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여년-710화 (710/1,108)

710화 처음 장화 속에서 뽑힌 비수 (2)

경도의 조용한 골목 안으로 사라진 마차는 잠시 뒤 1처의 비밀 연락 장소에 도착했다.

“상처를 치료하도록 하게. 내가 일부러 자네를 구하려 한 건 아니야. 그냥 지나가는 길에······.”

범한이 심한 상처를 입은 양만리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물론 자네가 죽기라도 했다면 마음이 괴로웠겠지.”

범한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가 공부 관아를 지난 이유는 더 큰 목적을 위해서였다. 그가 연락 장소에서 만난 언빙운에게 물었다.

“확인했습니까?”

“장 공주와 황태후 마마, 황태자, 숙 귀비 모두······ 황궁 안에 있습니다.”

언빙운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모두 확인했습니다. 황궁을 통제하기만 한다면 대세는 정해지는 겁니다.”

“황태후가 정말 이렇게까지 1 황자를 신임할까요?”

범한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제가 황태후라며 진작 1 황자 자리를 진씨 집안사람에게 주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황태후 마마께서는 궁정 태감과 시위들이 지키면 영 재인을 아무도 구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구할 수 있습니다.”

범한이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늘 밤에 친척들을 구하고 다른 친척들은 가둘 것입니다.”

언빙운이 떨떠름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부자연스러운 미소를 본 범한이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황궁 안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아니면 언 대인 쪽에 일이 생긴 겁니까?”

“아버지 쪽은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아마 지금 진씨 집안에 계실 테니까요.”

언빙운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대인이 황궁에 들어가시기 전에 알려드릴 일이 있습니다.”

범한이 그를 바라봤다.

“3 황자가 자객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언빙운이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대인께서 궁중의 정보 노선을 제게 주지 않으셔서 결과를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최악의 결과를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쨌든 3 황자는 아이가 아닙니까. 의 귀빈에게 3 황자를 지킬 힘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지금 그러니까······ 대인의 말은 승평이 암살을 당했다는 겁니까?”

범한이 실눈을 뜨고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피가 통하지 않아 손이 하얗게 변할 정도로 세게 주먹을 쥐었다. 그의 내면에 있는 진짜 감정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잠시 뒤 감정을 추스른 그가 나지막이 말했다.

“황태자가 한 짓은 아닙니다.”

언빙운이 그를 바라보며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범한이 이번 암살 사건의 주모자가 황태자가 아니라고 확신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미 피를 보았군요.”

범한이 고개를 들어 언빙운을 바라봤다.

“오늘 밤에 궁에 들어가기로 정해졌으니 앞당길 필요는 없습니다. 원래 정해진 계획에 따라 움직여야 합니다.”

“경도부를 이용해 총 4백 명의 흑기를 경도 안으로 불러들였습니다.”

언빙운은 지금 범한이 심정이 어떠한지 알고 있었기에 흔들리지 않고 원래 계획대로 진행하겠다고 하는 이유도 이해했다.

“대인께서 성문사 쪽을 포기하기로 하셨으니 오늘 밤에 황궁에서 일망타진해야 합니다. 조금의 틈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성문 아홉 곳 중에서 제가 통제할 수 있는 곳이 있습니까?”

범한이 씁쓸히 웃으며 말했다.

“손에 든 병력이 적으니 정면 대결을 할 수는 없습니다. 아마 황태후와 장 공주는 제가 황궁을 공격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겠지요······.”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계속 말했다.

“제왕의 계략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종종 용기가 뭔지를 잊어버리지요. 술에 취한 남자는 머리가 맑지 않기에 손에 쥔 식칼만으로도 상당한 위력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범한이 고개를 저으며 계속 말했다.

“모두가 제 장모가 미쳤다고 말하지요. 저의 강공에 화를 내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이건 강공이 아닙니다.”

언빙운이 침착하게 말했다.

“금군이 막지는 않겠지만 저희에게는 4백 명밖에 없습니다. 나머지 7처 사람들은 황궁 밖에서 교란책을 꾸며야 합니다······. 황궁은 큰데 사람은 적으니 모두를 잡으려면 목표가 정확하게 어디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가 범한을 바라보며 약간 근심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직접 황궁 안으로 쳐들어가는 것은 병법에서 가장 금기시되는 일입니다. 이런 도박에 가까운 일을 하면서 그렇게 자신만만하신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적의 진영 안에 제 사람이 있으니까요.”

