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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여년-709화 (709/1,108)

709화 처음 장화 속에서 뽑힌 비수 (1)

이틀 동안 집합한 장 공주 쪽 세력은 경도의 큰 거리와 작은 골목에서 범한의 행적을 추격했다. 이와 같은 엄청난 행동력으로 감찰원의 숨겨진 암춘을 발견해 파괴하고 6처 검수 7명을 죽이는 성과를 올리기는 했지만 범한을 잡지는 못했다.

경도부와 성에서 상주하는 수비사 인원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언씨 집안을 포위하고 쳐들어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집안에 있는 종들만 잡았을 뿐 언약해는 잡을 수 없었고, 심지어 심 낭자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범한을 도와 경도에서 암암리에 감찰원 옛 부하들과 연락하고 있는 작은 언 대인의 행적을 찾지 못한 건 말할 것도 없었다.

대군이 경도에 들어오지 않는 이상 천하대로 옆에 서 있는 정방형 건물에 쳐들어갈 방법은 없었다. 이에 감찰원 외부를 빙 둘러싸 범한과 언빙운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 데 주력했다.

정왕부를 포위해 감시하는 인력도 더 많아졌다. 하지만 병력을 이끌고 안으로 들어갈 엄두는 내지 못했다. 왜냐하면, 어둠 속에 숨어 지켜보고 있을 범한의 시선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밤중에 상사의 비밀 명령을 받은 감찰원 밀정들은 관아로 돌아가지 않고 경도의 인파 속으로 숨었다. 힘을 숨기고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며 가장 익숙한 어둠 속으로 숨어 들어간 것이었다.

총 6백여 명의 감찰원 밀정들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리고 이 일은 황궁 안에 있는 귀인들에게 직접적인 위협으로 다가왔다.

* * *

황태자가 즉위한다는 소문이 들렸지만, 이후에 대한 소식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황궁에서는 정보를 엄격하게 통제하고 40여 명의 대신을 체포해 감옥에 가두었지만 워낙에 큰 사건인 만큼 모두의 이목을 가릴 수는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경도 백성들도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깨달았고, 황궁 안에서 큰 혼란이 일어났다는 걸 알게 되었다. 백성들은 역사를 바꿀 힘이나 용기가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이 모든 걸 가만히 지켜보아야 했다.

이들은 자신의 상점을 닫고 충분한 양식을 비축하고 자신의 냉기 서린 집안으로 숨어들었다. 방안 이불 속에 숨어 떨면서 하늘과 신묘에게 이전의 평화로운 일상을 살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들은 평화로운 일상을 누릴 수 있게만 해준다면 누가 황제가 되든 상관없었다.

경도에는 이전에는 느껴본 적 없었던 무거운 공기가 흘렀고, 거리와 골목에는 적막함만 감돌았다. 통행이 금지된 밤은 물론이고 낮에도 집 밖으로 나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장 공주의 계획에 따라 이미 경국의 새로운 황제가 된 황태자도 민심이 불안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지금은 경도 안에서만 쌓이고 있는 혼란의 기미가 만일 경도를 넘어 각 주와 군에까지 퍼진다면 경국은 정말이지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휩싸일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반드시 가장 빠른 시간 안에 모든 걸 안정시켜야 했다. 그리고 상황을 안정시키려면 반드시 범한을 찾아 죽여야 했다.

황태자가 옆에 산처럼 쌓인 상주문을 바라보고는 아무 말 없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3일 동안 경국 각 군과 주에서 올린 상주문은 무려 1천 7백여 개에 달했다. 예전에는 상주문을 일단 문사중서의 대학사들이 본 뒤에 중요한 일은 폐하가 결정하게 하고 자질구레한 일들은 각 부에서 처리하도록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대학사들이 감옥에 갇혀 있었고, 각 부의 관리들도 혼란에 빠져 우왕좌왕하고 있었으며 경도 민심도 흉흉해 조정에서 정무를 제대로 처리할 수가 없었다.

작은 산처럼 쌓여 있는 상주문들 중에서 가장 위에 있는 상주문을 본 황태자가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맨 위에 있는 상주문은 가장 늦게 온 것으로 동산로 외에 다른 6로 총독들이 폐하의 암살 소식을 들은 뒤 보낸 문서였다.

상주문에서 총독들은 최대한 공손한 말을 사용했지만 비굴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언제든지 칼을 빼 들 수 있을 것처럼 단호한 결의마저 느껴졌다.

