳에서 금군은 전투 대형을 펼치고 황상 아래 광장을 지켜보며, 언제든 습격을 막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만 이 대열 중에서 한 사람 만큼은 황궁 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범한이 금군 복장을 정리하고 익숙한 궁정을 바라봤다. 칠흑처럼 어두운 황궁 안 어디에 가족이 있고, 적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일단 2백 명을 이끌고 궁 안으로 잠입하는 걸 성공하기는 했지만, 대내 시위와 궁정 태감 고수들을 만난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알 수가 없었다. 언제든 일촉즉발의 상황이 터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만약 전투가 일어났을 때 1 황자가 금군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니 온전히 금군의 힘에 기댈 수만도 없었다.
“적들이 바라는 대로 움직여서는 안 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적들이 그렇게 하기를 원하기 때문이지요.”
그가 옆에 있는 흑기 부통령 형과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건 나폴레옹이란 사람이 한 말입니다. 황성 문은 열렸으나 후궁 문은 여전히 닫혀 있습니다. 그들은 아마 우리가 이런 사람들을 사용해서 황궁을 공격할 거라고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있을 겁니다.”
그는 장 공주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다만 과거 시선이라 불리던 범 제사였다면 이런 직접적인 공격을 시도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풀숲에서 벌떡 일어났던 그 순간부터 범한은 과거의 그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