이렇게 말한 범한이 은은히 웃으며 자신의 매끄러운 뺨을 쓰다듬었다. 3 황자가 자객을 만났다는 소식을 들었음에도 범한은 언빙운과 오늘 밤에 있을 공격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뿐 그 일은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에 범한도 자신의 감정을 완전히 외면할 수는 없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이승평이 무탈하기를 기도하던 그가 입을 달싹였다.

“너는 죽으면 안 된다.”

마치 자신에게 말하는 것처럼 생사를 알 수 없는 3 황자를 향해 중얼거렸다.

“너는 나중에 황제가 되어야 할 몸이니까.”

* * *

여기서 한 시진 전에 황궁에서는 역사와 많은 사람의 운명을 바꾸게 만들 암살 사건이 일어났다. 경국 황제가 대동산에서 암살당한 이후 두 번째로 황궁을 놀라게 한 큰 사건이다.

이번 암살 사건의 목표는 3 황자였다. 3 황자는 성은 이씨이며 이름은 승평으로, 어머니는 유씨 국공가 집안 출신 의 귀빈이었다. 그리고 그는 담박공 범한을 따라 강남에 가서 1년간 그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범한은 그 기간에 3 황자를 황위 계승자로 지지한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이번 3 황자 암살 사건은 모두의 예상을 깬 사건이었다. 어느 방면에서든 3 황자는 중요한 목표라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십 대 소년인 3 황자가 황태자의 즉위에 상당한 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범한의 지지가 있을 때 이야기였다.

3 황자는 혼자서 황위를 위협할 만큼 뛰어난 매력이나 강력한 세력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래서 황태자는 막내아우가 자신이 용상에 앉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범한을 죽일 생각만 했지 3 황자를 건들 생각은 하지 않았다. 3 황자가 지금 죽는다면 조정 대신들의 반발은 더욱 격렬해질 것이고, 범한의 반격도 더욱 거세질 것이므로 황태자에게도 좋을 게 없었다.

더욱이 황태자가 신경 쓰는 점은 역사에서 자신이 어떻게 기록될 것인지였다. 범한이 이대로 누명을 쓰고 죽는다면 대동산 사건의 진상은 영원히 묻히고 범한은 반역자로 기록될 것이었다. 하지만 이승평이 황궁 안에서 죽게 된다면 황궁의 주인인 황태자가 역사에 어떻게 기록이 되겠는가?

황태자는 자신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역사에서 자신의 이름이 어떻게 남을지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즉위를 반대하는 대신들을 죽이지 못했고, 3 황자를 암살할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범한 역시 이 점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가 3 황자 암살 사건의 주모자가 아니라고 단정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누가 이승평을 죽이려 한 것일까?

이승평은 황궁 긴 복도에서 도망치면서 이 문제를 생각했다. 그의 앳된 얼굴은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안타깝게도 이곳은 함광전이 아니라서 황태후도 그의 여린 목숨을 보호해 줄 수 없었다. 그가 큰 소리로 도움을 요청했지만 긴 복도에는 아무런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아무도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절망에 빠진 이승평은 자신이 얌전히 함광정에 머물고 있었다면 지금 목숨을 위협받는 일도 없었다고 생각하며, 속임수에 속아 이곳에 온 것을 후회했다.

하지만······ 상대방이 스승님의 말을 전하러 왔다고 말하며 증거물까지 보여주었기에 그로서는 속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어머니의 눈을 속이고 함광전 안에 있는 태감과 궁녀들의 눈을 피해 몰래 이곳까지 온 것이었다.

3 황자는 복도를 정신없이 질주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빨리 달린들 한들 아이가 성인보다 빨리 달릴 수는 없었다. 숨을 헐떡이며 뛰어가던 이승평이 바닥에 넘어졌다. 그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자신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는 태감 두 명을 바라보았다.

저 태감들은 무술 실력이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분명 어떤 훈련을 받은 사람이었다. 살인 훈련을 받은 사람이 힘없는 아이 하나를 죽이는 것은 무척이나 쉬운 일이었다. 그래서 두 태감에게 이승평은 이미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품속에서 검을 꺼냈다.

태감들이 이승평에게 검을 찌르려 하는 순간 이승평이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오른손으로 장화 속에 있는 비수를 쥐었다. 그가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며······ 비수를 휘둘렀다.