황태자가 한숨을 쉬며 경국 문신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기개가 넘치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감옥에 갇혀 있는 호 대학사와 서 대학사를 필두로 한 수십 명의 대신은 며칠이 지났는데도 고집을 꺾지 않고 있었다.

이에 더는 시간을 끌 수 없었기에 어제부터 고문을 시작했지만, 대신들은 지조를 굽히지 않았고, 심지어 서 대학사는 오늘 정오부터 단식하며 최후의 항전을 벌이고 있었다.

머리가 아파진 황태자가 자신의 태양혈을 누르며 속으로 생각했다.

‘고모가 말한 대로 대신들을 모두 죽여야 하는 걸까? 하지만······ 모두를 죽이면 이후에는 어떻게 한단 말인가? 정무는 누가 처리한단 말인가? 본궁은 결국에는 고독한 군주로 남게 돼야 하는 걸까?’

그때 후 내관이 미리 알리지도 않고 허겁지겁 어서방 안으로 들어왔다. 인기척에 고개를 든 황태자가 무슨 일이냐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황태자 역시 후 내관이 고모의 심복으로, 신임받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후 내관이 그의 귀에 대고 뭐라 속삭이자 황태자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렸다.

놀란 황태자가 벌떡 일어나 손으로 책상을 힘껏 내리쳤다. 산처럼 쌓여 있던 상주문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셋째가 암살당하다니! 누가 그런 일을 벌이라고 했는가!”

후 내관이 벌벌 떨며 작은 목소리로 울먹였다.

“노비는 관련이 없습니다. 노비가 한 일이 아니옵니다.”

“관련 없다고!”

황태자가 그를 차갑게 노려보며 말했다.

“지금 황궁을 관리하는 사람은 자네가 아닌가? 자네가 관여하지 않았다면 자객이 어떻게 이곳까지 들어올 수 있는가?”

“이 노비는 정말로 모르는 일입니다.”

후 내관이 재빨리 빌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까스로 화를 가라앉힌 황태자가 곧장 후궁으로 향했다. 그는 황제가 되고 싶어서 범한을 죽이려 했고, 그런 면에서 범한의 제자인 셋째는 그의 가장 큰 적임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는 셋째를 죽여야 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었다. 그의 눈에 셋째는 아직 어린아이였다.

만약 셋째에게 정말 일이 터진다면 이미 혼란에 휩싸여 있는 황궁과 경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굳은 표정으로 후궁으로 가던 황태자가 속으로 생각했다.

‘누가 셋째를 죽이려 한 거지? 내가 더 모질게 행동하도록 고모가 셋째를 죽이려 한 걸까? 아니면 나를 궁지로 몰아넣기 위해 둘째가 꾸민 일일까?’

그는 어느 쪽에서 움직였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셋째가 죽어서는 안 된다는 것만큼은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이에 황태자는 걸어가면서 셋째가 살아 있기를 빌었다.

* * *

3 황자 이승평의 생사는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수 있었기에 신중하게 다루어야 했다. 반면 경도 관리들은 이와 같은 대우를 받지 못했다. 감옥에 갇힌 관리들은 고위 관리부터 하급 관리까지 모두 고문에 시달리며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문하중서에는 일을 처리해 줄 대신이 없었지만 6부 관리들은 나라가 유지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했다. 황궁에 있는 황태자에게 상주문을 처리할 옥새가 없었음에도 관리 대부분은 황태자의 권위를 묵인해 주었다.

호부상서 범건은 정왕부에 숨어 있었고, 이부상서 안행서는 관리들을 새로 뽑아 각 부에 파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다른 4부는 황태자의 통치 기반을 다지기 위해서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맡은 바 일을 처리하려 애썼다.

자연스럽게 황태자와 반대쪽에 섰던 관리들은 배척을 당해야 했다. 그중에서도 범한과 깊이 결탁했던 사람들은 관직을 빼앗기고 저택에 감금되어 심문을 기다려야 했다.

큰 감옥은 이미 범한의 장인어른의 말에 따라 자신의 기개를 드러낸 관리들로 꽉 차 있었다. 그리고 조정에서 범 상서의 인맥은 은밀하고 깊어서 장 공주라 할지라도 단박에 모두를 색출해 내는 건 불가능했다.