‘휙!’ 소리를 내며 태감의 손에 있던 검이 3 황자의 작은 몸을 스쳐 복도 청색 돌판에 꽂혔다. 돌들이 부셔질 만큼 상당한 힘이 실린 일격이었다.

겁에 질린 3 황자는 비명을 지르면서 몸을 이리저리 뒤틀고 발을 바둥거리다가 우연히 날아오는 칼날을 피하는 데 성공했다. 그가 손을 부들부들 떨며 비수를 아무렇게나 휘둘렀다.

‘촥! 촥!’ 소리와 함께 태감들의 옷이 찢어져 구멍이 났다. 살기등등한 표정을 짓고 있던 태감들이 놀란 기색을 보였다. 이들은 귀하게 자리기만 한 황자가 비수를 휴대하고 가질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고, 게다가 비수의 칼날은 놀라울 정도로 날카로웠다.

처음 장화에서 뽑힌 비수는 너무나도 이질적으로 보였다. 칼날을 번뜩이는 비수가 어찌 열 한두 살 소년의 앳된 손에 어울릴 수 있단 말인가.

이승평은 생사가 갈린 순간에 비로소 12살 때 범한이 사람을 죽이기 위해 보였던 용기를 똑같이 드러내 보였지만, 안타깝게도 그 스승만큼 실력이 뛰어나지는 못했다. 암살하려는 태감들이 비록 무예를 익힌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어린아이 하나쯤 무력화시키는 건 일도 아니었다.

태감이 바둥거리는 이승평을 바라보다가 비수를 쥔 그의 오른손을 발로 밟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찢어진 옷을 바라보며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다른 태감이 이승평의 목을 밟아 조르며 검으로 찌르려 했다.

목이 조여 숨을 헐떡이던 이승평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칼날을 바라봤다. 그가 두 눈을 꽉 감고 울먹였다. 이제 꼼짝없이 죽는다는 생각이 들자 온갖 후회가 밀려들었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분명 차가운 칼날이 자신의 가슴을 파고들었고, 우악한 손길이 자신의 숨통을 졸랐지만······ 뜻밖에도 여전히 살아 있었다. 몸이 밟히고 양손이 결박된 채로 말이다.

영문을 모르는 그가 눈을 뜨자 앞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그의 머리 위에 있는 태감 두 명은 그와 마찬가지로 겁에 질린 얼굴을 한 채 입가에는 검은 피를 흘리고 있었다.

이승평은 다시 살 기회가 왔다는 걸 알고는 ‘헉’하고 숨을 들이쉬었다. 그가 태감의 발에 밟혀 있는 자신의 오른손을 꺼내 비수로 자신의 가슴을 밟고 있는 태감을 발을 찔렀다.

비수가 살을 파고들자 피가 뿜어져 나왔다.

벌떡 일어난 이승평은 방금까지 살기등등했던 태감들이 나무토막처럼 변해버린 모습을 보고는 화들짝 놀랐다. 양다리가 부들부들 떨려 앞으로 다가가 무슨 일이 발생한 건지, 왜 태감들이 눈가에 검을 피를 흘리면서 쓰러져 있는 건지 알아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가 고개를 숙여 피가 흐르는 자신의 가슴을 바라봤다. 그제야 엄청난 통증을 느낀 그가 비명을 질렀다.

태감이 칼을 찌르다가 죽는 바람에 칼날은 그의 몸에 3촌 정도만 들어가는 데 그쳤고, 덕분에 이승평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이승평이 발을 질질 끌며 이미 죽은 태감들에게 다가갔다. 두려우면서도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한 그가 태감들을 자세히 살펴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하늘이 날 도와 태감들에게 저주를 내려준 건가?’

이윽고 평정심을 회복한 3 황자는 저주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가 복부 부분이 찢어진 태감들의 옷을 바라본 뒤 고개를 숙여 자신의 손에 들린 검은색 비수를 바라봤다.

그가 아무렇게나 비수를 휘둘렀을 때 날카로운 칼날이 태감의 옷을 찢었고 피부에 살짝 베어 상처를 낸 것이었다.

두 태감들은 날카로운 비수에 독약이 발라져 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3 황자 자신도 몰랐으니 말이다.

3 황자가 가진 비수에는 감찰원의 가장 강력한 독약이 발려 있었다. 날카로운 칼날에 피부가 베인 태감들은 순식간에 칼날에 발린 독이 전신에 퍼져서 죽은 것이었다.

정말이지 엄청난 위력을 지닌 독약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