또 범한의 경우 조정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자신의 계획을 무리 없이 진행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범문사자도 멀쩡하게 살아 있었다. 그중에서 위험한 운명을 짊어진 후계상은 교주에서 수군의 동정을 주시하고 허무재와 몰래 정보를 주고받으며 언제든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또 성가림은 범한의 계획에 따라 소주에서 소문무와 함께 황실 금고를 책임지고 있었다. 양만리는 남쪽에서 제방을 수리하고 있었고, 사천립은 송나라에서 세상에서 가장 큰 포주로 활동하고 있었다.

장 공주는 범한의 제자들을 붙잡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는 있지만 지금 경도 상황이 안정적이지 않아 황태자가 즉위를 하지 못한 데다가, 6부 총독들의 태도가 미온적이라서 멀리까지 손을 뻗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지금은 초가을이었다. 매년 여름 홍수가 끝난 뒤 제방 수리를 완료한 수운 총독 관아는 관례에 따라 경도에 은전을 요구할 관리를 파견했다. 그리고 이번에 경도로 파견된 관리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양만리였다. 범한의 계획에 따라 수청리사로 파견된 그는 제방을 수리하는 데 모든 열정을 쏟아부었고, 덕분에 수운 관아에서 상당한 인정을 받고 있었다. 게다가 호부상서와도 관계가 좋았기에 이번에 경도로 파견을 오게 된 것이었다.

만일 황제 폐하가 암살당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양만리가 반역자 범한을 도운 공범이라는 혐의를 받지 않았다면, 그는 무사히 경도에서 은전을 받아 돌아갔을 것이었다.

하지만 자기 발로 공부로 들어간 그는 이후 나오지 못했다.

어두운 방에 갇혀 있는 2일 동안 양만리는 고문을 받아 만신창이가 되었다. 하지만 형부에서 온 사람은 그의 입을 여는 데 실패했고, 범한의 범죄를 시인하는 자백도 얻어 낼 수 없었다.

물론 양만리는 죄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스승이 그런 대역무도한 악행을 저질렀을 거라고 믿지 않았고, 범한이 어디에 있는지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날 저녁 무렵 그를 데려가기 위해 궁정에서 사람이 왔다. 그의 품계는 감찰원 감옥에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높지 못했지만, 황태후는 그가 범한의 제자인 점을 생각해 감옥에 자리를 내주었다.

오랜만에 본 햇빛에 양만리가 눈을 찌푸렸다. 늙은 농부처럼 허리가 굽은 모습으로 그가 검은 방 안에서 걸어 나왔다. 몸에서 안 아픈 곳이 없었고, 피딱지가 앉은 손가락에서는 다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는 감찰원 감옥에 들어가면 다시는 하늘을 볼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절망했다.

궁정 시위 두 명이 그를 잡아끌면서 빨리 걸으라고 타박을 했다. 거리 옆에는 참혹한 광경을 구경하고 있는 공부 관리들이 보였다. 양만리가 바라보자 관리들이 고개를 돌리고 못 본 척을 했다.

관리들은 2일 전에 태극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었기에 황궁에서 무력으로 처리하려 한 대도 전혀 놀랍지 않았다. 하지만 관리들은 황위에 오르려 하는 황태자에게 고개를 숙이고 순순히 굴복한다면 최악의 상황이 되지 않는 이상 황태자가 관리들을 죽이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2일 동안 상황을 지켜보니 아무래도 황태자의 인내심이······ 바닥이 난 것 같았다.

공부를 나온 양만리가 죄인을 호송하는 마차에 올랐다. 어느 길모퉁이를 돌던 마차가 갑자기 멈춰 서자 시위 한 명이 인상을 찌푸리며 마차 발을 올리고 밖을 내다봤고, 그 순간 그이 머리가 떨어졌다.

이후 그의 몸이 힘없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안색이 하얗게 질린 양만리가 목이 잘려 쓰러진 시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피를 바라봤다. 순간 텅 빈 있는 뱃속에서 시큼한 물이 올라오면서 구역질이 났다.

그의 옆에 있는 시위가 화들짝 놀라 밖에 도움을 요청하려 했지만, 마차 밖에서 들어온 쇠막대기가 그의 입을 막았다.

마차 발이 걷히고 범한의 잘생긴 얼굴이 나타났다. 담담한 표정으로 겁에 질려 있는 양만리를 바라보던 범한이 웃으며 물었다.

“나오지 않을 건가? 계속 거기 있을 생각인 건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양만리가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스승님······ 제가 뭐라고 이런 위험을 무릅쓰신 겁니까.”

범한이 시끄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직접 그를 마차에서 끌어내 감찰원에서 특별히 제작한 평범한 마차에 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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